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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대도-13화 (13/425)

13화

연주상단의 정문을 부수고 들어서는 무리들.

남궁소경이 앞장을 서며 창운상단의 창무당을 이끌고 안으로 들어섰다.

채애애애앵!!

그와 동시에 상력단의 무인들도 검을 뽑았다.

오주상이 내력을 끌어 올려 소리쳤다.

“남궁소경, 멈추지 못할까?”

“오주상, 꽤 오랜만에 보지? 한때는 잘 지낸 사이였는데.”

“굳이 지난 이야기는 할 필요가 없지. 지금이 중요하다.”

“혹시나 옛정에 살려달라고 부탁할까 걱정했는데. 자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니 편안하게 죽일 수 있겠어.”

씨익.

남궁소경의 자신만만한 표정.

방계 출신이지만 남궁세가 출신이라는 것에 무한한 자부심을 가진 그는 예전부터 늘 오주상을 무시하곤 했다.

“강성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교육을 시켜줬다면서?”

“애초에 그놈들이 본 상단의 영업장에서 행패를 부리며 방해하지 않았다면 그런 일이 없었겠지.”

“젊은 객기에 잠시 흥분할 수도 있는 일이지 않나? 거기다 네놈이라면 충분히 그들을 죽이지 않고도 상대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았지. 그건 창운상단을 떠나 나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그것 때문에 여기까지 창무당을 이끌고 몰려온 것이던가?”

“후후후. 내가 그 정도로 속이 좁은 놈으로 보이는 모양이지? 이번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그대의 상단주께 강성을 포기하라는 말을 전하기 위해 온 것이다.”

“그럼 그렇지. 네놈들의 속셈은 강성이겠지.”

오주상도 창운상단에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잘 알았다.

“이거 참. 여전히 강성에 대해 착각하고 있었군. 강성은 원래 본 상단의 관할이다.”

“우린 정당하게 그들에게서 권리를 받았다.”

“정당하게라. 본 상단 몰래 뒷거래를 한 것을 모를 줄 알았나?”

“그건 네놈들이 워낙 많이 받아먹은 탓이지.”

“그만하지. 어차피 서로 말은 통하지 않으니깐.”

“결국 네놈이 원하는 것은 싸움이군.”

“멍청한 놈. 상단의 일이라 하나 결국 무인에게 싸움 말고 다른 방식이 있던가? 무인에겐 이기는 것이 정의이고 진리라는 것을 아직도 모르다니.”

스르릉-

남궁소경의 허리춤에서 검을 뽑혀 나왔다.

“자, 이제 인사도 끝났으니, 지금부터 재미있게 놀아볼까?”

“……한 가지 명심해라. 남궁소경. 난 예전과는 다를 것이다.”

“근데 미안해서 어쩌나? 네놈 상대는 내가 아니라서.”

그 말을 끝으로, 남궁소경의 뒤에서 한 중년인이 나타났다.

호리한 몸으로 뒷짐을 진 사내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렸다

“넌 별 볼 일 없는 녀석들을 치우도록. 저놈은 내가 처리하마.”

“예!”

남궁소경은 곧바로 수하들과 함께 상력단의 무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창무당은 이놈들을 쓸어버려라!!”

와아아아아-!!

창무당의 무인들이 그를 따라 쏟아졌다.

파아앗!

“저놈들을 막아라!”

까아아앙!!

차아아아앙!

검과 검이 부딪혔다.

생사가 일검에 달리는 상황.

누가 먼저 상대를 베고 지나가는냐에 삶과 죽음이 정해졌다.

“커어억.”

“으악!!”

고통스러운 비명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순식간에 피가 사방에 뿌려지고, 연주상단의 경내로 혈향이 짙게 퍼져 나갔다.

‘이럴 수가…… 대체 누구이기에?’

수하들이 추풍낙엽처럼 목숨을 잃어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오주상은 다가오는 중년인의 기세에 온몸이 얼어붙었다.

파앗!

오주상의 목을 향해 강맹한 검기가 뻗어갔다.

손도 써보지 못하고 목이 잘릴 순간.

채애애앵!

‘뭐지?’

눈을 감아버린 오주상의 바로 앞에서 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뒤로 물러나라!”

중후한 사내의 목소리.

‘영한 대호위!’

익숙한 목소리에 눈을 뜨자, 어느새 앞을 막아선 인물의 신형에서 흑기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소문이…… 사실이었군.’

흑랑괴검(黑狼怪劍).

사파 무림서열 이백 위에 이름을 올릴 정도의 초고수.

“크하하하!”

중년인은 대소를 터뜨렸다.

“누군가 했군. 오랜만일세.”

“……남궁인?”

영한의 표정이 일변했다.

남궁세가 외남당의 부당주이자 창천상단의 총관이라는 직책 또한 지니고 있는 인물.

창운상단에서 강성의 사건에 대해 보고를 받은 그는 연주상단을 조용히 타이르기 위해 내려온 참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도 익숙한 인물이 있다면 이야기는 달랐다.

남궁인이 미소를 지으며 영한을 향해 알은척을 했다.

“흑랑괴검 영한이 이런 촌구석에 처박혀 있을 줄은 몰랐군. 그날 이후 오 년이 지났는가? 목숨만 건져 촌동네로 온 모양이야.”

영한에게 잊지 못한 쓰라린 치욕의 기억.

오 년 전 강서성 사파십대문 중 한 곳인 구혈장원(究血場院)은 남궁세가에 의해 멸문당했다.

구혈대의 수장이었던 영한은 겨우 목숨을 구걸받다시피 하여 살아남았고.

“영한, 살고 싶다면 한 번 더 봐주겠네. 여기서 그만 물러난다면.”

“…….”

살기 위해 또 한 번 구걸을 하라?

영한은 이빨을 깨물었다.

그날 이후 단 한 번도 잠을 편하게 자본 적이 없었다.

주군이었던 장주의 죽음이 눈앞에서 떠나지 않았다.

또다시 남궁세가에 목숨을 구걸받는다면 겨우 버티고 있던 자존심이 무너질 것이었다.

“물러날 생각이 없는 모양이군. 원한다면 옛 동료들에게 보내줘야지.”

스팟-!

남궁인의 별호이자 애검 살군검이 검집에서 빠져나왔다.

휘이이잉-

차가운 바람이 살군검을 감쌌다.

그의 독문검법인 창천풍검법(蒼天風劍法).

남궁인은 세가 안에서도 창천풍검법을 완벽하게 펼치는 것으로 열 손가락에 꼽히는 인물이었다.

“과연 흑랑의 날카로운 이빨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차아앗!

영한의 전력을 다해 사기를 끌어 올리며 낭후검을 내리쳤다.

쿠와아아아앙!!

흑랑이 괴성을 지르며 날카로운 발톱으로 남궁인을 갈기갈기 찢기 위해 달려들었다.

“조금 날카로워지긴 했군. 그렇다고 늑대 새끼가 호랑이가 되는 건 아니지만.”

위이이잉-

쏴아아아아아아-!!

살군검에서 휘몰아친 거친 바람이 쏟아졌다.

창천풍검법의 대야풍(大野風).

“크윽!”

앞으로 튀어나가던 흑랑이 거친 바람에 그대로 멈추며 뒤로 밀려났다.

영한은 몸을 빠르게 비틀며 다시 공격을 시도했다.

파아앗!

거대한 흑랑의 발톱이 남궁인을 바로 스쳐 갔다.

“좋은 공격이군.”

채애애앵!

남궁인이 검을 세우고, 낭후검과 살군검이 부딪친 채 잠시 멈췄다.

파악!

남궁인이 힘을 주며 영한을 강하게 밀어냈다.

두 사람의 간격이 벌어진 순간,

피식.

미소를 머금은 남궁인이 뒤로 물러나는 영한의 가슴을 향해 살군검을 매섭게 찔러갔다.

챙! 챙! 챙! 챙! 챙!

찰나의 순간 눈앞으로 뻗어 나오는 수십 개의 검기들.

피이잇!

살군검의 검기가 영한의 어깨를 찔렀다.

“커어억.”

영한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졌다.

남궁세가의 벽은 높았다.

오 년 동안의 모든 노력이 사라졌다.

‘결국 안 되는가? 또 도망을…….’

살기 위해서는 물러나야 한다.

하지만 두 번 다시 후회가 주는 고통의 시간을 가지고 싶지 않았다.

“크으윽…….”

영한은 처진 어깨를 겨우 잡으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남궁인…… 아직 끝나지 않았다.”

“크하하! 흑랑괴검이 머리가 이상해졌군. 허튼 소리를 하지 못하도록 일검에 네놈의 목을 잘라주마.”

퍼어어어엇!

남궁인이 몸을 사선으로 비틀며 뛰어올랐다.

살야월풍(殺野月風).

창천풍검법의 초식 중 가장 살기가 짙은 초식.

“크아아아아악!”

영한 또한 단전의 원기까지 끌어 올려 낭후검을 들어 올렸다.

쉐애애애액-!

파공음과 함께 검기가 허공을 가르며 떨어졌다.

쿠아아아아아-

콰아아아아아-

두 마리의 흑랑이 검기를 향해 날카로운 발톱을 찍어 내렸다.

스걱.

예리하게 베어지는 소리가 들리며, 남궁인의 살군검이 흑랑을 뚫고 영한의 어깨로 떨어졌다.

‘망…… 했어.’

믿었던 영한이 쓰러졌다.

처절하게 창운상단을 막아내는 연주상단의 무인들을 보며 손이 떨렸다.

‘저 새끼가…… 그토록 자신 있다고 하더만……!’

남궁인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동안 준 돈이 아까워 죽겠군!’

왕진만은 그 상황에서도 돈을 많이 준 게 아쉬웠다.

‘쳇. 강성을 돌려주면 물러가지 않을까? 안 되면 돈을 주면 되잖아.’

그는 걱정을 하면서도 미련을 여전히 버리지 못했다.

“크크. 쥐새끼처럼 여기 숨어 있었군.”

왕진만은 등골이 오싹했다.

파앗.

남궁소경은 왕진만의 목덜미를 낚아채며 끌고 나왔다.

“무릎 꿇어.”

퍽!

남궁소경이 그의 허벅지를 내려찍었다.

“아아아악!”

왕진만이 비명을 지르며 무릎이 바닥 위로 바로 떨어졌다.

완전히 뼈가 부러진 듯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남궁인이 한 걸음 다가섰다.

“왕진만 상단주. 대체 무슨 배짱으로 욕심을 부린 게요?”

“미…… 안…… 합니다.”

“허허허, 아니, 바로 미안하다고 할 분이 강성에서 왜 그런 짓을 했소? 창운상단이 본 세가인 남궁세가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말이오?”

“제…… 가 잠시 눈이 돌았나 봅니다.”

“맞소. 당신 말대로 눈이 돌았나 보구려. 그러니 그 눈을 더 이상 쓰지 못하게 해주겠소.”

“허억…… 대인, 한 번만……!”

“남궁세가를 건드린 죄가 얼마나 큰지 보여주겠소이다.”

휘익!

남궁인의 손가락이 왕진만의 눈을 찌르기 위해 뻗어갔다.

그때였다.

갑작스레 등 뒤를 향해 날아드는 검기.

처억!

남궁인은 손가락으로 날아온 물체를 낚아챘다.

‘나뭇가지?’

“굳이 실명까지 만들 필요는 없을 것 같지 않소?”

“어떤 놈이냐?”

남궁인은 단번에 인상을 쓰며 앞을 노려보았다.

모든 시선이 한 곳에 집중되었다.

유유하게 걷는 청년.

“잠시 이곳에 볼일이 있는 사람이지요.”

고진유가 가볍게 손을 들며 모습을 드러냈다.

남궁인은 흩뜨려진 몸을 바로 세우고 곧바로 고진유의 전신을 훑어보았다.

‘음…… 정기(正氣)가 느껴지는 것으로 봐선 정파의 무공을 익힌 것 같군.’

그는 희미하게 느껴지는 고진유의 내력을 단번에 찾아내어 읽었다.

“사문이 어디인지 물어봐도 되겠나? 도기(道氣)가 느껴지는 걸로 봐서는 도가인 것 같은데.”

“미안하지만 모르는 사람에게 알려줄 마음은 없소이다.”

“하, 하하하! 이렇게 간덩이가 부은 놈을 오랜만에 보는군. 알려줄 수 없다면 얼마나 대단한 곳에서 왔는지 직접 알아봐야겠지?”

내력을 서로 주고받다 보면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터.

신법 창천십보를 펼친 남궁인이 순식간에 고진유의 앞으로 바짝 다가섰다.

고진유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그가 움직이는 신법을 따라 눈동자를 움직였다.

‘이자도 빠르지 않군.’

무림에 나온 후 빠르게 움직이는 무림인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바로 상대하면 위험해.’

사부 오청석이 가르쳐 주었다.

“고수들과 비무를 할 때에는 간격을 유지한 채 싸워야 한다.”

“이유가 뭡니까?”

“그들은 경험이 많기 때문이니라. 무공이 강하다고 해서 순간적인 반응에 대응을 쉽게 할 순 없지. 제자는 움직임이 빠르기에 간격을 유지한 채 싸우면 충분히 강한 상대도 이길 수 있다.”

타앗!

고진유는 그가 다가온 거리만큼 뒤로 물러났다.

순식간에 다시 거리가 벌어졌다.

남궁인의 눈이 커졌다.

내력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던 청년.

‘이놈이…… 내력을 숨겼단 말인가?’

남궁인은 곧장 상대가 보통이 아님을 파악했다.

‘무공도 신법처럼 제법 능력이 되는 놈인가?’

남궁인의 신형이 흐릿하게 변했다.

쉬이이익-

고진유 앞으로 달려오는 가운데, 똑바로 가슴을 향하는 살군검.

남궁인은 몸을 반대로 틀며 살군검을 한 치 정도 비켜섰다.

“아앗?!”

반대편에서 본다면 이미 몸에 검이 박힌 것처럼 보일 만큼, 그리고 당사자가 아닌 주위에서 놀란 소리를 낼 만큼 고진유와 살군검 사이의 간격이 사라졌다.

하지만,

씨익-

‘이놈이!’

고진유의 입가에 흐르는 미소에는 긴장감이라는 것이 전혀 없었다.

툭.

고진유는 가볍게 일보를 내딛는 동시에 어깨로 남궁인의 가슴을 쳤다.

“큭!”

가슴에서 난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남궁인이 중심을 잃고 뒤로 물러났다.

“무작정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 걸 보니 남궁세가는 정파가 아니라 사파인 모양이군.”

“이…… 노오오오옴!!”

남궁인의 노기가 하늘로 치솟았다.

젊은 놈에게 제대로 망신을 당했다.

‘뭐야. 단번에 걸렸잖아? 쉽게 흥분하는 인물이군.’

흥분하게 되면 내기의 운용이 매끄럽지 못하게 된다고 했었다.

파아앗!

살군검에서 살빛이 퍼져 나왔다.

“남궁세가의 창천풍검법이네. 조심하게!”

거친 호흡을 내뱉으며 쓰러져 있던 영한이 소리쳤다.

휘이이이이-

바람과 함께 먹구름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감히…… 본인을 무시하고도 살아남을 수 있다고 여기느냐?”

풍운참(風雲斬)의 초식.

팟팟팟팟팟!!

고진유의 머리 위에서 소낙비처럼 검기가 떨어졌다.

눈앞의 청년 손이 가볍게 움직였다.

스르르르르-

언제 검을 뽑았는지 공작의 날개가 펴지듯 검의 잔영이 퍼져 나갔다.

검의 잔영은 매화 잎으로 변하며 아래로 떨어지는 검기를 향해 허공으로 날려갔다.

고진유의 검에서 펼쳐진 매화화류(梅花火流).

펑펑펑펑펑펑--

꽃잎이 풍운참의 검기를 하나씩 감싸 안으며 완벽하게 막아내고 있었다.

“네놈은…… 화산파……!”

남궁인의 주위로 매화 향이 아득하게 퍼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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