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드디어…… 오 년 만에……!’
선수에 서서 육지를 보는 고진유의 눈가에 촉촉하게 눈물이 흘렀다.
망망대해의 바다가 아니라 끝이 보이지 않는 육지가 펼쳐져 있었다.
고진유는 흑선을 항구로 몰지 않고 최대한 해안가 가까이에 흑선을 붙이도록 했다.
타앗!
고진유는 내력을 끌어 올려 선수에서 뛰어내렸다.
호충신법의 비경류신(飛輕流身).
휘리리릭!
몸을 가볍게 만든 뒤 바람을 뒤로한 채 기류를 타고 허공을 날았다.
선원들이 너도나도 몰려 나와 놀란 표정으로 고진유를 뒷모습을 보았다.
수면을 가볍게 찬 뒤 바다를 건너는 고진유의 모습은 한 마리 새처럼 보였다.
타악!
고진유는 바닷가에 내린 뒤 육지로 쉬지 않고 달렸다.
얼마동안 달렸는지 몰랐다.
멈칫.
주위엔 어느덧 바다는 보이지 않았다.
털썩.
바닥에 주저앉아 주위의 냄새를 맡았다.
‘하…… 육지의 냄새구나.’
오 년간 지냈던 괴도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멀리 산들과 평지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사방엔 바다밖에 보이지 않았는데.
“하, 하하! 하하하하!”
가슴이 터질 듯 소리를 질렀다.
이상하게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패앵!
털썩.
훌쩍거리던 콧물을 시원하게 푼 고진유는 그 자리에서 뒤로 누웠다.
육지의 냄새가 그리웠다.
살아서 육지에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다.
하늘이 점점 어두워져 갔다.
‘사부…….’
그분은 사지도 움직이지 못한 채 하늘만 바라보았다.
고진유가 섬에서 오 년을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그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부가 무공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면 섬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그대로 죽었을 터.
사부는 생명의 은인이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분의 부탁을 당장 들어주긴 어려워. 차근차근 원수를 갚아주마.”
사부가 지옥혈림에 잡혔던 과정을 들었다.
“무림맹에서…… 세상에 믿을 놈이 하나도 없군.”
사부의 사숙도 그 일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
신비복면인들.
그들은 세상에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는 이들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사부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서는 우선 그곳에 가야 했다.
하지만 무림맹은 중원 최고의 무인들만 드나들 수 있는 곳이다.
‘일단 가보면 답이 나오려나?’
무림맹에 대한 조사를 먼저 해야 할 터.
“복면인들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네놈들의 정체를 필히 알아내서 중원에 뿌려 버리고 말겠다.”
그렇게 사부의 부탁을 들어준 뒤, 이번에야말로 자유롭게, 새로운 인생을 살 것이다.
“…….”
멀뚱히 어두워진 하늘을 보았다.
문득 오래전 일이 떠올랐다.
“어!”
고진유는 누웠던 자리에서 빠르게 일어났다.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사부가 부탁한 것만큼 급한 일이! 그곳에 가기 전에 당장 해야 할 일이 생각났어! 망할 놈의 새끼…… 이젠 나한테 죽었어!”
오 년 동안 그가 왜 잡혔던 것인지 많은 생각을 했다.
‘망할 놈의 두목밖에 없어.’
왕진만이 지옥혈림에 의뢰했다고 해도, 그는 무영도수의 존재는커녕 고진유의 존재조차 전혀 몰랐을 터.
그렇다면 가능성은 두목의 배신뿐이다.
서로 모종의 관계가 있는 게 분명했다.
두목이 자신을 싫어하는 이유.
대충 그게 무엇인지 안다.
‘두목은 내가 거추장스러웠겠지. 나를 따르는 애들도 같이 나간다고 했었으니까.’
두목이 배신할 이유는 뻔하다.
무영도수의 이름이 점점 알려질수록 두목은 항상 부담스러워했다.
그때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다.
그와 싸울 힘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젠 다르다.
“땅딸보 새끼. 기다려라. 그동안 맞은 만큼 패줄 테니. 내 목패도 돌려받아야겠어.”
씨익.
고진유는 미소를 지었다.
이젠 흑나찰도 제압할 수 있는 실력이라고.
* * *
연주로 가는 길은 괴도 안이 아닌 것만으로도 재미가 있었다.
벽화당 두목을 찾아가는 길이라는 것까지 잊을 정도로, 오주야의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산에는 먹을 것들이 널려 있었다.
화르르르-
모닥불이 타올랐다.
그 위로 노릇노릇하게 익은 토끼 고기가 불향을 더하며 구워졌다.
“아하…… 이 냄새야.”
그동안 잊지 못했던 진짜 고기의 향기.
꿀꺽.
침이 저절로 목 안으로 넘어갔다.
고진유는 입맛을 다시면서 예술품을 만드려는 듯 고기를 돌렸다.
모닥불 옆에 차례대로 정렬된 기름진 토끼 고기들.
일각도 되기 전에 열 마리를 단숨에 잡았다.
‘히히, 요놈들을 잡는 건 애들 장난이지. 그러고 보면 그놈들이 엄청 빠르고 예민했어.’
괴도에선 먹고살기 위해 수많은 실전 속에서 사냥 실력을 키웠다.
“이 정도면 도둑질 안 해도 사냥꾼으로 전업해도 충분히 먹고살겠는데.”
휘익-!
휘파람이 저절로 나왔다.
“됐다. 드디어 맛있는 진짜 고기를 먹어보는구나!”
와싹!
한입 가득 뜯었다.
감동 그 자체.
오 년 만에 느껴보는 고기가 입으로 들어가는 순간.
감동스러워 눈물까지 나올 뻔했다.
우걱우걱.
입안 가득 고기가 들어찼다.
아무런 양념도 없이 오직 고기 살점밖에 없었지만 꿀맛이었다.
목구멍을 따라 고기를 계속해서 밀어 넣듯 삼켰다.
부드러우면서도 묵직한 고기가 입안에서 살살 녹는 느낌.
괴도에서 먹었던 곤충과 벌레들의 맛과 씹히는 감촉이 차원이 달랐다.
‘크으…… 죽겠다!’
식도를 타고 내려가면서 몸 전체로 퍼지는 맛과 향의 감격스러움을 참을 수 없었다.
“으아아아아!”
고진유는 비명을 질렀다.
“너무너무너무 맛있어. 육고기 맛이 이런 것이었다니…….”
부르르-
얼마나 맛있었는지 흥분되면서 몸까지 떨리기 시작했다.
손에 들려 있던 토끼 한 마리가 눈 깜짝할 사이에 게 눈 감추듯 사라졌다.
그리고 나머지 한 손으론 두 번째 고기를 불 위에 올려놓았다.
“오늘 열 마리 모두 먹어야지.”
배가 터져도 할 수 없었다.
열 마리 모두 먹지 않고서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리라.
휘리리릭!
입에서는 저절로 휘파람이 계속 나왔다.
‘세상에 이보다 행복한 시간은 없을 거야.’
그때,
채애애애앵-!
바람을 타고 멀리서 귀찮은 소리가 들려왔다.
“엉? 무슨 소리지?”
고진유는 고기를 굽는 손은 여전히 움직이면서 귀를 기울였다.
‘누군가 있는 모양인데.’
까아아앙-!
채애애앵!
딱딱한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
“뭐야, 이 산속에서…… 시끄럽게.”
타인의 일에 굳이 끼어들 필요는 없었다.
고진유는 계속해서 고기를 굽는 것에 집중했다.
어릴 적 괜히 남의 일에 참견했다 좋지 않는 일을 당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심하게 맞고 정신을 잃은 사람을 일으켜 줬더니 포두에게 폭행 죄목으로 잡혀간다든지.
심지어 괜히 엮이기 싫었던 주변인들은 슬슬 꽁무니를 뺐다.
다행히 정신을 잃은 사내가 깨어나면서 풀려났지만, 하마터면 감옥에 갈 뻔했다.
‘잃어버린 전낭을 찾아줬더니 돈이 모자라 도둑으로 몰린 적도 있었고.’
뭐, 진짜 유명 도둑이긴 했지만.
아무튼 어릴 때부터 함부로 나서다간 본전도 찾지 못한다는 사실을 몸소 깨달았다 이거다.
“난 고기나 먹을란다. 살다 보면 서로 싸울 일도 많겠지.”
지글지글.
잡아놓은 토끼 고기가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불길 속에서 맛있게 익어가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를 정도였다.
채애애앵!
까아아아앙! 깡!
그사이에도 싸우는 소리는 재차 울리고 있었다.
‘아직도 싸우고 있어? 제법 큰 싸움인가.’
고진유는 가볼까 말까 고민이 밀려왔다.
“깊은 밤에 잠도 안 자고 뭐 하는 짓들이냐. 오랜만에 고기 포식하는 중인데 괜히 신경 쓰이게…….”
찌이익-
그리고 익은 고기를 다시 한입 가득.
“크으…… 역시 맛있어. 풍뎅이 같은 놈하고는 상대가 안 돼.”
채앵! 챙!!
반각도 되기 전에 벌써 네 마리째 고기가 사라졌다.
“끄어억, 이런, 벌써 배가 부르네. 네 마리밖에 안 먹었는데.”
깡!!
휘익!
고진유는 뼈다귀를 귀찮은 듯 옆으로 던지고, 그대로 바닥에 누웠다.
배도 부르고 모닥불 옆이라 얼굴도 따듯했다.
누구도 부러울 게 없었다.
이대로 눈꺼풀이 무거워지면서 잠이 쏟아지려고 했다.
‘이게 바로 신선 팔자로구나.’
채애애앵! 챙! 챙!
까아아앙-!
여전히 날붙이가 부딪치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 왔다.
“에이…… 어지간히 싸우네. 보통 일은 아니겠는데?”
고진유는 누운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그러고는 싸우는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보았다.
“사부님께선 상대가 측은지심이 아니면 도와주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는데…….”
현 상황이 측은지심이 통용되는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가서 한번 봐야 하나?”
고진유는 일어나려고 하다 잠시 멈칫했다.
어떤 자들이 싸우는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귀찮은 일에 말려들고 싶지도 않았다.
그때,
“허허, 이놈이…… 어려운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도와야 할 게 아니더냐. 그것 또한 측은지심이거늘.”
갑자기 사부 오청석의 꾸중 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리는 듯했다.
“……역시 도움을 줄지 말지는 우선 무슨 일인지 보고 판단해야겠지.”
타아앗!
고진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동시에 소리가 난 방향으로 호충신법을 펼쳤다.
모닥불 옆에는 죽은 토끼만이 남아 있었다.
* * *
스걱-
허벅지를 베고 지나가는 날카로운 소리.
길게 파인 검상이 생기면서 피가 흘러내렸다.
“아아악!”
쿵.
허요희는 한쪽 무릎을 꿇었다.
‘망할…… 잘릴 뻔했어.’
곧바로 힘을 주었지만 쉽게 일어날 수 없었다.
채애애앵!
까아아앙- 깡!
불산표국의 표행을 습격한 산적들.
반시진이 넘도록 막아냈지만 더 이상은 힘들어 보였다.
‘너무 많아.’
표국의 사활이 걸린 만큼 총표두 허요희와 세 명의 표두, 삼십 명의 표사, 그리고 백 명의 쟁자수들까지 표행에 나섰다.
연주로 가는 길에 서너 군데의 산채들을 지나야 했지만, 두려움은 없었다.
표행의 규모로 보면 산적들이 쉽게 덤벼들지 못할 것이 분명했는데.
너무 자신만만했다.
“산적 놈들이 전부 한꺼번에 모여 공격할 줄은…….”
불산표국의 표행을 기습하기 위해 세 곳의 산채들이 합류했다.
“크하하하! 이놈들, 지금이라도 무기를 버리고 항복한다면 목숨만은 살려주마!”
석화산 채주 동방이 대소를 터뜨렸다.
동방 뒤로 두 명의 채주들도 허요희를 포위하며 살기를 내뿜고 다가섰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검을 들었다.
“불산표국엔 항복이란 말은 없다.”
파앗!
서화산 채주 억주기가 불쑥 튀어나왔다.
“크크크, 망할 계집, 소문대로 철심녀가 맞군. 그럼 죽든지.”
여인의 몸으로 불산표국의 총표두가 된 그녀의 소문은 제법 퍼져 있었다.
비열한 괴소를 흘린 억주기가 장창을 뻗었다.
슈우우욱-!
날카로운 창끝이 허요희의 가슴으로 향했다.
“크윽!”
그녀는 재빨리 피하고자 했지만, 허벅지에 부상을 당한 탓에 빨리 움직일 수 없었다.
허요희가 임기응변으로 몸을 휘청거리며 바닥에 뒹굴었다.
“쳇, 입만 살은 계집이군.”
터억!
‘젠장, 마차가!’
장창을 피하며 굴러갔지만, 마차에 막혀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크크크. 이년, 드디어 잡았다!”
“죽어라!”
허요희를 향해 대도와 장창, 그리고 도끼가 한꺼번에 쏟아졌다.
주위의 모든 시선들이 허요희에게 집중되었다.
“총표두님!”
절체절명의 위기.
‘막을 수 없어.’
허요희가 질끈 눈을 감았다.
그때,
휘이이익!
채애애앵-!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세 명의 공격을 막아내는 소리가 들렸다.
길게 찢어진 석화채주 동방의 눈이 커졌다.
“어떤 놈이냐?”
길게 뻗은 머리카락에 얼굴이 가려진 괴인의 모습.
타앗!
동방이 대도를 높이 치켜들며 고진유를 향해 달려들었다.
스르르르-
고진유는 전신의 힘을 쏟아낸 대도를 가볍게 쳐냈다.
“우욱!”
동방은 상대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오 성조차 받아내지 못하는군.’
흑귀들에 비하면 산적들은 너무나 약했다.
어느 정도냐면, 상대가 얼마나 약한지 헷갈릴 정도다.
‘고수다.’
동방의 몸이 뒤로 물러났다.
흔들리는 눈빛.
당황한 표정이 눈에 바로 보였다.
킁킁.
‘이건 무슨 냄새지?’
코를 자극하는 꽃향기가 괴인의 주위에서 흘러나왔다.
‘이건…… 매화 향? 설마…….’
중원 무림에서 매화 향이 나는 무공은 오직 한 곳.
“화산…… 파의 도사이시오?”
상대가 화산파의 제자가 맞다면 쉽게 싸울 수 없다.
씨익-
산발인 머리카락에 가리어진 괴인의 미소가 느껴졌다.
‘젠장, 일진이 사납다. 물러나야 해.’
덜컹 심장이 떨어진 동방은 나머지 두 채주들의 눈치를 보았다.
물러나고 싶은 그와 달리 두 명의 채주들은 생각이 달랐다.
척!
억주기는 장창을 다시 겨누며 소리쳤다.
“동 채주, 뭣 하는가? 이자가 화산파 도사라도 상대는 한 명밖에 없다!”
“억 채주의 말이 맞소. 이놈을 죽인다고 해도 아무도 모르오.”
영후산 채주 오죽태가 맞장구를 쳤다.
“내가 먼저 가아아안다!!”
타앗!
억주기가 바닥을 차며 몸을 앞으로 튕겨냈다.
슈우우욱-
산적이라 하나 산채의 수장으로서 그의 무공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하지만 상대를 잘못 만났다.
제법 예기가 담긴 장창의 공격이 허공을 파고들었다.
피피핏!
가슴을 향한 장창의 내력.
고진유는 고개를 짧게 흔들었다.
“너무 느려.”
억주기가 펼친 장창은 느릿하게 다가왔다.
‘에이…… 실망인데.’
괴도에서 상대했던 곤충들과 벌레들이 최소한 열 배는 빨랐다.
“아함-”
고진유는 한 걸음 옆으로 물러나며 장창을 피했다.
‘사부님께서 가장 빠른 검은 검과 목표물이 가장 최단의 선에 이어져 있을 때라 하셨다.’
검과 억주기 사이에 최단거리.
스걱-
억주기의 몸에서 가볍게 잘려 나가는 소리가 났다.
그는 고진유의 검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보지도 못했다.
투욱!
장창을 든 팔이 잘려 나갔다.
“아아악!!”
억주기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엎드린 채로 온몸을 굴렸다.
“에고.”
고진유는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섬에서 곤충을 상대할 때 느낌으로 검을 펼쳤을 뿐인데. 목검과 진검의 차이인가?’
흑나찰과 상대했을 때는 긴박한 상황이라 손속의 사정을 둘 생각도 안 했다.
“어…… 미안합니다. 일부러 자르려고 한 건 아닌데. 무공이 약한 사람에게는 이 정도 힘도 안 되는구나.”
혼비백산한 오죽태가 큰 소리로 수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이…… 이 미친놈을 죽여라!!”
“와아아아아!!! 저놈을 죽여라!!!”
영후채의 산적들이 함성을 지르며 고진유를 향해 일제히 달려들었다.
수십 명의 산적들이 떼거지로 달려오고 있었지만, 고진유는 두려움에 떨기보다 오히려 점점 차분하게 변해갔다.
그들의 눈동자 하나하나가 또렷하게 보였다.
부우웅-
고진유의 목을 찍어내기 위해 도끼가 날아다니고,
휘이익!
머리를 부수기 위해 철곤이 떨어지고,
챠르르르-
허리를 자르기 위해 편사가 바닥을 스치며 기어왔다.
무시무시한 산적들의 공격들이었지만 고진유의 눈빛은 태연했다.
‘이 정도는 그때에 비하면 애들 장난 수준이군.’
괴도에서 상대했던 괴독벌 무리만 해도 그렇다.
정신없이 사방에서 윙윙거리며 몰아붙이는 그놈들에 비하면 눈앞의 상황은 여유롭다 못해 한가로울 정도다.
산적들의 공격을 느긋하게 피하는 동시에, 매화화류(梅花火流)의 초식을 펼쳤다.
화르르르르르르-
산적들 사이로 매화 잎이 휘날렸다.
향긋한 향이 그들의 도끼와 철곤 위로 내려앉으며, 동시에 매화 잎이 불꽃으로 변해 타올랐다.
“아아악!! 불이다!!”
“사술, 사술이다!”
산적들은 눈앞에서 터지는 불꽃에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단 한 번의 초식에 이십여 명의 산적들이 비명을 지르며 적지 않는 부상을 입었다.
타앗!
“이노옴! 죽어라!!”
불꽃 속에서 오죽태가 수하들 사이를 뚫고 양손에 도끼를 들고서 뛰쳐나왔다.
단번에 머리를 쪼개 버릴 기세로 도끼를 찍어내리는 기습.
휙! 휙!
고진유는 옆으로 한 발자국씩 움직이며 맹공으로 휘두르는 도끼를 피했다.
억주기와의 대전과는 달리 반격하지 않고 피할 뿐.
‘이대로 끝내기는 아쉽잖아. 사부님은 실전을 많이 해야 실력이 좋아진다고 하셨다고. 벌레 놈들보단 이놈들을 상대하는 게 더 재미있어.’
고진유는 최소한의 내력으로 산적들과 상대하고 있었다.
“헉, 헉, 이런 어이없는 새끼가. 미꾸라지도 아니고…… 허억.”
오죽태는 결국 숨을 헐떡거렸다.
다른 산적들도 너무나 쉽게 피하는 것 같은 고진유를 보며 싸울 의지를 잃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네.’
괴도에서 흑귀와 싸웠을 때는 오직 목숨만을 생각했다.
산적들은 흑귀들에게도 상대조차 되지 않는다.
고진유는 여유를 가지며 충분히 무공을 시험해 본 뒤.
오죽태를 향해 검을 펼쳤다.
핏!
오죽태의 어깨에 매화 잎이 내려앉았다.
“커어어억!”
어깨에서 피가 솟구쳤다.
그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졌다.
“다음에는 어깨가 아닌 목이 될 것 같은데.”
슬금슬금.
동방은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괴인은 한 명도 죽이지 않고 모두 부상만을 입혔다.
그만큼 무공에 자신이 있다는 뜻이었다.
‘저…… 자는 화산파의 도사가 확실하다.’
방금 보여준 초식에서 확실히 알아보았다.
‘화산파의 직전 제자라면…… 우리가 전부 달려들어도 절대 이길 수 없어.’
동방은 산채 생활을 처음으로 시작할 때부터 눈치가 빨랐다. 그 덕에 죽지 않고 작은 산채의 수장까지 올라선 거고.
“석화채는 후퇴, 후퇴하라!”
후다다닥!!
석화채의 산적들이 채주 동방을 따라 걸음아 나 살려라 후퇴를 시작했다.
“어…… 어…….”
“우리도 데려가……!”
옆에서 눈치를 보고 있던 영추채 산적들과 서화채 산적들도 쓰러진 채주들을 업고 헐레벌떡 도망갔다.
상황은 단숨에 종료되었다.
주위가 고요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