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사부님.’
오 년 동안 괴도에서 함께 지냈던 거처에 돌아왔다.
조심스럽게 사부의 시신을 눕혔다.
힘들게 앉아 늘 자신을 지켜보던 자리였다.
‘흐흑…… 이제는…….’
두 번 다시 사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그의 몸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사부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잠을 자는 듯했다.
“사부님, 부디 좋은 곳으로 가십시오.”
고진유는 무릎을 꿇은 뒤 한참을 그대로 있었다.
“제자 고진유, 돌아가신 사부님께 고하겠습니다. 사부님을 해한 자들을 찾아 꼭 원수를 갚겠습니다.”
뚝뚝.
고진유는 눈물을 흘리며 절을 했다.
화르르르-!
사부의 시신 주위로 불이 타올랐다.
고진유는 부복한 채 타오르는 장면을 지켜보았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멀리서 불빛을 보았는지 흑귀들이 모여들었다.
일조장 신적항은 손을 들어 흑귀들을 세웠다.
흑나찰 악공이 죽은 이상 신적항이 남은 흑귀들을 이끌었다.
부복한 채 등을 보인 괴인이 그에게 말했다.
“잠깐만 기다려 줄 수 있겠소?”
“……알겠다.”
눈앞에 있는 저 괴인은 악공을 죽인 인물.
흑귀 오십 명이 입도했지만, 현재 살아남은 수는 이십이 명뿐이다.
이제 그를 이기는 것보다, 살아남는 것이 더 걱정이었다.
배를 타고 섬을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현재 인원보다 더 이상 사상자가 나와선 안 되었다.
쿠우우웅-!
드드드드-
충격 소리와 함께 섬 전체가 심하게 흔들렸다.
‘거기다 여긴 화산섬이다.’
신적항은 섬 정상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을 향해 솟구치는 연기들이 점점 더 짙어지고 있었다.
‘큰일 났다.’
화산이 언제 터질지 몰랐다.
신적항은 갑자기 다급해졌다.
몇 년 전, 화산이 터진 섬을 본 적이 있었다.
화산재와 붉은 용암에 의해 섬에 있던 생명은 하나도 남김없이 사라졌다.
여기에서 나가지 못한다면 지옥도에서 언제 구조를 올지도 확답할 수 없었다.
‘만일 구조대가 오더라도 그 전에 화산이 터진다면…….’
지금이 아니고서는 탈출할 기회가 없다.
‘일단 여기서 살아나가는 게 중요하다. 게다가 저자와 싸워 이기기에는…….’
그는 현 인원으로는 무리가 있다고 확신했다.
‘흑선에 가면 이십 명 정도가 더 남아 있으니 그때 잡으면 된다. 우선 여기를 빠져나가야 해. 이자도 섬에서 나가기를 원할 테니……!’
스윽.
그리고, 부복해 있던 고진유가 일어난 뒤 돌아섰다.
“덤벼라. 모두 상대해 주겠다.”
“잠깐.”
신적항이 손을 들며 제안했다.
“잠시 휴전하고 싶소.”
“무슨 뜻이지?”
고진유가 걸음을 멈췄다.
신적항의 표정에 다급함이 보였다.
“섬을 나가고 싶지 않소? 화산이 언제 터질지 모르오.”
쿠우우웅!!
두두두두둥-
“그대가 지금 싸워서 우리를 죽인다고 해도, 화산이 터지면 결국 당신도 죽을 수밖에 없소이다.”
다시금 섬 정상에서 천둥이 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금 들리지 않소이까? 조만간 화산이 폭발할 거요. 당장 섬을 떠나지 않는다면 영원히 빠져나갈 수 없소이다.”
‘화산 폭발이라…….’
땅의 흔들림이 점점 더 심상치 않았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혼자서 뗏목을 만들어 탈출하려 해도, 반시진 만에 소용돌이를 벗어나기에는 무리다.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아.’
사부를 죽인 원수들이지만 우선 살아야 복수를 할 수 있었다.
고진유은 천성적으로 무모한 성격이 아니었다.
“좋소. 섬을 빠져나갈 때까지 휴전하겠소.”
‘휴우…….’
신적항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 나가면 되겠소이까?”
“지금 당장. 조만간 소용돌이가 그칠 것이오.”
고진유의 대답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했다.
“내일 해가 있을 때 가는 게 좋지 않겠소이까?”
“지금 나가는 게 가장 좋은 시간이오. 썰물 중 오늘이 가장 길게 뻗어 나가는 날이니까.”
“아…… 알겠소이다.”
신적항은 곧바로 수하들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배를 띄워라! 지금 바로 섬을 떠날 것이다.”
“옛!”
흑귀들은 해안가에 세워두었던 구조정을 바다에 띄웠다.
휘익!
곧바로 고진유가 배 위에 올라섰다.
“노를 저으시오.”
“아직…… 소용돌이가 남아 있지 않소?”
“여기서 기다리면 늦소. 최대한 소용돌이 근처까지 갔다가 멈출 때 동시에 썰물과 함께 빠져나가야 하오.”
“알겠소이다. 모두 배를 저어라!”
신적항의 명에 흑귀들은 각자 자리에 앉아 노를 저었다.
파아아앙-!
또다시 섬 정상에서 굉음이 터졌다.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소리가 섬 주위 바다까지 흔들리며 퍼져갔다.
철썩!!
파도가 심하게 요동치자 배가 좌우로 격하게 흔들렸다.
“어…… 어……!”
“허…… 억!”
흑귀들 사이에서 두려운 듯한 신음이 쏟아졌다.
“멈추지 말고 더 앞으로.”
고진유의 말에, 흑귀들이 우물거리며 일제히 신적항을 보았다.
“그의 말을 따르도록.”
신적항은 살아남는 게 목적이었다.
어찌 됐든 섬을 빠져나가는 순간까지는 목숨을 함께해야 했다.
“영차! 영차!”
흑귀들은 구호를 맞추며 노를 저었다.
“멈추시오!”
고진유는 소용돌이 앞에서 소리쳤다.
구우우우웅-!
전방에 불길한 굉음이 울렸다.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간다면 살아서 나올 수 없다.
일각이 지난 후.
스윽.
“모두 준비하시오.”
고진유가 다시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꿀꺽.
흑귀들은 손에 힘을 주며 노를 강하게 잡았다.
고오오오오-
소용돌이의 굉음이 변하기 시작했다.
“지금이다!”
바다 위에 아직 소용돌이가 남아 있었지만, 고진유는 출발 명령을 내렸다.
팟! 팟! 팟!
흑귀들이 내력을 단번에 쏟아냈다.
파도를 뚫고 배가 앞으로, 앞으로 전진했다.
흔들. 흔들.
소용돌이의 영향인지 선수가 제멋대로 방향을 바꾸려고 했다.
“키를 똑바로……!”
신적항은 힘을 주며 버티고자 했지만 소용돌이가 일으키는 파류의 힘에 밀리기 시작했다.
“젠…… 장……! 망했……!”
타악!
포기하려던 순간, 앞에 나타난 괴인의 모습에 그가 깜짝 놀라며 비켜섰다.
“…….”
고진유는 키를 잡은 뒤 힘을 주었다.
끼이이이익-
강한 내력을 뿜어내며 키를 돌리자 선수가 다시 똑바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다행이다. 돌아간다.’
신적항은 그의 힘에 감탄하며 내심 안심했다.
고진유가 없었다면 처음부터 실패했을 것이었다.
스으으으으-
방금까지도 파류에 의해 괴물처럼 소용돌이치던 바다가 잠잠해졌다.
그리고 고진유가 말한 것처럼, 썰물이 되어 빠져나가는 시간이 되었다.
쏴아아아아아아-
썰물의 영향에 섬 밖으로 빠져나가는 배의 속도가 더해졌다.
‘이자의 말처럼 속도가 붙었다.’
신적항은 자리에 앉아 노를 저으며 소리쳤다.
“지금부터다! 죽을힘을 다해 노를 저어라!!”
“영차……! 영차……!”
흑귀들은 고개를 숙인 채 오직 노 하나에 정신을 집중했다.
고진유는 키를 잡으면서 멀리 소용돌이를 벗어나는 지점인 촛대 암초를 보았다.
“좀 더 가면 관문을 통과하오. 다 왔소이다. 힘을 내시오.”
“옙!”
흑귀들은 이제 괴인이 누구인지 신경도 쓰지 않고 대답했다.
팍! 팍! 팍!
흑귀들은 기운을 내며 바닷물에 노를 찍었다.
헉! 헉!
점점 기운이 빠져나갔다.
반시진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슈욱- 슈욱-
어두운 바다를 뚫고 파도를 가르며 배가 빠져나갔다.
촛대 암초가 가까워졌다.
“됐다. 여기만 넘으면 거의 끝이오.”
흑귀들은 끝이 났다는 말에 마지막 힘을 냈다.
그리고 그들을 실은 배가 촛대 암초를 지나갈 즈음.
‘성공인가?’
쿠와아아아앙-!!
섬에서 폭발음이 터졌다.
지금까지 듣던 소리와 달랐다.
수심 깊숙이 흔들거릴 정도로 거대한 파도.
우우우우웅-!
거대한 파류가 강하게 배로 몰아치기 시작했다.
‘헉…… 아직 도달하려면 멀었는데!’
흑귀들의 눈동자가 일제히 흔들렸다.
위이이이이잉-
수면 아래에서 잡아먹을 듯한 귀신울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바다가 원을 그리며 파류를 만들어냈다.
흔들흔들.
배가 심하게 흔들리며 파류를 따라 돌아가기 시작했다.
‘좀 더 벗어나야 해.’
“우우욱……!”
고진유는 키를 똑바로 세우기 위해 내력을 끌어 올렸다.
신적항도 급변된 상황을 보며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다.
“죽을힘을 다해 노를 저어라!! 영차!!”
“영차……! 영차……!”
흑귀들은 팔이 떨어져 나가는 고통에도 숨조차 쉬지 않고 노를 저었다.
우우우우웅-
배가 조금씩조금씩 소용돌이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됐…… 다……?’
파도가 잔잔해졌다.
‘살았다! 살았어!’
소용돌이를 넘어선 배가 바다로 나왔다.
“와아아아아!!”
흑귀들은 손을 번쩍 들며 환호했다.
신적항은 멀리 보이는 흑선을 향해 소리쳤다.
“흑선으로 돌아간다!”
타악!
‘……정말 괴도를 빠져나왔어.’
흑선에 올라탄 고진유가 괴도를 돌아보았다.
멀리 어둠 속에서 수많은 붉은빛이 갈래갈래 공중을 날아다녔다.
천만다행이라고 할까?
그가 탈출한 뒤, 결국 화산이 터졌다.
오 년의 시간을 보냈던 섬을 바라보자 사부 오청석과 가졌던 수많은 추억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사부님.’
항상 따뜻하게 가르쳐 주셨다.
어쩌면, 흑선을 타고 지옥도에 잡혀가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그는 지금까지도 도둑질을 하면서 살았을 것이었다.
섬에 갇히면서 인생의 길이 변했다.
고진유는 멀어져 가는 섬에서 아주 오랫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 * *
신적항은 굳은 표정으로 선실로 향했다.
그의 뒤로 세 명의 흑귀들이 따랐다.
털썩.
각자 자리에 앉은 네 명의 흑귀들.
신적항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이대로 놓아둔다면 분명 상부에서 가만히 있지 않겠지?”
“신 조장, 악공 님을 죽인 실력이야. 함부로 덤볐다가는 당할지 몰라.”
“……전부 합치면 몇 명이지?”
“선원 놈들도?”
“그 새끼들은 도움도 안 되는 놈들이고.”
“그렇다면 마흔두 명이야.”
신적항은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적은 인원은 아니지만 파해도에서 본 고진유의 실력은 보통이 아니었다.
바깥 자리에 앉은 흑귀가 한마디 했다.
“조장, 산공독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산공독을? 하……! 왜 진작 그 생각을 못했지?”
신적항의 표정이 단번에 펴졌다.
“좋아. 뭍에 도착할 때까지 시간이 있어. 그놈이 잠든 순간 중독시켜 놈을 잡는다.”
“지금 바로?”
“섬에서 살아 나왔다는 생각에 우리가 당장 움직일 거라곤 예상치 못할 거다.”
“아…… 하…….”
신적항의 말이 맞는 듯했다.
“키키키, 알겠어. 그놈만 잡으면 다 같이 한 단계 승진하겠지?”
흑귀들은 벌써부터 착각에 빠져들고 있었다.
* * *
털썩.
고진유는 선원들이 지내는 딱딱한 바닥에 드러누웠다.
“이거 참. 이것도 오랜만이라 적응이 안 되네.”
오 년 만에 선원에게서 옷을 얻어 입었다
그들의 눈엔 파해도에서 입고 나온 거적때기가 볼썽사나운 모양이었다.
차아아아-
문 밖으로 파도 소리만이 들려왔다.
‘그나저나…… 흑귀들이 많던데.’
흑선에는 섬에 들어오지 못했던 흑귀들이 이십여 명 남아 있었다.
휴전은 섬을 탈출할 때까지였다.
상황은 변했다.
‘그놈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어. 나도 사부님을 죽인 놈들을 용서할 수 없다.’
흑선을 움직이는 선원들은 다행히 흑귀들이 아니었다.
‘먼저 치는 게 좋지 않을까? 저놈들이 가만히 있지는 않겠지?’
벌떡!
갑자기 든 생각에 고진유는 몸을 세웠다.
그가 잠든 사이 배가 지옥도로 갈 수도 있지 않은가.
그때였다.
문 밖으로 소리를 죽이며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저 새끼들이…….’
괴도에서 지낸 탓인지 유난히 청각에 밝았다.
‘세 놈인데.’
결코 좋은 의도는 아닐 것이다.
‘뭘 하는지 볼까?’
만일 안으로 쳐들어온다면 언제라도 검을 뽑을 준비를 했다.
스으으으으-
하지만 예상과 달리 놈들은 바로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다만 문틈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 미세한 소리가 날 뿐.
킁킁.
‘이건…… 미향충에서 나오는 가루 향 같은데?’
파해도에서 미향충이 뿌리는 가루를 잘못 맡으면 정신이 혼미하게 변하곤 했다.
그때처럼 단전으로 이상한 기가 흐르는 게 느껴졌다.
‘미향충 가루는 아닐 테고…… 혹시 사부님이 말씀하시던 산공독이라는 게 아닐까?’
미향충을 보며, 주로 기습을 하거나 상대를 사로잡기 위해 단전에서 내력을 사용하지 못하게 만드는 마비산이 있다고 하신 적이 있었다.
고진유는 재빨리 하단전의 내력을 중단전으로 끌어 올렸다.
그동안 몸속으로 흡수된 산공독이 하단전으로 모여들었다.
‘독기를 없애려면 태우는 게 좋겠군.’
중단전의 내력은 당장 외부로 끌어 낼 수는 없으나 몸속에선 얼마든지 끌어내어 펼칠 수 있었다.
화르르르-
중단전에서 화기를 끌어내 하단전을 감싼 산공독의 독기를 태웠다.
‘사부님이 무림에 나가면 독을 조심하라고 하셨는데. 이런 방법이라면 괜찮겠어.’
고진유의 몸속에 들어온 산공독은 하나도 남김없이 불타 사라졌다.
* * *
‘크크크.’
흑귀들은 서로 얼굴을 보며 뒤로 물러났다.
신적항은 검파를 잡은 채 밖에서 대기했다.
“어떻게 됐지?”
“성공했어. 반각만 지나도 내력을 펼칠 수 없을 거야.”
“좋아. 그때 안으로 들어가서…….”
신적항의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콰아앙!!
문이 산산조각 났다.
“무…… 슨…….”
조각난 문 안에서 고진유가 모습을 드러냈다.
내력이 아니고서는 펼칠 수 없는 힘이었다.
‘분명…… 산공독에…… 중독된 거 아니었나?’
신적항이 옆에 선 흑귀를 죽일 듯 노려보았다.
“어떻게 된 일이지?”
“그, 그건…… 나도 잘…….”
당연히 그 또한 모르는 일이었다.
고진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흑귀들이 수십 명 모여 있었다.
“독을 뿌린 뒤 나를 죽일 생각이었나? 하긴 나도 네놈들을 쉽게 보내고 싶지 않았지. 잘됐어. 이렇게 된 김에 누가 살아남는지 보는 것도 재미있겠네.”
스르르릉-
고진유는 허리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검이 빠지는 소리가 부드럽게 배 안을 울렸다.
타앗!
신적항과의 거리가 단번에 좁혀졌다.
‘허억, 무공을……!’
역시 산공독에 중독된 것이 아니었다.
번쩍!
고진유의 검에서 강렬한 빛이 폭발했다.
“아아악!!”
신적항은 대항조차 하지 못했다.
눈을 감은 채 그 자리에서 어떤 반응도 하지 못했다.
구 성으로 펼친 매화비광(梅花飛光)이 한 줄기 빛을 떨쳤다.
스으으으으-
신적항의 목이 앞으로 꺾이며 쓰러졌다.
흑선 안은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너무나 허무하게 죽은 신적항을 보며 흑귀들은 주춤거렸다.
“자, 시작을 했으면 끝을 봐야지.”
고진유가 낮은 목소리로 전방에 모인 흑귀들에게 선언한 순간,
와아아아아-!!!
“저놈을 죽여라!!”
“저놈은 혼자다!”
흑귀들이 사방에서 고진유를 향해 몸을 날렸다.
스걱.
휘이이익-!
채애애앵!
“아아아악!!”
“커억, 손!! 손이……!!”
검과 검이 부딪히며 연이은 비명 소리가 밤하늘 위로 퍼져 올랐다.
고진유의 검은 무정했다.
사부님을 죽인 원수들에게 측은지심이란 말은 의미가 없었다.
백색의 매화는 어느덧 검붉게 휘날리며 흑귀들의 목숨을 하나씩 끊어갔다.
반시진이 흘렀다.
“으…… 으…….”
흑선의 선원들은 소리도 내지 못한 채 한쪽 구석에서 신음만 냈다.
지옥도를 드나드는 그들은 누구보다 흑귀들의 무서움을 잘 알았다.
‘세상에…… 흑귀들을 상대로…….’
이 세상에 혼자서 흑귀들을 잡는 인물이 존재할 줄은 몰랐다.
산발을 한 괴인은 흑귀들을 한 명도 남김없이 죽였다.
그의 주위로 오직 혈향만이 가득했다.
검을 내린 고진유는 한쪽에 모여 숨어 있는 선원들을 바라보았다.
“걱정 마시오. 당신들을 죽일 이유는 없습니다.”
“고…… 고맙습니다, 대협…….”
“육지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아…… 예에…… 알겠습니다.”
선원들은 연신 허리를 숙이며 대답만을 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