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따악!
편엽은 모닥불을 만지작거리던 나무작대기를 바닥에 내리쳤다.
“이놈들은 대체 뭣들 하고 있는 거야?”
두 명을 찾아오라고 시킨 융독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지?’
아무것도 없는 것이 분명하건만, 무엇인가 몸을 억누르고 있었다.
스르르릉.
그는 허리에 찬 검을 뽑았다.
편엽을 지켜보던 흑귀들도 이상했는지 일어났다.
“주위를 똑바로 살펴라.”
오조장 편엽은 최대한 기감을 넓혔다.
‘없어.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
그들 외에는 살아서 움직이는 기를 찾을 수 없었다.
그때,
파앗!
폭발하듯 기(氣)가 좌측에서 순간 움직였다.
‘뭐지?’
편엽이 재빠른 반응으로 고개를 돌렸다.
털썩.
주위를 경계하던 수하가 그 자리에서 바닥으로 쓰러졌다.
“어…… 떤 놈이냐?!”
휘익!
이번에는 반대 방향인 우측으로 빠른 움직임이 지나갔다.
스걱.
깨끗하게 잘리는 소리와 함께 수하들이 비명을 질렀다.
“아악!”
“커억-!”
이번에는 두 명의 수하가 당했다.
상대가 믿을 수 없는 속도로 흩어져 있는 수하들을 사냥하고 있었다.
“모두 모여……!”
“늦었어.”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지며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괴…… 물이다.’
샤악!
날카로운 소리가 나고.
“쿠우욱!”
편엽이 짧은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쓰러졌다.
“무슨 일이냐?”
떨어져 있던 흑귀 무리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우선 이 정도만…….’
고진유는 신법을 펼치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흑나찰 악공이 내려섰다.
“어떤 새끼가…….”
적의 기를 느낄 수 없었다.
바닥에 널브러진 시신들.
기습으로 벌써 여섯 명의 수하가 당했다.
“이놈은 기를 완벽하게 숨기고 있다.”
빽빽한 밀림 같은 환경에서 기(氣)까지 제어할 수 있는 상대였다.
악공은 처음으로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상대하기 힘들겠어.’
내력을 완벽하게 감출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이라면, 최소한 일류의 경지를 넘어서는 내력일 터.
“지금부터 절대로 흩어져서는 안 된다. 적은 강한 놈이다.”
꿀꺽.
흑귀들은 침을 삼켰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동료들을 간단히 죽여버린 인물.
이 괴도에서 찾을 수나 있을지 두려움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제법인데…….’
고진유는 나무 위에서 흑귀들을 지켜보았다.
‘움직일 생각이 없는 모양이군. 오늘은 여기까지다. 사부님께 돌아가야겠어.’
* * *
이틀째가 지나가는 중이었다.
파해도는 생각 이상으로 넓었다.
찾아야 할 인물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비상식량 정도는 개인이 지참했지만 식수는 이미 바닥이 났다.
당장 목이 말라 죽을 정도는 아니었으니, 더 이상 구하지 않으면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었다.
“젠장…….”
악공도 목이 말랐다.
당장 시급한 건 물을 구하는 일.
‘그놈들이 지금까지 살아 있었다면 섬에 물은 있을 것이다.’
문제는 물을 찾기 위해 수하들을 흩어지게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군. 함께 움직일 수밖에.’
“주위를 살펴라. 우선 식수부터 확보한다.”
“복명.”
흑귀들은 물을 찾기 위해 모든 신경을 아래로 향했다.
파해도에 어둠이 짙어져 갈 무렵.
포옹!
‘이 소리는……!’
수면 아래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분명했다.
악공과 흑귀들이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달렸다.
“하하하! 찾았다!”
악공은 연못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스윽.
흑귀 중 한 명이 허리에서 은침을 꺼냈다.
물이라고 해서 함부로 마실 수는 없었다.
“악공 님, 독은 없습니다. 마셔도 괜찮을 듯합니다.”
“다행이군.”
후루루루-
악공의 말이 떨어지자 흑귀들이 모두 두 손으로 연못을 물을 받쳐 마시기 시작했다.
‘크크크크.’
연못을 내려다보던 고진유는 웃음이 나왔다.
‘조만간 배가 아파 죽을 거다.’
홍와가 살던 연못.
흑귀들이 찾아오도록 일부러 돌을 던져 유인했다.
고진유도 의심 없이 연못 물을 마셨다가 며칠 동안 움직일 수 없을 만큼 배탈이 났었다.
‘반각 정도면 서서히 신호가 오겠지? 슬슬 준비를 해볼까?’
고진유는 미소를 띠며 아래를 주시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재미있었다.
반각이 흐른 후.
“우욱.”
“아악!”
흑귀들은 배를 짓누르는 고통을 받았다.
‘욱…….’
악공도 마찬가지였다.
엉덩이에 힘을 주면 당장 밖으로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저…… 놈들도…….’
악공은 순간 잘못됐다는 것을 느꼈다.
원인은 하나밖에 없었다.
“독이…… 없다고 해서 함부로 마시는 게 아니었는데. 우욱.”
하의에 쌀 수는 없었다.
휘익!
동시에 흑귀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크으윽.”
풀들이 사방에서 흔들거렸다.
‘제기랄…….’
악공은 다급하게 볼일을 본 후 일어났다.
그리고 재빨리 허리춤에서 비상약을 꺼내 입에 넣었다.
그때였다.
풀숲 사이에서 비명 소리가 퍼져 나왔다.
“아아악!”
“커어어억.”
악공은 흑귀들을 향해 다급하게 소리쳤다.
“적이다! 모두 모여라!”
후다다닥.
흑귀들은 하의를 부여잡은 채 연못가에 모여들었다.
모두가 당황한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릴 뿐.
“망할 새끼가…… 일단 빨리 비상약을 꺼내라.”
“알…… 겠습니다.”
흑귀들도 주머니에서 환단을 꺼낸 뒤 복용했다.
상당히 많은 수가 빠져 있었다.
‘방금…… 열 명이 당했다.’
빠드득.
악공은 이빨을 갈았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네놈을 찢어죽이고 말겠다.’
* * *
여명이 밝았다.
악공과 흑귀들은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다.
상대의 기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잠을 잤다간 기습을 막기 어렵다.
‘기필코 네놈을 잡고야 말겠다.’
선두에서 악공이 움직였다.
하늘은 이미 정오를 넘어 다시금 붉은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끼이이잉-
퍼어억!
눈앞에 나타난 곤충들과 벌레들을 화풀이하듯 단칼에 베었다.
악공의 짙은 살기에 살아 움직이는 생물체들은 혼비백산하며 멀리 떨어졌다.
“죽일 새끼가…… 어디에 있는 거야?”
쿠우웅!
악공은 끓어오르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나무를 쳤다.
“…….”
스윽.
그리고, 악공은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보았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나뭇잎이 덥수룩하게 퍼져 있는 거대한 나뭇가지들.
‘방금 그건…… 사람의 기침 소리였다.’
타앗!
악공은 그대로 나무를 타며 올랐다.
스걱.
앞을 가린 나뭇가지를 잘랐다.
“크크크큭, 찾았다.”
악공은 눈앞에 앉아 있는 인물을 보며 괴소를 지었다.
‘사부…… 님을……!’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고진유의 눈동자가 처음으로 흔들거렸다.
방심했다.
그들이 안으로 들어올수록 사부 오청석을 멀리 옮겨야 했다.
쿵!
악공은 바닥에 오청석을 내던졌다.
사지를 움직이지 못하는 그를 보며 오 년간 찾아 헤맸던 인물임을 알았다.
“드디어 잡았다. 크하하하핫!”
무사히 지옥도로 데리고 간다면 흑나찰의 신분에서 한 단계 올라설 수 있을 터.
“이자를 앉혀라.”
오청석의 양쪽으로 흑귀들이 다가와 그를 일으켜 앉혔다.
슥.
악공은 오청석의 목 끝에 검을 놓았다.
‘욱.’
오청석은 비명을 참았다.
‘내가…… 기침을 하지 않았다면…….’
그는 아래에 그들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악공은 내력을 일으키며 섬이 떠나갈 듯 소리쳤다.
“열까지 세는 동안 나오지 않는다면 이자는 죽는다!”
힘없이 축 늘어진 채 목에 검이 닿은 모습.
“일…… 이…… 삼…….”
악공은 주위를 살피면서 숫자를 세어 나갔다
“구……!!”
마지막 숫자를 세기 직전.
스윽.
나무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머리카락 때문에 얼굴을 제대로 식별할 수 없었다.
“사지를 잘라서 끌고 와라.”
휘이이익!
흑귀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그동안 어둠 속에서 당했던 일에 노기를 뿜어내며 고진유를 향해 달려들었다.
검망을 만들어 도망가지 못하게 포위한 후 독문무공인 흑살검법을 펼쳤다.
‘역시 느려. 전부 보여.’
고진유는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전부 쓸어버리겠다.’
번쩍!
매화비광(梅花飛光)의 초식.
고진유의 검에서 쏟아져 나간 검광이 흑귀의 목을 스쳐 지나갔다.
투욱.
흑귀의 목은 그 자리에서 떨어졌다.
“이놈……! 잡았다!”
후방과 좌우 측방에서도 연이어 흑귀들이 치고 들어왔다.
‘늦어.’
동시에 공격받는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고진유는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냉정할 만큼 차분해졌다.
좀도둑이었던 예전에도 항상 그랬다.
중요한 순간에는 모든 것이 차분해졌다.
‘지금…….’
팔 성의 내력을 담은 매화산우(梅花散雨)의 초식.
파르르르-
고진유의 머리 위로 매화 잎이 솟구치더니 주위로 퍼져 나가며 흩날리기 시작했다.
슈우우욱-
바람에 날려 하늘거리던 꽃잎들은 돌연 비수로 변해 주위의 흑귀들에게 쏟아졌다.
“아아아악!”
“억.”
한 번의 초식에 여섯 명의 흑귀들이 목숨이 끊어졌다.
‘저놈의 무공이……!’
믿기지 않는 상황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악공은 상대가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뒤로 물러나라.”
흑귀들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괴인의 실력은 지옥혈림의 흑나찰을 능가했다.
‘내가…… 이 정도로…….’
팔 성의 내력에 흑귀들이 나가떨어졌다.
‘화산파의 무공이 강한 줄 알았지만 이놈들도 상대가 안 될 줄은…….’
고진유는 앞으로 걸었다.
푹.
악공은 오청석의 목에 겨눈 검에 힘을 주었다.
“멈추지 않는다면 이자는 죽는다.”
오청석의 목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
고진유의 걸음을 멈추었다.
“당장 검을 떼. 죽고 싶나?”
“크크크, 이런. 겨우 몇 놈 죽이더니 자신감이 붙은 모양이지? 네놈이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나를 이기지는 못한다.”
“…….”
“검을 빨리 버리지 못할까. 안 그러면 이자는 죽는다.”
악공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스윽.
검 끝이 점점 살을 파고 들어갔다.
‘진유야…….’
오청석은 마음이 편해졌다.
고진유가 보여준 매화검법.
꽃잎이 날리며 매화 향이 퍼져 나왔다.
너무나 아름다웠다.
제자 고진유는 화산파를 위해, 그리고 자신을 대신하기에 충분했다.
“하하하! 진유야, 그동안 즐거웠느니라.”
사부 오청석의 우렁찬 목소리를 처음 들은 고진유의 눈이 커졌다.
예전에 닮고자 했던 호탕한 사내의 웃음소리.
“사부님!!!”
오청석은 사지를 움직일 수 없지만 고개를 움직이는 것은 가능했다.
푸욱.
그가 검 끝을 향해 스스로 목을 숙였다.
‘이자가……!’
검이 목을 뚫고 반대편으로 빠져나왔다.
스르르륵.
목숨이 끊어진 오청석의 시신이 아래로 힘없이 쓰러졌다.
휘이이익!!
“개애애애애애애새애애애끼이이이!!!”
고진유는 파해도가 떠나갈 듯 고함을 지르며 달렸다.
사부를 죽인 원수.
죽어도 용서할 수 없었다.
“저놈을 막……!”
악공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눈앞까지 나타났다.
‘허억, 빨라……!’
초식은 필요 없었다.
고진유는 검을 그대로 내리쳤다.
슈우우우욱-
악공은 살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떨어지는 검을 들어 올렸다.
콰아아앙!!!
거대한 폭발음이 터져 나갔다.
악공의 신형이 힘에 밀려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우우욱.”
단 한 번의 공격에 속이 울렁거렸다.
“아아아아아악!!”
고진유는 바닥에 쓰러진 악공을 향해 검을 내리쳤다.
파아앗!
악공의 몸에서 피가 솟구쳤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흑귀들은 반응조차 할 수 없었다.
고진유는 바닥에 쓰러진 오청석을 안아 올렸다.
금방이라도 눈을 다시 뜨며 이름을 불러줄 것 같았다.
“사부님…… 제자도 너무나 즐거웠습니다.”
휘익!
그리고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