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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대도-5화 (5/425)

5화

하늘 높이 솟아오른 나무.

땅에서부터 오 장 높이의 나뭇가지에 올라섰다.

곤충이나 벌레들을 사냥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은닉 장소.

나무 아래에선 눈으로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나뭇잎들이 빽빽하게 가려져 있었다.

스윽.

고진유는 조심스럽게 사부 오청석을 내려놓았다.

“사부님, 여기에 계시면 저놈들이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진유야, 상대가 많으니라.”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한꺼번에 상대할 정도로 무모하지 않습니다.”

오청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똑똑한 녀석이니.’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걱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지옥혈림의 어떤 무인이 섬에 들어왔는지 몰랐다.

‘진유의 무공이라면…… 흑나찰과 싸워 이길 수 있을지도.’

검절인 자신이 싸운다면 흑나찰 정도는 얼마든지 이길 수 있었겠지만, 고진유에게 실전은 처음이었다.

“최대한 조심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무공을 익힌 뒤 첫 실전이 생사를 가르는 싸움이 되었다.

“무공을 펼치는 순간부터는 절대로 마음이 약해져선 안 된다. 상대가 죽지 않으면 내가 죽어야 한다.”

“사부님의 말씀을 명심하겠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섬에서 곤충이나 벌레들을 죽이는 것과는 달랐다.

살인은 인성을 갉아먹는 일이었다.

정신수련 또한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였다.

“다녀오겠습니다.”

고진유는 인사한 후 나무 아래로 내려간 후.

스윽.

다시 고개를 들어 나무 위를 올려다보았다.

‘위에 계실 거라고는 생각 못하겠지.’

고진유는 허리에 찬 목검을 잡았다.

* * *

슥슥슥.

흑귀들은 다섯 명씩 조를 이루며 섬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 전에 다녔던 섬과는 환경이 너무나 달랐다.

잡초 또한 흑귀들의 키를 훌쩍 넘어서 있었다.

그들은 최소한의 간격을 유지하면서 앞을 가로막은 나무들과 잡초들은 헤치며 들어섰다.

애애애애앵-

부우우우웅-

벌레들의 울음소리가 귀가 아플 정도로 사방에서 울렸다.

“제기랄…… 이러다 고막이 터지겠군.”

삼조장 방중의 얼굴에는 이미 짜증이 묻어 있었다.

휘익! 휙!

눈앞을 가릴 정도로 높이 자란 풀들을 잘라내자,

푸드드득.

풀 속에 숨어 있던 곤충들이 위로 날아올랐다.

“허어억!”

사람만 한 크기의 벌레들이 머리 위로 튀어오르자 놀란 방중이 뒤로 물러났다.

“망할 놈들!”

파앗!

찌이익-!

흩어지는 벌레들을 향해 검을 휘두르자 수액들이 사방으로 튕기며 쏟아졌다..

킁킁.

코를 벌렁거리며 냄새를 맡자 기분 나쁜 찝찝함이 콧속을 자극했다.

“어떻게 된 섬이길래 이런 괴물 같은 놈들만 있지?”

수액이 묻은 탓에 얼굴이 계속 끈적거렸다.

졸졸졸-

그때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잠깐 여기서 기다려라. 물이 흐르는 모양인데 얼굴 좀 씻고 오겠다.”

“조장, 빨리 다녀오시유.”

방중은 물소리를 따라 앞을 가린 풀 속으로 사라졌다.

스윽.

귀를 기울이며 점점 커지는 소리를 따라 풀을 옆으로 제치자 좁은 바위 틈 사이로 물이 흐르고 있었다.

“여기 있군.”

방중은 한 손을 뻗어 손바닥에 물을 받으려고 했다.

‘젠장…….’

손이 닿지 않았다.

팔을 깊숙이 안으로 넣었지만 한참 모자라는 듯했다.

툭. 툭.

온 신경이 바위 아래에 있던 방중은 조원이 등을 두드린다고 생각했다.

“누구야? 기다리라고 했잖아.”

“뭘 기다려?”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적이다!’

곧장 소리가 난 방향으로 검을 휘둘렀지만.

휘익!

검은 빈 허공을 가르며 지나갈 뿐이었다.

‘뭐지?’

방중은 빠르게 돌아서며 앞을 살폈다.

툭. 툭.

긴장했는지 이마에 흐르던 땀이 콧등을 지나며 아래로 떨어졌다.

“난 여기 있는데.”

빠아악!

등 뒤에서 말이 들리는 동시에 방중의 두개골이 부서졌다.

“아악!”

그는 단말마를 지르며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뭐야? 겨우 이 정도에 죽는다고? 돌갑충은 수십 대를 맞아야 죽는데?”

고진유는 어이없는 시선으로 내려다보았다.

툭.

그때 방중이 떨어뜨린 검이 발에 걸렸다.

“진짜 검이다.”

무공을 익히던 중 사부가 아쉬워했던 부분 중 하나가 진검 수련이었다.

고진유는 방중의 검대에서 검집을 풀었다.

철컥.

검집에 검을 넣자 느낌 좋은 소리가 났다.

“좋은데?”

진검을 손에 쥐자 목검과는 다른 자신감이 생겼다.

후다다닥!

그때 건너편에서 풀을 헤치고 달려오는 기척을 느껴졌다.

“조장! 방 조장!”

“어디에 있소?”

삼조 소속의 흑귀들이 방중의 비명을 듣고 달려온 것.

멈칫.

그리고 괴인을 본 흑귀 네 사람의 눈이 커졌다.

길게 자란 머리카락과 수염으로 얼굴도 볼 수 없었다.

“허억…… 조장?”

괴인의 발밑에는 방중이 죽은 듯 쓰러져 있었다.

채애애앵!

흑귀들은 재빨리 고진유를 둘러싸며 포위했다.

피우우우웅-

그들 중 한 명이 공중으로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네놈은 누구냐?”

“검을 버려라!”

퍼어엉!!

공중에서 폭음이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으로 몰려오기 전에 숨어야 한다.’

고진유는 오른손으로 검을 잡았다.

짜릿.

처음 느끼는 쾌감.

내공을 끌어 올리자 손안에서 차갑고 냉정한 기가 전율을 일으켰다.

“이놈을 잡아라!!”

그를 포위한 흑귀들이 검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휘익!

동시에 달려드는 흑귀들의 움직임.

전방에서 오는 흑귀의 검은 고진유의 얼굴로, 후방의 공격은 등, 좌측과 우측의 흑귀들은 각각 허리와 허벅지를 향해 검이 뿌렸다.

스윽.

고진유의 손이 움직였다.

‘단 한 번에 상대하려면…….’

흑귀들의 검을 피하지 않고 십사수의 초식 중 하나를 빠르게 떠올렸다.

“매화이산(梅花利散).”

어느 정도의 내공을 사용해야 할지 기준이 없어 극성을 끌어내자,

번쩍.

검에서 폭광이 터져 나갔다.

흑귀들은 눈을 똑바로 뜰 수 없었다.

고개를 돌리는 순간, 진검에서 펼쳐진 날카로운 검기들이 네 명의 흑귀들을 쓸어버렸다.

그들은 거의 걸레가 된 모습으로 바닥에 쓰러졌다.

놈들에게 새겨진 수많은 검상의 흔적들.

“커어……!”

“아아악…….”

고통의 신음을 흘리며 믿기지 않는 듯 눈도 감지 못한 죽음을 맞이했다.

‘허어, 이제 뭔지도 모르겠다.’

매화검법을 펼친 고진유도 눈앞의 상황을 똑바로 이해 못하였다.

목검과 같은 내력으로 펼쳤을 뿐인데.

‘일단 다른 놈들이 모여 오기 전에 후퇴하자.’

타아아앗!

고진유는 호충신법을 펼치며 빠르게 사라졌다.

곧이어 신호탄을 본 흑나찰과 흑귀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을 맞이한 건 다섯 구의 시신들.

방중은 일검에 죽은 네 명과 다르게 머리가 깨져 있었다.

“방중을 먼저 죽였군.”

악공은 시신들을 보면서 상황을 단번에 파악했다.

킁킁.

“이건 무슨 냄새지?”

어디선가 맡아본 냄새가 미세하게 느껴졌다.

‘이건…… 매화 향이다.’

터억!

악공은 쓰러진 흑귀들을 발로 차며 검상들을 살폈다.

“매화검법을 쓸 줄 아는 놈이라…….”

그들이 쫓는 인물은 움직이지도 무공을 펼칠 수도 없다.

“하하하! 그자가 살아 있군!”

화산검절인 그가 함께 있는 인물에게 화산파의 무공을 가르쳐 준 게 확실했다.

“상대는 화산파의 무공을 펼치는 놈이다. 지금부터서는 모두 조심하도록. 열 명씩 한 조로 움직인다.”

“복명.”

흑귀들은 곧바로 열 명씩 무리 지었다.

그들은 간격을 유지한 채 섬 안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눈동자.

고진유는 내력을 완벽하게 숨긴 채 상황을 주시했다.

‘보통이 아니네.’

체계적인 움직임으로 급작스럽게 돌변하는 상황을 대비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를 찾을 수는 없어.’

그들의 옆을 스쳐 지나갔지만 눈치채지 못했다.

‘중단전을 만들지 않았다면 큰일 날 뻔했군.’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우선 사부님께 돌아가야겠다.’

* * *

오청석은 나무 위에 숨은 채 누워 있었다.

바다 위 하늘은 붉은 노을로 짙게 물들었다.

‘잘하고 있는지…….’

지옥혈림의 흑귀들과 싸우고 있을 제자가 걱정됐다.

스윽.

그때, 나뭇가지가 흔들렸다.

‘누구……?’

“사부님, 돌아왔습니다.”

순간 긴장했던 그의 표정이 풀렸다.

어둠 사이에서 고진유가 모습을 드려냈다.

고진유의 손에 검을 보았다.

“어떻게 되었느냐?”

“우선 다섯 명을 처리했습니다.”

흑귀들을 상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잘했다. 빠르게 잘 물러났구나.”

“고맙습니다.”

“방금 그 방법처럼 다수와의 싸움에 있어 가장 좋은 움직임은 유격전(遊擊戰)이다. 치고 빠지는 작전으로 나가야 하느니라.”

“알겠습니다.”

“지금부터서는 정말로 조심해야 한다. 저들은 이제 네가 화산파 무공을 익혔음을 눈치챘을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섬은 어느덧 깊은 밤으로 들어섰다.

고진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부님, 다녀오겠습니다.”

“항상 조심해야 한다.”

스으으-

다시 나무 아래로 고진유의 모습이 사라졌다.

“쿨럭.”

참고 있던 기침이 터져 나오며 각혈을 토해 냈다.

“하아…….”

오청석은 기력이 완전히 떨어졌음을 알았다.

‘이제…… 마지막이 오는 모양이구나.’

그는 눈을 감으며 마음을 비웠다.

* * *

슥슥.

고진유는 멀리 불빛을 보았다.

숲속 군데군데 모닥불을 피운 채 흑귀들이 쉬고 있었다.

‘어디를 먼저 칠까?’

섬에 살던 모든 동물들은 흑귀들의 신형에서 나오는 살기에 몸을 숨겼다.

고요함 속에서 미세한 벌레들이 움직이는 소리들만이 흐르고 있었다.

‘저놈들이다.’

고진유는 흑귀들의 무리를 살피면서 멀리 떨어진 무리를 목표로 정했다.

중단전으로 내력을 옮기자 기가 전혀 외부로 느껴지지 않았다.

내력 없이 호충신법으로 움직이는 그의 발걸음 소리는 호색갑충이 움직이는 소리와 같았다.

고진유는 과감하게 움직였다.

흑귀들의 바로 곁으로 다가섰지만 그들은 그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모닥불을 사이에 둔 열 명의 흑귀들.

그때, 그들 중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장 편엽이 눈살을 찌푸렸다.

“두명, 어디 가지?”

“볼일 좀 보고 오겠습니다.”

“악공 님께서 떨어지지 말라고 했다. 가까이서 해결해라.”

“저어…… 큰…… 것이라서.”

“…….”

두명은 그의 눈치를 보면서 슬그머니 숲속으로 들어가 구시렁거렸다.

‘씨벌, 나오는 걸 어떻게 참아? 이 정도 떨어졌으면 냄새는 안 나겠지?’

그렇게 두명이 허리를 묶은 하의를 묶은 줄은 풀려고 할 때.

“여기서는 함부로 싸면 안 될 텐데.”

핏.

고진유가 흑귀의 사혈을 눌렀다.

점혈당한 두명은 한마디 비명도 없이 앞으로 쓰러졌다.

‘아, 소리 나면 안 되지.’

고진유는 바닥에 떨어지기 직전 얼른 죽은 그를 안아 들었다.

‘지금부터 시작이다.’

오 년 전이라면 모를까, 이제 흑귀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다.

일대일로 싸운다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자신이 생긴 것.

고진유는 죽은 시신을 끌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편엽은 힐끔 고개를 돌렸다.

반각 정도가 지났다. 큰 볼일을 하더라도 제법 오랜 시간이었다

“저 새끼한데 가봐. 뭐 하고 있는지.”

‘에이…… 냄새나는데.’

융독은 귀찮은 표정으로 두명이 사라진 방향으로 걸어가면서 그를 불렀다.

“명이. 두명이 어디에 있나?”

스윽.

풀 속에서 손이 올라왔다.

‘저 새끼, 아직까지 누고 있다니…….’

한 발자국 더 가면 냄새가 날 듯했다.

“조장이 찾아. 빨리 나와.”

“…….”

아무런 대답이 없다.

“야. 두명, 뭐 하고 있어?”

융독은 화가 났다.

그렇지 않아도 긴장된 상황이다.

어떻게 된 섬인지 바닥을 기어 다니는 벌레들이 뱀보다 두껍고 길었다.

“이 새끼가?”

놀리려고 대답을 안 하나?

융독은 한 손으로 코를 막으며 앞으로 나섰다.

손으로 앞을 가린 풀을 젖히자,

‘어딜……?’

분명 손을 든 자리에서 두명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 자식이…… 나를 놀리는 게 틀림없군.’

평소에도 동료들을 놀리는 놈이다.

그때,

툭.

등 뒤에서 건드리는 손길.

“망할 놈이, 장난 그만 쳐!”

한 소리 하면서 돌아선 순간.

“허억!”

어둠 속에 선 괴인.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모습은 심장이 떨어질 정도였다.

“괴도에 잘 왔다.”

스걱-

백광(白光)이 눈앞을 스쳐 갔다.

융독의 몸이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

‘한 놈씩 보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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