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고진유의 목검 주위로 피어 오른 매화 꽃잎들이 황금 풍뎅이가 뿌리는 침 공격을 휘몰아치면서 막아냈다.
“어이, 황금 뚱땡이, 놀랐지? 이번에는 매화두영(梅花抖榮)이다.”
샤르르르르-
목검을 연이어 펼치자 황금 풍뎅이 주위로 매화 잎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퍼어어엉!
폭음이 터지면서 황금 풍뎅이가 공중으로 빙글 돌며 솟구쳤다.
부우우우웅-
삼 장 높이의 공중으로 솟구친 놈이 날아올랐다.
파라라락!!
석 자 정도의 대물.
풍뎅이가 두꺼운 허리에서 날개를 펴기 위해 온몸을 좌우로 비틀었다.
“어딜? 오늘은 도망 못 간다. 네놈 수법을 전부 파악했지.”
휘릭!
고진유의 신형은 이미 도망을 가려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공중으로 튀어오른 황금 풍뎅이를 향해 목검의 방향을 틀어, 십사수매화검법을 펼쳤다.
마지막 일검.
매화일지(梅花一摯)!
목검의 끝에서 매화 잎이 비검처럼 똑바로 날아올라,
푸욱-!!
황금 풍뎅이의 배를 정확하게 뚫었다.
파르르르-
몸이 경련을 일으키면서 몸속에 있던 황금 액이 목검을 타고 입가에 떨어졌다.
“푸에엑, 켁, 퉷! 뭐야! 어……? 맛있는데?”
다른 풍뎅이의 쓴 맛과는 다른 달달한 맛.
“황금 뚱땡이라서 다른가?”
고진유는 흐르는 황금 액을 손을 찍어 다시 맛을 봤다.
“오호…… 좋은데?”
바닥에 모두 떨어지기 전에 황금 풍뎅이 엉덩이에 입을 대고 빨아 마시기 시작했다.
꿀꺽꿀꺽.
배가 부를 정도였다.
“꺼어억.”
시원하게 트림을 한 고진유는 거의 가죽밖에 남지 않은 황금 풍뎅이를 보았다.
“헛, 사부 드릴 게 없어졌네? 빨리 한 놈 더 잡아야겠다.”
* * *
바닷가에서 하루 대부분을 바다를 향해 쳐다보는 중년 사내.
그가 하는 일이라곤 깊은 생각에 잠기는 것뿐.
사지의 맥이 잘리고 단전이 부서진 몸으로는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지옥도로 끌려가던 흑선에서 정신을 차려 보니 무인도에 떠내려 와 있었다.
“우욱.”
삼 년 전 당했던 내상은 점점 심해졌다.
사내는 결국 목구멍에서 붉은 핏덩어리를 쏟아냈다.
‘내 생도 얼마 남지 않은 듯하군. 하긴 이런 몸으로 삼 년 동안 살아남은 것이 신기하지.’
당장 목숨이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바닥에 토해 놓은 붉은 선혈을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매화검인 중에서도 화산사절의 검절인 내가…….’
화산사절(華山四絶) 검절(劍絶) 오청석.
그는 화산파 이대제자의 신분에 화산사절까지 오른 화산파 제일의 천재였다.
차기 화산제일검으로 가장 유력하다고 알려졌던 인물.
‘누구였을까. 나를 지옥혈림에 의뢰한 자는.’
괴도에서 깨어난 뒤 삼 년 동안 수많은 경우들을 생각했지만, 범인은 알아내지 못했다.
그래도 한 가지 단서가 될 만한 일이라면…….
그날 그가 보았던 복면인들의 존재에 대해 아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
‘사숙…… 하지만 그분이 나를 넘겼다고는 확신할 수 없다. 사숙께선 내가 보는 앞에서 죽음을 당했으니.’
오청석은 그 물건을 확인해보지 못한 게 두고두고 아쉬웠다.
‘내가 숨긴 철갑. 그 안에 무엇이 있었을까?’
궁금했지만 이제 그가 알아낼 방법은 없었다.
오청석을 공격한 신비인들은 그의 혈맥과 단전을 부수며 끊임없이 철갑의 위치에 대해 물었다.
하나 오청석은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죽을지언정 철갑을 숨겨놓은 위치를 말하지 않은 것.
결국 신비인들은 겨우 입만 움직일 수 있게 만든 뒤 그의 몸뚱어리를 지옥혈림에 맡겼다.
오청석의 얼굴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괴도에서 살아나갈 수 있다는 희망은 점점 사라졌다.
여기에서 나갈 수만 있다면…….
* * *
저벅저벅.
허리에 목검을 꽂고 한 손에는 잡은 풍뎅이를 들고 바닷가로 향하는 청년.
고진유가 조심스레 오청석에게 다가섰다.
‘이런…….’
그의 앞에 붉은 피가 흩어져 있었다.
최근 들어 사부가 토혈을 쏟아내는 기간이 점점 짧아졌다.
사부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곤 그가 화산파의 제자이며 도명(道名)이 허진이라는 것.
그 외 화산파에 관해서는 더 이상 말해주지 않았다.
배에서 봤던 것처럼 사부는 사지를 움직일 수 없었다.
삼 년 전 괴도에 떠내려 온 뒤, 바닷가에 정신을 잃고 엎드려 있던 그를 구했다.
섬에서 식량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은 고진유밖에 없었다.
움직일 수 없는 그를 위해 고진유는 혼자서 두 사람 몫을 구해야 했다.
괴도에선 괴물 같은 놈들을 상대해야 살 수 있었다.
고진유가 고생하는 모습을 보던 오청석은 그가 식량을 쉽게 잡을 수 있도록 서너 개의 초식만을 가르쳐 주었다.
내력이 없는 초식이라고 해도 화산파의 무공이었다.
중소지역 무관에서 배우는 수준과 달랐다.
중원에서 무리(武理)에 뛰어난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체계적으로 익혀야만 대문파에서 버틸 수 있고, 비전의 무공들을 펼칠 수 있다.
고진유는 소매치기 출신에, 더구나 십오 세가 되도록 무공에 대해 무지한 상태.
그래서 오청석은 기대를 하지 않았다.
반면 고진유는 무공을 배운다는 사실만으로 흥분했다.
벽화당 두목이 익힌 잡공과 차원이 다른 화산파의 무공!
몸과 손을 움직이는 방법부터 달랐다.
처음에는 두 가지 초식만을 배웠다.
섬에서 하는 일이라곤 먹는 것 이외에 딱히 없었으니, 따분하고 지루하던 고진유에게 초식들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최고의 놀이였다.
오청석이 가르쳐 준 두 가지 초식을 고진유가 제대로 펼칠 수 있을 때까지, 반년의 시간이 걸렸다.
변초와 허초까지 스스로 깨달았다.
실초만으로 펼치는 것은 깨달음이 아니라 외우는 것밖에 되지 않는 사실을 고진유는 본능적으로 잘 알고 있었다.
사냥을 하면서 같은 움직임에도 변화를 줘야 쉽게 잡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설마…….’
아무리 내력이 없다고 하나 무리(武理)에 밝지 않다면 일 년이 넘어도 완벽하게 펼칠 수 없다.
하나 반년 뒤, 고진유는 그의 앞에서 완벽하게 두 개의 초식을 펼쳤다.
오청석은 호기심이 생겼다.
이번에도 다시 두 가지 초식을 가르쳐 주었다.
이번에는 석 달.
익숙해졌는지 석 달 만에 두 가지 초식을 자연스럽게 펼쳐냈다.
그다음 두 가지 초식은 한 달 보름이 걸렸다.
‘무리(武理)가 뛰어난 정도가 아니군.’
무공을 익히는 데 완벽한 근골인 천무지체(天武之體)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일 년이 지났을 즈음, 고진유는 여덟 초식을 익힌 뒤였다.
그 후 오청석은 여섯 초식을 한 번에 모두 가르쳐 주었다.
두 가지 초식을 익히기 시작한 지 이 년 만에 열네 가지 초식들을 모두 익힌 것이다.
내력이 없을 뿐이지 화산파의 삼대제자들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았다.
본래 내력을 가르쳐 줄 생각은 없었다.
초식까지는 몰라도 내력을 더한다면 화산파의 무공을 외부인에게 전수하지 못한다는 율법을 어기는 일이니까.
‘……하지만 제자로 받아들이면 문제가 없지.’
화산파 이대제자인 그에게 제자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은 충분했다.
이것이 하늘의 뜻이라면.
오청석은 우선 그를 속가제자로 삼아 화산파 심법을 가르쳐 주었다.
보무 수련생이 등평관 시험에 통과해야 익힐 수 있는 내공법인 매화단심공(梅花單心功)부터.
기본심공이라 하나 화산파의 조사인 화산선사께서 창안한 심공법이었다.
그리고 내공을 수련한 뒤 한 달이 지날 무렵, 고진유는 매화단심공의 오성까지 끌어 올렸다.
비록 심공의 기본 단계인 백매화단일지라도 놀라운 성취였다.
사지를 움직일 수 없는 그였지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허어…… 한 달 만에 오 성이라니. 대체 어떻게 된 놈인지 모르겠군.’
오청석이 한 가지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단전이 사라지지 않았다면 그도 알아챘을 터.
그들이 갇힌 괴도는 유기체의 모든 신진대사가 과도하게 일어나는 곳이었다.
내공 또한 마찬가지.
괴도에서 한 달의 내공 수련은 무림에서의 경우 십 년 동안 수련한 뒤 얻게 되는 양을 뛰어넘을 정도였다.
단전에 내력이 생긴 후 열네 가지 초식을 펼치자 고진유의 목검 주위로 매화가 피어났다.
향긋한 매화 향과 함께.
내력이 많아질수록 매화 향기는 짙어졌다.
오청석을 사부로 모신 뒤 무공과 함께 저녁에는 글을 익히면서, 삼 년 동안의 괴도에서의 생활은 어느덧 고진유를 청년으로 만들어 주었다.
십오 년의 세월 동안 홀로 살아와야 했던 고진유에게 오청석은 처음으로 진정한 가르침을 준 사부였다.
“사부님, 또 각혈을…….”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도 네가 구해온 약초들 덕에 심한 고통은 없지 않느냐.”
고진유는 괴도를 조사하며 삼(蔘)과 비슷한 약초를 찾아냈다.
“하지만…….”
“허허, 녀석.”
아픈 자신보다 더 근심이 가득 달린 표정을 한 고진유를 보며 오청석은 미소를 지었다.
홀로 살기에도 힘들었을 터인데.
사지도 움직이지 못하는 자신을 죽도록 그냥 놓아두어도 되건만, 끝까지 보살펴 주었다.
“어디 보자. 매화 향이 더 짙어졌구나. 허허허.”
십오 년을 도둑질로 보냈다는 녀석.
사람의 정을 한 번도 제대로 받아보한 아이였다.
제대로 교육조차 받지 못해 삼 년간 처음부터 하나씩 가르쳤다.
간단하게 익힐 수 있는 글자부터 화산의 무공까지.
무공을 익힘에 있어 중요한 인성 또한 함께.
측은지심(惻隱之心).
많은 덕목들 중에서도 오직 하나, 측은지심을 가르쳤다.
“만일 네가 여기에서 나간다면 앞으로는 도둑질을 해서는 안 된다.”
“배운 게 도둑질인걸요.”
“허어, 네가 남의 물건을 훔치면 많은 사람들이 슬퍼하지 않겠느냐?”
“부잣집도 훔치면 안 됩니까?”
“그들도 열심히 노력을 해서 부자가 된 것이니라. 당연하다.”
“으음…… 그렇다면 부당하게 부자가 된 집들은 상관이 없겠네요?”
“녀석. 의적의 흉내를 내겠다는 것이더냐?”
“그건 아니지만요.”
“허허, 한 가지만 명심하면 되느니라. 너 또한 화산파의 제자이거늘. 항상 화산파의 위명을 더럽히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넵! 사부님의 말씀을 꼭 명심하도록 하겠습니다!”
밝게 웃으며 대답하던 어린 녀석은 이제 어엿한 성인으로 자라났다.
스윽.
고진유는 손에 든 풍뎅이를 앞으로 내밀었다.
“사부님, 좋은 놈으로 잡아왔습니다.”
“후후후, 그렇구나.”
작은 돼지 새끼 정도의 크기.
오청석도 이제 괴도에서 살아가는 동식물들이 비정상임을 알았다.
삼 년이 지났지만 가끔씩 적응이 안 될 때도 있었다.
“이놈을 잡는 데 힘들지 않았느냐?”
“히히히, 이젠 식은 죽 먹기입니다. 매화검법을 펼치면 그놈들은 끝입니다.”
“흐음…… 그렇구나. 제자의 매화검법을 한 번 구경해 볼까?”
“넵. 알겠습니다.”
고진유는 풍뎅이를 바닥에 내려놓고 뒤로 물러났다.
사부의 앞에서 무공을 펼치는 게 좋았다.
매화검법을 펼치는 모습을 보며, 환하게 미소 짓는 사부의 얼굴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초식 매화류개(梅花流開)를 시작으로 십사수매화검법이 펼쳐졌다.
부우웅-
파아앗!
목검이 흐르는 소리와 바람이 맞닿는 맑은 소리가 울렸다.
고진유가 펼칠 매화검법은 어느 누가 봐도 화산파의 매화검법이었다.
십사수를 모두 펼친 고진유는 잠깐 망설였다.
“사부님, 한 번 더 펼쳐보도록 하겠습니다.”
“펼쳐보아라.”
아직 사부의 앞에서 보여준 적 없는 움직임.
괜히 야단만 맞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스르르륵-
고진유의 목검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 번째도 시작된 매화류개의 초식은 방금 전 펼친 것과 달랐다.
‘허어…… 허초와 변초를 이용하여 또 다른 초식을 만들어내다니. 엄청난 무리를 가졌다.’
오청석의 눈이 커졌다.
실초를 익히면서 고진유가 허초와 변초를 이해한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나 지금 고진유가 펼친 매화검법은 이해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매화검법을 깨닫지 않고서는 허초와 변초를 십사수식의 하나로 이을 수 없다.
‘아깝다. 진유가 화산파에서 제대로 수련을 받는다면…….’
어쩌면 화산사절을 뛰어넘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사지를 움직이지 못하는 탓에 변초와 허초를 직접 보여줄 수 없었기에 진유에게 가르침을 주지 못하는 것이 늘 안타까웠다.
그런데 혼자서 깨우쳤다.
고진유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내가…… 잘못했나?’
고진유는 사부의 표정을 살폈다.
언제나처럼 부드럽게 웃는 표정이 아니라 심각하게 보였다.
걱정이 살짝 올라올 즈음, 사부 오청석의 칭찬이 들려왔다.
“후후후, 멋지구나.”
“감사합니다!”
“어떻게 된 것이더냐? 방금 그 초식들은 스스로 깨우쳤느냐?”
“넵. 우연히 하다 보니…….”
고진유는 사부를 보며, 섬 안으로 들어가 수많은 곤충들을 상대할 때 일정한 움직임이 제대로 먹히지 않자 조금씩 변화를 주는 과정에서 익혔다며 기쁜 듯 얘기했다.
“그렇게 되었구나. 잘했다. 앞으로도 무공을 익히는 데 항상 탐구하고 수련을 해야 하느니라.”
“알겠습니다. 항상 사부님께서 많은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구르르릉-
그때, 굉음을 내며 섬이 흔들렸다.
최근에 들어 땅이 울리는 빈도가 잦아졌다.
오청석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허어…… 조만간 화산이 터질지도 모르겠군…….’
제자와 좀 더 함께하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다.
“허허…… 나도 그러고 싶다만…… 난 이곳에서 나갈 수 없을 듯싶구나.”
오청석은 자신이 운명이 머지않았음을 알았다.
“아닙니다. 제자가 꼭 사부님을 모시고 밖으로……!”
“진유야. 고맙다. 하지만 내 운명은 여기에서 끝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느니라. 요즘 들어서 섬이 수상하구나. 소용돌이도 점점 심해지는 것을 봐서 화산이 터질 듯하다.”
“사부님, 이곳을 탈출하기 위해 뗏목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잘했다. 아직은 미미한 것 같지만 몇 년 내 화산이 터지기 전 떠나야 할 게야. 넌 여기에 더 이상 머물 필요가 없다.”
“사…… 부님. 제자가 꼭…… 함께…….”
“허허허…….”
오청석은 자신 때문에 쉽게 떠나려고 하지 않는 제자를 부드럽게 토닥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