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마지막 회)
“흠!”
심무극은 생각에 잠겼다.
그가 병력 오십만을 동원할 생각을 한 건 천우황의 죽음 때문이었다. 좌무백은 어쩌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했다. 하지만 천우황의 죽음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
그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모든 걸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 더럭 겁이 났다. 남는 건 군사뿐이었다. 그래서 북방으로 연락해 모든 병력을 동원했다.
콰앙!
“억!”
심무극은 벌떡 일어났다.
“시, 신왕!”
“넌…….”
심무극의 눈이 커졌다.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는 자는 천상기사단 단주 카르할이었다.
“무, 무슨 일이냐?”
심무극은 카르할 곁으로 다가갔다.
“모두 당했습니다.”
“누가 당했다는 거냐?”
“주천대와 천상기사단, 암흑전사단이 전부 당했습니다.”
“누가 감히 그들을…….”
“암흑오부족이었습니다.”
“그들이 죽지 않았단…… 속임수였구나.”
심무극은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됐다. 바다에서 죽은 자는 초무극과 역천대뿐이었다. 아락과 하발, 아르카가 이끌던 암흑오부족은 루하 놈에게 굴복한 게 분명했다.
“그렇소…….”
“헉!”
심무극은 화살처럼 튕겨졌다.
하지만 반투명한 물체를 피할 수 없었다.
퍽!
반투명한 물체는 그의 심장을 뚫었다.
“넌…….”
심무극은 경악한 얼굴로 카르할을 보았다.
“납니다.”
카르할의 얼굴이 변했다. 그리고 드러난 얼굴은 다름 아닌 금장생이었다.
“네가…….”
심무극은 황당한 얼굴로 자신의 가슴과 금장생을 번갈아 보았다.
“이 순간을 위해 일부러 환술을 익혔습니다.”
“네가 아무리 환술을 익혔다고 해도 내가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건…….”
“나도 신족이잖습니까.”
“쿡!”
심무극은 피식 웃었다. 금장생의 말이 맞았다. 만일 금장생이 신족이 아니고 인간이었다면 바로 알아차렸을 것이다. 카르할의 몸에서 풍기는 신족의 기운 때문에 경계를 풀었고 결국엔 당하고 만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심장을 뚫은 반투명한 무기.
일반 무기가 절대 아니었다.
“혹시 가드헬이냐?”
심무극은 물었다.
“그렇습니다.”
“역사가 날 원하지 않는구나.”
심무극은 털썩 무릎을 꿇었다.
금장생은 벌떡 일어나 심무극의 손을 잡고 가드헬의 기운이 더 이상 퍼져 나가지 않도록 했다.
시체를 보존하기 위해서였다.
금명세와 임춘순이 시체를 확인하고 난 후에야 가루로 변할 것이다.
“황제 처소에 자객이 들었다.”
“황제 폐하를 보호하라!”
금의위 영반 금명세와 동창 제독 임춘순의 외침이 들려왔다. 금장생은 곧바로 은신술을 펼쳤다. 그리고 자리를 떴다.
잠시 후 금의위와 동창 무인들이 황제 처소로 들이닥쳤다.
“폐하!”
“폐하!”
금명세와 임춘순은 그 자리에 무릎을 꿇으며 흐느꼈다.
“폐하께서 암살을 당하셨다. 궁궐을 폐쇄하고 범인을 색출하라!”
“궁궐을 폐쇄하라!”
동창 첩형과 금의위 진무사가 밖을 향해 소리쳤다.
“존!”
우렁찬 외침과 함께 금의위와 동창 무인 수백 명이 사방으로 몸을 날렸다.
“폐하!”
금명세는 시체 앞에서 다시 머리를 조아렸다.
푸스스스!
그 순간 심무극의 시체가 가루로 변해 갔다.
“폐하!”
“폐하!”
금명세와 임춘순은 다급한 얼굴로 소리쳤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 마치 진짜 황제를 대하는 것 같았다. 곧 심무극이 누워 있던 자리에는 가루만 남았다.
“가서 다정성모님을 모셔 오너라! 아니다. 우리가 가겠다.”
금명세와 임춘순이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정말로 없애 버렸습니다, 제독.
밖으로 나가면서 금명세는 임춘순에게 전음을 보냈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렇게 쉽게 성공할 줄은 몰랐네요.
―살인자를 밝혀야겠지요?
―밝히지 않으면 황제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자들이 있을 겁니다. 말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겠지요.
“황제를 시해한 자의 수법은 자객 사상死商의 수법과 일치한다. 지금부터 동창과 금의위는 모든 인력을 투입해서 사상을 찾아라.”
금명세가 버럭 소리쳤다.
“존!”
“존!”
사방에서 우렁찬 외침이 터져 나왔다.
“갑시다.”
“그러지요.”
두 사람은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두 사람이 서 있던 곳에서 흐릿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는 심무극을 없앤 금장생이었다.
“나는 끝났습니다, 무 형. 이젠 당신 차롑니다.”
금장생은 서쪽 하늘을 보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마법을 이용해서 ‘영혼의 그릇’을 작게 만들 수도 있어요. 무 형의 심장 크기로 축소한 후 왼편 가슴에 대고 밀어 넣으세요. 그리고 한 시진을 기다리세요. 그러면 무 형의 몸은 죽은 자들의 군단의 ‘영혼의 그릇’이 돼요. 바로 그 순간 데블헬로 심장을 찔러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영혼의 그릇’의 노예가 돼서 그들의 명령을 듣게 돼요.
―내가 그들의 노예가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지?
―전에 말한 것처럼 세상의 종말이 올 거예요.
무혼은 금장생과 나눴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의 손에는 심장 크기로 축소시킨 영혼의 그릇이 올려져 있었다.
“나는 널 믿는다, 장생.”
무혼은 심장 모양의 ‘영혼의 그릇’을 왼편 가슴에 대고 밀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영혼의 그릇이 안으로 파고들어 갔다. 생살을 파고들어 가는데 피는 한 방울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이윽고 ‘영혼의 그릇’이 완전하게 모습을 감췄다.
“크크크!”
바로 영향을 받은 듯 무혼의 입에서 괴소가 흘러나왔다.
무혼은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손바닥을 펴서 하늘로 향하게 했다. 곧 그의 손바닥에서 투명한 막대기가 튀어나왔다. 성스러운 빛으로 이루어진 그것은 신의 무기인 데블헬이었다.
“가장 긴 한 시진이 되겠군.”
―우리는 네 주인이다. 복종하라!
―우리는 네 주인이다. 복종하라!
―우리는 네 주인이다…….
느닷없이 엄청난 힘을 지닌 목소리가 머릿속을 강타했다.
“난…… 무혼이다!”
“난…… 철무혼이다!”
“난…… 철무혼이다!”
“나는 무혼이다!”
“크아아아아!”
무혼은 괴성을 내질렀다.
찌익! 찌익! 찌익!
그는 자신의 옷을 찢어발겼다. 옷이 찢겨 나간 그의 온몸은 징그럽기 그지없었다. 힘줄이란 힘줄은 모두 튀어나와 제멋대로 움직여 다녔다.
―우린 네 주인이다! 복종하라!
“나는 철무혼이다!”
―우린 네 주인이다! 복종하라!
“나는 갈릭 드 무혼이다. 내 아내는 아마조네스 드 샤이아다. 나는 그녀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 차원을 넘었다. 나는 그녀를 구하기 위해 신과 싸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살아남아야 한다!”
“나는 갈릭 드 무혼이다!”
무혼은 데블헬을 번쩍 들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습니다, 가모님.”
유공은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렇군요.”
아수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백 장 뒤편에는 오십만 명의 병력이 있고 이백 장 앞에는 ‘죽은 자들의 군단’이라고 부르는 불사신들이 있다. 반면에 자신들에게는 빠져나갈 곳도 대항할 힘도 없다. 남은 것은 종말뿐이다.
그녀는 몸을 돌렸다.
각 세력의 수장이 그녀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앞으로 가고 싶어요, 뒤로 가고 싶어요?”
그녀는 물었다.
“명나라 군사는 누군가의 자식이고 아버지이지만 앞에 있는 놈들은 시체들이잖습니까.”
막거성이 말했다.
“앞으로 가자는 건가요?”
“저들은 우리 동족이니까.”
백리장광이 말했다.
“다른 분들도 같은 의견인가요?”
아수수는 다른 사람들을 보았다.
“그렇습니다.”
일행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 자리가 마지막이 되겠군요. 그동안 감사했어요.”
아수수는 수장들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우리도 감사했습니다. 저승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도 감사했습니다.”
“행운이 함께하길 바랍니다.”
수장들도 서로에게 포권을 취했다. 그리고 각자 위치로 돌아갔다.
“제군들…….”
“제군들…….”
곧이어 사방에서 부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자랑스러운 중원인이며 정의를 사랑하는 무인이다. 그리고 중원의 주인이다. 그 누구도 우리에게 중원을 빼앗아 갈 수 없다. 우리 선배들이 중원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렸던 것처럼 우리도 죽원을 지킬 것이다. 훗날 우리 후예가 존재한다면 그들은 분명히 그렇게 말할 것이다. ‘죽은 자들의 군단’과 싸운 위대한 선배들 때문에 자신들이 살고 있는 거라고. 그리고 우리를 영원히 기억할 거라고. 가자.”
“가자!”
“가자!”
“가자!”
벌판은 ‘가자!’라는 함성으로 들어찼다.
“가자!”
“가자!”
팔왕가 무인들은 ‘가자!’를 외치며 죽은 자들의 군단을 향해 나아갔다.
“쿡!”
엘은 피식 웃었다. 적의 행태가 가당치도 않았다.
이미 ‘죽은 자들의 군단’의 위력은 몸소 체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다가온다는 건 자살하려고 달려오는 자들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긴 자살 말고 다른 수단이 없지.”
엘은 어깨를 으쓱했다.
“먼저 네놈들을 없애고 나서 저 뒤에 있는 놈들을 처리할 것이다. 그리고 황실에 있는 그놈을…….”
엘의 몸에서 진득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저것들을 죽여라!”
엘은 전방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
하지만 ‘죽은 자들의 군단’은 움직이지 않았다.
“……저들을 죽여라!”
엘은 ‘죽은 자들의 군단’이 자신의 명령을 알아듣지 못했나 싶어서 다시 소리쳤다.
그런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죽은 자들의 군단’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고개를 돌려 엘을 빤히 바라보았다.
“지, 진격하란 말 못 들었느냐! 당장 달려가지 않으면 소멸시켜 버리겠다!”
엘은 버럭 소리쳤다.
―미친놈!
엘 바로 앞에 있던 자 한 명이 손을 쭉 내밀었다.
푸욱!
그의 손은 엘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컥!”
엘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푹! 푹푹푹! 푹푹푹!
이어 수십 개의 무기가 엘의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어떻게 이리 말도 안 되는…….”
―우린 정신을 차렸다, 멍청이.
‘죽은 자들의 군단’ 한 명이 엘의 머리를 잡았다. 그리고 사정없이 뜯었다.
“크아악!”
엘은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엘의 머리를 뜯어낸 자는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고기를 먹는 것처럼 뜯어 먹었다. 다른 이들 또한 엘의 몸통을 씹었다. 금세 엘은 뼈만 앙상하게 남았다.
엘을 씹어 먹은 자들의 시선이 전방으로 향했다.
“먹어라!”
그중 한 명이 소리쳤다.
“크아아아아아!”
“캬아아아아아!”
‘죽은 자들의 군단’은 괴성을 내지르며 몸을 날렸다.
“가자!”
“가자! 가자! 가자! 가자! 가자!”
‘가자!’라는 외침이 빨라지면서 팔왕가 무인들이 나아가는 속도도 빨라졌다.
“죽여라!”
“죽여라!”
곧 함성을 내지르며 적을 향해 몸을 날렸다. 양측은 금세 맞닥뜨렸다.
카앙! 캉! 캉캉캉!
팔왕가 무인들은 무기를 휘둘러 길을 만들며 내달렸다. ‘죽은 자들의 군단’ 안으로 들어가면 다시는 나오지 못한다는 걸 알지만 망설이거나 주저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함성을 내지르며 몸을 날렸다. 그리고 미친 듯이 무기를 휘둘렀다.
‘죽은 자들의 군단’ 수천 명이 가루로 변해 흩어졌다. 하지만 그건 잠시뿐이었다. 그들은 곧 다시 본래 모습으로 부활했다.
“크아악!”
“아악!”
“으아악!”
이번에는 팔왕가 무인들이 내지르는 비명이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하늘이시여.”
아수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곳까지 오면서 수백 명을 가루로 만들었다.
내공은 바닥나고 몸은 천근만근 무겁다. 더 이상 무기를 휘두를 힘이 없다. 그런데 적은 다시 살아난다. 그들 중 한 명과 시선이 마주쳤다.
“크크크! 이제 우리 세상이다.”
‘죽은 자들의 군단’이 무기를 번쩍 들었다.
“아!”
아수수는 눈을 감았다.
바로 그때였다.
푸스스!
검을 들어 올렸던 ‘죽은 자들의 군단’이 가루로 흩어졌다. ‘죽은 자들의 군단’이 가루로 변한 건 아수수 앞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사방에서 죽은 자들의 군단이 가루로 변해 흩어졌다.
잠시 후 벌판에는 팔왕가 무인과 ‘죽은 자들의 군단’이 탑승해 있던 철갑거인만 남았다.
뿌우우우!
뿌우우우우!
바로 그때 명나라 군 진영에서 나팔 소리가 들려왔다.
“요동군은 공격을 멈추시오.”
“어명이오! 요동군은 회군하라는 어명이오!”
“우와아아!”
“우와아아아아!”
“이겼다!”
“우리가 이겼다!”
팔왕가 무인들은 무기를 쳐들고 기쁨의 함성을 내질렀다.
기나긴 전쟁의 끝이었다.
* * *
새로운 세상으로
딸랑! 딸랑! 딸랑!
어둠 속을 뚫고 종소리가 들렸다.
종소리에는 어두운 기운이 잔뜩 내포돼 있어 어떻게 들으면 섬뜩하기까지 했다.
딸랑!
다시 종소리가 들렸다.
휙!
그러자 이마에 노란 부적을 붙인 사내가 펄쩍 뛰어 이동했다. 검은 옷을 입고 검은 모자를 쓰고 이마에 부적을 붙인 자는 강시, 아니 정확하게는 강시로 다시 태어난 무혼이었다.
“너무 많이 뛰게 해서 미안합니다. 하지만 무 형은 아직 강시라서 방법이 없습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활시가 되면 좀 나아질 겁니다.”
금장생은 강시로 변한 무혼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 녀석이 다시 사람이 되긴 하는 거냐?”
옆에서 걷던 바타르가 물었다.
“저들이 그 증거잖습니까.”
금장생은 팔장군들을 가리켰다.
그와 함께 가는 사람은 팔장군들뿐만이 아니었다.
팔장군들 뒤편으로는 수천 명이 따르고 있었는데 그들은 암흑오부족이었다.
“그렇긴 하다만.”
“언젠가는 살아날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래야지.”
바타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섭섭하지 않으세요?”
“뭐가 말이냐?”
“연인을 두고 가는 거잖아요.”
권말남에 대한 말이었다. 권말남이 바타르를 따라갈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그는 중원에 남는 걸 택했다.
“너도 둘이나 두고 가는 걸로 아는데, 아니냐?”
바타르가 말한 둘은 아수수와 사미염이었다.
“원래부터 나와는 인연이 없었던 사람들인데요, 뭐.”
“그 둘은 부인으로 맞아들이면 대륙황가의 주인이 될 수도 있었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인간은 절대 너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우리 아버지 말이 자기가 이룬 게 아니면 자기 것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대륙황가의 대표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주인은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부인은 한 명으로 족합니다.”
금장생은 오른편에 있는 불여하를 잡아당겼다.
“그렇기도 하겠구나.”
“그만 가 볼까요.”
금장생은 다시 제종을 쳤다.
딸랑!
휙!
제종이 울리자 무혼이 펄쩍 뛰어 이동했다.
딸랑! 딸랑! 딸랑!
《황금가》 마칩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