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520화 (520/524)

황금가 (520)

최후의 전쟁

금장생과 오다아이 일행 그리고 마가 무인들이 혈가로 들어온 건 이십구일 날 밤이었다. 그들은 대여섯 명씩 조를 짜서 따로 들어왔다. 따로 도착한 건 시간 차를 두고 출발했기 때문이었다.

금장생이 돌아왔다는 소식은 빠르게 혈가 곳곳으로 전해졌다. 그러자 각 세력의 수장들이 혈각血閣으로 모였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장들은 금장생을 향해 인사를 했다.

“여러분도 먼 길 오느라 수고하셨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다. 잠시 후 차가 일행 앞에 놓였다.

금장생의 시선이 군사 유공에게로 향했다.

“적도 현재 해림에 집결한 상탭니다.”

유공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적 병력 상황은 어떻습니까?”

“신족이 만 명, 마원과 해림 무인이 오천 명입니다.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이 오천 명 정도 됩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의 정체가 건륭과 그의 부하였지만 아직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이만 명이라는 건가요?”

“지금까지 파악한 바로는 그렇습니다.”

“우리 전력은 어떻죠?”

“우리도 이만에 육박합니다.”

“병력으로 보면 비슷하군요.”

“그렇습니다.”

“공격은 언제 하실 겁니까?”

듣고 있던 태양제 혈사륵이 물었다.

“오늘 밤입니다.”

금장생은 혈사륵을 돌아보며 대답했다.

“오늘 밤이라고요?”

혈사륵의 눈이 커졌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이들의 눈도 휘둥그레졌다. 금장생이 돌아온 건 불과 반 시진 전이다. 그런데 휴식도 없이 바로 공격을 하겠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놈들에게 시간을 주면 줄수록 우리가 불리하다는 게 내 생각입니다. 하루라도 빨리 공격을 하는 게 희생을 줄일 수 있습니다.”

금장생이 서두르는 건 자신이 도착한 사실이 좌무백에게로 들어갔을 거란 생각에서였다. 아니 동창과 금의위를 장악하고 있는 그들이 모를 리가 없을 터였다. 게다가 군까지 장악하고 있다. 군을 동원하기 전에 끝을 보자는 게 금장생의 생각이었다.

“시간은 언제로 할 겁니까?”

혈사륵은 다시 물었다.

“축시 중입니다.”

“알겠습니다.”

수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공격 계획은 세웠나요?”

금장생은 다시 유공을 보았다.

“네. 다른 사람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나만 알면 된다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여기요.”

유공은 종이 한 장을 금장생에게 내밀었다. 금장생은 받아 든 종이를 펼쳤다.

동: 마가, 혈가, 암가

서: 사가, 전가, 흑지

남: 해림, 환수각

북: 화가, 철가, 만인물성

땅굴을 통해 이동하기로 함.

내용을 읽고 난 그는 유공을 보았다.

―혈가 주변에 철포가 숨겨져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유공은 전음으로 보고했다.

―얼마나요.

―일만 문입니다.

―철포는 누가 쏘는 거죠?

―병사들입니다.

―벌써 군대가 와 있다는 건가요?

―십만 정도가 대기 중입니다.

―그들의 수장이 누군지 알아냈나요?

―지금 자 진무사와 권 첩형이 알아보고 있습니다.

―군이 동원됐다는 사실을 지휘관들도 알고 있나요?

―어차피 알게 될 건데 미리 말해서 사기를 떨어뜨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직 말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그들이 철포 공격을 시작하면 어떻게 피할 거죠?

―해림을 비울 참입니다.

―공성계를 사용할 건가요?

―네.

―하늘에서도 감시를 하고 있을 텐데 속일 방법은 있나요?

―그동안 땅굴을 팠습니다. 적이 철포를 쏘기 시작하면, 우리 마가와 혈가 무인은 북쪽, 동쪽, 서쪽으로 가서 놈들을 없애고, 그사이 나머지 병력은 땅굴을 통해 철포 뒤편으로 나갑니다. 그다음 철포를 탈취해서…….

전음은 한동안 이어졌다.

―알았어요.

전음을 듣고 난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인원 오천 명씩 나눴습니다. 공격 방법은 동쪽과 남쪽에서 먼저 시작하는 겁니다. 팔장군과 팔왕께서 보유한 철갑거인과 환수각이 보유한 철갑거인이 출병하면 적의 전력은 동쪽과 남쪽으로 쏠리게 될 겁니다. 그때 북쪽과 서쪽에서 치고 들어갑니다.”

유공은 작전에 대해 설명을 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금장생의 시선이 신강태존 태천야에게로 향했다.

“감사합니다, 태존.”

그는 포권을 취해 감사 인사를 했다.

“감사는 무슨, 우리 흑지를 위해서 하는 일인데요.”

태천야는 아무런 대가도 없이 도와주는 게 아니다. 승리 후 받을 대가는 흑지의 중원 정착이다.

중원 진출이 평생 숙원이었던 그에게는 나쁜 조건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도 전쟁에 참여하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지요.”

이어 그의 시선이 봉란에게로 향했다.

―내가 아는 분의 이름은 장생인데 어떻게 된 거죠?

봉란은 전음으로 물었다.

―거기엔 사정이 좀 있습니다. 그런데 대원들은 어떻게 설득했죠?

―양쪽 중 한 곳에 서지 않으면 만인물성을 잃게 될 거라고 했어요.

―그랬군요.

금장생은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더 많은 이야기가 있겠지만 지금은 그걸 물을 때가 아니었다.

―아무튼 전쟁 끝나고 조용히 이야기 좀 해요. 적천영 말고 장생으로요.

―단둘이?

―다른 사람 데리고 오면 혼낼 거예요.

봉란은 금장생을 향해 한쪽 눈을 찡끗했다.

―알겠습니다.

“자!”

금장생은 박수를 쳤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각자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서 부하들과 술이라도 한잔 하세요.”

“알겠습니다.”

“전쟁 끝나고 뵙겠습니다.”

일행은 금장생을 향해 포권을 취하고는 자리를 떴다.

잠시 후 그가 들어간 곳은 마가 무인들이 쉬고 있는 태양전이었다.

태양전은 과거 혈왕의 거처였다. 다시 혈가로 돌아온 오다아이는 태양전에 머물지 않고 월전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그동안 비어 있던 태양전은 아수수와 마가 무인들이 사용하게 된 것이다. 금장생은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내실로 들어갔다. 전형적인 동영식 다다미방이었다. 한편에는 폭신한 요와 이불이 깔려 있었다.

찰박!

방 안쪽에서 물소리가 들려왔다.

“나 왔습니다.”

금장생은 안쪽에 대고 나직하게 말했다.

“여기로 오세요.”

아수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금장생은 안쪽에 있는 문을 열었다. 가장 먼저 그의 눈을 사로잡은 건 아담한 정원이었다. 정원에는 기암괴석과 기형으로 구부러진 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그 나무들 한가운데 지름이 일 장가량 되는 작은 연못이 있었다. 아수수는 수증기로 들어차 있는 그곳에 앉아 있었다.

‘온천이네.’

금장생은 내심 중얼거렸다. 땅속에서 온천수가 나오는지까지는 알 수 없지만 따뜻한 물인 건 분명했다. 아수수와 함께 목욕하는 게 처음도 아니라 금장생은 옷을 벗고 안으로 들어갔다. 물은 동영의 온천이 떠오를 정도로 따뜻했다.

“좋네요.”

금장생은 빙그레 웃으며 아수수 옆으로 앉았다.

“수고했어요.”

아수수는 금장생의 몸에 물을 끼얹으며 말했다.

“제 일인데요, 뭐.”

“엄밀하게 따지면 당신 일은 아니죠.”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내 일이 되고 말았죠.”

“그래서 기분 안 좋아요?”

“그런 건 아닙니다. 어차피 나하고도 좋지 않은 인연으로 엮인 자들이라서요.”

“그나마 낫네요.”

아수수는 자세를 바꿔 금장생 허벅지 위로 앉았다. 그리고 금장생 가슴으로 물을 끼얹으며 물었다.

“오늘 밤 전쟁을 시작할 거라고 하던데…….”

그녀가 금장생을 이곳으로 부른 건 바로 그 때문이었다.

“시간을 끌면 군을 동원할 가능성이 높거든요.”

이미 철포를 쏘기 위해 대기 중이지만 말하지 않았다.

“군을 동원해서 어떻게 한다는 거죠?”

“우리를 칠 명분을 만들 거예요.”

“어떻게요?”

“먼저 투항하라고 해서, 투항하면 북경으로 압송해 갈 테고, 투항하지 않으면 반역자로 몰 겁니다.”

“군이 들이닥치면 우린 진퇴양난에 빠지겠군요.”

“맞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쟁이 끝나면…… 어떻게 할 거죠?”

아수수가 가장 묻고 싶은 말이었다.

“여기 전쟁이 끝나면 바로 황실로 가야 합니다.”

“황실은 왜?”

“지금 황제는 진짜가 아닙니다.”

“그래서요?”

“그를 없애 달라는 청부를 받았습니다.”

“누구로부터 청부를 받았다는 거죠?”

“내게 동창 부제독과 금의위 부영반 자리를 준 사람들입니다.”

“동창 제독과 금의위 영반이군요.”

“황실에 유일하게 남은 충신들입니다.”

“만일 황제를 암살하고 나면 당신은 어떻게 되는 거죠?”

“역적이 될 겁니다.”

“중원에서는 살 수 없게 된다는 뜻이군요.”

“그렇습니다.”

“청부를 수락할 때 그렇게 될 거라는 사실을 몰랐어요?”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권력자고 나는 상인 자식에 불과했거든요. 그리고 황제로 앉아 있는 그자는 아주 오래전에 나를 배신한 부하이기도 하고요.”

“그자가 당신 부하였어요?”

아수수의 눈이 커졌다.

“네.”

“어떻게 된 건지 말해 주지 않을 건가요?”

아수수는 가슴을 쓸던 손을 아래로 내리며 물었다. 곧 그녀의 얼굴에 살짝 미소가 어렸다. 어느새 금장생은 완벽하게 준비가 돼 있었다.

그녀는 두 손으로 금장생을 쥐고 엉덩이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몸을 천천히 물렸다.

“내가 두 번째 삶을 살고 있다면 믿겠어요?”

금장생은 아수수에게는 사실을 털어놓기로 했다.

아수수의 동작이 우뚝 멈췄다. 그녀는 금장생의 눈을 보았다. 한동안 가만히 바라보다 다시 몸에 힘을 주었다. 잠시 후 그녀는 금장생을 완전히 수용했다.

“믿어요.”

그녀는 천천히 파도를 탔다.

“그러니까…….”

금장생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신족의 왕이었던 사실과 장로인 사신장으로부터 배신을 당해 능력을 잃고, 혼인을 하고 아이 아버지가 됐던 사실까지 모두 말했다. 아이를 잃은 사실도.

그리고 모든 일이 정리되면 무혼과 함께 다른 세상으로 가야 한다는 사실도 말했다. 다만 불여하가 부인이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금장생이 자식을 잃고 자결을 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아수수는 눈물을 쏟았다.

“날개 좀 보여 줄 수 있어요?”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아수수는 눈물을 닦아 내며 말했다.

“물론입니다.”

금장생은 적신천사마공을 끌어 올려 날개를 펼쳤다. 열여섯 개 날개에서 흘러나온 황금색 광채로 인해 주위가 황금색으로 변했다.

“거긴 어떤 세상이죠?”

날개를 바라보며 아수수가 물었다.

“나도 잘 모릅니다.”

“거기로 갔을 때 당신이 실망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내가 무 형과 함께 다른 세상으로 가는 건 이번 전쟁에서 승리하고 살아남았을 때 이야깁니다. 여기서 죽으면 아무 소용 없습니다.”

“당신은 살아남을 거예요. 이름도 장생이잖아요.”

“풋! 그렇네요.”

“어쩌면 오늘 밤이 우리의 마지막일 수도 있겠네요?”

“아마도…….”

“사실 제가 여기서 당신을 기다린 것도 그것 때문이었어요. 어쩌면 다시는 못 만날 것 같아서요.”

아수수는 약간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금장생은 잡을 수 없는 사람이란 사실을 알고 나자 마음이 편해진 탓이다. 섭섭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와 혼인을 해서 헤어지는 게 아니라서 그런지 마음이 아프진 않았다.

“혹시 말이에요. ……이쪽으로 다시 넘어오거나 하면…….”

“반드시 마가에 들를게요.”

“그럼 됐어요.”

아수수는 활짝 웃었다. 그녀는 움직임에 박차를 가했다. 곧 연못 주위는 후끈한 열기로 가득 찼다.

* * *

“준비하라!”

차가운 외침이 울려 퍼졌다. 소리친 자는 능천대를 이끌고 있는 카단이었다.

명령을 받은 자들은 바닥의 풀을 좌우로 쓸었다. 그러자 직사각형의 커다란 판이 나타났다. 판 앞과 뒤에는 두툼한 줄이 두 개가 끼워져 있었다. 네 사람이 달려들어 앞과 뒤에서 줄을 잡았다.

나직한 기합과 함께 줄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커다란 물체가 솟아올랐다. 땅속에 묻혀 있던 그것은 거대한 직육면체 상자였다. 직육면체 상자를 구덩이 앞쪽 평지에 놓은 후 상자를 해체했다. 상자 안에서 나온 건 다름 아닌 철포였다.

그런 철포가 한두 기가 아니었다. 무려 일만 문에 달하는 철포가 커다랗게 원을 그리며 서 있었다. 철포의 포신이 향하는 곳은 혈가였다.

사내들은 철포를 바닥에 단단히 고정시켰다.

“발사 준비하라!”

책임자가 다시 소리쳤다.

“발사 준비하라!”

“발사 준비하라!”

좌우측에서 복창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내들은 철포 안에 화탄을 집어넣고 명령을 기다렸다.

“이제 이 전쟁을 끝으로 중원의 주인은 우리 신족이 된다. 너희 인간들은 모두 노예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카단은 차가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힘차게 소리쳤다.

“쏴라!”

명령이 떨어지자 사내들은 일제히 심지에 불을 붙였다.

치이익! 치이익! 치이익!

수천 군데에서 동시에 심지가 연기를 뿜어냈다.

쿠웅! 쿠웅! 쿠웅! 쿠웅!

그리고 일만 문의 철포가 일제히 불을 토했다.

삼백 장을 단숨에 날아간 화탄은 해가로 무차별하게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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