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518)
퍼억! 퍽! 퍼억! 퍼억!
“크억!”
“아악!”
“크아아악!”
“으아악!”
잔인했다. 그의 일수 일수에 신족들의 몸이 찢겨 나갔다. 한 번에 그치지 않았다. 두 번 세 번 손을 휘둘러 갈가리 찢었다.
푸욱!
검 한 자루가 배를 뚫었다.
턱!
초무극은 자신을 찌른 자의 목을 왼손으로 잡았다. 그리고 오른손을 번쩍 들어 힘차게 내리쳤다.
퍼억!
“크아악!”
처절한 비명과 함께 뇌수가 사방으로 튀었다.
“크아아아아!”
초무극은 괴성을 내지르며 몸을 날렸다. 그는 미친 듯이 양팔을 휘둘렀다. 무차별한 살상은 한 식경 이상 지속됐다.
어느 순간 정적이 찾아왔다.
작은 섬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온몸에 피를 가득 묻힌 초무극만 서 있었다. 그의 배에는 검 두 자루가 꽂혀 있었다.
초무극은 자신의 손을 보았다.
피 묻은 살점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평생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았던 신족의 피와 살점이다.
털썩!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쿡!”
웃음이 비어져 나왔다.
“프! 하하하하! 으! 하하하하!”
초무극은 웃음을 터뜨렸다. 왜 그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한번 터진 웃음은 도무지 멈추질 않았다.
그는 눈물이 나도록 웃고 또 웃었다.
웃음이 잦아질 무렵 그의 시야에 거대한 새가 잡혔다. 아니 새가 아니라 날개를 가진 인간이었다.
“신족…….”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가 아는 한 상급 신족이라고 해도 날개는 여덟 개가 전부다. 그런데 저 위쪽에 있는 신족은 한편에 여덟 개가 달려 있다. 날개에서 흘러나온 황금색 광채 때문에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신족은 점점 가까워졌다.
척!
아래로 내려선 사람은 금장생이었다.
금장생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방에는 갈가리 찢긴 시체들이 널려 있었다. 다른 섬도 이곳과 비슷했지만 이 섬은 유독 심했다.
“누구냐?”
초무극은 금장생을 보며 물었다.
“금장생, 아니 팔왕입니다.”
“드디어 보게 되는군.”
초무극은 피식 웃었다.
“날 아십니까?”
“이야기는 들었다.”
“그럼 날개에 대해 설명할 것도 없겠군요.”
금장생은 적신천사마공을 해제했다. 그러자 날개가 사라졌다.
“그들에게 배신을 당한 거냐?”
“아주 오래전 일입니다.”
“그래서 인간 편에 서서 그들과 싸우는 거냐?”
“그건 아닙니다. 나는 인간 금장생이고 그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날개는 적신천사마공을 익히면서 얻은 부산물일 뿐입니다.”
“강기罡氣처럼?”
“정확한 표현입니다. 내게 날개란 신족의 증거가 아니라 무공일 뿐입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 있는 신족은 다 죽은 거냐?”
“이곳으로 오기 전에 다른 섬에도 들렀습니다. 신족은 모두 죽고 암흑오부족은 아직 버티고 있더군요. 그런데 저 시체들은…….”
“모두 내가 죽였다.”
“초 대협이 상전이었던 걸로 아는데, 아닌가요?”
“맞다. 내가 상전이었고 놈들은 감히 내게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그랬던 놈들이 이 모든 일이 노예였던 나 때문이라면서 눈에 쌍심지를 켜고 달려들더구나.”
“빡 돌아 버렸겠군요.”
“풋!”
초무극은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금장생을 보았다.
“그들은 강하다.”
“과거에 내 밑에 있던 자들입니다.”
“여차하면 군을 동원할 거다.”
“그가 군 아니라 더한 전력을 동원한다고 해도 나는 살아남습니다. 그들 셋은 내 손에 죽을 테고요.”
“그들 셋을 없앨 생각이면 지금 바로 자금성으로 가면 되는 거 아니냐?”
“주위를 지키는 자들이 너무 많지 않습니까. 아마 크로헬을 보기도 전에, 참 크로헬은 심무극의 신족 때 이름입니다. 아무튼 지금 자금성으로 가면 그의 얼굴을 보기도 전에 죽임을 당하고 말 겁니다.”
“그럼 그들을 고립시키기 위해서 전쟁을 일으킨 게냐?”
“시대 상황이 맞아떨어진 면도 없진 않지만 내 입장에서는 그렇습니다. 그들은 그동안 숨겨 두었던 모든 걸 다 꺼내 놓게 될 테고, 마지막엔 내게 죽게 될 겁니다.”
“그렇구나. 그보다 물 좀 줄 수 있느냐?”
“줄 수 없다는 거 알잖습니까?”
“냉정하구나.”
“성격입니다.”
“먼저 가서 기다리마.”
초무극은 바로 앞 바위를 향해 머리를 사정없이 찍었다.
퍼억!
머리가 산산이 부서지고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금장생은 시체로 변한 초무극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다가 적신천사마공을 펼쳤다.
파앗!
그의 등 뒤로 열여섯 장의 황금색 날개가 솟아났다. 가볍게 바닥을 찼다. 그의 신형은 곧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잠시 후 그가 도착한 섬은 암흑오부족 다섯 종족이 모여 있는 섬이었다.
암흑오부족은 다섯 개의 섬에 흩어져 있었다.
섬 근처 수면 위로 내린 그는 날개를 활짝 펼친 채 물 위를 걸어서 다가갔다.
“저기…….”
금장생을 발견한 신족 전사 한 명이 손으로 가리켰다.
신족들은 고개를 돌렸다.
“신왕!”
천사군단 군단장 쿤카르가 아락을 불렀다. 아락은 고개를 돌렸다.
“시, 신왕!”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아났는지,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는 상태였던 그였지만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금세 주저앉았다.
“신왕이라니 무슨 소리요?”
옆에 있던 하발이 물었다.
“저 사람이 바로 그들이 말한 신왕이오.”
아락은 금장생을 가리켰다.
“신왕일 뿐 아니라 마신과 마신검의 주인이고 이세 발카요.”
왼편 구석진 자리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은 고개를 돌렸다. 드워프 왕 타고였다.
“그게 무슨 소린가?”
질문을 한 사람은 아르카였다.
“우리 철갑거인을 가장 많이 없앤 철갑거인이 마신이었소.”
“그 마신이 마신검까지 지니고 있었다는 건가?”
아르카는 다시 물었다.
“그렇소.”
“마신검은 우리가 지니고 있었네, 타고.”
“그걸 내가 찾아냈소.”
대답은 해안가에서 들려왔다.
일행은 고개를 돌렸다.
“다, 당신은?”
“어?”
아락과 하발은 금장생을 알아보았다.
“날 알아보십니까?”
금장생은 두 사람을 보며 물었다.
“우리를 이 모양 이 꼴로 만든 원인을 제공한 사람인데 모를 리가 없지요.”
금장생이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엘이 이끄는 신족들도 들어오지 못했을 테고, 암흑오부족의 멸종을 걱정해야 하는 현재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 모든 일의 시작은 금장생이었다.
“내가 아니었더라도 귀하들에겐 문제가 많았던 걸로 압니다.”
“내부적인 문제는 늘 있어 왔소.”
“그런데 나 때문에 커졌다는 겁니까?”
“그렇소.”
“나도 그 사실을 인정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게 이걸 사용하지 않은 겁니다.”
금장생은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어 손바닥을 폈다. 그러자 가드헬이 솟아 나왔다.
“가, 가드헬!”
가드헬을 가장 먼저 알아본 사람은 발카의 친구인 아르카였다.
“가드헬!”
이어 하발이 소리쳤다.
가드헬.
마족 최강 무기이면서 마왕의 신물.
그 무기가 수천 년 만에 나타난 것이다. 전 방주 발카 아무르 헬데아가 장로들에게 배신당한 것도 저 가드헬 때문이었고, 가장 친한 친구였던 아르카에게 배신을 당한 것도 가드헬과 관계가 있다.
“마, 마신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르카의 말투가 공대로 바뀌었다.
“마신!”
금장생은 허공에 대고 나직하게 소리쳤다.
우웅! 웅!
공간이 왜곡되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오 장 키를 지닌 거대한 동체가 나타났다. 마신의 등에는 거대한 검이 걸려 있었다. ‘왕 중의 왕’ 칼베이더가 ‘어둠의 땅’ 어딘가에 숨겼다는 마신검이었다.
금장생은 마신검을 뽑아 일행 앞으로 던졌다.
카앙!
마신검은 바위를 뚫고 들어갔다.
일행은 마신검 표면을 보았다. 그곳에는 여덟 왕의 이름과 마신검주의 명령에 절대복종한다는 맹세가 새겨져 있었다. 아락 일행은 글을 확인했다.
가장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사람은 아르카였다. 두 다리를 부들부들 떨면서도 그는 중심을 잡고 버티고 섰다.
“이실리스 가문의 가주 아르카 타야 이실리스 ‘왕 중의 왕’께 인사드립니다.”
털썩!
그러고는 무너지듯 무릎을 꿇었다. 원래는 천천히 무릎을 꿇어야 하지만 그에게는 힘이 없었다.
“누아스 가문의 가주 아락 프란디아 누아스 ‘왕 중의 왕’께 인사드립니다.”
아르카에 이어 아락이 일어나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라데라스 가문의 가주 하발 모악 라데라스 ‘왕 중의 왕’께 인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하발이 무릎을 꿇었다.
하발에 이어 드워프 왕 타고와 엘프 왕 엘그로이, 인간의 왕 가다야가 무릎을 꿇었다.
“나를 인정하십니까?”
금장생은 여섯 사람을 보며 물었다.
“인정합니다.”
여섯 명은 동시에 소리쳤다.
“목숨을 내게 맡겨야 하는데 그래도 따를 건가요?”
“‘왕 중의 왕’께서 원하시면 기꺼이 죽겠습니다.”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여섯 명은 다시 소리쳤다.
“신성한 맹세를 깨트리는 자, 죽음으로 다스릴 겁니다. 그래도 좋습니까?”
“‘왕 중의 왕’ 뜻대로 하소서.”
여섯 사람은 머리를 바닥에 찧으며 소리쳤다.
“고맙습니다.”
금장생은 품속에서 가방을 꺼내 입구를 열었다. 잠시 후 가방 안에서 양가죽 물통이 쏟아져 나왔다.
“무, 물이다.”
“물이다!”
암흑오부족 전사들은 기쁨에 찬 함성을 내질렀다.
“드십시오.”
천사군단 군단장 쿤카르가 물통을 아락에게 내밀었다.
“부하들에게 먼저 주게.”
아락은 부하들을 가리켰다.
“부하들도 마시고 있습니다.”
“나는 맨 마지막에 마시겠네.”
아락은 입맛을 다시면서도 물통을 받지 않았다. 하발을 비롯한 다른 왕들도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부하들에게 물을 양보했다.
“……알겠습니다.”
쿤카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물통을 부하들에게 건넸다.
“나만 웃긴 놈이 됐네.”
아르카는 물통을 들고 어색하게 웃었다.
“아르카는 부하들이 없으니까 괜찮지 않나요?”
금장생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이들이 제 부합니다.”
아르카는 타고 일행을 가리켰다.
“그들도 곧 마시게 될 거니까 너무 미안해하지 마세요.”
“아무튼 내가 저들로부터 배신을 당한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아르카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물통을 입으로 가져갔다. 아락 일행은 부하들이 모두 물을 마시고 난 후에 갈증을 풀었다.
그들이 물을 다 마셔 갈 무렵 배가 들어왔다. 혈가 배가 암흑오부족에게 이번에 제공한 것은 음식이었다.
“생선을 넣고 끓인 죽입니다.”
금장생은 아락에게 그릇을 내밀며 말했다.
“죽이라고요?”
아락은 금장생을 보았다.
“오랫동안 굶은 사람들이 갑자기 딱딱한 음식을 먹으면 탈이 나기 십상입니다. 죽 같은 부드러운 음식으로 속을 달랜 후 딱딱한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그리고 생선은 보양식으로 아주 좋습니다. 소화도 잘되고요.”
“천오백 명을 먹이려면 생선이 엄청나게 많아야 하는데…….”
“지난 며칠 동안 난 낚시 전문가가 됐습니다.”
“낚시를 하신 겁니까?”
하발이 물었다.
“아무것도 없는 바다에서 낚시 말고 할 일이 있으면 좀 가르쳐 주세요.”
“쿡!”
하발은 피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