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516)
자신의 전함은 방금 공격을 받았다. 인명 피해는 없다고 하지만 화탄이 떨어져 갑판의 상당 부분이 부서졌다. 그런데 추격을 명한 것이다.
문득 조금 전 조소를 머금던 율강리의 얼굴이 떠올랐다. 녀석은 눈빛으로 ‘너희 시대는 지났어. 너희는 구시대의 낡은 유물일 뿐이야.’라고 비아냥댔다.
“놈!”
명령을 내린 자가 율강리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지휘선에 있으니까 얼마든지 신호병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다. 그래 놓고 초무극에게는 암흑종족이 알아서 움직였다고 보고할 것이다.
“신왕.”
쿤카르가 아락을 불렀다.
“쫓아라!”
아락은 추격 지시를 내렸다. 지휘선에서 내려온 명령을 듣지 않을 수는 없다. 시시비비는 나중에 가린다고 해도 지금은 따라야 한다.
“저 배를 쫓아가라!”
쿤카르는 선장실에 있는 명나라 수군을 향해 소리쳤다.
둥! 둥둥둥!
곧 북소리가 울려 퍼지고 노가 물살을 가르기 시작했다.
“쫓아라!”
적의 배를 쫓아가는 전함은 아락이 탄 전함뿐만이 아니었다. 하발이 탄 전함과 아르카가 탄 전함도 어둠을 가르며 나아갔다. 수장들의 배가 적을 쫓아가자 부하들이 탄 배도 따라나섰다.
“무슨 일이냐?”
초무극은 안으로 들어온 정발야를 보며 물었다.
“적이 화탄으로 공격을 해 왔습니다.”
“적에게 화탄이 있단 말이냐?”
“철포는 아니고 무인들이 사용하는 벽력탄 종류를 화살에 매달아 보내는 정돕니다.”
“어떤 배들이 공격받은 거냐?”
“암흑오부족이 타고 있는 선박이 공격받았습니다. 그들이 적을 쫓아갔습니다.”
정발야는 지휘선에서 출병 명령을 내렸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몇 척이 나갔지?”
“열 척 모두 나갔습니다.”
“다 나갔다고?”
“적선이 다섯 척이었습니다.”
“선원은 믿을 만해?”
“최고라고 자신합니다.”
“전투준비 하고 그들을 따라 이동해라.”
열 척의 배가 적함을 쫓아갔는데 이곳에 정박해 있을 수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정발야는 곧바로 지시를 내렸다. 정박 준비를 하던 전함들은 곧바로 출발했다.
“너무 어둡습니다, 장군님.”
선수에서 바다를 살피던 병사가 소리쳤다.
“불을 밝혀라!”
아군의 위치가 적에게 노출되는 상황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각 전함은 횃불을 밝혀 암초를 확인하며 나아갔다. 그러다 보니 속도가 늦을 수밖에 없었다.
스윽! 스윽! 스윽!
검은 덩어리 수백 개가 수면 위로 나타났다. 그것들은 다름 아닌 사람 머리였다. 그들의 선두에 있는 사람은 금장생과 오다아이였다. 두 사람 뒤에 있는 이들은 혈가 무인들이었다. 태생이 동영인 혈가 무인들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수공의 달인이었다.
“시작하죠.”
금장생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수고하세요.”
오다아이 역시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이 잠수하자 나머지 대원들도 모두 잠수를 했다.
금장생과 함께 가는 자는 혈왕 직할대 신풍사 사주 사이토와 직할대 대원 세 명이었다.
일곱 명은 돌고래처럼 빠르게 헤엄쳤다. 잠시 후 목표물에 도착했다. 배 바닥에 손바닥을 댄 채 좌우로 이동하여 고개를 내밀고 참았던 숨을 쉬었다. 그런 다음 다시 바닥을 타고 이동했다.
금장생은 준비한 단도를 꺼냈다. 그리고 바닥의 이음새 부분으로 찔러 넣었다. 단도는 가볍게 안으로 파고들어 갔다. 그 상태에서 줄을 긋듯 아래로 그었다. 두 자 정도를 그은 후 방향을 틀었다. 잠시 후 길이 두 자, 폭 한 자에 달하는 커다란 구멍이 생겨났다. 금장생은 다른 곳에서 구멍을 뚫고 있는 이들을 보았다. 그들은 아직 구멍을 뚫는 중이었다.
잠시 후 작업을 끝내고 중간 지점으로 모였다.
―갑시다.
금장생은 일행에게 혜광심어를 보내고 헤엄을 쳤다. 배를 벗어나서도 수면으로 나가지 않았다. 한참을 헤엄쳐 선단 진영을 완전하게 벗어난 후에야 머리를 내밀고 숨을 쉬었다.
금장생은 대원들을 만나기로 한 섬으로 헤엄을 쳤다. 적 선단으로부터 섬까지의 거리는 이백 장이었다.
섬으로 올라가진 않았다. 해안 근처에서 머리만 내놓고 일행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반 각 후 오다아이를 필두로 대원들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번 작전에 투입된 인원은 백 명이었다.
다행히 낙오자는 한 명도 없었다.
“추워요?”
오다아이를 보며 물었다.
“괜찮아요.”
오다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가요.”
금장생은 다시 헤엄을 쳤다. 해안가를 벗어난 일행은 서쪽 가장자리에 있는 섬으로 향했다. 대왕도란 이름의 그 섬은 일백 개의 섬 중 가장 컸다.
일행이 배를 숨긴 곳은 대왕도 중앙에 있는 호수였다. 엄밀하게 따지면 호수가 아니라 바다인데 외부와 이어져 있는 부분이 워낙 좁고 길어, 호수처럼 보인다. 동영인들은 이곳을 왕관호라고 이름을 지었다. 무인도에 있는 특이한 형태의 바다에 왕관호란 이름을 부여한 건 이곳을 명 수군을 피하는 은신처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암흑오부족 전함에 구멍을 내러 갔던 도쿠가와 신켄 일행도 곧 도착했다.
“이상 없이 끝냈습니다.”
도쿠가와 신켄은 상황을 보고했다.
“수고했어요. 좀 쉬었다가 다시 이동하기로 하죠.”
“네.”
일행은 그곳에서 한 식경을 쉬었다.
몸에 열기가 오르자 다시 흩어졌다.
이번에 그들이 갈 곳은 각 섬이었다. 적보다 먼저 도착한 금장생은 무인도 각 섬에 마가 무인을 내려 주었다. 굳이 물을 묻힐 필요가 없는 사람까지 헤엄을 칠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섬에서 따로 할 일이 있었다. 금장생도 혈가 무인들과 함께 자기가 맡은 무인도로 갔다.
“어서 오세요.”
불여하가 금장생을 맞았다.
“춥지 않아요.”
“이 정도는 끄떡없어요.”
불여하는 빙그레 웃었다.
“바람이 안 드는 쪽으로 가 있어요.”
“당신은…….”
“나는 물을 지켜야죠.”
“몸 좀 녹이고 들어가도 되잖아요.”
“그들도 지금쯤 상황을 알아차렸을 거예요.”
“그럴까요?”
“네.”
금장생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였다.
“물이다! 물이 새 들어온다!”
공포에 전 외침이 하층 갑판에서 터져 나왔다. 곧이어 노잡이들이 우르를 올라왔다.
“물?”
정발야는 급하게 아래 뛰어 내려갔다.
“헉!”
그는 그 자리에 우뚝 멈췄다. 노잡이들이 노를 젓는 하층 갑판은 물바다였다. 이미 무릎까지 차올라 어떻게 해 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후미로 내달렸다. 바닥 상황을 보기 위해서였다. 품속에서 야명주 하나를 꺼내 최하층으로 나 있는 계단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물이 차서 자맥질을 해야만 했다. 숨을 참고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구멍이 난 부분을 찾았다. 예리한 칼로 잘라 낸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물은 엄청난 속도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막는 것도 쉽지 않을뿐더러 설사 막는다고 해도 배를 구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는 바로 밖으로 나왔다.
배는 벌써 삼분의 이 정도 가라앉은 상태였다. 수군은 공포에 전 채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선실에 있던 초무극도 갑판으로 나와 있었다. 정발야는 초무극 앞으로 갔다.
“무슨 일이냐?”
“놈들이 바닥에 구멍을 뚫었습니다.”
“고칠 수 없느냐?”
“고치기 전에 침몰하고 맙니다.”
“으음!”
초무극은 신음을 내뱉었다.
내색은 하지 않지만 그는 내심 당황하고 있었다. 배에 타고 있는 이들은 모두 날개를 가진 신족이다. 즉 배가 침몰해도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 배를 침몰시켜 봐야 의미가 없다. 그래서 배를 공격하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적은 자신이 가장 신경 쓰지 않았던 부분을 파고들어 공격을 해 온 것이다.
“우린 돌아가는 건 불가능합니다.”
육겁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왜 돌아가지 못한다는 거냐?”
“여기서 육지까지는 이틀 거립니다. 우리가 날 수 있는 시간은 두 시진밖에 안 되고요.”
“날아서 육지로 갈 수 없다는 건 나도 안다.”
“하면?”
“이곳에 적의 배가 스무 척이나 있다는 걸 잊었느냐?”
“그럼?”
“살고 싶으면 놈들을 없애라.”
“알겠습니다. 대원들은 저기 보이는 섬으로 이동하라!”
육겁은 섬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병사들은 섬으로 이동하라.”
육겁에 이어 정발야가 소리쳤다. 명나라 수군은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들은 열심히 헤엄을 쳤다.
“억!”
“윽!”
“큭!”
나직한 비명이 명나라 수군들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적이다!”
“물속에 적이…… 컥!”
“능천일대 대원들은 바닷속을 조심하라!”
육겁은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그사이에도 수군들은 계속해서 죽임을 당했다. 수십 년을 물에서 생활해 온 수군이지만 혈가 무인의 상태가 될 수 없었다.
그들 속에는 초인사 무인도 섞여 있었지만 그들의 운명도 수군과 다르지 않았다. 수공을 익히지 않은 그들이 상대하기엔 동영인들이 너무 강했다.
“아, 아악!”
“으악!”
처절한 비명과 함께 정발야와 궁사가 물속으로 끌려들어 갔다.
하늘로 날아올랐던 신족들은 속속들이 무인도로 내렸다. 그들은 무기를 뽑아 든 채 적의 공격에 대비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적은 나타나지 않았다.
“아무도 없다. 쉬어도 좋다.”
주위를 둘러보고 온 육겁이 말했다. 그제야 능천일대 대원들은 그 자리에 앉았다.
“다른 대원들의 상황을 알아봐라.”
초무극은 육겁과 율강리를 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육겁과 율강리 그리고 신족 십여 명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이십여 장 높이까지 올라가자 아래쪽이 환하게 보였다.
“저기…….”
율강리는 아래를 가리켰다.
수군 전함 한 척이 침몰하고 있었다.
전함 위쪽에는 신족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너무 멀어 수면 상황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직접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적은 명나라 수군을 공격해 없애고 있을 것이다.
“왜 수군만…….”
육겁은 고개를 갸웃했다. 사실 수군은 노를 젓는 용도 말고는 써먹을 곳이 없다. 그런데 적은 그 수군만 없애고 있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자넨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육겁은 율강리를 돌아보며 물었다.
“뭘 말인가?”
“우리는 가만히 두고 수군만 공격하는 이유를 묻는 거네.”
“그건 당연하네.”
“당연해?”
“물속에 있는 놈들이 날아다니는 새를 무슨 수로 잡겠는가?”
율강리는 별것 아니라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풋!”
육겁은 피식 웃었다.
단순하면서도 맞는 말이었다.
적은 바닷물 속에 숨어 있다. 날아다니는 이들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물에서 나와야 하고 그럼 곧바로 표적이 된다.
신족을 공격하고 싶어도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더 볼 것도 없겠구먼. 몇 곳만 더 둘러보고 돌아가세.”
두 사람은 몸을 돌렸다.
함께 왔던 수군들이 몰살을 당했지만 화가 난다거나, 원수를 갚겠다거나 하는 생각은 없었다.
서너 곳을 돌면서 전함 상황을 확인하고 초무극이 기다리는 섬으로 돌아갔다. 섬에는 각 전함에서 탈출한 자들의 수장들이 지시를 받기 위해 와 있었다.
“어떻게 됐느냐?”
초무극은 두 사람을 보며 물었다.
“전함은 모두 침몰하고 함께 왔던 수군은 배를 탈출하는 와중에 모두 죽었습니다.”
“수군만 노렸단 말이구나.”
초무극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초인사 일행을 찾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빌어먹을!’
내심 욕설을 내뱉었다.
“우린 하늘 높이 날아올라 있었으니까 공격하고 싶어도 방법이 없었을 겁니다.”
시선이 마주치자 율강리가 말했다.
“저흰 놈들을 없애려고 수면 가까이 날아갔다가 공격을 받았습니다.”
역천일대 제십조장 아굴이 말했다.
“공격을 받았다고?”
초무극은 아굴을 보았다.
“네.”
아굴은 고개를 끄덕였다.
“또 공격받은 사람 있느냐?”
“저희들도 공격을 받았습니다.”
“저희들도…….”
다섯 명이 손을 들었다.
“그렇군.”
그제야 초무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도 율강리처럼 적이 명나라 수군을 없앤 이유가, 그들 말고는 공격할 대상이 없어서 그랬다고 단정 지었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서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그 이유를 알게 된 건 다음 날 점심 무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