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513)
가드헬에 당한 여자들이 가루로 흩어졌다. 여자들의 몸에 구멍을 낸 가드헬은 마지막으로 염자화의 가슴을 뚫었다.
“이럴 수가.”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는데 피도 흐르지 않았다.
“어떻게…….”
그녀는 믿을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은 분명 요화색무에 완전히 빠졌다. 빠지지 않았다면 수십 명이 지켜보는 데서 관계를 가질 수가 없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 공격을 한 것이다.
그것도 스무 명을 모두 없애 버리는 가공할 공격을.
푸스스!
염자화의 몸도 곧 가루로 흩어졌다.
스윽!
가드헬이 돌아와 금장생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휴우!”
그제야 금장생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고마워요.”
오다아이는 얼른 몸을 일으키고 겉에 입고 있던 옷을 벗어 버렸다. 용린갑만 입는 게 더 편하기 때문이었다. 그때 금장생은 하늘을 보았다.
그가 밤에 시간을 확인하는 매개체는 별자리다.
시간이 막 인시 말로 접어들고 있었다. 마가 무인들이 공격을 시작할 시간이었다.
“좀 더 거칠게 공격해야겠어요.”
“알았어요.”
오다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곧바로 몸을 날렸다. 잠시 후 다른 대원들을 공격하고 있는 천야교 여자들을 발견했다. 금장생은 지풍을 쏘았다. 그가 쏜 지풍은 허공을 가르고 여자의 몸에 박혔다.
“아악!”
처절한 비명이 비어져 나왔다.
“외부에서 공격하면 먹히네요.”
“그렇네요.”
두 사람은 적을 향해 쏘아져 가며 살수를 펼쳤다.
“아악!”
“크아악!”
“으아악!”
잠시 후 사갈전 곳곳에서는 비명이 비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금장생의 무기는 가드헬이고 오다아이의 무기는 용린갑 사이에 있는 암기들이었다.
암기가 허공을 가를 때마다 요화들이 죽어 나갔다.
* * *
“가요.”
마가 무인들이 몸을 날렸다.
나찰단을 향해 달려가는 이들은 철전, 옹전, 의전, 공전 네 곳 무인들이었다. 그들의 선두에 있는 이는 불여하와 각 촌의 촌장들이었다.
나찰단과 마녀단 무인들은 요화전 근처 언덕에 은신한 채 사갈단에서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이 이곳에 은신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적의 규모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해서였다.
침입해 온 적의 규모가 확인되면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하기로 했다. 사갈단과 요화단이 밀리면 지원을 하고, 대등하게 싸우고 있으면 우회하여 적의 뒤를 치는 게 이번 작전이었다.
“연락이 없다는 건…….”
나찰단의 단주 우미미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밀리거나 대등하게 싸우는 경우라면 진작 연락이 왔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연락이 없다면 이기고 있다고 봐야 한다.
“공연히 걱정…….”
“아악!”
“크악!”
“으악!”
느닷없이 오른편에서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다.
“헉!”
우미미는 벌떡 일어났다. 그녀에 이어 마녀단의 단주 철모모도 일어났다.
“적이다!”
“적이…… 아악!”
처절한 비명이 계속해서 들려왔다.
“전 대원들은 남쪽으로 이동하라!”
정신을 차린 우미미는 고함을 내질렀다. 그러자 숲에 숨어 있던 수백 명이 남쪽으로 이동했다.
쿠웅! 쿠웅! 쿠웅! 쿠웅!
“저, 저저…… 아악!”
“괴물…… 아악!”
“괴물이 나타났다.”
공포에 전 외침이 후미에서 터져 나왔다.
“괴물?”
우미미의 얼굴이 의아해졌다. 그녀는 괴물이란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는 급하게 후미로 이동했다.
“맙소사! 저건?”
우미미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뭐, 뭐지?”
철모모도 다르지 않았다. 그녀도 경악한 얼굴로 말을 더듬었다. 무려 오 장에 달하는 키를 가진 거대한 덩치. 사람보다 더 큰 검을 휘둘러 아군을 없애고 있었다.
“아악!”
“으아악!”
“크아악!”
처절한 비명이 쉬지 않고 들려왔다.
아군을 공격하는 자는 거대한 괴물뿐만이 아니었다. 수백 명이 괴물과 함께 이동하면서 아군을 공격했다.
“감당할 수 없습니다!”
“이러다가 전멸당합니다.”
전방에서 싸우는 조장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미미는 철모모를 보았다.
“대원들이 전의를 상실했어. 지금 상태로는 싸울 수 없어.”
철모모는 고개를 저었다. 거대한 괴물만 아니라면 어떻게 해 볼 텐데, 현재로선 싸우는 게 불가능하다. 후퇴가 최선이었다.
“알았어.”
우미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원들은 사갈전으로 후퇴하라!”
우미미는 후퇴 명령을 내렸다.
“사갈전으로 이동하라!”
“사갈전으로…….”
각 조장들은 우미미의 명령을 복창하며 철수를 지시했다. 나찰단과 마녀단 대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갈전으로 가는 길도 막혔습니다!”
“사갈전으로 갈 수 없습니다!”
“놈들이 그쪽도 차단한 모양이네.”
철모모가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어떻게 하지?”
우미미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나요.
그때 우미미의 귓전으로 천수해가 가주 해장운의 전음이 들려왔다.
우미미는 시선을 들었다.
―용왕대와 혼귀객이 먼저 가서 흑화전 뒤 영지에 매복해 있겠소.
―알았어요.
흑화전 뒤 영지까지는 한 식경 이상을 달려가야 하는 먼 거리인데도 너무 경황이 없어 수락하고 말았다.
―그럼 먼저 가겠습니다.
―네.
해장운의 기척이 멀어지자 우미미는 곧바로 철모모에게 상황을 전했다.
―너무 멀지 않아?
―거기서 놈들을 없애고 멀리 우회해서 사갈전을 공격하는 자들의 후미를 치면 되지 않을까?
느닷없이 떠오른 생각이었다.
―그럼 되겠네.
철모모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미미와 철모모는 흑화전 뒤편 영지까지 철수하라는 명령을 하달했다. 명령은 받은 나찰단과 마녀단 대원들은 곧바로 방향을 틀었다. 그들은 빠르지도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게 퇴각했다.
적이 후퇴를 시작하자 불여하는 철갑거인을 돌려보냈다. 그녀가 철갑거인을 소환한 건 적이 후퇴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목적을 달성했는데 굳이 탑승할 필요가 없었다.
그녀가 내려오자 육전수를 비롯한 촌장들이 다가갔다.
“지금처럼 천천히 이동하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육전수는 고개를 숙였다.
마가 무인들은 퇴각하는 적을 쫓아 움직였다.
마녀단과 나찰단 무인들이 흑화전 뒤쪽 영지에 도착한 건 한 식경이 조금 더 지난 후였다.
가장 먼저 일행 눈에 들어온 건 철마탑림을 구성하고 있는 탑이었다. 탑림 안으로 들어가자 우미미는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탑림 곳곳에서 인기척이 감지됐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먼저 가서 매복해 있겠다고 하였던 용왕대와 귀마대라고 생각한 것이다.
―보고해라.
우미미는 부단주에게 전음을 보냈다.
―반 각 후면 모두 들어옵니다.
부단주의 전음이 들려왔다.
우미미는 조용히 숨을 골랐다. 잠시 후 철마탑림으로 일단의 무리가 들이닥쳤다. 나찰단과 마녀단을 쫓던 마가 무인들이었다.
우미미와 철모모는 숨을 죽였다.
해장운과 지결이 먼저 공격 명령을 내리면 자신들도 나설 참이었다.
“공격하라!”
“쳐라!”
“공격하라!”
좌측과 우측에서 우렁찬 외침이 터져 나왔다.
우미미는 무기를 힘껏 그러쥐었다.
“타하!”
“차하!”
“이얍!”
“아악!”
“으아악!”
“크아아악!”
“헉!”
“허억!”
우미미와 철모모는 비명처럼 신음을 내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비명을 내지른 자는 쫓아온 자들이 아니라 나찰단과 마녀단 대원들이었다.
“어, 어떻게…….”
“이건…….”
두 사람은 멍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찰단과 마녀단 대원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해장우운!”
우미미는 고함을 내질렀다.
“미안하게 됐소, 단주. 우린 방가려 교주를 버릴 수가 없었소.”
“바, 방가려 교주라고?”
“지금 당신들이 치고 있는 자들의 수장이 방 교주의 친구라고 하오.”
“일조 전멸했습니다.”
“이조 전멸입니다.”
“삼조도…….”
“사조도…….”
“…….”
우미미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함정을 판 게 아니라 오히려 함정에 당하고 말았다. 빠져나갈 구멍이 전혀 없었다. 더구나 침략한 자들 뒤에는 방가려 교주가 있다면…….
우미미는 철모모를 보았다. 철모모 역시 멍한 표정을 짓고 있다.
“다른 건 다 용서해도 반역만큼은 용서해 줄 수 없다고 했는데.”
철모모는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퍼억!
둔탁한 소리가 들려오자 고개를 돌렸다. 머리가 부서진 우미미가 천천히 쓰러지고 있었다.
“하아!”
철모모는 자신의 도刀를 보았다.
“우리 가족에게 자비를…….”
철모모는 도의 날을 목에 대고 오른편으로 사정없이 그었다. 목이 절반가량 잘려 나가자 풀썩 쓰러졌다. 잘려 나간 목에서 흘러나온 피가 땅속으로 스며들었다.
“아악!”
“으아악!”
“아아아악!”
나찰단과 마녀단이 내지른 비명이 철마탑림을 가득 채웠다. 싸움이 끝난 건 반 시진 후였다.
“희생자를 수습하세요.”
불여하는 주변으로 모여든 촌장들을 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촌장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잠시 후 희생자들을 모아 극락왕생을 빌고 삼매진화를 펼쳐 가루로 만들었다.
“본대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세요.”
불여하는 곧바로 이동 명령을 내렸다.
마가 무인들은 남쪽으로 내달렸다. 잠시 후 그들은 사갈전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그곳에서는 아직 전투가 진행 중이었다. 하지만 진식은 대부분 파훼돼 더 이상 기능을 못 하고 있었다.
“공격하세요.”
불여하는 공격 명령을 내렸다.
“우우우우!”
“와아아아!”
마가 무인들은 함성을 내지르며 사갈단 진영으로 달려갔다.
“아!”
천사홍의 얼굴이 절망으로 일그러졌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완벽한 패배였다. 유일한 희망이 마녀단과 나찰단이었는데 그들마저도 전멸을 당한 게 분명했다.
“난 죽고 싶지 않아.”
천사홍은 허공으로 솟구쳤다. 곧 그녀의 등에서 여덟 장의 날개가 솟아 나왔다.
“쿡!”
천사홍을 바라보고 있던 금장생은 피식 웃었다.
어쩌면 천사홍이 신족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예상대로였다.
“상급이네.”
금장생은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손바닥을 하늘을 향하게 폈다. 천사홍은 이미 백여 장 높이까지 솟구쳐 열심히 도망치고 있었다.
금장생은 오른팔을 힘껏 휘둘렀다. 그러자 투명한 막대가 천사홍을 향해 쏘아져 갔다.
“살았다.”
천사홍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상대가 아무리 하늘을 나는 재주가 있다고 해도 이 정도 거리는 쫓아오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럴까요?
귓전으로 사내 전음이 들렸다.
천사홍은 고개를 돌렸다.
“헉!”
그녀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아, 안…….”
퍼억!
가드헬이 그녀의 심장을 뚫었다.
“아악!”
처절한 비명과 함께 천사홍의 몸이 가루로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