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511화 (511/524)

황금가 (511)

반역의 끝

차를 한 잔 마시자 마음이 조금 진정됐다.

일행은 각자 가지고 내려온 물건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무슨 뜻이라고 생각하시오?”

천장문의 문주 사객 곽처기가 물었다.

“혹시…….”

해장운이 일행을 보았다.

“교주가 돌아왔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요?”

망량귀가 가주 귀야가 물었다.

“아니오. 전 교주는 아직 돌아올 시간이 되지 않았소. 그리고 나는 이곳으로 오기 전에 우리 가족을 안가로 옮겨 놓고 왔소.”

명왕장가 장전남이 말했다.

“나도 옮겼소.”

“나도.”

해장운과 장전남이 말했다.

“그럼 그자들은 우리 가족의 위치를 알고 있다는 뜻이 되겠구려.”

곽처기가 말했다.

“알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인질로 잡고 있을지도 모르오.”

해장운이 곽처기의 말을 받았다.

“맙소사.”

“그, 그럴 리가 없소.”

“해 가주의 말이 맞습니다.”

천장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헉!”

일행은 질겁한 얼굴로 천장을 보았다.

스윽!

허공이 열리고 금장생이 모습을 드러냈다.

창! 창창!

각 문주들은 일제히 무기를 뽑았다.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습니다.”

금장생은 다섯 사람을 보며 말했다.

“저걸 보낸 자가 너냐?”

귀문의 문주 지결이 소리쳤다.

“소리가 너무 큽니다, 지 문주. 이런 일은 가급적 조용히 이성적으로 처리하는 게 서로를 위해 좋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이익!”

지결은 부들부들 떨었다.

“원하는 게 뭐요?”

천수해가 가주 해장운이 물었다.

“앉아서 이야기하는 게 어떻습니까?”

“으음!”

해장운은 신음을 내뱉었다. 최강의 패를 잡은 상태가 아니라면 저런 여유를 부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최강의 패는 바로 자신들의 가족이다. 즉 가족은 인질로 잡혀 있는 상태가 분명했다.

“앉으시오.”

해장운은 자리를 가리켰다.

“고맙습니다. 이왕이면 차도 한 잔 부탁합니다. 숨어 다니는 게 보통 일이 아니라서요.”

금장생은 싱긋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망량귀가 귀야가 재빨리 안으로 들어가 차를 가지고 나왔다.

“좋은 차군요.”

“우리 가족은 어떻게 됐소?”

해장운이 물었다.

“안전한 곳에서 평안하게 잘 있습니다. 여러분이 협조만 잘해 준다면 아무런 문제 없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겁니다.”

“요구 사항이 뭐요?”

명왕장가의 가주 장전남이 물었다.

“간단합니다. 내 요구는 천사홍 편을 들지 말라는 겁니다. 아니 정확하게는 천야교의 뒤를 쳐 주면 됩니다.”

“뒤를 쳐 준다는 건…… 여길 공격하겠다는 겁니까?”

망량귀가 가주 귀야가 굳은 얼굴로 물었다.

“그렇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천야교가 춘추오패의 한 곳이라는 사실을 모르시오?”

“운성도 춘추오패의 한 곳이었던 걸로 압니다.”

“그럼 당신은…….”

다섯 문주의 눈이 커졌다.

“여러분이 우리를 도와주지 않는다고 해도 천야교는 멸망합니다. 나는 다만 좀 더 적은 희생으로 끝내고 싶을 뿐입니다.”

“만일 우리가 돕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당신들이 내 요청을 거절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나는 당신 가족들을 처리하란 지시를 내릴 겁니다.”

해장운 일행은 부르르 떨었다.

“어떻게 하겠습니까?”

금장생은 다섯 문주를 보면서 물었다.

“시키는 대로 하겠소.”

해장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문주들도 마찬가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들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천야교 그늘 아래로 들어온 건 문파와 가족의 안녕을 위해서다. 천야교를 위해 가족을 버릴 수는 없었다.

“현명한 선택입니다. 참고로 한 가지 더 말하자면, 방가려 교주와 나는 어린 시절 친구였습니다.”

“정말입니까?”

해장운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네. 그럼.”

금장생의 신형이 슬쩍 떠올랐다. 그리고 순식간에 허공으로 녹아들어 갔다.

“공격은 언제 할 겁니까?”

해장운이 다급하게 물었다.

“천야교를 주시하고 있으면 저절로 알게 될 겁니다.”

해장운 바로 옆 허공에서 금장생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헉!’

해장운은 질겁했다. 목소리로 보건대 반 장도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전혀 기척을 감지하지 못한 것이다. 금장생은 감히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엄청난 강자였다.

잠시 후 금장생이 기척은 흔적 없이 사라졌다.

“어떤 자인지 물어보지도 않았군.”

해장운은 어이없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름을 안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잖소.”

지결이 말했다.

“그렇지요.”

해장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공격을 언제 할 거라고 보시오?”

천장문 문주 곽처기가 물었다.

“낸들 알겠소.”

해장운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해장운 일행이 마가의 공격을 알아차린 건 축시 말 무렵이었다.

“불이야!”

“불이야!”

“불이 났다!”

밤의 정적을 깨고 요란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다섯 사람은 급하게 위로 올라갔다. 잠시 후 지붕 위로 올라갔다.

“세상에.”

“저건…….”

일행의 입이 떡 벌어졌다. 천야교 전역이 온통 불바다였다. 교주 처소인 천전은 물론이고 사갈전, 마녀전, 요화전, 나찰전과 부속 건물 모두에서 불길이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 불길도 강했다. 기름을 끼얹고 불을 지른 것처럼 보였다.

“진화도 불가능하겠군.”

해장운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보통 지금 시간이면 바람이 잔데 오늘 밤은 아주 강하게 불고 있다.

이 바람통에 불길을 잡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불을 지른 사람에게는 최고의 환경이고 꺼야 할 사람들에게는 최악의 상황이다.

“이제…….”

해장운의 시선이 가장 가까이 있는 건물로 향했다. 천야교에서 가장 큰 건물인 천전은 불길이 얼마나 거센지 안쪽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우리도 불을 질러야 하는 거 아니오?”

곽처기가 일행에게 말했다.

“불?”

“불이라고요?”

일행은 곽처기를 보았다.

“다른 곳은 모두 불이 났는데 우리만 멀쩡하면 이상하게 볼 거 아니오.”

“그렇군요. 내려갑시다.”

일행은 서둘러 내려갔다. 그리고 부하들을 시켜 자신들이 있는 건물은 물론이고 주변 건물에도 모두 불을 질렀다. 그리고 다시 지붕으로 올라갔다.

“크아악!”

“아악!”

비명을 들은 건 그때였다.

“시작한 모양이군요. 우리도 준비합시다.”

“함께 움직이는 게 낫겠죠?”

귀문 문주 지결이 말했다.

“그게 나을 것 같습니다. 한 식경 후 저기서 봅시다.”

해장운이 왼편 숲을 가리켰다.

“그럽시다.”

일행은 아래로 내려갔다.

가장 먼저 자리를 뜬 사람은 해장운이었다. 천수해가 문도들이 있는 건물이 숲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어 먼저 간 것이었다.

용왕대 대원들은 출동 대기 중이었다.

“가주님.”

해장운이 다가가자 건장한 사내가 앞으로 나왔다. 그는 용왕대 대주 해창海槍 착광이었다.

“준비는?”

해장운은 착광을 보며 물었다.

그는 이미 문도들에게 상황 설명을 한 상태였다. 다만 지금 공격해 오는 자들을 전 교주, 즉 방가려 일행이라고 말했다. 다행히 문도들은 동요하지 않았다.

“명령만 내리면 바로 출동할 수 있습니다.”

“저기 숲에서 모이기로 했네.”

해장운은 숲을 가리켰다.

“이동하라!”

착광은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잠시 후 그들은 숲에 도착했다. 숲에는 다른 세력들이 이미 도열해 있었다.

“어떤 상황인지 알아야 하지 않겠소?”

해장운이 가주들을 보며 물었다.

―용왕대는 마녀전 쪽으로 이동하시오.

바로 그때 해장운의 귓전으로 전음이 들려왔다.

해장운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이들도 움찔하더니 전음에 귀를 기울였다.

“전음을 받았소?”

해장운이 물었다.

“그렇소.”

망량귀가의 가주 귀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마녀전으로 가라는 말을 들었소.”

해장운이 말했다.

“나는 요화전이오.”

이어 귀야가 말했다.

“나는 사갈전이오.”

“나는 나찰전이오.”

“나는 천전이오.”

나머지 세 사람도 자신들이 가야 할 곳을 말했다.

“끝나고 봅시다.”

다섯 사람은 작별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떴다.

천장문 문주 곽처기가 장사대를 데리고 천전에 도착한 건 잠시 후였다.

천전 주위에는 아무도 없고 사갈전 쪽에서 치열하게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색향오행진色香五行陣을 펼쳐라!”

오른편에서 차가운 외침이 들려왔다.

“천 교주가 독이 잔뜩 올랐네.”

곽처기는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진식을 펼치라고 명령하는 천사홍의 목소리에 살기가 진하게 배어 있었다.

“가자.”

곽처기는 몸을 날렸다.

잠시 후 그는 사갈전 근처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사갈전만 있는 게 아니었다. 요화전 무인들도 모두 이곳으로 와 있었다. 적의 주력이 이편으로 쳐들어오고 있는 모양이었다.

곽처기는 천사홍과 두 단주가 있는 곳으로 갔다.

“접니다, 교주.”

곽처기는 세 사람을 보며 포권을 취했다.

“어서 와요. 다른 사람들은 어디 있죠?”

“해장운 가주는 마녀전으로 갔고…….”

곽처기는 다른 문파에 대해 상세하게 말했다. 그리고 물었다.

“우리는 무얼 해야 합니까?”

“일단 여기서 대기해요.”

“알겠습니다.”

곽처기는 포권을 취하고는 뒤로 물러났다.

삐리리리! 삐리리리!

앞에서 음악 소리가 흘러나왔다.

“들어가자.”

“네.”

천사홍과 요화단 단주 염자화, 사갈단 단주 백사화가 앞으로 달려갔다. 잠시 후 세 사람은 모습을 감췄다. 색향오행진 안으로 들어간 것이었다.

악기 소리가 커지면서 분홍빛 운무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혹시 이거 색진 아닌가요?”

금장생은 옆에 있는 오다아이를 보며 물었다.

“그런 것 같아요.”

오다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강하겠죠?”

“색진은 처음이에요?”

오다아이는 되물었다.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객 일을 하면서 몇 가지 진식은 겪어 보았지만 색진은 난생처음이었다.

“짜릿할 거예요.”

오다아이는 빙긋 웃었다.

“그들이 잘해 줘야 하는데.”

금장생은 허공으로 시선을 주었다.

그는 지금 아군을 나눈 상태다. 혈가 무인은 모두 이곳에 있고 마가는 두 개 조로 나눠 한 개 조는 흑화전 북쪽에 은신해 있고 나머지는 나찰전과 마녀전을 공격하기 위해 대기 중이다.

그가 본대가 공격할 곳으로 사갈전을 선택한 건 천야교의 다섯 전殿 중 가장 외진 곳에 있어, 마녀전이나 나찰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알아차리는 게 쉽지 않아서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금장생이 원하는 건 소식을 전할 전령이 오고 가는 시간이다. 그 시간이면 충분히 적을 괴멸시킬 수 있다.

“그들보다는 여길 더 신경 써야 할걸요?”

삐리리리!

갑자기 음악 소리가 빨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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