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508화 (508/524)

황금가 (508)

일만마충

“아악!”

“으아악!”

“크아악!”

비명은 계속해서 터져 나왔다.

“이제 십 장만 가면 통로다! 힘을 내라!”

철전혼은 천장을 발출하며 고함을 내질렀다. 그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가 무공을 펼치는 곳에서 통로까지는 십 장 거리였다. 신법을 펼치면 한 번에 날아갈 수 있는 짧은 거리였다. 하지만 그 짧은 거리가 수백 장보다 더 길었다. 그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워 울프 때문이었다.

심지어 어떤 워 울프는 동료 울프의 어깨 위로 올라간 채로 공격을 해 오기도 했다.

“차하!”

퍼억!

철전혼을 향해 달려오던 워 울프 한 마리가 가루로 변했다.

스악!

그 순간 검은색의 기다란 손톱이 철전혼의 허벅지를 훑었다.

“커억!”

철전혼은 비명을 내지르며 왼손을 휘둘렀다.

퍼억!

쿠엑!

워 울프 한 마리가 또 가루로 변했다. 위험 요소를 제거했지만 철전혼은 상처를 볼 겨를이 없었다. 숨 돌릴 틈도 주지 않고 워 울프들이 달려들었던 것이다.

“크윽!”

바로 옆에서 남궁무위의 비명이 들려왔다. 철전혼은 장력을 날리면서 남궁무위를 보았다.

남궁무위의 등에서 많은 양의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괴물의 손톱에 당한 모양이었다.

그는 자리를 옮겼다. 남궁무위와 등을 대면 뒤를 걱정할 필요가 없을 터였다.

“크악!”

“아악!”

“차하!”

대원들이 내지르는 비명을 들으며 천장을 쏟아 냈다. 손바닥 모양의 탄강 수십 개가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퍽! 퍽퍽퍽! 퍽퍽! 퍽퍽!

푸스스스! 푸스스스!

워 울프 수십 마리가 가루로 변해 흩어졌다. 남궁무위 또한 철전혼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이동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중이었다.

스악!

“헉!”

왼편에서 살기가 감지되자 재빨리 오른편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한발 늦고 말았다.

“크윽!”

비명을 내지른 남궁무위는 왼팔을 흘끔 보았다. 뼈가 보일 정도로 깊게 파여 있었다. 잘리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 부상이었다.

“차하!”

기합과 함께 창궁무애검법의 창궁탄을 펼쳤다. 그의 손을 떠난 검이 허공을 갈랐다.

퍽! 퍽퍽퍽! 퍽퍽!

십여 마리를 가루로 만든 검이 그의 수중으로 돌아왔다. 그는 흘끔 철전혼을 보았다. 조금 전에는 오 장이었는데 지금은 이 장이다. 괴물 수십 마리를 없앴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 옆으로 가지 못한 것이다.

“서, 성주님…….”

운림 림주 목신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크아아악!”

이어 목신야의 비명이 들려왔다.

“아!”

남궁무위는 팔에서 힘이 빠졌다. 목신야까지 죽었다면 운림 대원들은 전멸했다는 뜻이 된다. 아마도 남은 사람은 자신과 철전혼 둘뿐일 것이다.

“더 이상은…….”

턱!

막 포기하려는 순간 등에 뭔가가 와 닿았다.

상처를 눌러 정신이 번쩍 들게 한 그것은 철전혼의 등이었다.

“나는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았네.”

철전혼은 전면을 향해 천장을 난사하며 말했다.

“저도 그렇습니다.”

남궁무위는 또다시 창궁탄을 펼쳤다. 그의 검은 허공을 날아 십여 마리의 워 울프를 가루로 만들었다.

“가세.”

둘은 마지막 힘을 짜내 워 울프를 없애며 나아갔다. 두 사람이 십 장을 나아가는 데 걸린 시간은 한 식경이다. 어느새 통로 앞이었다.

“다 왔…….”

철전혼은 말끝을 흐렸다.

통로까지만 오면 살길이 있을 거라 믿었다. 그래서 미친 듯이 장력을 난사했고 더 이상 남은 내공도 없다. 통로로 들어가면 살길이 열릴 줄 알았는데 그곳에도 워 울프가 가득했다.

“나는 내가 한 시진 동안 이기어검술을 펼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남궁무위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자네도 내공이 없는가?”

“여기까지만 오면 될 줄 알았거든요.”

“풋!”

철전혼은 피식 웃었다.

“나는 괴물들에게 내 최후를 맡기고 싶지 않습니다, 성주.”

“나도 그렇네.”

두 사람은 마주 보며 섰다.

“그동안 즐거웠습니다.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성주님과 함께하겠습니다.”

남궁무위는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손바닥이 새파란 광채를 뿌렸다.

“나도 행복했네. 자넨 내가 만난 무인들 중 최고였네.”

철전혼도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그는 이미 천장의 기운을 끌어 올린 채였다.

“다음 생에서도 함께했으면 좋겠습니다.”

“나도 그렇네.”

두 사람은 상대방의 심장을 향해 손을 찔러 넣었다.

푸욱!

푸욱!

두 사람의 손은 서로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크앙!

크아아앙!

곧 두 사람의 신형이 워 울프의 발톱에 난자됐다. 치열했던 싸움이 끝나고 정적이 찾아왔다.

크아앙!

대장 워 울프가 괴성을 내질렀다.

그러자 워 울프들이 일제히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봉분 위에 선 그들의 동체가 서서히 봉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잠시 후 살기와 비명으로 가득했던 지하 공간에 완전한 침묵이 찾아왔다.

* * *

“엄마!”

아이가 엄마를 불렀다.

“왜?”

“저기 좀 봐.”

아이는 하늘을 가리켰다.

“하늘은 왜?”

“큰 새가 열 마리도 넘어.”

“그래?”

엄마는 빙그레 웃으며 하늘을 보았다. 아이가 아는 가장 큰 수가 ‘십’이었던 것이다.

“응?”

엄마의 눈이 커졌다. 아이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하늘 높이 새가 있었다. 그런데 아이의 말처럼 열 마리가 아니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다.

그리고 컸다.

“어떻게 저리 큰 새가……. 들어가자, 아가.”

문득 겁이 난 엄마는 아이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화장실을 가기 위해 밖으로 나왔던 엄마와 아이가 본 새는 신족의 역천일대와 역천이대 이천 명이었다. 그들 한가운데에는 제왕 초무극이 가마를 타고 있었다.

“암흑오부족은 어떻게 됐지?”

초무극은 역천일대 대주 혼세비마 육겁을 보며 물었다.

“우리 여기 있소?”

머리 위에서 아락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곧 초무극 앞으로 아락이 나타났다. 거의 황금색을 띠고 있는 역천대 무인들과 달리 아락의 날개는 먹물처럼 검었다.

“나머지는 어디 있지?”

“우리보다 세 시진 늦게 따라오고 있을 거요.”

“새벽까지는 도착해야 한다.”

“그렇게 될 거요.”

“알았다.”

초무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육겁을 보며 말했다.

“가자.”

“넵.”

육겁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멈춰 있던 신족들이 다시 날갯짓을 해 날아갔다.

‘춥네.’

초무극은 내기를 끌어 올렸다.

하늘을 날아가는 건 빠르기는 한데 몹시 추웠다. 옷깃 사이로 파고들어 오는 바람은 칼바람이란 의미를 깨닫게 해 줄 정도로 차가웠다.

가마를 타고 하늘을 나는 건 여름이라면 모를까 겨울에는 추천할 만한 게 아니었다.

“응?”

아래를 내려다보던 초무극의 눈이 커졌다.

* * *

검은 무복을 입고 초립을 쓴 자들이 전방을 빠르게 내달렸다. 수는 삼백 명 정도였다.

그들은 한 번에 십 장을 건너뛰었다.

무인들은 많은 이들이 한 번에 십 장을 건너뛴다. 하지만 쉬지 않고 십 장을 건너뛸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자들은 그리 많지 않다. 최소 일 갑자의 공력을 지녀야 가능하다.

일 갑자의 공력을 지닌 무인으로 삼백 명으로 이루어진 이들은 제왕 초무극이 만든 초인사 대원들이었다.

이들을 이끄는 수장은 키는 중간 정도로 그리 크지 않았지만 체격은 다부졌다.

그의 이름은 초혼객草魂客 궁사였다.

그는 초혼객이란 별호보다 ‘일초一秒 일검필사一劍必死’라는 말로 더 유명하다. 낭인이었던 그는 수많은 비무를 했고, 비무 때마다 일초 이상을 사용하지 않고 상대를 없앴다. 그렇게 십여 년의 세월이 흐르자 사람들은 그를 일초 일검필사라고 불렀다.

그가 초인사로 들어온 건 초무극에게 도전했다가 패했기 때문이었다.

―궁사!

바닥을 차는데 궁사의 귓전으로 초무극의 전음이 들려왔다. 궁사는 고개를 들었다.

오십여 장 상공에 초무극이 가마에 앉아 있었다.

―네.

―백여 장 앞에 폐허가 있다. 가서 어떤 곳인지 확인해라.

―알겠습니다.

궁사는 속도를 냈다.

잠시 후는 그는 검게 그을린 대문 앞에 도착했다.

“으음!”

그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자신의 기억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이곳은 남궁세가다.

궁사는 쓰러진 대문을 넘어 안으로 들어갔다. 안쪽도 다르지 않았다. 당당했던 남궁세가는 잿더미로 변해 있었다. 그는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보았다.

내부도 다르지 않았다. 모든 건물은 잿더미로 변했고 인기척은 감지되지 않았다.

가장 깊숙한 곳에서 커다란 봉분을 십여 개 발견했다. 궁사는 봉문 앞으로 갔다.

봉문 앞에는 비석이 세워져 있었다.

비석에 적힌 글을 읽어 가던 그는 한곳에서 멈췄다.

가주 남궁만해란 글이 씌어 있었다.

봉분을 만들어 준 자의 이름은 적혀 있지 않았다.

궁사는 하늘을 보았다.

―접니다.

―말해라.

―여긴 남궁세갑니다.

―…….

초무극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수백 년 전통의 남궁세가가 저렇게 변할 줄은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어떤 상황이냐?

잠시 아래를 바라보던 그가 물었다.

―잿더밉니다. 멀쩡한 건물은 한 채도 없습니다.

―사람은?

―무인들은 모두 죽은 것 같고 살아남은 자는 떠났는지 아무도 없습니다.

―흠!

초무극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궁사에게 전음을 보냈다.

―출발해라.

그리고 가마를 지고 있는 자들에게 더 높이 올라가라고 했다. 가마는 오십 장 정도를 더 올라갔다.

남궁세가의 멸망 현장을 봐서 그런지 기온이 더 떨어졌는데도 춥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신족은 계속 날아갔다.

그리고 새벽 무렵 해림이 위치한 곳에 도착했다.

오면서 보았던 남궁세가와 달리 해림의 각 건물은 멀쩡했다.

‘다행히 늦지 않은 모양이네.’

초무극은 빙긋 웃었다.

“내려간다.”

초무극은 나직하게 말했다. 그러자 신족들이 아래로 내려갔다. 잠시 후 그와 능천대 대원들은 해림 대연무장으로 날아내렸다.

척! 척척! 척!

그들이 내려서자마자 사방에서 날카로운 기운이 쏘아져 왔다. 그리고 해림 무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책임자가 누군가?”

초무극은 나직하게 물었다.

“나요.”

육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자가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해림에서 신분은?”

초무극은 다시 물었다.

“림주 대행이오. 옥부길이라고 하오.”

“옥씨면 림주와…….”

초무극은 옥부길과 옥천환의 얼굴을 비교해 보았다. 옥천환은 상당히 미남이고 키도 큰데, 옥부길은 쥐상이고 키도 작다. 둘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림주 아비요.”

“그렇구려. 나는 초무극이오.”

부자가 전혀 닮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혹시 제왕이시오?”

옥부길의 눈이 커졌다.

“그렇소.”

초무극은 고개를 끄덕였다.

“반갑습니다, 제왕.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옥부길은 정중하게 포권을 취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