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507)
“말하라, 황보충.”
철전혼은 고함을 내질렀다.
“성주의 가장 큰 실수가 뭔지 아시오?”
황보충은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더니 물었다.
“내 실수?”
“그렇소. 성주가 저지른 가장 큰 실수 말이오.”
“내가 무슨 실수를 했다는 거냐?”
“미꾸라지를 용으로 착각한 거요.”
“미꾸라지를 용으로?”
“그렇소. 소성주는 절대 성주 제목이 아니었소. 차라리 각주들이 훨씬 나았소. 그 사실은 운성의 모든 이들은 물론이고 협력 문파 문주들도 알고 있었소. 그 사실을 모른 사람은 성주뿐이었소.”
“죽일…….”
철전혼이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휙!
그러자 황보충의 신형이 끌려왔다. 철전혼은 황보충의 목을 틀어쥐었다.
“다시 말해 봐라, 황보충.”
“다, 다시 말해도 내 대답은 같소. 운성을 멸망시킨 건 황금철장 장주로 위장한 그자가 아니라 자식을 잘못 본 성주와 그걸 바로잡지 않고 오히려 부추긴 부성주 두 사람이오. 나머진 성주와 부성주 때문에 개죽음을 당한 거요.”
“아냐. 그건 네가 잘못 알고 있는 거야. 나는 내 아들을 잘 알아. 내가 키웠고 늘 옆에서 지켜봤어. 그 녀석은 운성을 충분히 다스릴 수 있는 인재였어. 이곳으로 들어온 자들 중 무공이 가장 강한 네가 도왔다면 절대 죽지 않았을 거라고.”
스릉!
철전혼은 검을 뽑았다. 그리고 황보충의 목에 댔다.
“소성주가 남에게 책임 전가하는 못된 버릇을 누구에게 배웠나 했더니 성주였구려.”
“개자식!”
철전혼은 검을 사정없이 그었다.
“커억!”
비명과 함께 황보충의 머리가 떨어졌다. 그러자 잘려 나간 부위에서 피가 쏟아져 나와 주위로 떨어졌다. 철전혼은 황보충을 사정없이 던져 버렸다.
털썩!
황보충의 시체가 봉분 위로 떨어졌다.
잘려 나간 부위에서는 피가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그 피는 곧바로 무덤 안쪽으로 스며들어 갔다.
그사이 철전혼은 벽운양의 목을 그러쥐고 검을 들이 대고 있었다.
“신의 말이 맞소, 성주. 운성이 멸망한 건 성주 탓이오. 춘추오패의 한 곳이면서 어떤 빌어먹을 놈의 부하가 된 것도 잘못한 거고, 능력도 없는 자식에게 운성을 맡긴 것도 잘못한 거요. 그리고 성주는 지금도 자식 걱정만 하고 있을 뿐, 운성 무인을 아비로, 남편으로, 자식으로 둔 이들에 대해서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있소. 운성이 망한 건 어쩌면 잘된 일인지도 모르오.”
“그거 알아?”
철전혼은 벽운양의 귓전으로 고개를 가져갔다. 그리고 속삭였다.
“방금 네 말로 인해 이제 벽운관은 개미 새끼 한 마리 남지 않게 됐어. 너를 죽이고 곧바로 운림 대원들을 이끌고 벽운관으로 가서 전부 죽여 버릴 거란 말이야. 그리고 신주의선가도.”
“우, 우리 가족은 상관없소.”
벽운양이 겁먹은 얼굴로 소리쳤다.
“상관있어. 왜냐면 내가 상관있다고 했으니까.”
“그, 그들은 살려 주시오.”
“아냐. 전부 죽일 거야. 갓난아이까지 전부.”
“천벌을 받을 거다, 철전혼.”
“개자식!”
철전혼은 사정없이 검을 그었다.
벽운양의 목도 대번에 떨어져 나갔다. 그는 아직 피가 철철 흘러나오는 벽운양의 시체를 봉분 위로 던져 버렸다. 벽운양의 목에서 흘러나온 피는 빠르게 안쪽으로 스며들었다. 하지만 그 광경을 주시한 자는 아무도 없었다.
“신야!”
철전혼은 목신야를 불렀다.
“네, 성주님.”
“지금 당장 나가서 두 문파를 주춧돌 하나 남기지 말고 불태워라.”
“알겠습니다.”
목신야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몸을 돌려 주위에 서 있는 대원들을 보며 소리쳤다.
“출발……!”
캬우우우!
느닷없이 들려온 소리에 목신야가 말을 멈췄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캬아아아아!
또다시 괴성이 들려왔다.
“뭐라고 생각하는가? 아니 어디서 들려오는 건가?”
철전혼이 남궁무위를 보며 물었다.
“글쎄요, 그게…….”
남궁무위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가 생각하는 괴성이 들려오는 장소는 분명 땅속이다. 그런데 땅속에서 들려오는 소리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이상한 사람 취급을 당할 것 같아서였다.
캬아아아!
이젠 의심할 나위가 없었다. 조금 전 괴성이 흘러나온 곳은 봉분이다.
“땅속…….”
쑥!
남궁무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봉분을 뚫고 뭔가가 튀어나왔다.
“억!”
“헉!”
철전혼을 비롯하여 남궁무위와 운림 대원들은 질겁했다. 특히 철전혼의 놀라움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이곳은 수천 년 동안 방치됐던 장소다. 살아 있는 뭔가가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는 방금 튀어나온 물체를 자세히 살폈다. 털이 숭숭 나 있고 발톱이 달려 있었다.
“짐승 발?”
철전혼이 아는 한 저렇게 생긴 건 맹수의 발뿐이다.
쑥! 쑥! 쑥! 쑥! 쑥!
수백 개의 봉분에서 털로 뒤덮인 짐승 발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곧 머리가 나타났다.
“맙소사!”
“세상에! 어떻게 저런 일이.”
운림 무인들은 질겁했다. 평생 동안 무공을 익히고 검기와 검강을 발출하는 강자라고 할지라도, 불가사의한 상황이 가져다주는 공포를 극복하는 것은 쉽지가 않았다. 대원들의 얼굴에 서서히 두려움의 그림자가 어리기 시작했다.
“귀, 귀신인가 봐.”
대원 중 한 명이 겁에 질린 목소리로 속삭였다.
“설마. 귀신이 어딨어?”
옆에 있던 자는 고개를 저으면서도 침을 꿀꺽 삼켰다.
쑥!
“헉!”
“어헉!”
운림 대원들이 펄쩍 뛰었다. 팔에 이어 머리가 불쑥 튀어나온 것이었다.
“늑대네.”
“별것 아니었구먼.”
얼굴을 확인한 몇몇 대원들이 안도의 숨을 내쉬며 말했다. 숲에서 나왔건 땅속에서 나왔건 늑대라면 문제가 없다는 얼굴이었다. 잠시 후 늑대는 봉분을 뚫고 나왔다.
“엄청나네.”
운림 대원들은 혀를 내둘렀다. 늑대는 키가 일 장이 넘었다. 게다가 네 발이 아닌 두 발로 서기까지 했다. 늑대라며 별것 아니라고 하였던 대원의 얼굴이 점점 굳어졌다. 일 장에 달하는 거대한 덩치가 헤아릴 수 없을 만치 많았다.
“신야, 시험해라.”
철전혼이 소리쳤다.
“존!”
목신야는 고개를 숙이고는 부하에게 눈짓으로 지시를 내렸다.
“차하!”
운림 대원 두 명이 가장 가까이 있는 워 울프를 향해 몸을 날렸다. 두 사람의 검에서는 날카로운 검기가 흘러나왔다.
한 명의 검은 워 울프의 팔을, 다른 한 명이 검은 목을 향해 나아갔다.
카앙!
카앙!
워 울프 손과 목에서 날카로운 쇳소리가 흘러나왔다.
“억!”
“헉!”
공격을 했던 두 사람의 눈이 커졌다. 검기를 머금은 검이 먹히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탓이었다.
크앙!
포효와 함께 워 울프 앞발이 허공을 갈랐다.
스악! 스악!
“크아악!”
“아악!”
두 사람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곧 두 사람의 몸이 쩍 갈라지고 피가 솟구쳤다.
“저럴 수가?”
“맙소사.”
“차목, 영좌.”
목신야는 부하의 이름을 불렀다. 두 사람은 운림 서열 이위와 삼위에 해당하는 강자였다.
“차하!”
“타하!”
두 사람은 곧바로 몸을 날렸다.
―한 방에 없애야 한다.
목신야는 몸을 날리는 두 사람에게 전음을 보냈다. 대원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한 말이었다.
―알고 있습니다.
―알았습니다.
두 사람은 전음을 보내고는 몸을 날렸다.
두 사람이 바로 앞에 도착하자 워 울프가 앞발을 휘둘렀다. 차목과 영좌는 워 울프의 앞발을 피하고 공격을 했다.
카앙!
차목의 검은 워 울프의 오른팔을 잘라 냈다.
카앙!
그리고 영좌의 검은 워 울프의 심장으로 파고들어 갔다.
크어어어어!
워 울프가 괴성을 내질렀다.
“오!”
“와!”
운림 대원들의 얼굴에 안도의 빛이 떠올랐다.
크아아앙!
퍽!
“아악!”
워 울프 심장에 검을 꽂아 넣고 있던 영좌가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워 울프가 왼 앞발로 영좌의 가슴을 찢어발겨 버린 것이었다.
크아아아아!
워 울프는 괴성을 내지르며 영좌를 뿌리쳤다. 그리고 차목을 향해 오른팔을 휘둘렀다.
“피해라.”
세 번째로 몸을 날린 사람은 남궁무위였다. 순식간에 차목 옆에 도착한 남궁무위가 워 울프를 향해 오른손을 내뻗었다.
퍼억!
둔탁한 소리가 워 울프 가슴에서 흘러나왔다.
푸스스!
이어 거대한 동체가 가루로 흩어졌다. 공격해 오던 워 울프가 가루로 변하자 차목은 얼른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놈들은 가루로 만들어야…….”
스스스! 스스스! 스스스스!
“저건?”
남궁무위의 눈이 커졌다. 바닥으로 흩어졌던 가루들이 한곳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은 하나의 덩어리로 뭉치더니 본래의 워 울프가 됐다.
“어떻게…….”
바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인데도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는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다. 조금 전 가루로 변했던 괴물은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 흉성을 흘리고 있었다.
크아앙!
어디선가 살기 가득한 괴성이 터져 나왔다.
캬우우!
크아앙!
일천 마리의 워 울프들이 일제히 몸을 날렸다. 그들의 목표는 운림 대원들이었다. 남궁무위는 고개를 돌렸다. 탈출로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아!”
그의 입에서 절망에 찬 탄식이 흘러나왔다. 통로가 있는 쪽에 괴물의 수가 가장 많았다.
“탈출해야 합니다, 성주.”
남궁무위는 철전혼을 보며 소리쳤다.
“안 그래도 그럴 참이네.”
철전혼은 워 울프를 향해 오른손을 내질렀다. 그의 성명절기인 천장天掌 수십 줄기가 부챗살처럼 퍼져 나갔다.
퍽! 퍽퍽! 퍽퍽퍽!
둔탁한 소성과 함께 워 울프들이 가루로 변했다.
크아앙!
카아앙!
“으악!”
“크악!”
“아악!”
사방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운림 대원들 중 강기를 펼치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일 초 상대도 되지 않았다. 강기를 펼치는 대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몇 초를 더 버틴다는 것만 다를 뿐 금세 죽임을 당했다. 운림 대원의 수가 빠르게 줄었다.
수가 줄어들수록 워 울프의 공격은 점점 더 거세졌다. 가루로 변해도 다시 살아나는 워 울프는 수가 그대로인 반면, 운림 대원의 수는 점점 줄어들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였다.
“통로로 이동하라! 통로 쪽의 포위망을 뚫어라!”
철전혼은 고함을 내지르며 장력을 내뻗었다. 천장 수십 개가 허공을 가르고, 천장과 같은 수의 워 울프가 가루로 변했다. 하지만 그 자리는 금세 다른 워 울프로 채워졌다.
“아악!”
“으아악!”
“크아악!”
비명은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죽여라!”
“포위망을 뚫어라!”
철전혼과 남궁무위는 전력을 다해 무공을 펼치며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