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506)
―할머니 가야 해요.
신족을 없애고 있는 사사봉의 귓전으로 사미염의 전음이 들려왔다. 이곳에 있는 마가 무인들 중 사사봉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은 같은 무공을 익힌 사미염뿐이었다.
―알았다.
사사봉은 사미염을 쫓아 몸을 날렸다.
“놈들이 도망친다! 쫓아라!”
고함을 내지르는 카르할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그는 단 한 번도 천상기사단 대원들이 인간에게 당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카단과 함께 나갔던 이들이 당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카단 일행의 부주의 때문이라 여겼다. 즉 최선을 다하지 않고 대충대충 하다가 그렇게 됐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최선을 다했다면 절대 당할 리가 없을 거라며, 상대를 무시하다가 당한 거라며 카단을 비웃었다.
그런데 카단 일행이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철갑거인을 다섯 기나 동원한 상태인데도 천상기사 서른 명이 죽임을 당한 것이다. 적도 상당수의 시체를 남기긴 했지만 열 구 내외다.
명백한 아군의 패배였다.
“반드시…….”
카르할은 이를 악물었다.
“죽인다!”
그는 버럭 소리치고는 몸을 날렸다.
* * *
일단의 무리가 폐허로 변한 운성으로 들이닥쳤다. 그들은 사천성을 떠나온 철전혼 일행이었다.
운성의 정문 앞에 도착한 철전혼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하남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대문이라 자부했던 천운루는 기둥만 남아 있었는데 그마저도 새카맣게 그을린 상태였다.
잠시 멍하니 앉아 있던 그는 급하게 안으로 뛰어갔다. 내부도 대문 기둥과 다르지 않았다. 대부분의 건물은 터와 타다 만 기둥만 남아 있었다.
그는 단숨에 운각까지 내달렸다. 운각 역시 다른 건물처럼 잿더미로 변해 있었다. 과거 운각의 후원이었던 자리에는 거대한 봉분 몇 개가 만들어져 있었다.
“검우야!”
철전혼은 고전을 향해 몸을 날렸다.
잠시 후 그는 고전에 도착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지하 일 층에서 지하 이 층으로 나 있는 통로를 보았다면 고전의 비밀이 풀렸다며 좋아했겠지만 지금은 그럴 경황이 없었다.
곧바로 내려갔다. 여러 개의 문이 있는 광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아무 문이나 선택해서 들어갔다. 그 뒤를 이어 남궁무위와 운림 대원들이 들어갔다. 먼저 들어간 이들이 기관을 파괴해서 철전혼 일행은 어려움 없이 지하 세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지하 세계는 희미한 어둠으로 감싸여 있었다.
“흩어져서 찾아라!”
남궁무위가 대원들에게 소리쳤다.
그러자 운림 대원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시체를 발견하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찾았습니다.”
수색을 시작한 지 일각이 채 되지 않아서 한 대원이 소리쳤다.
“제발!”
철전혼은 철검우 시체가 아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몸을 날렸다. 잠시 후 시체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그 시체는 철선문 문주 부양호였다.
시체를 보는 순간 철전혼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철검우가 아닌 탓이었다.
“여기도 있습니다.”
그다음에 발견한 자는 금사검군 관천행과 검서생 사문금이었다.
“여기도 있습니다.”
다른 대원이 또 소리쳤다.
일행은 그곳으로 갔다.
“으흠!”
철전혼은 부르르르 떨었다. 대원이 발견한 시체는 각 각의 각주들이었다. 불길한 느낌이 점점 실체화돼 가는 것만 같았다.
“여, 여기…….”
대원 한 명이 말끝을 흐렸다.
철전혼은 급하게 뛰어갔다. 대원이 말끝을 흐렸다는 건 시체가 중요 인물이란 뜻이었다.
“휴우!”
철전혼은 자기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창하야!”
남궁무위는 울먹이며 시체 앞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시체는 남궁창하와 백호당의 문주 지중천이었다.
“수색을 계속해라.”
안도한 것도 잠시, 철전혼은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남궁창하는 철검우의 단짝이었다. 그런 그가 죽었다면 철검우의 생사도 장담할 수 없다는 뜻이 된다.
운림 대원들은 다시 흩어졌다.
하지만 그 후로는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다.
“여기 뭔가가 있습니다.”
새로운 걸 발견한 건 한 식경 후였다.
철전혼은 부하가 소리친 곳으로 갔다. 거긴 널따란 지하 공간이었다. 정방형으로 만들어진 한편에 통로가 나 있었다.
“발자국이 있습니다.”
통로 바닥을 살피던 대원이 말했다. 철전혼은 통로로 갔다. 특이한 가루가 가득 깔려 있고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안쪽으로 향하는 발자국도 있고 이편으로 나오는 발자국도 있었다.
철전혼은 통로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그와 운림 대원들은 특이한 장소에 도착했다. 그곳은 수많은 봉분으로 들어차 있었다.
왜 이곳에 봉분이 있는지 이상했지만 그보다는 아들을 찾는 게 더 먼저였다. 운림 대원들이 사방을 헤집고 다녔다.
“성주님!”
등에 두 자루 검을 교차해서 찬 자가 철전혼을 부르며 몸을 날려 갔다. 강인한 느낌을 주는 이자는 운림의 림주 철혈쌍검鐵血雙劍 목신야였다. 목신야의 손에는 천처럼 보이는 것이 들려 이었다.
“뭔가?”
철전혼은 목신야를 보았다.
“이거…….”
목신야는 가지고 있던 천을 내밀었다.
“그건…….”
철전혼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목신야가 내민 것은 자신이 아들에게 선물을 했던 영웅건이었다.
보자마자 철검우의 영웅건이라는 걸 바로 알아차린 것은 이마에 붙은 홍옥 때문이다. 보통 영웅건에는 비취를 많이 사용하는데, 자신은 홍옥을 붙여 주었다. 홍옥처럼 불같은 삶을 살라는 뜻이었다.
“어, 어디서 찾았는가?”
철전혼은 영웅건을 와락 움켜쥐며 물었다.
“저쪽입니다.”
목신야는 중앙을 가리켰다.
철전혼은 그곳으로 달려갔다. 심장이 둥둥 뛰어서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하지만 진정되지 않았다.
“여기서 발견했습니다.”
목신야는 바닥을 가리켰다.
철전혼은 미친 사람처럼 주변을 살폈다. 그러다가 찢겨진 옷가지와 그 옷들에 붙어 있는 살점을 발견했다.
“아들아!”
철전혼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곳은 아들인 철검우가 죽은 장소가 분명했다.
그는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았다.
“난……난…… 으아아아아아아!”
철전혼은 전면을 노려보며 괴성을 내질렀다.
“으아아아아아!”
이번엔 온몸을 부르르 떨며 괴성을 내질렀다.
“크아아아아! 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아!”
그는 계속해서 괴성을 내질렀다.
지하 세계 천장에서 돌이 떨어져 내렸지만 멈추지 않았다.
“커억! 우엑!”
결국 피를 토하고 나서야 괴성을 멈췄다.
목신야는 말없이 옆에서 기다렸다. 백 마디 말이 소용없는 상황이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었다.
“신야.”
목신야를 부르는 철전혼은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네.”
목신야는 철전혼 앞으로 가 섰다.
“시체가 발견되지 않은 자는 누구누군가?”
“파산궁 동군위, 현기자 유숙의, 천수신의 황보충, 뇌마신군 벽운양 네 사람입니다.”
“바로 그들의 생사를 확인하게.”
“만약 살아 있으면 어떻게 할까요?”
“여기로 데려오게.”
“알겠습니다.”
목신야는 고개를 숙이고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그가 나가자 운림 대원들도 모두 따라갔다.
“꼭 데려와야 하네.”
철전혼은 밖으로 나가는 목신야를 향해 말했다.
“알겠습니다.”
멀리서 목신야의 대답이 들려왔다.
철전혼은 주위를 돌아다니며 흩어진 살점을 주워 모았다. 사방에 흩어져 있는 것들을 모아서 이리저리 맞추자 사람 형태가 됐다. 하지만 끝내 철검우의 머리는 나오지 않았다.
머리를 찾기 위해 사방을 헤매고 있는데 남궁무위가 그의 아들 남궁창하를 안고 왔다.
“소성주는…….”
남궁무위는 말끝을 흐렸다. 사람 형태를 갖추고 있는 살점을 보았던 것이다.
“죽었네.”
철전혼은 나직하게 말했다.
“결국 놈은 소성주와 수뇌들을 이곳으로 몰아넣고 살해한 후 운성을 공격한 거군요.”
“그런 것 같네.”
철전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리 남궁세가도 끝났겠군요.”
철전혼은 남궁무위를 보았다.
“쿡!”
남궁무위는 피식 웃었다.
“가고 싶지 않은 모양이군.”
“제 아버지 집이니까요.”
“그 소문이 사실인가?”
“어떤 소문 말입니까?”
“자네가 운성으로 처음 왔을 때, 자네 아버지가 가주 자리 때문에 자네를 운성으로 보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네.”
“……맞습니다.”
남궁무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구먼.”
“욕심이 많은 양반이었습니다. 그 나이가 돼서도 가주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지요. 가신들의 요구 때문에 가주직을 내려놓기는 했지만 견딜 수가 없었던 게지요. 그래서 운성과 협약을 맺고 저를 보내 버린 겁니다.”
“해림도 있었는데 운성과 협약을 맺은 건 왠가?”
“해림은 남궁세가와 같은 안휘성에 있고 운성은 하남성에 있었으니까요.”
“해림으로 보내 놓으면 양쪽을 오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한 모양이구먼.”
“그렇습니다. 그날 이후로 남궁세가를 한 번도 가지 않았습니다. 필요한 게 있으면 서찰로 대신했고요.”
“그랬구먼.”
철전혼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운림은 어디로 간 겁니까?”
“시체가 발견되지 않은 자들의 근황을 확인하러 갔네.”
“만약 살아 있으면 어떻게 하실 참입니까?”
“일단 이야기를 들어 봐야겠지.”
“…….”
남궁무위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말없이 운림 대원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운림 대원들이 돌아온 건 다음 날 밤이었다.
그들은 신주의선가 가주 황보충과 뇌마신군 벽운양을 제압해서 데리고 왔다.
“어떻게 된 건가?”
철전혼은 목신야를 보며 물었다.
“오지 않겠다고 해서 무력을 사용했습니다.”
“우리 가족의 목숨으로 협박한 건 왜 말하지 않는 거요?”
뇌마신군 벽운양이 버럭 소리쳤다.
“무력을 사용하는 와중에 대원 서른 명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저들의 가족을 잡아 협박을 했다는 건가?”
“네.”
“저들 둘뿐이던가?”
“다른 문파는 모두 멸망했습니다.”
“그랬구먼.”
철전혼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예견했던 일이라 놀랍지도 않다. 아니 운성을 공격해서 멸망시킨 자들이 그들을 가만히 둔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남궁세가도 멸문했습니다. 가주 대행인 남궁만해 대협도 죽었고요.”
철전혼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신주의선가 가주 황보충을 보았다.
“우린 아무 잘못 없소.”
황보충이 나직하게 말했다.
“먼저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소.”
“동창 부제독과 금의위 부영반 짓이오.”
“우리 집에 동창 부제독과 금의위 부영반이 왔다는 거요?”
“두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이오.”
“한 사람?”
철전혼의 눈동자가 차갑게 변했다.
“그렇소.”
“계속하시오.”
“그러니까…….”
황보충은 그날 있었던 사건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다. 더하거나 빼지 않고 있는 사실 그대로였다.
“그러니까 그놈이 황금철장 장주로 위장해서 이곳으로 들어왔다는 거요? 그리고 남궁창하가 그놈 부인의 미모에 혹해서 겁탈하려 했고?”
“그렇소.”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철전혼의 말투가 반말로 바뀌었다.
“말이 안 될지 모르지만 거짓말이 아니오. 소성주와 남궁창하는 자신들의 능력을 보여 주고 싶어 했고 그 첫 번째가 바로 황금철장의 영입이었소.”
“내 아들이 대장간 따위를 얻기 위해 대장장이를 초대했다는 게 말이 되느냐?”
철전혼의 목소리가 커지고 몸에서는 살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황보충은 철전혼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는 그 어떤 방법으로도 철전혼의 분노를 누그러뜨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울러 이 자리가 자신의 무덤이 될 거란 사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