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503)
쇄애액!
쇄액!
검 두 자루가 경쟁하듯 방가려를 향해 날아갔다.
퍼억! 퍼억!
검은 곧바로 방가려의 몸을 뚫었다.
“아악!”
비명과 함께 방가려의 신형이 뚝 떨어졌다.
엄청난 광경이었다. 두 사람의 검은 무려 오십 장 을 날아가 도망치는 방가려를 없애 버린 것이었다.
파앗! 파앗!
두 사람은 동시에 바닥을 찼다. 잠시 후 두 사람은 방가려가 떨어진 곳에 도착했다. 그사이 카단도 하늘에서 내려왔다.
“으음!”
“죽일…….”
고독혼의 입에서는 신음이, 좌무백의 입에서는 욕설이 비어져 나왔다. 방가려가 떨어진 곳에는 시체가 아니라 옷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방가려는 매미가 허물을 벗는다는 금선탈각 수법으로 도망쳐 버린 것이다.
사실 금선탈각은 아무나 사용할 수 없는 고절한 수법이다. 옷을 벗어 자신처럼 꾸며 남기는 게 전부 같지만, 거기에 한 가지가 더 첨가돼야 한다. 그건 바로 벗어 놓은 옷에 내공을 남겨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옷은 힘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금세 들키고 만다. 하지만 내공을 남겨 놓으면 옷은 입고 있는 것과 같은 상태를 유지할 뿐 아니라 검을 던진 사람은 그냥 옷이 아니라 사람을 찔렀다고 느끼게 된다.
조금 전 자신 또한 분명 검이 몸통을 통과했다고 느꼈고 방가려의 죽음을 확신했다. 그런데 사라지고 없었다.
“어디로 갔느냐?”
좌무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늘에서 아래를 바라보고 있던 카단은 방가려를 보았을 거란 생각에 하는 질문이다.
‘봤을 리가 없지.’
고독혼은 내심 중얼거렸다.
만일 카단이 방가려를 보았다면 여기가 아니라 그녀를 따라가야 한다. 그런데 곧바로 여기로 내려왔다. 그건 곧 카단도 방가려를 보지 못했다는 뜻이다.
결국 방가려는 좌무백과 자신 그리고 카단을 농락할 정도로 대단한 은신술을 펼쳐 사라져 버린 것이다.
“못 봤습니다.”
고독혼이 예상하고 있는 대답이 들려왔다.
“천야교 진영은 어디냐?”
고독혼은 다시 물었다.
“북동쪽입니다.”
“찾아라.”
“네.”
카단은 능천대 대원들에게 명령을 내리면서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곧 여기저기서 능천대 대원들이 솟구쳐 북동쪽으로 날아갔다.
그 시각.
위기에서 벗어난 방가려는 그녀의 진영에 도착했다.
털썩!
방가려는 거칠게 떨어졌다.
“교주님.”
초초한 얼굴로 방가려를 기다리던 초전전은 질겁했다. 그녀는 재빨리 방가려를 안았다. 알몸으로 떨어진 방가려는 전신에 붉은 선이 나 있었다.
좌무백과 고독혼이 펼친 이기어검술에 당한 흔적이었다. 비록 금선탈각 수법으로 치명상을 피했다고 하지만 검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그 결과 알몸으로 가시넝쿨 속을 헤치고 나간 것처럼 온몸에 흔적이 남은 것이다.
초전전은 얼른 장포를 벗어 방가려의 몸을 감쌌다.
“가야 해.”
“우리 앞에는 해림과 환수각이 있습니다.”
“환수각 쪽으로 가.”
“알았어요.”
초전전은 곧바로 명령을 내렸다. 이미 떠날 준비를 하고 있던 적화비 대원들은 바로 출발했다.
삐이익! 삐이익! 삐이익!
사방에서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
척사랑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신족 수백 명이 한곳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화!”
척사랑은 환객의 수장 화를 불렀다.
“네.”
척사랑 근처에 은신하고 있던 화가 얼굴을 드러내며 대답했다.
“무슨 일인지 알아보고 와.”
“알았어요.”
화는 곧바로 자리를 떴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그녀는 멈췄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이 빠르게 환수각 진영으로 달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환객들은 재빨리 방어 대형을 취했다.
“정체를 밝혀라!”
맨 후미에 있던 환객 한 명이 낮게 소리쳤다.
―나예요, 각주.
그때 척사랑의 귓전으로 방가려의 전음이 들려왔다.
―무슨 일이죠?
방가려의 위치를 확인한 척사랑은 전음으로 물었다.
―사정은 묻지 말고 우리를 보내 주세요.
―보내 달라고요?
척사랑은 하늘을 보았다. 신족들이 이편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앞으로 일각 후면 들이닥칠 것 같았다.
―네.
―누구죠?
이번엔 화가 전음을 보내왔다.
―방 교주.
―방 교주가 왜 여기로 온 거죠?
―길을 터 달래.
―길을 터 달라고요?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아.
―좌무백과 문제가 생긴 거군요.
―그런 것 같아.
척사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할까요?
―흠!
척사랑은 생각에 잠겼다.
운성은 멸망하고 환수각은 원래부터 좌무백 편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남은 곳은 마원과 해림 두 곳뿐이다.
―문제는 그들이 명나라 주인이라는 건데…….
―각주!
그때 다시 방가려 전음이 들려왔다.
“화! 환객들을 좌측으로 백 장가량 이동시켜.”
“알았어요.”
화는 곧바로 자리를 떴다.
잠시 후 환객들이 왼편으로 이동했다.
―고마워요.
방가려는 척사랑에게 전음을 보냈다.
―무슨 일인지 말해 줄 수 없나요?
―그자가 내게 자살 명령을 내렸어요.
―자살 명령이라고요?
―네.
―금제를 깨트린 건가요?
척사랑은 방가려가 그녀에게 걸린 금제를 무력화시켰다는 사실을 바로 알아차렸다.
―십 갑자를 넘어서자 금제가 저절로 풀렸어요.
―그렇군요. 그런데…….
십 갑자가 넘으면 좌무백이나 고독혼보다 더 강할 텐데 굳이 도망칠 필요가 있느냐고 묻고 싶었다.
―고독혼은 몰라도 좌무백의 상대는 아니에요.
척사랑의 의문을 알아차린 방가려가 말했다.
―그가 그렇게 강해요?
―그는 사람이 아니라 수천 년을 살고 있는 요괴예요. 삼백 년 전 초인삼황은 그의 일부분에 불과하고요.
―그렇죠.
―아무튼 고마워요.
방가려는 빠르게 자리를 떴다. 방가려의 기척이 사라지자 척사랑도 곧바로 자리를 떴다.
환객들이 있는 곳으로 이동한 그녀는 하늘을 보았다. 신족 수백 명이 방가려 일행을 쫓아 날아가고 있었다.
“우린 마가를 쫓는 중인데…….”
그녀 생각에는 좌무백과 신족은 마가를 쫓는 중이다. 방가려를 쫓아갈 정도로 여유가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척사랑은 어디 있느냐?”
그때 좌무백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네.”
척사랑은 크게 대답하고는 허공으로 솟구쳤다. 그녀가 솟구치자 좌무백이 다가왔다. 그의 등에는 황금색 날개 여덟 장이 생겨나 있었다.
‘대단하네.’
척사랑은 내심 중얼거렸다. 솔직한 심정이었다. 황금빛 광채를 뿜어내는 날개 여덟 장을 가진 좌무백은 마치 신의 의지를 전달하기 위해 인간 세계로 내려온 신의 사자처럼 보였다.
“너는 지금 바로 가서 방가려의 머리를 가져와라.”
좌무백은 자신들의 주적이 마가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었다. 신족과 해림 무인들로는 마가를 쫓고 척사랑에게는 방가려를 맡길 참이었다.
“방 교주는 왜…….”
척사랑은 방가려가 배신한 사실을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며 물었다.
“방가려가 우리를 배신했다.”
“……알았어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던 척사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곧바로 아래로 내려갔다.
“거기서 잠시 기다려라.”
―고독혼!
척사랑에게 말한 좌무백은 고독혼을 전음으로 불렀다.
―네.
환수각 진영 후미에 있던 고독혼이 전음으로 대답했다.
―너는 척사랑과 힘을 합쳐서 방가려를 잡아라.
―제가 명령권잡니까?
―각자 부하들을 이끌다가 싸울 때만 협조하면 된다.
―저는 혼잡니다, 주공.
―혼자가 아니라고 알고 있는데 내가 잘못 파악하고 있는 거냐?
―…….
고독혼은 대답을 못 했다.
좌무백의 말처럼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는 지난 세월 동안 아무도 몰래 무인을 키웠고 자기 별호를 따서 무적문無敵門이란 문파도 만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무적문이란 이름 대신 철립객鐵笠客으로 활동했다.
철립객은 주로 낭인으로 활동했다.
검은색 철립을 쓰고 검은색 무복을 입은 그들을 강호인들은 흑립사신黑笠死神이라고 부른다. 철립객은 삼백 명밖에 되지 않지만 모두 일당백의 고수다. 북경을 떠나올 때 은밀하게 따르라는 지시를 내려 두었는데 좌무백이 알아차린 모양이다. 아니 이번이 아니라 진작부터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너뿐만 아니라 초무극도 초인사超人士라는 조직을 거느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속일 의도는 없었습니다.
고독혼은 솔직하게 말했다.
모두 파악하고 있는 사람에게 변명을 해 봐야 소용없다. 이럴 땐 솔직하게 털어놓는 게 상황을 더 악화시키지 않는다는 걸 살아오면서 터득했다.
―알고 있다. 아무리 강자라고 해도 혼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곳이 무림이기에, 너와 초무극이 따로 세력을 만든 사실을 알면서도 묵인했던 거다.
―감사합니다, 주공.
―그렇다고 너를 용서한다는 뜻은 아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됩니까?
―방가려 머리를 가져와라. 그럼 우리를 속인 네 잘못을 용서해 주겠다.
―반드시 가져오겠습니다, 주공.
고독혼은 고개를 숙였다.
“척사랑, 너는 고독혼과 함께 가라.”
좌무백은 척사랑을 보며 말했다.
“알았어요.”
척사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뒤편에 있던 고독혼이 척사랑 곁으로 몸을 날려 갔다.
“가요.”
고독혼이 다가오자 척사랑이 말했다.
“그럽시다.”
두 사람은 곧바로 몸을 날렸다.
삼백여 장을 내달렸을 때 일행 앞에 봉우리가 나타났다. 봉우리는 그리 높지 않았지만 좌측이나 혹은 우측에 몸을 숨기기 적당한 장소였다.
“좌우측은 물론이고 봉우리까지 다 살펴야 할 것 같아요.”
척사랑이 말했다.
“각주는 저쪽과 봉우리를 맡으시오. 나는 오른편으로 가겠소. 봉우리 뒤편에서 만납시다.”
고독혼은 오른편을 가리켰다.
“알았어요.”
척사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환객을 두 조로 나누어 몸을 날렸다. 환객은 오른편을 맡고, 척사랑은 봉우리를 맡았다.
상당수 환객들이 움직이고 있었지만 은신술을 펼치고 있어 눈에 띄지는 않았다.
시야에서 멀어지는 척사랑을 잠시 바라보던 그는 품속에서 호적을 꺼내 불었다. 날카로운 소리가 숲속으로 퍼져 나갔다. 고독혼은 몸을 날리면서 계속 호적을 불었다.
일각 정도가 흘렀을 때였다.
마치 그림자가 움직이는 것처럼 검은 방립을 쓰고 검은 옷을 걸친 자들아 고독혼 근처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고독혼의 그림자인 흑립사신이었다.
나타난 자들은 고독혼을 보고도 인사를 하지 않았다. 슬쩍 시선만 맞추고는 곧바로 몸을 날렸다.
고독혼 옆으로 다가온 자들은 백오십 명가량이었다.
“방량.”
고독혼의 시선이 한 사내에게로 향했다. 흑립사신 들 중에서 키가 가장 큰 자였다.
“말씀하십시오.”
“나머지는 어디 있느냐?”
“저 앞에 보이는 산속에 있습니다.”
방량은 멀리 보이는 산을 가리켰다.
“지금 우리 앞에는 삼백 명 정도가 도망치고 있다. 그들을 없애야 한다.”
“알겠습니다.”
방량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고독혼이 가지고 있는 호적과 비슷한 걸 꺼냈다. 잠시 후 그의 호적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가 부는 호적은 고독혼이 불었던 것과 달랐다. 마치 음악을 연주하는 것 같았다.
잠시 후 방량은 호적을 갈무리했다.
“바로 공격을 시작하라고 지시를 내렸습니다.”
“가자.”
고독혼은 곧바로 몸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