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501)
“헛!”
항우각은 허공으로 솟구쳤다. 신족이 그런 공격을 펼친다는 걸 알고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날개 공격은 강했다.
스악!
간발의 차로 강기를 피했다.
“타하!”
이용정은 기합과 함께 신창을 횡으로 휘둘렀다. 항우각은 엉덩이를 뒤로 쭉 빼면서 검을 앞으로 세웠다.
스악!
이용정의 창두가 항우각의 검보다 약간 빨랐다.
항우각의 배가 순식간에 시뻘겋게 변했다.
“이얍!”
항우각은 거꾸로 세웠던 검을 그대로 걷어 올렸다. 순간 검 끝에서 검강이 솟구쳤다. 이번에는 이용정이 깜짝 놀라며 오른편으로 이동했다. 그는 배에 부상을 입은 항우각이 바로 공격을 해 올 거라 생각지 않았던 것이다.
움직임과 동시에 은신술을 펼쳤다.
은신술을 펼칠 때 내공 소모가 있기는 하지만 다음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카카캉!
바로 그때 왼편 날개 부분에서 날카로운 쇳소리가 들려왔다.
“크억!”
이용정의 입에서 비명이 비어져 나왔다. 항우각의 일검에 펼치고 있던 날개가 잘려 나간 것이다. 물론 내기로 만든 날개이기 때문에, 피가 나거나 하진 않는다. 문제는 내기다.
날개를 만들어 내는 무공인 적신천사마공의 복구 우선순위는 날개다. 즉 몸과 날개에, 양쪽에 문제가 생기고, 몸의 부상이 치명적이라고 해도 날개를 먼저 복구한다는 뜻이다.
날개에 우선권을 부여한 것은, 먼저 날개를 펼쳐 자리를 피한 후 몸을 치료하라는 의미로 볼 수 있다. 그 바람에 날개에 손상을 입으면 모든 내기를 날개로 쏟아부어 치료한다. 그리고 날개를 치료하는 동안 완전 무방비 상태가 돼 버린다.
지금 이용정의 상태가 그랬다. 적신천사마공이 모든 내기를 날개로 밀어 넣는 바람에 닭 모가지 비틀 힘도 없었다.
그는 항우각을 보았다.
“그의 말이 맞구나.”
항우각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맺혔다.
아래로 내려서는 이용정의 몸에서는 기세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이용정 앞으로 가서는 그의 심장을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커억!”
턱!
이용정은 비명과 함께 항우각의 검을 잡았다.
“그가 누구냐?”
이용정은 물었다.
“알 것 없다.”
신족의 날개에 대한 걸 항우각에게 알려 준 사람은 금장생이었다. 그 사실을 굳이 적에게 알려 줄 필요는 없었다.
항우각은 검에 내기를 주입했다. 이용정의 심장을 가루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푸욱!
바로 그 순간 섬뜩한 소리가 들려왔다.
“크아악!”
이용정의 입이서 처절한 비명이 비어져 나왔다. 창 한 자루가 이용정의 몸을 뚫은 것이다.
“헛!”
항우각은 급하게 검을 뽑았다. 하지만 이용정이 잡고 있어 잘 빠지지 않았다. 곧바로 검을 놓아 버렸다면 크지 않은 부상으로 끝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항우각은 검사고 또 싸우는 중이었다.
그는 검을 놓을 수 없었다.
푸욱!
이용정의 몸을 뚫고 나온 창두가 항우각의 배로 파고들었다.
“커억!”
항우각은 비명을 내지르며 왼손으로 이용정의 가슴을 쳤다.
퍼억!
둔탁한 소성과 함께 이용정의 몸이 뒤로 밀리고 검이 뽑혔다. 그 상황에서 항우각은 물러나지 않았다. 창이 꽂힌 채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리고 검강이 솟구친 검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그었다.
“억!”
허공에서 다급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이용정의 등에 창을 찔러 항우각을 공격한 자는 능천일대 대주 이약선이었다.
그는 지금까지 계속 이용정을 살피고 있었다. 돕기 위해서가 절대 아니었다. 자신의 미래를 위해 기회가 생기면 이용정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왔다. 이용정은 적 수장으로 보이는 자와 싸움을 했고 날개를 잃었으며 심장을 허용했다. 이용정이 상대의 검을 잡은 건, 적장을 없앨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였다.
지체 없이 이용정의 등을 향해 창을 찔러 넣었다. 이용정과 적장을 동시에 없애 버릴 참이었다.
앓던 이도 빼고 적장을 없애 공을 세우는 일거양득의 수였다.
적장의 배에 창을 박아 넣고 만족스럽게 웃고 있는데 느닷없이 강기가 머리를 향해 떨어지는 것이었다. 물러날 줄 알았던 적장이 오히려 달려들면서 검을 휘두른 것이다.
이약선은 상체를 최대한 뒤로 눕혔다. 하지만 완벽하게 피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
스아악!
“크아악!”
이약선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비어져 나왔다. 그리고 은신술이 풀리며 모습이 드러났다. 이약선은 가슴부터 시작해서 배까지 쩍 갈라진 상태였다.
“혼자는…….”
이약선은 창에 내기를 주입했다.
항우각은 튕기듯 물러났다.
“커억!”
창이 빠져나가면서 극심한 통증이 밀려왔다. 항우각은 상처를 보았다. 피가 벌컥벌컥 쏟아져 나왔다.
그는 상처 부위 혈도를 눌러 지혈했다.
그리고 몸을 날렸다.
마가 무인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그들이 고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신족의 은신술 때문이었다.
“크악!”
대원 한 명이 창에 당하는 광경이 항우각의 눈에 들어왔다.
‘연기다.’
항우각은 내심 소리쳤다.
신족들은 은신술을 펼친 채 가만히 있으면 보이지 않지만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자 연기가 좌우로 갈라졌다.
“놈들!”
―나다.
항우각은 부하들에게 전음을 보냈다.
연기가 갈라지는 걸로 적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마가 무인의 움직임에 여유가 생겼다.
마가 무인들은 영악했다. 그들은 절대 신족의 위치를 알고 있는 내색을 하지 않았다. 우연을 가장해서 공격을 했다.
“아악!”
“으악!”
“크아악!”
신족들이 내지르는 비명이 쉬지 않고 흘러나왔다.
한 식경 정도가 흐르자 남아 있는 신족은 더 이상 없었다.
“천장!”
마가 무인들이 항우각 주위로 다가왔다. 항우각이 피를 흘리는 걸 본 그들은 질겁했다.
“괜찮다. 그보다 전부 몇 명…….”
항우각은 말끝을 흐렸다.
그 옆으로 모인 대원의 수는 열다섯 명뿐이었다.
“가자.”
그는 곧바로 자리를 옮겼다. 이곳이 끝이 아니었다. 동천장 대원들은 열 곳의 건물로 흩어졌고 아직 싸우고 있는 이들이 많다. 그들을 도와야 할 터였다. 그들은 곧 두 번째 건물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곧바로 전장을 내달렸다. 은신술로 숨어 있는 신족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낸 이상 무서울 게 없었다. 그들은 전음으로 동료들에게 방법을 알려 주고 싸움을 시작했다. 몇몇은 전장을 지나쳐 다른 건물로 갔다.
싸움이 끝난 건 반 시진 후였다.
털썩!
더 이상 공격해 오는 신족이 보이지 않자 항우각은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천장!”
동천장 대원들이 항우각 옆으로 모여들었다.
“나는 여기서 좀 쉬었다가 갈 테니까 너희들 먼저 가라.”
항우각은 손을 휘저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천장.”
대원들은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건 우리만의 전쟁이 아니다. 마가의 생존을 위한 전쟁이다. 우리가 놈들을 유인하지 않으면 우리 가족이 죽는다. 어서 가라. 이건 명령이다.”
“천장.”
대원들은 울먹였다. 그리고 항우각을 향해 큰절을 올린 후 자리를 떴다.
“후!”
항우각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 몸을 일으켜 돌아섰다. 그가 서 있는 곳에서 십여 장 떨어진 허공에 신족이 떠 있었다. 그는 능천대를 이끌고 온 카단이었다.
카단이 여기로 내려온 건 이약선의 죽음 때문이었다.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신족이 많이 죽긴 했지만 대주가 죽은 곳은 여기뿐이었다. 그래서 상황을 살피기 위해 아래로 내려왔다가 항우각을 발견한 것이었다.
“여덟 장이군.”
항우각은 카단 등에 나 있는 날개를 보며 말했다.
“상급이니까.”
카단은 항우각을 향해 걸어갔다.
“자네가 책임잔가?”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카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위에 한 명이 더 있다는 말이군. 그는 우리도 아는 사람인가?”
카단은 항우각을 가만히 보았다.
한참 전에 창에 찔렸으니까, 숨이 끊어지진 않더라도 움직일 수 없는 지경은 돼야 한다. 그런데도 굳건히 서서 투기를 발산하고 있다.
인간은 아무리 겪어도 알 수 없는 종족이었다.
“하지만…….”
카단은 천천히, 그러나 강하게 그러쥐었다. 다른 신족과 달리 그의 무기는 창이 아니라 창을 절반으로 자른 것 같은 형태였다.
“차하!”
먼저 몸을 날린 사람은 항우각이었다.
치명상을 입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움직임은 비호처럼 빨랐다. 그의 검 끝에서는 강기가 솟구쳤다.
“이야합!”
항우각은 기합을 내지르며 검을 찔러 넣었다.
순간 카단의 등에서 총 여덟 장의 날개가 생겨났고 그중 왼편 날개 넉 장이 방패처럼 카단의 가슴을 방어했다.
카카캉!
항우각의 검이 날개를 뚫었다.
첫 번째 날개가 뚫리자 카단은 얼굴을 찌푸렸다. 신족은 날개를 내기로 만들지만 무인이 무기로 생성해 내는 강기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무인의 강기 경지는 내공이 높아지면 부수적으로 얻어지지만 신족의 날개는 거기에 정신적인 측면이 더해진다. 즉 내기와 정신의 산물이 바로 날개라는 말이다. 그러다 보니 날개에 손상을 입으면 심적인 타격을 입게 되고 심한 경우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방비 상태가 되고 만다.
사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는 적신천사마공이 손상된 날개를 빠르게 복구하기 위한 시간이기도 하다. 날개가 손상된 신족이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으면 내기를 다른 곳으로 쓰려고 할 테고, 그러면 복구에 지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정신적인 무방비 상태.
그것은 적신천사마공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무방비 상태가 주는 장점은 손상된 날개의 빠른 복구고, 단점은 그 순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물론 작은 손상으로는 무방비 상태에 이르지 않는다.
항우각의 공격에 날개가 크게 손상된 게 아니기 때문에 카단은 미미한 두통만 느꼈다.
이어 두 번째 날개가 뚫렸다.
굳이 항우각의 검을 눈으로 보지 않아도 날개의 상황은 확연하게 느껴졌다. 이번에도 역시 항우각은 움찔하기만 했을 뿐 별다른 타격은 받지 않았다.
타격을 받지 않는다고 해서 안전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항우각의 검은 세 번째 날개를 뚫고 계속 쏘아져 왔다.
카단의 얼굴이 일그러진 건 그때였다.
그는 오른편 날개로도 방어막을 칠 걸 잘못했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날개 넉 장이면 충분할 거라고 여긴 게 잘못된 판단인 모양이었다. 검이 쏘아져 오는 속도가 너무 빨라 물러나거나 피할 수도 없다.
‘빌어먹을…….’
카단은 내심 욕설을 내뱉었다.
“커억!”
항우각의 입에서 비명이 비어져 나온 건 그때였다. 갑자기 진기가 끊어져 버린 것이었다.
카단의 날개에 구멍을 내며 나아가던 검이 네 번째 날개를 조금 파고든 상태에서 멈췄다.
그 순간 카단은 접었던 날개를 활짝 폈다.
그는 날개로 항우각의 검을 꽉 잡은 채였다. 날개를 힘차게 펼치자 꽂힌 상태인 항우각의 검도 오른편으로 이동했다. 항우각은 검을 놓치지 않으려고 힘을 주었다. 그러자 그의 오른손은 카단의 날개를 따라 이동했다. 오른팔을 활짝 편 상태가 돼 버린 것이다.
바로 그때 카단은 무기를 쭉 찔러 넣었다.
푸욱!
한 자에 달하는 기다란 날이 항우각의 심장으로 파고들어 갔다. 날이 파고들어 가는 순간 카단은 손목을 틀었다.
“커억!”
항우각의 입이 쩍 벌어졌다. 곧 그의 입에서 피가 넘어왔다.
카단은 항우각을 빤히 쳐다보았다.
피는 계속해서 넘어와 턱을 타고 흘러 가슴을 흥건하게 적셨다.
“결국 승자는 우리가 될 거다, 신족.”
항우각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아냐.”
카단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과거에는 우리가 패했지만 이번엔 달라. 왜냐면 이미 주인이 됐거든.”
카단은 싱긋 웃고는 무기를 힘껏 뽑았다. 그리고 항우각의 목을 향해 휘둘렀다.
“크아악!”
처절한 비명과 함께 항우각의 머리가 둥실 떠올랐다.
“너희들에게 가장 어울리는 신분은 노예다.”
휙!
카단은 날개를 펼치며 날아올랐다. 구멍이 나 있던 그의 날개는 이미 완벽하게 복구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