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498)
그들이 도착하고 잠시 후 서천장, 중천장, 남천장이 도착했다. 사미염은 그들과 함께 동문 위로 올라갔다. 강 건너 마을이 적으로 새카맣게 뒤덮여 있었다.
“활을 가진 대원들이 있습니다.”
건장한 체격의 중년 사내가 아수수를 보며 말했다. 그는 적지영이 죽고 나서 서천장에 오른 장익기였다.
“올라오라고 하세요.”
“활을 가진 자는 성벽 위로 올라와라!”
장익기는 뒤편을 향해 소리쳤다.
“다리를 부숴라!”
“백팔무영비는 서하로 들어가라.”
“암흑마단은 서하로 들어가라!”
사미염과 광인효가 서하를 향해 몸을 날리며 소리쳤다. 두 사람에 이어 백팔무영비와 암흑마단이 서하로 뛰어들었다. 삼백오십 명이 뛰어들었지만 소리는 거의 나지 않았다.
콰앙! 콰앙! 콰앙!
곧 다리가 부서졌다.
―화!
전방으로 달려가던 척사랑은 그녀의 호위인 환객의 수장 화를 불렀다.
―네.
―대원들에게 속도를 늦추라고 해. 천야교나 해림 무인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해야 해.
―알았어요.
화는 곧바로 자리를 떴다.
화의 지시를 받은 환객 대원들은 조금씩 속도를 늦췄다. 처음부터 주시한 게 아니라면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그들의 행동은 은밀했다.
어느새 마가와 거리가 사십 장으로 가까워졌다.
쏴라!
마가 진영에서 살기 어린 외침이 터져 나왔다.
시위를 당기고 있던 마가 대원들이 일제히 놓았다.
퉁! 퉁퉁퉁! 퉁퉁퉁! 퉁퉁!
화살은 빠르게 어둠을 뚫었다.
“화살이다!”
마가를 향해 달려가는 해림과 천야교 선두에서 화살을 발견한 누군가가 소리쳤다.
푹! 푹푹푹! 푹푹! 푹!
“크윽!”
“으윽!”
“커억!”
비명과 함께 무인들이 픽픽 쓰러졌다.
“끙!”
옥천환은 신음을 내뱉었다.
지금이 한낮이고 보통 화살처럼 위에서 떨어지면 어지간한 무인은 무기로 쳐 낼 수 있다. 그런데 화살이 앞에서 직선으로 날아온다. 맨 앞에서 화살을 발견한 자는 어찌 피한다고 하지만 바로 뒤에서 달려가는 자는 방법이 없다. 더구나 지금은 화살이 잘 보이지도 않는 밤.
아군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이었다.
“이럴 때 신족이 나서 주면 좋으련만.”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신족이 공격을 해 주면 이쪽에서 달려가는 이들이 편할 텐데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래 가지고 잘도 이기겠다.”
쐐액!
바로 그때 전방에서 화살이 날아왔다.
옥천환은 가볍게 팔을 휘둘렀다.
턱!
그러자 화살이 옆으로 튕겨 나갔다.
“달려라!”
“전력 질주하라!”
“와아아아!”
“우와아아아!”
세 문파 무인들은 고함을 내지르며 달려갔다.
쇄액! 쇄애액! 쇄애액!
화살은 계속해서 날아왔다.
그들의 선두는 곧 서하 앞에 도착했다. 서하 강폭은 이십 장이었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화살의 강도는 더욱 세졌다.
“방어막을 쳐라!”
“강자들은 앞으로 나와서 방어막을 쳐라!”
각 조직의 수장들이 소리쳤다. 그러자 수십 명이 선두로 나와 강기막을 쳤다. 마가 대원들이 쏜 화살은 강기막에 부딪쳐 떨어져 나갔다.
그제야 세 문파 무인들은 조금씩 안정을 되찾았다. 진행이 멈추자 세 문파 수장들은 한자리로 모였다.
“가서 갈 대협을 불러와.”
옥천환이 부하에게 말했다.
잠시 후 능천사대 대주 갈황이 세 사람이 있는 곳으로 왔다.
“무슨 일이오?”
그는 옥천환을 보며 물었다.
“저길 건너야 하는데 궁수들 때문에 쉽지가 않소.”
옥천환은 서하를 가리켰다.
서하의 폭은 이십 장. 등평도수를 펼치는 무인이 아니면 십 장을 가기도 전에 물에 빠지고 만다. 헤엄을 치는 상태에서 조준해서 쏘는 화살을 막는 건 쉽지 않다. 게다가 물속에 매복해 있을 수도 있다. 희생을 최소화하면서 건너기 위해서는 매복이나 화살 둘 중 하나를 없애야 한다.
“그래서 어쩌라는 거요?”
“갈 대협이 궁수를 처리해 주시오.”
“심황께서는 귀하들에게 선봉을 맡기라고 하셨소.”
갈황은 옥천환 일행을 도와줄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자신들이 아니면 패할 상황이라면 모를까, 아군의 승리는 정해져 있다. 게다가 상황이 뒤집힐 변수가 생길 상황도 아니다. 굳이 부하들을 희생시킬 이유가 없다.
“전쟁은 우리만 하는 게 아니라 같이 하는 거요, 갈 대협.”
“나는 명령받은 대로 할 뿐이오.”
“정 그렇게 나오면 나는 이 전쟁에서 빠지겠소.”
옥천환이 폭탄 발언을 했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요?”
갈황이 버럭 소리쳤다.
“당신은 우리를 노예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당신의 노예가 아니오. 그리고 당신에게 빚진 것도 없소. 내가 당신네와 손을 잡은 건 나의 성공을 위해서지 대승적 차원이나 나라를 위해서가 아니란 말이오. 조금 전에도 말했지만 내 부하들 희생만 강요한다면 나는 빠질 거요.”
“정녕.”
화가 난 듯 갈황의 눈동자에서 새파란 광채가 흘러나왔다.
“무슨 일이냐?”
뒤편에서 좌무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심황!”
갈황은 얼른 고개를 숙였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갈황.”
좌무백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그게…….”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옥천환이 중간에 끼어들었다.
좌무백은 옥천환을 보았다.
옥천환은 조금 전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니까 강을 건널 수 있게 화살을 쏘는 자들의 시선을 끌어 달라고 했는데 갈황이 거절했다는 거냐?”
“그렇습니다.”
옥천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이냐?”
좌무백은 갈황을 보며 물었다.
“저기…….”
갈황은 말끝을 흐렸다.
“사실이냐고 물었다.”
좌무백의 몸에서 추상같은 기운이 흘러나왔다.
“죄송합니다, 심황.”
갈황은 고개를 숙였다.
“죽일 놈!”
좌무백의 눈동자가 붉게 변했다. 이어 그의 손바닥이 갈황의 가슴으로 향했다.
퍼억!
“크아악!”
갈황이 처절한 비명을 내지르며 나가떨어졌다. 너부러진 갈황의 가슴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엄청나네.’
옥천환은 내심 신음을 내뱉었다.
방금 좌무백은 손을 내뻗기는 했지만 갈황의 가슴에 닿지 않았다. 그런데 갈황의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버린 것이다.
‘혈공穴功이라고 했던가?’
삼백 년 전에 천하를 강타했던 좌무백의 독문 무공 중 하나가 바로 구멍을 뚫는 무공이란 뜻을 가진 혈공이었다. 말로 들을 땐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보니 가공하다는 말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잘 들어라!”
좌무백은 뒤편에 있는 신족을 보며 소리쳤다.
“인간은 과거엔 우리의 노예였지만 지금은 동료다. 아직도 인간을 하등 종족으로 여기고 무시하는 자는 죽음으로 다스릴 것이다.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심황.”
능천사대 대원들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쿡!’
옥천환은 내심 웃었다.
진정 동료로 인정한다면 굳이 노예란 말을 쓸 필요가 없다. 그런데 좌무백은 ‘노예’와 ‘하등 종족’이란 말을 할 때 힘을 주었다.
그건 곧 인간은 여전히 하등 종족이고, 하등 종족은 노예 신분이 어울린다는 뜻이다.
‘하지만…….’
옥천환은 좌무백의 뒤통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일조는 앞으로 나와라!”
좌무백은 다시 소리쳤다.
그러자 신족 이백 명이 좌무백 근처로 왔다.
“너희들은 지금부터 활을 든 자들을 공격해라.”
“알겠습니다, 심황.”
능천사대 대원들이 일제히 날아올라 날개를 펼쳤다. 백여 장 높이까지 올라간 그들은 거꾸로 서더니 마가 진영을 향해 날아갔다.
“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다리를 놔야 합니다.”
옥천환이 좌무백을 보며 말했다.
“잠시 후면 다리가 놓아질 테니까 기다려라.”
“어떻게…….”
“능천사대 대원들이 공격을 시작했다, 옥 림주.”
“그거야…….”
―우리도 공격을 시작하라는 뜻이에요, 림주.
방가려의 전음이 들려왔다.
―조금 있다가 해도.
―지금 저 사람은 화가 많이 났어요. 공연한 불똥 튀기 전에 서둘러 공격하는 게 나아요.
―알았소.
“암흑 일조는 공격하라!”
옥천환은 버럭 소리쳤다. 마가로 건너가기 위한 공격인데 모두 물로 뛰어들 필요는 없었다.
옥천환 주위에 있던 검은 옷을 입은 자들이 일제히 물로 뛰어들었다.
풍덩! 풍덩! 풍덩!
“일비는 공격하라!”
“일환은 공격하라!”
이어 방가려와 척사랑이 공격 명령을 내렸다.
두 문파 무인들 중 백여 명 정도가 앞에서 화살을 막고 있는 이들을 지나쳐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때 능천사대 대원들도 마가 진영으로 내리꽂히고 있었다.
“쏴라!”
우렁찬 외침이 터져 나오고 수백 대의 화살이 허공을 갈랐다. 무인들이 쏜 화살은 보통 화살과 달랐다. 내공이 잔뜩 실린 화살이라 속도도 더 빠르고 쳐 내는 것도 쉽지 않다.
화살이 날아가는 속도에 신족이 날아오는 속도가 더해지면서 화살의 상대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푹! 푹푹! 푹푹푹푹!
화살은 신족 몸통을 뚫었다.
“크억!”
“아악!”
“으악!”
아래를 향해 내리꽂히던 신족들이 서하로 떨어져 내렸다.
“저기 시체가 떠오릅니다.”
강물을 쳐다보던 누군가가 소리쳤다.
물속에 매복하고 있던 백팔무영비와 암흑마단에 당해 떠오른 시체였다. 시체는 계속해서 떠올랐다. 서하는 화살에 맞아 떨어진 신족의 시체와 물속으로 뛰어들었던 자들 그리고 마가의 백팔무영비와 암흑마단의 시체로 가득 찼다. 마치 떼죽음을 당한 물고기가 떠올라 있는 것 같았다.
“아악!”
“으아악!”
“크아악!”
건너편에서 처절한 비명이 들렸다. 하늘에서 날아내린 신족들이 궁수들을 공격한 것이었다.
“궁수를 보호하라!”
“죽여라!”
마가 진영에서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다. 그 덕분에 화살 공격이 뜸해졌다.
“다리가 놓아졌다, 옥 림주.”
좌무백은 옥천환을 보며 말했다.
“다리가 어디에…….”
옥천환은 의아한 얼굴로 좌무백을 보았다.
“저게 안 보이느냐?”
좌무백은 서하를 가리켰다. 아니 그가 가리킨 건 서하에 떠 있는 시체였다.
“그러니까?”
“멋진 인육교人肉橋가 만들어지지 않았느냐.”
좌무백은 싱긋 웃었다.
‘아, 자식은 나보다 더 미친 놈이네.’
옥천환은 어이가 없었다. 물론 시체를 밟고 강을 건너면 된다. 하지만 저걸 다리라고 부르진 않는다. 그런데 좌무백은 그걸 보고 웃는다.
그는 정말로 미친 자였다.
“시간 없다, 옥천환.”
“알았습니다.”
옥천환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진격 명령을 내렸다.
“해림 무인은 진격하라!”
“천야교 문도는 진격하라!”
“환수각 문도는 진격하라!”
옥천환에 이어 방가려와 척사랑이 공격 명령을 내렸다.
“차하!”
“타하!”
“이야압!”
수백 명이 동시에 바닥을 차고 몸을 날렸다. 몸을 날리면서 그들은 내려설 자리를 물색했다. 그러다가 시체가 보이면 그걸 박차고 재차 도약했다.
“능천대는 공격하라!”
좌무백은 하늘을 향해 고함을 내질렀다.
“와아아아아!”
“우와아아아!”
능천일대, 이대, 삼대 대원 삼천여 명이 일제히 함성을 내지르며 마가를 향해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