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497)
―알았어요.
아수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척사랑의 말이 맞다. 지금은 싸울 때가 아니라 물러날 때다.
―그럼 난 갈게요.
척사랑은 곧바로 자리를 떴다.
“저기!”
사미염은 이편을 향해 몸을 날려 오는 신족을 가리켰다. 다른 자들과 달리 그들은 활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화탄이야.”
아수수는 곧바로 바닥을 찼다. 그녀의 신형이 뚫린 지붕을 뚫고 솟구쳤다.
―총관!
아수수는 허공으로 솟구치면서 나박을 불렀다.
―말씀하십시오, 가모님.
나박은 쇠뇌를 장정하고 있는 사미염을 흘끔 쳐다보고는 전음을 보냈다.
―팔고정八古井 알죠?
―팔고정이면…… 알고 있습니다.
나박은 버려진 우물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팔고정은 해자 근처에 있는 여덟 개의 우물을 말한다. 언제 팠는지 알 수는 없고 이름만 우물이지 물은 차 있지 않다.
“차하!”
아수수는 자신의 무기인 백상을 내던졌다.
백상검법의 마지막 초식인 백무월광무로 이기어검술이었다.
그녀가 던진 백상은 공간을 건너뛰더니 아래로 내려오는 신족을 향해 쏘아져 갔다.
“피, 피해…….”
백상을 발견한 신족은 질겁했다. 피하기 위해 날갯짓을 했지만 소용없었다.
퍽!
백상은 그대로 신족의 몸통을 뚫었다. 신족의 몸을 뚫고 나온 백상은 하늘로 솟구치더니 다른 신족을 향해 쏘아졌다. 이기어검술로 적을 공격하면서 아수수는 나박에게 전음을 보냈다.
―지하 대피소 안쪽에는 굴이 있어요. 그 굴을 따라가면 고정 아래에 도착해요. 그리고 그 고정 아래쪽에 있는 문을 열면 동굴 길이 나오는데 팔촌과 이어져 있고요.
―거기로 이동하란 말씀이십니까?
―가지 않으면 마가는 몰살해요.
―알겠습니다.
나박은 고개를 끄덕였다.
콰앙! 콰앙! 콰앙! 콰앙!
다른 곳 지붕에서 화탄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악!”
“으아악!”
“크아악!”
폭발음에 이어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다.
적의 화탄 공격을 방어하지 못한 건물에서 흘러나온 비명이었다.
아수수는 방금 공격으로 부서진 건물을 헤아렸다. 모두 스무 채였다.
“아!”
아수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스무 채의 건물이 부서졌다는 건, 쇠뇌 스무 대가 파괴됐다는 걸 뜻한다.
날아다니는 적을 잡을 수 있는 유일한 무기가 쇠뇌인데 이번 화탄 공격으로 절반이 사라지고 만 것이다. 쇠뇌를 쏘던 이들도 죽임을 당하거나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을 게 분명하다.
―활을 준비하겠습니다, 가모님.
광인효의 전음이 들려왔다.
―그렇게 하세요.
아수수는 다시 힘을 냈다.
적도 아군을 조준 사격을 하는 게 아니다. 아직은 절망할 때가 아니었다.
휙! 휙휙! 휙휙!
바로 그때 노인들이 지붕으로 올라왔다.
적순우를 비롯한 장수원 원로들이었다. 그들의 손에는 활이 들려 있었다.
“할머니.”
아수수는 적순우를 불렀다.
“수고가 많네. 우리도 돕겠네.”
적순우는 일행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원로들은 사방으로 몸을 날려 자리를 잡았다.
“감사합니다.”
아수수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다시 쇠뇌 자리로 가서 쏠 준비를 했다.
“얼마나 부쉈느냐?”
이약선이 부대주에게 물었다.
“아직 스무 대가 남았습니다.”
아래를 살피고 온 부대주가 대답했다.
“불화살을 쏴라!”
“알겠습니다.”
부대주는 날개를 펼치며 날아갔다.
“건물을 향해 불화살을 쏴라!”
부대주의 명령이 떨어지자 능천이대 대원들은 끝에 솜뭉치가 달려 있는 화살을 꺼내 시위에 걸었다.
그들은 삼매진화로 불을 붙인 후 아래를 향해 날아갔다. 건물이 크다고는 하지만 정확하게 맞히기 위해서는 좀 더 가까이 가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이번엔 불화살이야.”
사미염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화살 준비해.”
아수수는 쇠뇌를 움직여 하늘을 겨냥했다. 아래로 날아오는 적이 쇠뇌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오자 방아쇠를 당겼다.
텅!
시위가 놓이고 석 대의 화살이 하늘을 향해 날아갔다.
퍼억! 퍼억! 퍼억!
“크악!”
“아악!”
“으아악!”
허공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쇠뇌 화살에 죽임을 당하면서도 신족들은 계속해서 내려왔다.
거의 오십 장 높이까지 내려왔을 때였다.
“쏴라!”
지상에서 우렁찬 외침이 터져 나왔다.
슈아악! 스아악!
수백 대의 화살이 허공으로 솟구쳐 올라갔다. 마가 무인들이 쏜 화살이었다. 내공이 실린 화살은 오십 장 높이까지 쉽게 올라갔다.
푹! 푹푹푹! 푹푹푹!
살을 파고드는 소리와 함께 엄청난 수의 신족이 추락했다. 그 와중에도 신족은 계속 아래로 날아갔다. 그리고 당기고 있던 시위를 놓았다.
그들의 손을 떠난 불화살은 마가 각 건물로 박혀 들어갔다. 화탄 공격에서 살아남았던 건물들이 불길에 휩싸였다.
건물에 불이 붙었다는 건 곧 더 이상 엄폐물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신족의 화살을 피해 건물 안으로 들어가 있던 마가 가솔들이 뛰어나왔다.
“쏴라!”
부대주의 입에서 살기 어린 외침이 터져 나왔다.
신족들은 일제히 시위를 당겼다 놓았다.
슈아악!
신족의 내공에 중력이 더해지자 화살은 엄청난 속도로 날아갔다.
“화살을 쳐 내라!”
마가 수뇌들은 고함을 내지르며 무기를 휘둘렀다.
“컥!”
“큭!”
“으윽!”
화살을 쳐 내지 못한 자들은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졌다. 하늘에서 비처럼 떨어지는 화살은 그들이 쳐 내기에는 너무 강하고 빨랐다. 게다가 넓은 범위에 걸쳐 떨어지기 때문에 피할 곳도 없었다.
“쏴라!”
마가 무인들만 당하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그 자리에 선 채 하늘의 신족을 향해 화살을 쏘았다.
어중간한 높이에 있던 신족들은 화살을 맞고 떨어졌다.
“화살을 다 썼습니다.”
부대주는 이약선에게 보고를 했다.
“올라간다!”
이약선은 허공으로 솟구치며 소리쳤다.
“화살을 다 쏜 대원은 상승하라!”
부대주는 고함을 내지르며 이약선을 따라 날아올라갔다.
“물러가고 있어.”
쇠뇌 시위에 화살을 걸던 사미염이 말했다.
“물러간 게 아니라 교대하는 거야.”
“다음 무기는 뭘까?”
“글쎄.”
아수수는 고개를 저었다.
척사랑은 하늘과 땅에서 공격을 할 거라고 하였지 사용 무기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건 곧 그녀도 모르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 그만 나가야 되는 거 아냐?”
사미염은 뜯겨 나간 지붕 밖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불길이 무서운 속도로 올라오고 있었다.
“철 대주에게 불을 끄라고 했어.”
아수수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마가대 대원들이 불길을 향해 물을 끼얹었다.
“다른 건물도 불을 껐으면 좋을 텐데…….”
사미염이 다른 건물로 시선을 주며 중얼거렸다.
“온다!”
아수수가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
사미염은 고개를 들었다. 달빛을 가르며 신족 수백 명이 마가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마치 달 속에 둥지를 틀고 있던 박쥐가 먹이를 찾아 한꺼번에 나오는 광경 같았다.
“저거 창 같지.”
막대 형태의 기다란 물체를 들고 있는 걸 본 아수수가 말했다.
“그런 것 같아.”
사미염은 고개를 끄덕였다.
“창이다. 준비하라!”
아수수는 고함을 내질렀다.
“방패를 들어라!”
“방패를 들어라!”
“가솔들은 방패를 들어라!”
사방에서 우렁찬 외침이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들은 아수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진짜 방패인지, 이곳에서 급조한 건지 알 수는 없지만, 맨몸으로 서 있는 것보다는 나을 터였다.
적을 겨냥한 아수수는 쇠뇌 방아쇠를 당겼다.
석 대의 화살이 무서운 속도로 허공을 갈랐다. 그 순간 사미염은 쇠뇌가 튀어 나간 건물의 수를 세었다. 모두 열 곳이었다.
‘그래도 서른 대지.’
각 쇠뇌당 석 대의 화살을 쏘니까 한 번에 서른 대를 쏠 수 있다는 뜻이었다.
퍼억! 퍼억! 퍼억! 퍼억!
허공을 가른 서른 대의 쇠뇌 중 절반 정도가 신족의 몸을 뚫었다. 비명과 함께 신족이 아래로 떨어졌다.
“던져라!”
신족 측에서 살기 어린 외침이 터져 나왔다.
“차하!”
“타하!”
“하아!”
기합과 합께 일천 개의 창이 지상으로 쏘아졌다. 내공이 잔뜩 실린 창들은 강력한 무기였다.
퍼억! 퍼억! 퍼억! 퍼억!
신족이 밀어 넣은 내기에 중력의 힘까지 더해지자 창은 더 이상 가느다란 막대가 아니었다. 거대한 기둥이었다. 창이 박혀 든 건물에는 지름이 한 자가 넘는 커다란 구멍이 생겨났다.
우르르르! 우르르르!
마가 건물 대부분이 이번 창 공격으로 무너졌다.
아수수와 사미염 일행은 건물 밖으로 나왔다.
그녀가 내려오자 마가대 마마호위대 암흑마단 수장들이 다가왔다.
“총관은 어디 있죠?”
아수수는 나박을 불렀다.
“네, 가모.”
나박이 대답과 함께 다가왔다.
“가솔들은 어떻게 됐어요?”
“지금 피하는 중입니다.”
“얼마나 걸릴 것 같아요.”
“반 시진이면 됩니다.”
“율장!”
이번에는 율장 장주 채윤을 불렀다.
“네, 가모님.”
채윤이 아수수 앞으로 왔다.
“지금부터 율장의 임무는 가솔 보호예요. 팔고정으로 들어가서 가솔들이 피하는 걸 돕도록 하세요.”
“우리도 여길 지키겠습니다, 가모님.”
채윤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채 장주의 마음은 나도 알아요. 하지만 우리가 싸우는 이유를 생각해 보세요.”
“알겠습니다. 목숨 걸고 가족을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가세요.”
“그럼 보중하십시오.”
채윤은 아수수를 향해 허리를 꺾고는 자리를 떴다.
뎅뎅뎅! 뎅뎅뎅! 뎅뎅뎅!
다시 비상종이 울렸다.
“적이 쳐들어온다! 적이다.”
비상종 소리에 이어 적의 침입을 알리는 외침이 들렸다. 아수수와 사미염 일행은 하늘을 보았다. 신족들의 움직임은 없었다.
“지상에서 공격해 오는 거야.”
아수수가 사미염에게 말했다.
“어느 쪽이냐?”
아수수는 고함을 내질렀다.
“동문입니다.”
경계를 서는 자가 대답했다.
“모든 마가 무인들은 동문으로 집결하라!”
아수수는 동쪽으로 내달리며 소리쳤다. 그녀가 몸을 날리자 거석이 이끄는 마가대, 사마영이 이끄는 마마호위대, 광인효가 이끄는 암흑마단, 그리고 사미염이 이끄는 백팔무영비가 따랐다.
서천전에서 동문까지는 경공을 펼쳤을 때 한 식경 걸린다. 반 식경 정도를 달렸을 때 아수수 귓전으로 많은 기척이 걸려들었다.
각 천장과 가솔들이 내는 기척이었다.
“동천장은 어디 있죠?”
그녀는 항우각을 불렀다.
“저 여기 있습니다.”
오십여 장 떨어진 곳에서 항우각의 대답이 들렸다.
―동천장은 후미로 빠지세요.
아수수는 전음으로 바꿔 말했다.
―뒤로 빠지라 하심은?
―동천장과 북천장은 하늘을 감시해 주세요.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북천장에게는 동천장이 연락하도록 하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런데…… 희생은 얼마나 났죠?
아수수는 잠시 망설이다 물었다.
―우려할 정도는 아닙니다.
―동천장!
―삼분의 일이 당했습니다.
―그렇군요. 아무튼 수고해 주세요.
―몸조심하십시오.
―네.
아수수는 다시 몸을 날렸다. 잠시 후 일행은 동문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