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496)
그들의 수는 처음 나타났던 자들과 비슷했다.
아수수와 사미염은 위로 올라갔다. 마가를 살피기 위해서였다. 마가는 처참했다. 진식은 이미 파훼됐고 수백 채의 건물에서 불길이 오르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가솔들이 당했는지 파악조차 할 수가 없었다.
“군사!”
아수수는 유공을 불렀다.
“네, 가모!”
유공이 대답하며 달려왔다.
“쇠뇌를 준비하라고 하세요.”
아수수는 그렇게 말하고는 지붕 안쪽으로 나 있는 문을 열었다. 문 안쪽은 폭이 오 장 정도 되는 공간이었다.
“알겠습니다.”
유공도 대답을 하고 뛰어갔다.
“쇠뇌를 준비하라!”
잠시 후 내공이 가득 실린 유공의 목소리가 마가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쇠뇌를 준비하라!”
“쇠뇌를 준비하라!”
이어 복창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긴?”
사미염은 의아한 얼굴로 공간을 보았다.
지금 있는 이곳은 천장 안쪽이 아니다.
천장 위쪽으로, 방금 아수수가 연 그 문을 통하지 않고는 들어올 수 없는 비밀 공간이다.
공간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천이 있었다. 천은 커다란 뭔가를 덮고 있었다.
‘저게 쇠뇌구나.’
조금 전에 아수수가 쇠뇌를 준비하라고 말을 하기도 했지만, 사미염은 전부터 쇠뇌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었다. 특이하게도 마가는 지붕에 쇠뇌가 설치돼 있다고 하였다. 모든 건물에 있는 게 아니라 고대에 지어진 건물에만 있다고 했다.
성벽이나 평지가 아닌 지붕 바로 아래쪽에 쇠뇌가 있는 이유가 궁금해 그녀의 할머니께 물은 적이 있었다. 그때 할머니는 고대의 유물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건 사미염도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더 자세한 것을 알고 싶어 물었는데 할머니도 아는 게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더 이상 묻지 않았을 뿐 아니라 궁금증도 접었다.
“저 앞을 부숴.”
아수수는 쇠뇌 앞 벽을 가리켰다. 정확하게는 벽이 아니고 지붕이었다.
“일장을 날리면 돼?”
사미염이 물었다.
“응!”
아수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미염은 아수수가 가리킨 곳을 향해 일장을 날렸다.
콰앙!
둔탁한 소성과 함께 지붕이 사각형 형태로 떨어져 나갔다.
그러자 하늘이 한눈에 들어왔다.
하늘에는 엄청난 수의 신족이 새처럼 날아다니며 아래를 향해 활을 쏘고 있었다.
아수수는 천을 벗겼다.
그러자 길이가 일 장에 달하는 거대한 노弩가 모습을 드러냈다. 노는 정사각형의 커다란 발사대 위에 걸쳐져 있었다.
“그거 작동해?”
사미염이 물었다.
“돌아오자마자 이것부터 점검했어.”
아수수는 쇠뇌에 화살을 걸며 말했다.
화살의 길이는 성인 키 정도 되는 여섯 자였다.
쇠뇌는 세 개의 화살을 장전할 수 있게 돼 있었다.
“전부 몇 개가 있는데?”
“오십 개.”
화살 세 대를 장전하고 나서 현을 잡아당겼다. 현은 뒤편 고리에 걸게 돼 있었다.
“그거 당길 때 공력을 얼마나 사용한 거야?”
“삼 갑자.”
“삼 갑자 공력을 사용해서 당길 정도면 일반 양민들은 엄두도 못 내겠네.”
사미염은 혀를 내둘렀다. 말이 좋아 삼 갑자지 그 정도면 마가 내에서도 당길 수 있는 이들이 그리 많지 않을 것 같았다.
아수수는 발사대 옆에 나와 있는 발판 같은 걸 밟았다. 그러자 노가 위로 한 자가량 올라왔다. 그 상태에서 방아쇠와 손잡이를 잡고 아래로 내리자 화살이 하늘을 겨냥했다. 쇠뇌는 좌우로 방향을 바꾸는 것도 가능했다.
“대신족용으로 만든 건가?”
문득 든 생각이었다. 하늘을 겨냥할 수 있게 해 두었다는 건, 하늘에 있는 적을 없애기 위한 것이란 뜻이 된다. 마가 입장에서 하늘에 있는 적이란 신족뿐이다.
“이름이 사신노死神弩야.”
“맞구나.”
사미염은 고개를 끄덕였다.
“화살 준비해 줘.”
“알았어.”
사미염은 창이라고 해도 이상할 게 없는 화살 석 대를 집어 들었다. 바로 그때 두 번째 무리가 무서운 속도로 내려왔다.
“놈들이 또 온다! 대비하라!”
아수수는 고함을 내질렀다.
“놈들이 또 온다!”
“대비하라!”
“대비하라!”
마가 곳곳에서 외침이 들려왔다.
이번에도 신족들은 백 장 높이까지만 내려왔다. 곧 일천 대의 화살이 비처럼 쏟아졌다.
퍽! 퍽! 퍽퍽퍽! 퍽퍽!
“크아악!”
“아악!”
“으아악!”
사방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속수무책이었다. 손이 닿는 곳이라면 반격이라도 해 볼 텐데, 허공 백 장 높이까지 날아 올라갈 수 있는 무인은 아무도 없었다.
바로 그때 아수수가 방아쇠를 당겼다.
텅!
슈아악!
석 대의 화살이 엄청난 속도로 허공을 갈랐다. 쇠뇌가 쏘아진 곳은 아수수가 있는 건물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건물에서도 쇠뇌가 쏘아졌다.
퍼억! 퍼억! 퍼억! 퍼억!
“크아악!”
“아아악!”
“으아아악!”
신족 진영에서도 처절한 비명이 줄을 이었다. 쇠뇌에 맞은 신족들은 화살 맞은 기러기처럼 뚝뚝 떨어졌다.
“뭐냐?”
능천이대 대주 철검마노 전역사는 질겁하며 물었다. 자신들이 있는 곳은 지상에서 백 장.
공격을 받을 위치가 아니었다.
“화살입니다! 아니 창입니다!”
슈아악! 슈아악!
또다시 대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턱! 턱턱! 턱턱! 턱턱!
“크악!”
“아악!”
“으아악!”
“가까이 가라. 활을 쏘는 자를 확인 사살을 하라!”
전역사는 고함을 내질렀다. 아래쪽에서 쇠뇌를 쏘는 자를 없애라는 명령이었다.
휘이익! 휘이이이! 휘이익!
능천이대 대원들은 휘파람을 불며 자맥질을 하는 것처럼 상하체의 위치를 바꿨다.
몸이 거의 물구나무선 상태가 되자 추락하는 것처럼 떨어졌다. 그들의 손에 들린 활은 시위가 팽팽하게 당겨진 상태였다.
“놈들이 온다! 쏴라!”
아수수는 고함을 내지르며 쇠뇌 방아쇠를 당겼다.
푸아악!
석 대의 화살이 허공을 갈랐다.
순식간에 오십여 장을 솟구친 화살은 아래로 쏘아져 오던 신족의 몸을 뚫었다. 석 대 중 신족의 몸을 뚫은 화살은 두 대였다.
“크악!”
“아악!”
화살에 관통당한 두 명이 처절한 비명을 내지르며 뚝 떨어졌다.
그 순간 신족들은 당겼던 시위를 놓았다.
슈아악! 슈아악!
수백 대의 화살이 마가 진영으로 쏟아졌다. 화살의 목표점 대부분은 쇠뇌가 있는 지붕이었다.
“차하!”
사미염은 천추부동의 자세로 하늘을 떠받치듯 양팔을 밀어 올렸다.
고오오오!
순간 그녀의 양팔에서 무형의 기운이 흘러나와 반구를 형성했다.
텅! 텅텅텅! 텅텅!
수십 대의 화살이 반구에 부딪쳐 튕겨져 나갔다. 그런 상황은 아수수와 사미염이 있는 곳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었다. 쇠뇌를 쏘고 있는 모든 지붕에서 일어났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쇠뇌를 쏘는 이들은 마가에서 가장 강자들이다. 그들을 향해 화살을 쏘아 봐야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전역사는 욕설을 내뱉었다.
“왜 그러는가?”
능천일대 대주 이약선이 전역사 곁으로 다가가며 물었다. 능천일대 임무는 끝났지만 그를 비롯한 능천일대는 무기 공격이 끝나면 지상에서 공격하는 자들과 맞춰 마가로 쳐들어가기 위해 하늘에서 대기 중이었다.
“저것 때문이네.”
전역사는 마가 건물 지붕을 가리켰다.
이약선은 구멍으로 시선을 주었다.
“저기에 뭐가 있다고…… 어?”
뚫린 지붕에서 커다란 화살이 튀어나오는 게 보였다. 화살은 엄청난 속도로 솟구쳤다.
“크아악!”
“아아악!”
“으악!”
능천이대 대원 수십 명이 비명과 함께 아래로 추락했다.
“놈들이 준비를 하고 있었구먼.”
이약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화탄 남은 거 있는가?”
“이백 개 정도 남아 있네.”
이백 개는 꼭 필요한 경우에 사용하기 위해 남겨 둔 비상용이었다.
“그게 필요하네.”
“저 안으로 던져 넣을 생각인가?”
이약선은 쇠뇌가 있는 지붕을 가리켰다.
“화살로는 저들을 없앨 수 없네.”
전역사는 지붕을 가리켰다.
“포탄을 던지는 건 내 대원에게 시킬 수 없네.”
“……화탄만 건네주면 우리가 하겠네.”
전역사는 이약선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능천일대에게 시킬 수 없다는 말이 섭섭하긴 하지만 해 달라고 할 수는 없다.
상급자가 자기 대원의 목숨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게 당연하니까. 지금은 능천이대 임무를 수행 중이고 능천일대에게 해 달라고 할 수는 없다. 화탄을 내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한다.
“가져오라고 하겠네.”
이약선은 곧바로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잠시 후 오른편 하늘에서 능천일대 대원 이백 명이 날아왔다. 그들은 화탄을 하나씩 들고 있었다.
그들은 화탄을 능천이대 대원들에게 넘겨주었다.
“쇠뇌는 전부 몇 대냐?”
이약선은 부대주에게 물었다.
“총 사십 댑니다.”
원래는 오십 개 건물 지붕에 오십 대의 쇠뇌가 설치돼 있었는데 신족의 화탄 공격으로 열 대가 부서져 현재는 사십 대만 남아 있었다.
“화탄을 든 대원을 다섯 명씩 나눠라!”
“알겠습니다.”
부대주는 빠르게 조를 나눴다.
“반드시 파괴해야 한다. 알겠느냐?”
이약선은 화탄을 든 자들을 보며 소리쳤다.
“알겠습니다.”
대원들은 일제히 소리쳤다.
“가라!”
이약선의 명령이 떨어지자 화탄을 든 대원들이 일제히 자리를 떴다.
“나 총관!”
아수수는 시위를 당기면서 뒤편에 서 있는 나박을 불렀다.
“네, 가모님!”
나박은 얼른 아수수 옆으로 다가갔다.
“광 단주를 불러오세요.”
아수수가 말한 광 단주는 암흑마단 단주 묵지도 광인효를 말한다.
“저 여기 있습니다.”
근처에 머물고 있었던 듯 자기 이름이 불리자 곧바로 다가갔다.
“마가 주위는 살펴봤나요?”
“경황이 없어 아직 살펴보지 못했습니다.”
“저들이 마가를 치러 왔다면 하늘로만 공격해 오지 않을 거예요. 지금 바로…….”
―굳이 살피러 갈 필요 없어요.
그때 아수수의 귓전으로 여자 전음이 들려왔다.
아수수는 재빨리 천리지청술을 펼쳤다.
전음을 보낸 여자의 기척은 백 장 떨어진 건물 뒤편에서 발견됐다.
‘강자?’
백 장 떨어진 곳에서 보낼 수 있는 전음은 천리전음뿐이고, 천리전음은 절대 고수가 아니면 펼치지 못한다.
―누구죠?
아수수는 방아쇠를 당기며 전음을 보냈다.
―척사랑이에요.
―아!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으세요. 마가를 공격하는 전력은 신족이 사천 명이고 환수각, 해림, 천야교 무인이 천 명가량 돼요.
―춘추오패 수장들도 있나요?
척사랑이 이곳에 있어서 묻는 말이었다.
―나와 옥천환, 방가려가 있어요.
―으음!
아수수는 자기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었다.
적의 수는 오천 명이고 그중 사천 명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신족이며 일천 명은 중원무림에게 가장 강한 자들이다. 마가가 아무리 강하다고 하지만 그들과 싸워 승리할 수는 없다. 팔전이라도 있으면 모르지만 그들은 금장생과 함께 출병한 상태.
―무조건 피해야 해요.
척사랑의 목소리에는 반드시 자기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는 단호함이 어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