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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492화 (492/524)

황금가 (492)

과신의 끝

“폭! 강! 패!”

무혼은 광포하게 외치며 그랜드 크로스를 아래로 내리그었다.

푸아악!

순간 강기의 폭풍이 불었다. 마치 커다란 굴을 뚫는 것처럼 거무스름한 기운은 전방을 휩쓸었다.

“끄아아악!”

“크아악!”

“으아악!”

“아악!”

마원 무인들은 자신들의 무기로 막아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아스가 펼친 강기의 폭풍은 금세 피의 폭풍으로 변했다.

강기 폭풍이 나아간 거리는 십 장에 달했고 그 안에 있던 마원 무인들은 모두 어육으로 변했다.

“우리도 가세!”

적사월이 대검을 들어 올린 채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그의 철갑거인 렉탄이 들고 있는 검은 적사월이 사용하는 검보다 크기만 컸을 뿐 모양은 같았다.

전장으로 뛰어든 렉탄이 검을 교묘하게 휘둘렀다. 그러자 허공에 수십 개의 검이 나타났다. 그 검들은 곧바로 마원 무인들을 향해 쏘아져 갔다.

퍽! 퍽퍽퍽! 퍽퍽! 퍽퍽퍽!

“크악!”

“아악!”

“으악!”

“아악!”

사방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비마전 혹은 원로전 무인들이 강하다고는 하지만, 적사월보다 약하다. 그런데 철갑거인은 적사월보다 두 배 혹은 세 배 더 강하다. 그들이 철갑거인의 공격을 막아 낸다는 게 애초에 무리였다.

다만 렉탄의 덩치가 워낙 크다 보니 틈새를 파고들어 장갑에 흠집을 내는 건 가능했다. 그마저도 렉탄이 발길질을 해 대면 흠집을 내기도 전에 죽임을 당하기 일쑤였다.

렉탄의 검이 다시 한번 허공을 갈랐다.

“끄악!”

“아악!”

“크악!”

십여 장 떨어진 곳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적사월은 시선을 돌렸다. 검을 휘두르고, 왼손을 내밀 때마다 가공할 열기가 쏟아져 나오는 철갑거인은 화노왕 금웅의 카루라였다.

“더 강해졌군.”

적사월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자신은 물론이고 금웅은 원래부터 강했다. 물론 자신이 활동할 때는 지금처럼 체계적인 무공은 없었다. 오로지 경험을 통해 강해지는 방법을 터득하였고 후손들에게 물려주었다. 대를 거칠수록 그 힘은 점점 더 강해졌다. 방문자들에게 반기를 들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강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보다 더 강하다.

인시로 다시 태어나면서 수백 년의 공력을 얻었고 무공까지 익혔다.

방금 금웅이 손으로 펼친 무공은 화왕 금제황의 건곤열화신공乾坤熱火神功이다. 맨손으로 펼쳐도 막을 사람이 없을 터인데, 철갑거인이 펼치면 말할 나위가 없다.

앞으로 한 식경 혹은 반 시진, 철갑거인에 탑승하고 있는 그 시간 동안 자신들은 천하제일이다.

“너희들은 오늘 다 죽는다!”

적사월은 다시 적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금장생은 여덟 명에게 따로따로 무공을 전수하지 않았다. 하지만 많은 기회를 통해 자신이 알고 있는 무공 구결을 알려 주었다.

팔장군들은 그 무공들 중 자신에게 필요한 걸 취했다. 해노왕 혁군왕이 선택한 무공은 창해파랑천결蒼海波浪天結로, 원래 창법이다.

금장생이 구술해 준 많은 무공 중에 유성추로 펼치는 건 없었다. 따라서 알고 있는 무공을 변형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창해파랑천결을 택한 건 다른 무공보다 변형이 쉬워서였다. 수백 번을 펼치고 나자 비로소 유성추로 펼치는 무공으로 바꿀 수 있었다.

“흐흡!”

혁군왕은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전방으로 나아가며 유성추를 휘둘렀다. 어른 머리보다 몇 배 큰 추가 빙빙 돌아가면 바람 소리가 커다랗게 나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타호너가 돌리는 유성추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소리도 없이 무섭게 돌아가는 거대한 유성추.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건 유성추가 돌아가는 소리가 아니라 진득한 살기였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것보다 더 섬뜩했다.

수십 명이 타호너를 향해 몸을 날렸다.

타호너의 팔이 조금씩 변화를 보인 것은 그때였다.

휙! 휙휙!

손목을 약간만 틀어도 유성추는 방향을 바꿨다.

퍽! 퍽퍽퍽! 퍽퍽퍽!

캉캉! 카카캉! 캉캉!

오 장에 달하는 거대한 덩치라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빠르다.

그리고 화려하다.

유성추가 둔탁한 소리를 남길 때마다 피 안개가 확 퍼져 나갔다. 마치 타호너 바로 옆에서 붉은색 비눗방울이 계속해서 터지는 것 같았다.

타호너는 한 걸음을 나아갈 때 열 번을 휘두르고 두 걸음 나아갈 때 서른 번을 휘둘렀다. 그리고 휘두른 수만큼의 시체를 남겼다.

유유자적하다.

왼팔로 뒷짐을 지고 있는 철갑거인은 아무리 보아도 싸우는 것 같지가 않다. 유람을 나온 군자의 풍모 같았다. 뒷모습만 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시선을 돌려 앞으로 보면 분위기가 반전된다.

거대한 망치를 든 회색 괴물이다. 망치는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수십 번의 변화를 보이는데, 그 모든 변화는 죽음을 부른다.

망치에 당한 자들은 부서지는 게 아니라 형체를 알아볼 수도 없이 으스러져 버린다. 그리고 아무렇게나 너부러진다.

군자천하보君子天下步란 보법은 동방예의지국의 군자 걸음걸이지만 그 걸음걸이에 이어지는 손 속은 지옥에서 산다는 야차보다 더 잔인했다.

타바토르가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너부러진 시체들은 가루로 변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검은 철장거인인 데스퍼.

데스퍼는 말 그대로 사신이었다. 사신의 낫 하데스에 유령파천지幽靈破天指란 지법이 더해졌는데 왼손 손가락을 오므렸다가 튕길 때마다 적은 꼬치 꿰듯 줄줄이 죽어 나간다. 그 뒤를 사신의 낫 하데스가 뒤를 잇는다. 거대한 덩치가 움직여 다니는데 아무런 소리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소리 없이 움직여 다니며 적을 없애는 거대한 유령. 그것이 바로 데스퍼였다.

천하제일이라고 하였던 적사월의 말은 맞았다.

철갑거인의 무위는 상상을 초월했다.

철갑거인의 일수에 수십 명씩 죽어 나갔다.

천파는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눈앞에서 일어나는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비마전도 원로전도 마전 최강 무인들이다. 아니 자신은 중원 최강이라고 자부한다. 그런 그들이 몰살을 당하고 있다.

단 일곱에게.

“피해야 합니다!”

노인 한 명이 다가와 소리쳤다. 원로전 전주 원추였다. 천파는 멍한 얼굴로 원추를 보았다.

“저들은 우리가 상대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 가야 합니다.”

“어디로 간단 말입니까?”

“원주에겐 비마전과 원로전만 있는 게 아닙니다. 아직 만마전, 천마전, 지마전, 시마전이 남아 있습니다. 그들이 있으면 다시 시작할 수, 아니 시작이 아니라 그들만으로도 중원 최강입니다. 여기서 빠져나가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가…….”

“원주만 힘을 내면 나머지는 알아서 따라옵니다.”

원추가 단호한 얼굴로 말했다.

“알았소이다.”

천파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추의 말대로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지금까지 잃은 건 인마전뿐이다. 이곳에 있는 비마전과 원로전은 아직 무너진 게 아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원주님만 무너지지 않으면 마원은 절대 무너지지 않습니다. 원주님이 곧 마원입니다.”

원추의 말에 천파는 힘을 되찾았다.

“원로전 원로와 일대, 이대는 선두로 나와라! 삼대와 사대는 후방을 맡아라!”

원추는 전 내공을 실어 소리쳤다.

그의 외침이 퍼져 나가자 마원 무인들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전력을 가다듬더니 체계적으로 대항했다.

“철갑거인의 단점은 내공 소모가 극심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간을 끌면 된다.”

철갑거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 함께 들었던 말이다. 그때는 우스갯소리로 치부하고 넘겼는데 물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고, 그 말대로 따라 하는 수밖에 없었다.

―최대한 시간을 끌라고 하세요.

천파는 원추에게 전음을 보냈다.

―저들에 대해 아는 거라도 있습니까?

―저 철갑거인들이 움직이는 원천이 바로 무인의 내공입니다.

―아!

원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원로전과 비마전 대원들에게 전음을 보냈다. 천파 또한 비마전 각 대주들에게 전음을 보냈다.

‘응?’

무혼의 얼굴이 의아하게 변했다.

공격을 해 오던 마원 무인들이 갑자기 소극적으로 변하면서 피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저자들이 시간을 끌고 있소.

그때 적사월의 전음이 들려왔다.

―나도 알고 있소.

무혼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놈들 가운데로 가겠소.

―굳이 그럴 필요 없소. 한꺼번에 가서 치면 되오.

―알았소.

―갑시다.

무혼은 바닥을 차고 몸을 날렸다.

아스에 이어 나머지 철갑거인들도 마원 무인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묵 형, 신 형!

무혼은 달려가면서 묵천야와 신무를 불렀다.

―말하시오.

―네.

곧 두 사람의 대답이 들려왔다.

―두 분도 내려와서 공격하시오.

―알았소.

“놈들이 온다. 피해라!”

철저하게 시간을 끌기로 작정을 한 듯 마원 무인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도망치는 놈을 잡는 게 내 특기야.”

무혼은 좌우로 피하는 자들을 쫓아가며 무공을 펼쳤다.

“크악!”

“아악!”

“으아악!”

아스의 그랜드 크로스는 가차 없었다. 도망치듯 피하는 자들의 몸통을 갈가리 찢어 놓았다. 다른 철갑거인들도 다르지 않았다. 적이 피하는 바람에 무기를 거의 쓸 일이 없어지자 전왕 묵현우가 남긴 파천투破天鬪를 펼쳤다. 파천투는 손과 발을 모두 무기로 사용하는 권각술이었다.

철갑거인의 발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마원 무인들은 바람에 날리는 낙엽처럼 날아갔다.

“원주님.”

원추가 천파를 불렀다.

“왜 그러시오?”

“가십시오.”

“어딜 가란 말입니까?”

“나와 원로들이 저들을 막겠습니다.”

“나더러 도망치라는 겁니까?”

“일단 살아야 훗날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죽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

“어서 가십시오.”

원추는 천파에게서 멀어지며 말했다.

“원로전 원로들은 나를 따라라!”

천파는 고함을 내지르며 철갑거인들을 향해 달려갔다.

“와아아아!”

“우와와아!”

이미 이야기가 된 듯 원로전 원로들은 함성을 내지르며 원추를 따라 내달렸다.

“어서 가시오, 원주!”

원추는 천파를 돌아보며 고함을 내질렀다.

천파는 망연한 눈으로 원추를 보았다.

“우린 원주를 위해 죽는 게 아니오. 우리가 이 길을 가는 건 우리 자식들 때문이오. 무슨 말인지 알겠소?”

천파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시오!”

“알았습니다. 가겠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복수를 해 주겠습니다.”

천파는 몸을 돌렸다.

“비마전 대원들은 원주를 모셔라!”

원추는 다시 고함을 내질렀다.

그러자 주위에 있던 비마전 대원들은 천파를 철통같이 에워쌌다.

“가야 합니다, 원주님.”

대원 한 명이 소리쳤다.

천파는 고개를 돌렸다. 그의 얼굴이 약간 밝아졌다. 그에게 소리친 자는 비마전 부전주 장사앙이었다.

“가, 가자.”

천파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동하라.”

장사앙은 고함을 내질렀다.

그러자 천파를 에워싸고 있던 자들은 들어왔던 곳을 향해 움직였다. 계곡 폭이 넓은 곳으로 가면 빠져나갈 수 있을 거란 생각에서였다.

쿵쿵! 쿵쿵!

그런 그들을 향해 붉은색 철갑거인 한 기가 빠르게 다가갔다. 혈노왕 신무가 탑승해 있는 레드선이었다. 얼굴 없는 철갑거인인 레드선의 무기는 창이었다. 레드선이 들고 있는 창의 길이는 십 장이나 됐다.

“막아라!”

레드선을 발견한 장사앙은 버럭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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