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491)
아스가 팔을 들어 올리는 모습이 사람처럼 너무 자연스러웠던 것이다.
―공격하게.
원추는 광우치에게 급하게 전음을 보냈다. 대원들의 동요를 막기 위해서였다.
“차하!”
광우치가 곧바로 몸을 날렸다.
신법의 대가답게 그는 빨랐다. 순식간에 아스 앞으로 다가가 오른손을 휘둘렀다. 어느새 그의 손에는 새카만 수갑이 끼워져 있었다. 수갑 끝에는 반 자 길이의 손톱이 달려 있었는데 새카만 광채로 인해 번들거렸다. 광우치의 독문 병기인 쇄천조鎖天爪였다. 쇄천조는 내공을 주입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쇠를 잘라 내는 신병이었다.
카카카캉!
역시 광우치는 빨랐다.
순식간에 다가선 그의 쇄천조가 아스의 팔에 깊은 자국은 남겼다.
휙!
아스는 훌쩍 몸을 날려 일 장을 물러났다.
“차하!”
“타하!”
“하아!”
바로 그 순간 삼중마가 몸을 날렸다. 그들의 신법도 광우치 못지않게 빨랐다. 순식간에 일 장을 나아간 그들은 공격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공격한 자는 천중마 과허였다. 과허는 훌쩍 몸을 날려 아스의 얼굴을 향해 검을 찔러 갔다.
두 번째는 인중마 전죽이었다.
그는 과허보다 반 초 늦게 공격을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인중마 정하가 몸을 날렸는데, 맨 처음 공격을 시작한 과허보다 일 초가 지난 후였다.
세 사람은 동시에 공격을 하는 것 같지만 미세한 차이를 두는 공격을 해 왔던 것이다. 그런 공격이 계속 이어지면 상대방은 연환 공격을 당하는 것과 같은 상태가 되고 결국엔 지쳐 쓰러지고 만다.
세 사람은 이번에도 같은 공격을 했다.
“강强!”
무혼의 입에서 나직한 외침이 흘러나왔다.
그러자 아스의 몸 주위로 강한 기운이 형성됐다.
캉! 캉캉!
삼중마의 검이 순차적으로 아스의 몸을 쳤다. 하지만 광우치의 조처럼 흔적을 남기지 못했다.
아스의 몸 주위에 형성된 강한 기운이 세 사람의 검을 약화시킨 것이었다.
‘역시.’
무혼의 입가에 싱긋 미소가 어렸다.
천마 혁지광은 대단한 사람이 분명했다. 그는 십만마도법 하나에 모든 걸 담았다. 하나씩 펼치면 일당백의 강공이 되고, 두 초식을 펼치면 절정 무공이, 셋을 펼치면 신공神功이 된다.
그리고 자신의 몸에 적용하면 강력한 호신강기가 된다. 아직 확인하진 못했지만 풍風의 기운을 몸에 적용하면 기존의 신법을 더 강화시켜 줄 게 분명하다.
“확인해 보면 되지.”
“타하!”
바로 그때 왼편에서 나직한 기합이 들려왔다. 무혼은 시선을 돌렸다. 광우치가 바닥을 차고 있었다.
“강强! 패覇!”
무혼은 곧바로 두 가지 무공을 동시에 자신의 몸에 적용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아스의 몸 주위로 강력한 호신강기가 생겨나는 것이었다.
카카캉!
가슴 어름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광우치의 쇄천조가 아스의 가슴을 후려친 것이었다. 하지만 처음과 달리 이번에는 흔적이 남지 않았다. 강패가 쇄천조를 완벽하게 막아 낸 것이다.
“어느 정도 알았으니까.”
무혼은 오른편으로 시선을 주었다. 삼중마가 다시 달려오고 있었다. 조금 전 공격에서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못한 것 때문에 자존심이 상한 듯 전신에 흐르는 기운이 더 강해져 있었다.
“받았으니까 줘야지.”
무혼은 바닥을 가볍게 찼다.
그러자 아스가 오 장 높이로 솟구쳤다.
“풍風! 우雨!”
우렁찬 외침과 함께 그레이 훼일을 내리그었다. 그의 목표는 삼중마였다.
“억!”
삼중마 세 사람은 깜짝 놀랐다.
그들은 아스가 저렇듯 자연스럽게 움직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탓이었다. 게다가 그들을 향해 쏘아져 오는 기운이 너무 강했다.
“차하!”
“타하!”
천중마 과허와 인중마 정하가 앞으로 나오며 검을 휘둘렀다. 그 순간 키가 가장 작은 지중마 전죽이 전방으로 내달렸다. 순식간에 아스 뒤편까지 이동한 그는 바닥을 찼다.
콰콰쾅!
“음!”
“으음!”
뒤편으로 날려 가는 과허와 정하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퍼억! 퍼억!
뒤편으로 밀린 두 사람의 발이 바닥을 뚫고 들어갔다.
턱턱턱! 턱턱턱!
그리고 정신없이 물러났다. 물러나면서도 두 사람은 아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지중마 전죽의 공격이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그때 전죽은 신검합일 상태로 아스의 뒷목을 향해 쏘아져 가고 있었다.
그의 검이 아스의 목을 뚫으려는 순간이었다.
스윽!
마치 유령처럼 아스의 동체가 사라졌다.
“맙소사! 이형환위!”
과허는 경악한 얼굴로 소리쳤다.
놀랍게도 이 장에 달하는 거대한 쇳덩어리가 최상승 신법의 하나인 이형환위를 펼친 것이다.
그것도 허공에서.
아스가 모습을 드러낸 곳은 전죽 왼편이었다.
“패覇!”
무혼은 버럭 소리치며 그랜드 크로스를 횡으로 쓸었다. 거대한 도가 전죽의 허리를 향해 나아갔다.
“위험하다.”
“차하!”
과허와 정하는 동시에 바닥을 찼다.
두 사람이 바닥을 차는 순간 먼저 몸을 날린 광우치는 이미 아스 앞에 도착해 있었다. 그는 그랜드 크로스를 휘두르는 아스의 팔을 향해 쇄천조를 내리찍었다. 강기를 머금은 쇄천조가 가공할 속도로 떨어져 내렸다. 지금 위력이면 제아무리 아스라고 해도 팔이 잘려 나갈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광우치의 쇄천조가 아스의 팔을 가르려는 순간이었다. 조금 전 이형환위를 펼쳤을 때처럼 아스의 팔이 광우치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허, 허초?”
광우치의 눈이 커졌다.
전력을 다해 내뻗은 상황이라면 아무리 동작이 빠르다고 해도 이렇듯 빨리 거둬들이지 못한다.
공격을 멈추기 위해서는 먼저 쏟아 내던 내기를 거둬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빨리 거둬들이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공격하는 시늉만 해야 한다.
지금 상황이 그랬다.
‘어디…….’
광우치는 아스의 팔을 찾았다.
―왼편 머리 위요.
그때 전죽의 전음이 들려왔다.
머리 위란 말에 지체 없이 오른편으로 몸을 날렸다. 광우치는 허공답보 신법을 자유롭게 펼칠 정도로 신법의 대가였다.
오른편으로 반 장 정도 갔을 때였다. 황금색 광채가 엄청난 속도로 다가왔다.
“저, 저…….”
턱!
어찌해 볼 틈도 없이 황금색 물체에 목이 잡혔다. 그 황금색 물체가 철갑거인의 왼팔이란 사실을 알아차리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컥!”
광우치의 눈과 입이 쩍 벌어졌다. 광우치는 아스의 팔에서 벗어나기 위해 쇄천조를 마구 휘둘렀다.
하지만 그의 쇄천조에는 힘이 실리지 않았다.
캉! 캉캉!
우두둑!
그나마 그것도 금세 멈췄다. 광우치의 목을 파고들어 간 아스의 팔에 의해 목뼈가 부러져 버린 것이었다.
무혼은 시체로 변한 광우치를 전죽에서 힘껏 내던졌다. 그리고 십만마도법의 풍風을 자신에게 적용하고 몸을 날렸다.
예상은 적중했다.
신법이 과거에 비해 두 배 이상 빨라졌고 전죽을 금세 따라잡았다. 전죽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광우치의 시체를 잡아채며 허공으로 솟구치는 중이었다.
무혼은 뒤편을 흘끔 보았다. 키가 큰 과허와 중간 키의 정하가 이편을 향해 쏘아져 오는 중이었다.
광우치의 죽음 때문에 흥분한 기색이 역력하게 느껴졌다.
“무인에게서 가장 큰 적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했지. 흥분한 자신 말이야. 강! 패! 폭! 풍!”
무혼은 네 가지 무공을 차례로 펼쳤다. 물론 펼치는 대상은 자기 자신이었다. 먼저 강의 기운으로 육체를 강하게 만들고, 패의 기운으로 강화시킨다. 그런 다음 폭과 풍을 펼치면 엄청난 반탄강기가 만들어진다.
“이건 뭐요?”
문득 천마와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그가 질문을 한 건 천마가 준 책자 때문이었다. 무공 비급처럼 생긴 그 책자 안에는 구결은 없고 초식명만 잔뜩 적혀 있었다.
“내 무공이오.”
“그런데 구결이 없구려.”
“구결은 무 형도 이미 알고 있소.”
“알고 있다든 건…… 그럼 십만마도법 안에?”
그 말에 천마는 빙그레 웃기만 했다.
콰앙! 콰앙!
바로 그때 등에서 둔탁한 소성이 터져 나왔다.
“크악!”
“아악!”
처절한 비명과 함께
과허와 정하가 피를 토하며 가랑잎처럼 날아갔다. 두 사람이 토한 핏속에는 잘려 나간 내장이 들어 있었다. 오 장여를 날아간 두 사람은 거칠게 떨어졌다.
잠시 꿈틀거리는 것 같더니 곧 잠잠해졌다.
반탄강기에 몸 내부가 갈가리 찢겨 숨이 끊어진 것이었다.
“지옥천마강地獄天魔罡이야.”
무혼은 나직하게 말하고는 그레이 훼일을 휘둘렀다. 지옥천마강은 천마가 준 책자에 들어 있던 수많은 무공 중 한 가지였다.
“빌어먹을!”
전죽은 욕설을 내뱉었다. 광우치의 시신을 잡아채면서 솟구친 상태다. 그가 광우치의 시신을 내팽개친 건 약점을 노출하기 싫어서였다. 광우치의 시체를 붙잡는 건 상대가 바라는 상황일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허공으로 솟구친 건데, 기다렸다는 듯 거대한 도가 쏘아져 오고 있다.
“차하!”
기합을 내지르며 전 내력을 실은 검을 휘둘렀다.
차앙!
“허억!”
그의 얼굴이 검게 죽었다.
검을 노려보는 그의 눈에 중간 부분이 잘려 나가는 광경이 선명하게 보였다. 거대한 도는 마치 막대를 자르듯 검을 자르고 쏘아져 온 것이었다.
전죽은 눈을 질끈 감았다.
스악!
“크아악!”
처절한 비명이 그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허리가 잘린 전죽은 두 조각으로 나뉘어 뚝 떨어졌다.
―철갑거인 소환하시오.
무혼은 적사월 일행에게 전음을 보냈다.
―알았소.
“렉탄!”
가장 먼저 적사월이 철갑거인을 소환했다. 렉탄은 전신이 검고 뿔이 달린 투구를 쓰고 있었다.
“카루라!”
적사월에 이어 금웅이 철갑거인을 소환했다. 금웅의 카루라는 피처럼 붉었다. 가슴에 불꽃 문양이 새겨져 있고 검 또한 불꽃 문양이었다.
“타호너!”
해노왕 혁군왕이 철갑거인을 소환했다. 타호너는 전신이 초록색이고 거대한 유성추를 들고 있었다.
“타바토르!”
고태백이 소환한 철갑거인은 회색이었다. 거대한 망치를 들고 있는데 마치 신화에 등장하는 괴수 같았다.
“데스퍼!”
마지막으로 철갑거인을 소환한 사람은 염라였다. 염라의 철갑거인 데스퍼는 어둠처럼 검었다. 무기 또한 염라의 무기인 사신의 낫과 같았다.
그들이 철갑거인을 소환하는 사이에 절벽을 막고 있던 묵천야와 신무도 철갑거인을 소환해 탑승했다.
철갑거인들은 아스를 중심으로 좌우로 늘어섰다.
‘으음!’
천파는 신음을 내뱉었다.
맨 처음 나타난 철갑거인은 키가 이 장이었다. 그 철갑거인만 해도 엄청났다. 그런데 이번에 나타난 철갑거인은 키가 오 장에 달한다.
‘하지만 나는 천파다. 춘추오패의 한 곳인 마원의 원주 천파라고.’
천파는 있는 힘껏 주먹을 그러쥐었다.
“쳐라!”
그는 고함을 내질렀다.
“전부 죽여!”
그 순간 무혼은 버럭 소리치고는 바닥을 찼다.
스아악!
그러자 아스가 무서운 속도로 마원 무인들을 향해 쏘아져 갔다. 아스의 손에 들린 무기는 그레이 훼일을 키워 놓은 그랜드 크로스였다.
“죽여라!”
비마전 무인들이 아스를 향해 마주 달려갔다.
삼중마와 광우치가 죽었지만 마원 무인들은 수적인 우세를 믿었다.
“타하!”
달려가는 무혼의 입에서 기합이 터져 나왔다.
아스가 든 일 장 일곱 자에 달하는 그랜드 크로스가 허공으로 들어 올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