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489)
과욕은 늘 대가를 요구한다
차앙!
외자항이 들어 올린 팔에서 날카로운 쇳소리가 흘러나왔다.
“커억!”
외자항의 입에서 비명이 비어져 나왔다. 무혼의 도가 조금 전 부상을 입은 부위로 파고든 것이다. 반 치도 벗어나지 않은 정확하게 같은 부위였다.
진기가 금강불괴지신을 만드는 부위는 피부 표면이지 안쪽은 아니다. 물론 껍질이 벗겨지면 작은 충격에도 부서지는 갑각류만큼은 아니지만 같은 세기의 충격은 받아 내는 게 불가능하다.
무혼은 외자항을 노려보았다.
“사상에게는 이길 수 있다고 했던가?”
무혼의 입가에 조소가 어렸다.
“사상은 나도 어쩌지 못하는 강자야. 너 같은 녀석은 발치에도 못 따라가.”
무혼은 혼천을 힘껏 내리그었다.
스악!
“크아악!”
외자항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방금 칼질로 인해 팔이 떨어져 나가 버린 것이다. 떨어진 팔이 펄떡펄떡 뛰었다.
외자항의 팔을 자른 무혼은 그 탄력을 이용해 빙글 돌았다.
“아아악!”
외자항 뒤편에서 또 다른 비명이 터져 나왔다.
비명을 내지른 자는 장도마 백난이였다. 그의 몸은 왼편 어깨부터 오른편 옆구리까지 사선으로 잘려 있었다. 두 조각으로 나뉜 장도마 백난이가 바닥으로 추락했다. 백난이의 시체를 보면서 무혼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겁에 질린 외자항은 오줌을 지리고 있었다.
몸보다 한 박자 늦게 돈 혼천은 외자항의 목으로 향했다.
스악!
둥실!
“아아아아아악!”
처절한 비명과 함께 외자항의 머리가 높이 떠올랐다.
그 순간 염라의 하데스는 부마 악부인의 목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아니 하데스가 악부인의 목을 향해 날아간 게 아니라 악부인이 하데스를 향해 뛰어들었다. 염라는 하데스를 긋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화, 환술!”
악부인의 얼굴이 검게 죽었다. 그가 오른편으로 몸을 날린 건 왼편에서 찍어 오는 커다란 낫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 낫을 피하기 위해서는 오른편으로 이동하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전력을 다해 몸을 날렸는데 목을 향해 낫이 날아오고 있었다.
환술이 아니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환술이 아니고 유령술이라네.”
스악!
낫이 악부인의 목을 갈랐다.
“크악!”
악부인은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곧 그의 머리가 둥실 떠올랐다가 떨어졌다.
염라는 몸을 돌렸다. 마지막 남은 쌍수도 방낙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퍼억!
하지만 굳이 그가 나설 필요가 없었다. 그보다 먼저 고태백의 망치가 방낙의 머리를 부숴 버린 것이었다. 방낙은 비명을 내지르고는 풀썩 쓰러졌다.
“죽여라!”
“대주님의 원수를 갚자.”
전방과 좌우측에서 싸움을 지켜보던 인마전 무인들이 살기 어린 외침을 토해 내며 몸을 날렸다.
“안 돼!”
과홍은 고함을 내질렀다.
그가 외자항과 대주들을 내보낸 건 원주가 도착할 때까지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그들이 반 시진만 버텨 주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는 생각으로 지켜보았는데 한 식경도 견디지 못했다.
이제 조금씩 공격해서 희생을 최소화하면서 시간을 끌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는데 대주들의 죽음으로 분노한 대원들이 공격을 시작한 것이다.
“저들은…….”
“크악!”
“아악!”
“으아악!”
사방에서 비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비명 소리로 짐작하건대 한 번에 십여 명씩 죽어 나가고 있다.
지금 상태라면 일각을 버텨 내는 것도 어려울 것 같았다.
“내가 어떻게 키운 조직인데. 인마전은 내 인생이란 말이다.”
과홍은 도끼를 꺼내 들고 몸을 날렸다.
잠시 후 그는 전장에 도착했다.
가장 먼저 그의 눈에 띈 사람은 거대한 낫을 휘둘러 인마전 대원들을 무자비하게 없애고 있는 염라였다.
“멈춰라!”
그는 고함을 내지르며 염라를 향해 내달렸다.
“가장 강자인 걸 보면 자네가 수장인 모양이구먼. 도망치면 어떻게 하나 하고 걱정을 많이 했는데 이렇게 죽을 자리를 찾아와 주어서 고맙네.”
염라는 과홍을 보며 싱긋 웃었다.
“이 죽일 놈이.”
과홍은 염라를 향해 몸을 날렸다. 전 내공을 머금은 흑마부는 검은색 광채를 뿜어냈다.
“먼저 공격을 한 건 우리가 아니라 자네들이네. 지금 자네 모습은 방귀 뀐 놈이 성질내는 것과 같은 모양새라네.”
염라는 하데스를 횡으로 휘둘렀다.
과홍은 얼른 도끼를 내렸다.
스윽!
막 힘을 주려는데 허리를 향해 쓸어 오던 거대한 낫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머리 위에서 섬뜩한 기운이 다가들었다.
과홍은 다리를 좌우로 벌려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리고 곧바로 나려타곤 수법으로 몸을 굴렸다.
푹!
방금 그가 있던 자리로 커다란 낫이 박혀 들었다.
과홍은 식은땀이 주르르 흘렀다.
반 초만 늦었어도 머리나 어깨에 커다란 구멍이 날 뻔했던 것이다.
스악!
막 몸을 일으키려는데 다시 낫이 다가왔다.
과홍은 한 바퀴 더 굴렀다. 몸을 굴리던 그의 눈에 도끼 한 자루가 눈에 띄었다. 도부대 대주 악부인의 도끼였다. 그는 그 도기를 잡아챔과 동시에 염라를 향해 내던졌다. 시간을 벌기 위한 반격이었다.
창!
염라는 하데스로 도끼를 쳐 냈다.
그 순간 과홍은 왼손으로 바닥을 치면서 염라를 향해 몸을 날렸다. 순식간에 염라 앞에 도달한 그는 흑마부로 펼치는 최강 초식인 흑마천살黑魔天殺을 펼쳤다. 순간 수십 개의 도끼 모양의 강기가 나타나 염라를 향해 날아갔다.
파앗!
염라의 신형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차하!”
과홍은 기합과 함께 다시 흑마천살을 펼쳤다. 같은 초식이지만 이번 초식은 더 강했다. 더 작고 날카로워진 도끼날은 허공으로 솟구친 염라를 쫓아 날아갔다.
“하아!”
염라의 입에서 기합이 터져 나온 건 그때였다.
염라는 하데스를 양손으로 잡고 사정없이 내리그었다.
콰콰콰쾅!
공간이 잘려 나가는데도 광포한 소성이 터져 나왔다. 과홍은 전 내공을 도끼에 주입했다.
콰콰쾅!
두 거력이 부딪치면서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푹! 푹!
과홍의 두 발이 땅속으로 발목까지 파고들어 갔다.
“억!”
과홍은 깜짝 놀랐다. 자리를 옮겨야 하는데 두 발이 땅속으로 파묻힌 바람에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사이 염라는 하데스를 다시 휘둘렀다. 조금 전과 같은 초식이었다.
허공을 사선으로 가르며 과홍의 왼편 어깨를 향해 나아갔다.
“차아아아아!”
발을 뽑아내기엔 늦다고 생각한 과홍은 흑마부를 쳐올렸다. 발을 뽑아낼 수 있다면 다른 방법을 썼을 텐데 그럴 시간이 없었다. 전 내력이 실린 흑마부가 낫 면을 후려쳤다.
“헉!”
과홍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검은 아지랑이를 피워 올리며 떨어지는 낫은 진짜가 아니었다.
전력을 다해 휘두른 도끼가 허공을 찍자 중심이 흐트러지고 말았다. 그의 몸이 왼편으로 넘어갔다.
바로 그때 아래쪽에서 섬뜩한 느낌이 왔다.
과홍은 시선을 내렸다.
“저건…….”
과홍은 눈을 감았다. 눈앞에서 사라졌던 낫이 엄청난 기세로 솟구쳤다.
스악!
“크아악!”
죽음을 알리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과홍을 없앤 염라는 인마전 대원들 속으로 뛰어들었다.
“아악!”
“으악!”
“크악!”
“으아아악!”
그의 낫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비명이 줄을 이었다.
평소에는 가장 약하지만 사신의 낫을 드는 순간 가장 강해지는 사람.
그가 바로 염라였다.
일방적인 도살은 한 식경가량 이어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벌판에 정적이 찾아들었다.
무혼 일행을 막아섰던 인마전 무인들은 단 한 명의 생존자도 없이 완벽하게 전멸한 것이다.
“시체를 다 치워야 하오.”
무혼은 일행을 보며 말했다.
“아직 끝나지 않은 게요?”
적사월이 물었다.
“이들은 시간을 끌기 위한 미끼였소.”
“이자들이 미끼면 마원 원주가 오고 있는 모양이군.”
“그렇소. 그리고 나는 여기서 멋진 환영식을 해 줄 참이오.”
“환영식을 치르는 장소에 시체가 있는 건 바람직하지 않겠구먼.”
“그렇소.”
“그럼 치웁시다.”
적사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땅에 묻는 건 그렇고, 절벽 아래쪽에 버리는 게 좋겠소.”
무혼은 격공섭물을 펼쳤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시체 삼십여 구가 동시에 허공을 솟구쳤다.
그에 이어 나머지 무인들도 격공섭물로 시체를 들어 올려 절벽 아래로 가져갔다. 무혼은 바로 옆이 아니라 안쪽으로 한참을 들어가서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시체를 내려놓았다.
자운영을 포함하여 아홉 명이 시체를 운반하자 두 번 만에 끝났다.
“권 첩형!”
자리로 돌아온 무혼은 권말남을 불렀다.
“네.”
권말남은 무혼을 보았다.
“환수각에 가야 할 것 같아.”
“환수각요?”
“응.”
“환수각에는 왜…….”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바타르가 무혼을 보며 인상을 썼다.
“바타르 너 말고 권 첩형에게 하는 말이야.”
“제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 거죠?”
권말남이 물었다.
“아까 싸울 때 몇 놈 잡아서 족쳐 보니까 지금 마원은 텅 비었대.”
“텅 비어요?”
“전가와 해가를 친다며 출병을 한 모양이야.”
“텅 비었다는 건 모두 출병했다는 뜻인가요?”
“맞아.”
“그럼.”
“마원을 없앨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온 거지.”
“그렇군요.”
권말남은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들이 언제 작전을 변경할지 모르니까 서둘러야 해.”
“알았어요, 지금 바로 출발할게요.”
권말남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벌떡 일어났다.
“말남!”
바타르가 권말남을 불렀다.
“자기는 나랑 같이 갈 거지?”
권말남이 바타르를 향해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자기가 가는데 나도 가야지 뭐.”
“모처럼 둘만 여행하겠네요.”
권말남은 활짝 웃었다.
“그러자꾸나.”
바타르는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그는 떠나기 전에 무혼을 쏘아보았다.
―나쁜 새끼.
그는 전음을 보내고는 권말남을 안고 자리를 떴다. 그와 권말남은 곧 일행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우리도 옮기자.”
무혼은 자리에서 일어나 걸었다.
그는 좌우 절벽을 살피면서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백 장을 나아가자 절벽 폭이 좁아졌다.
무혼은 그곳을 확인했다. 폭이 오 장에서 팔 장까지의 좁은 구간이 이백 장가량 이어져 있었다.
무혼은 좌우측 절벽을 보았다.
높은 곳에서 무너뜨리면 아래쪽을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써먹을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무혼은 아공간에 있는 마나탄을 떠올렸다. 과거 전쟁을 할 때 사용하던 것으로 이곳의 화탄과 비슷하지만 위력은 더 강하다.
한쪽에 스무 개 정도면 절벽을 무너뜨리기엔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적 형, 나 좀 봅시다.”
금장생은 적사월을 불렀다.
적사월은 곧 금장생 곁으로 다가왔다.
“오픈!”
무혼은 자신의 아공간을 열었다. 그리고 안에서 마나탄 마흔 개를 꺼내 자루에 담았다.
“그건 뭐요?”
적사월이 물었다.
“화탄이라고 보면 되오.”
“중원의 화탄은 아닌 것 같고. 어떻게 터뜨리면 되오?”
“강한 충격을 주면 폭발하오.”
“저 위에서 좌우측으로 내던지면 되겠구려.”
적사월은 절벽 위를 가리켰다.
“그렇소.”
무혼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소.”
적사월은 마나탄을 가져가서 묵천야와 신무에게 건네면서 사용법을 설명해 주었다.
“알았네.”
마나탄을 받아 든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