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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488화 (488/524)

황금가 (488)

“이걸 가급적이면 안 쓰려고 했는데.”

염라는 들고 있던 기다란 막대로 시선을 주었다. 막대의 길이는 여섯 자로 자신의 키와 비슷하고 지극히 평범하다.

‘하지만…….’

염라는 잡고 있던 부분에 내공을 주입했다.

철컥!

그러자 쇳소리가 흘러나오며 커다란 날이 나타났다. 낫 모양을 한 그것은 길이가 세 자나 됐다.

“하데스를 오랜만에 보는군요.”

염라의 무기를 본 고태백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 말이네. 가급적 사용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래도 염노왕은 그걸 휘두를 때가 가장 멋있습니다. 제가 그 모습을 보고 얼마나 감동받았는지 아십니까?”

“허허허!”

염라는 호탕하게 웃었다.

고태백의 칭찬 때문인지 몰라도 하데스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가 보세.”

그는 바닥을 찼다. 그러자 그의 신형이 유령처럼 나아갔다.

“차하!”

“타하!”

“이얍!”

거리가 가까워지자 회자대 대원들이 먼저 공격을 시작했다.

“읏차!”

염라는 그들의 무기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마치 밀을 베듯 하데스를 횡으로 휘둘렀다. 허공을 가르는 하데스에서 거무스름한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카카캉!

하데스는 회자대 대원의 회자도와 몸통을 동시에 잘랐다.

“컥! 큭! 윽!”

세 명은 동시에 비명을 내질렀다.

왼편으로 향했던 하데스가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다시 허공을 횡으로 쓸었다. 하데스가 거무스름한 잔상을 남기는 곳은 성인 허리 높이였다. 그러다 보니 달려드는 자들은 모두 허리가 잘렸다. 피와 내장이 쏟아져 악취가 풍겼다. 염라는 그 속으로 천천히 걸어가며 달려드는 적을 없앴다.

거대한 날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조각난 시체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몸 안에 있던 내용물들이 밖으로 나와 사방으로 뿌려졌다.

“역시 사신의 낫.”

고태백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실 내공만으로 비교하면 일행 중 염라가 가장 낫다. 하지만 염라에게는 내공 말고 다른 기운이 있다. 그게 바로 ‘어둠의 기운’이고 어둠의 기운은 하데스를 들었을 때 극대화된다. 하데스를 든 염라는 그야말로 사신으로 변한다.

지금 염라의 눈동자는 검게 변해 있을 것이다.

“나도 가야지.”

고태백은 서둘러 앞으로 나아갔다.

곧 그의 망치가 허공을 가르기 시작했다.

망치가 푸른 광채를 뿜어낼 때마다 뇌수가 튀었다. 단지 망치일 뿐이지만 고태백의 무공은 그 누구보다 화려했다. 풀썩 주저앉아 무릎뼈를 부수고 일어나면서 쓰러지는 자의 턱을 부수고, 빙글 돌면서 적의 머리를 깨트린다. 그리고 백 근에 달하는 망치를 던진다. 그의 손을 떠난 망치는 타원형을 그리며 앞을 가로막는 자들의 몸을 부순다. 그리고 다시 고태백의 손으로 돌아온다.

놀랍게도 고태백은 망치로 이기어검술을 펼쳤다. 달려드는 수가 점점 많아졌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무혼 일행은 인마전 무인들이 어찌해 볼 수 없는 초극 강자였다.

전투 상황은 즉각 과홍에게 보고됐다.

“부전주!”

과홍은 외자항을 불렀다.

“네.”

외자항은 과홍 앞으로 갔다.

“네 바람을 들어주겠다.”

“제 바람이라면…….”

“무혼 그놈과 일대일로 싸우는 걸 허락하겠다는 말이다.”

“……감사합니다, 전주님.”

외자항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최대한 시간을 끌어라.”

“알겠습니다.”

외자항은 곧바로 자리를 떴다.

“각 대주들에게 부전주를 따라가라고 전해라.”

과홍은 외자항의 등을 보며 다시 소리쳤다.

“존!”

우렁찬 외침이 좌우측에서 흘러나왔다.

“응?”

무혼의 얼굴이 의아해졌다.

파상적인 공격을 해 오던 적이 공격이 약해진 것 같더니 갑자기 뚝 끊겼다.

“잡았어?”

무혼은 전면을 응시한 채 자운영에게 물었다.

“네.”

“뭐래?”

“전 대원이 다 출병했답니다.”

“목표가 우리야?”

“감숙성의 전가와 하남성의 해가가 목적지랍니다.”

“그래?”

무혼은 생각에 잠겼다.

“연락을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전가와 해가에?”

“네.”

“지금 전가와 해가로 사람이 가면 놈들보다 빨리 도착할 수 있을까?”

“그건…….”

―바타르.

무혼은 바타르에게 전음을 보냈다.

―말해라.

―환수각에 연락 가능해?

―왜?

―가부만 말해.

―연락하는 건 불가능하고 환수각까지 가는 건 가능하다.

―알았다.

무혼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는 말 안 해 줄 거냐?

―이유는 권말남에게 들어.

―뭐라고?

그때 전방에서 네 명이 걸어 나왔다.

부전주 외자항을 비롯한 각 대 대주 세 명이었다.

“나는 독잔마수 외자항이다. 네가 무림십패에 버금가는 강자라고 하더구나.”

외자항은 무혼을 쏘아보며 말했다.

“그래서?”

“나의 최종 목표는 무림십패다. 아니 그들 중 사상 정도는 넘어섰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그건 내 생각일 뿐 다른 사람은 인정해 주지 않는다. 그래서…….”

“나를 통해 확인하고 싶다는 거야?”

“그렇다.”

“쿡!”

무혼은 피식 웃었다.

“지금 날 비웃는 거냐?”

“너 같은 놈을 두고 뭐라고 하는지 알아?”

“…….”

“병신 육갑한다고 그래.”

무혼은 피식 웃었다. 무림십패와 싸우고 싶으면 찾아가서 도전하면 된다. 승리하면 무림십패보다 강하다는 게 증명되는 거고, 패하면 더 노력하면 된다.

비무를 하다가 죽을 수도 있지만, 그건 무인의 숙명이다. 그게 싫다면 검을 놓고 농사나 지어야 한다.

굳이 다른 사람을 붙잡고 시험할 이유가 없다.

“개자식.”

외자항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와.”

무혼은 손가락을 까닥였다.

“어흥!”

외자항은 괴성과 함께 몸을 날렸다. 다른 것은 다 참아도 병신 육갑한다는 말은 참을 수가 없다. 상대의 의도에 말려들어 가는 거라고 해도 어쩔 수가 없었다.

무혼을 향해 달려가는 그의 팔이 시뻘겋게 변했다. 그의 독문 무공인 홍마수紅魔手다.

홍마수는 검으로도 잘리지 않는 금강불괴지신임은 물론이고 격중되면 독물로 녹아내리는 치명적인 독공이었다.

파앗!

무혼은 곧바로 바닥을 차고 외자항을 향해 쏘아져 갔다. 외자항이 먼저 출발했지만 나아간 거리는 무혼이 더 많았다.

창!

외자항의 손과 혼천이 부딪쳤다.

혼천과 부딪치는 순간 외자항은 독기를 흘려보냈다. 그가 독으로 적을 중독시키는 방법이었다. 무인은 적과 싸울 때 진기를 밀어내고 흡수하기를 반복한다. 즉 일반 양민이 들숨과 날숨으로 숨을 쉬는 것처럼 진기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외자항의 독공은 그 점을 이용했다.

상대의 무기나 혹은 신체와 부딪치면 곧바로 독기를 흘려보낸다. 그럼 그 독기는 상대가 흡수하는 진기를 따라 몸 안으로 들어가서 바로 중독을 시킨다.

‘이제?’

외자항은 차가운 눈빛으로 무혼을 쏘아보았다.

“억!”

외자항은 느닷없이 신음을 내뱉었다.

무혼의 검을 타고 들어가던 독기가 되돌아오는 것이었다.

그는 얼른 손을 풀었다.

차르릉!

그 순간 무혼이 혼천을 아래로 잡아당겼다.

“크윽!”

외자항은 신음을 내뱉었다. 그는 자신의 손을 보았다. 손바닥이 시뻘겋게 물들고 있었다.

“어떻게…….”

그는 믿어지지가 않았다. 자신의 손은 금강불괴지신이고 강기로 감싼 검으로도 잘리지 않는다. 그런데 내리긋는 도에 너무 쉽게 베인 것이다.

“이게 신도神刀라서 그래.”

무혼은 한 걸음 앞으로 나가면서 외자항의 목을 향해 혼천을 휘둘렀다.

외자항은 전력을 다해 물러났다. 막는 것보다 피하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혼천의 사정권을 완벽하게 벗어나지 못했다.

막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얼른 팔을 들었다.

카앙!

손목과 혼천이 부딪쳤다.

차르르!

처음에 부딪칠 때는 부상을 입지 않았다.

외자항이 부상을 입은 건 무혼이 혼천을 잡아당길 때였다. 부딪칠 때는 전력을 다하기 때문에 모든 힘이 팔로 쏠리고 아무리 날카로운 무기라고 해도 잘라 내지 못한다. 하지만 부딪친 다음부터는 팔에 실린 진기는 점점 줄어들게 되고 금강불괴지신도 약화된다.

무혼이 혼천을 잡아당기는 건 그때다.

일반 무기라고 해도 강기가 실렸으면 잘라 낼 텐데 혼천은 신도神刀 중의 신도다.

팔이 완전히 잘리지 않고 붙어 있는 것만 해도 외자항에게는 천운이라 할 수 있었다.

“으윽!”

외자항은 신음과 함께 물러났다.

그의 팔은 순식간에 피로 범벅이 됐다.

쇄애액!

외자항이 자세를 잡기도 전에 혼천이 머리를 쪼개 갔다. 이번에도 외자항은 왼편으로 이동했다. 그러자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도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팔을 구부려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차앙!

부딪치는 순간 모든 진기를 밀어 넣었다. 그리고 그 상태를 오래 유지하기 위해 숨도 쉬지 않았다.

무혼은 외자항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혼천을 천천히 잡아당겼다.

차르르르!

“으으으으으!”

외자항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렀다. 살이 잘리는 느낌이 선명하게 왔다. 천천히 그어서 그런지 몰라도 어느 부위까지 잘리는지도 알 수 있었다. 방금 도 날이 자른 부위에는 동맥도 포함돼 있었다.

차릉!

“크억!”

도가 빠져나가자 피가 쭉 튀어나왔다. 외자항은 얼른 두 걸음 물러났다. 무혼의 공격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도망쳐 봐야 소용없어.”

무혼은 고개를 슬쩍 젓고는 두 걸음 더 나아갔다. 같은 두 걸음이지만 무혼의 보폭이 더 커, 거리는 조금 전보다 더 가까워졌다. 그 상태에서 무혼은 혼천을 도끼질하듯 내리찍었다.

외자항은 이를 악물었다. 팔이 하나뿐이라 지혈을 할 수도 없지만, 설사 양팔이 다 있다고 해도 지혈은 불가능하다. 지혈을 하기 위해서는 혈도를 눌러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싸우는 데 문제가 생긴다.

가장 좋은 방법은 피하는 것인데 상대가 그걸 허락하지 않는다.

“날 좀 도와주게.”

뒤편에 있는 세 대주를 향해 소리쳤다.

“알았소.”

세 대주는 일제히 몸을 날렸다. 하지만 그들은 외자항을 도울 수가 없었다. 외자항 옆에 도착하기도 전에 검은 옷을 입고 긴 손잡이에 기다란 날이 달린 낫을 가진 자가 앞을 가로막았기 때문이었다.

“죽인다!”

세 사람은 기합과 함께 염라를 향해 몸을 날렸다.

염라는 하데스를 번쩍 들어 올렸다. 하데스의 날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순간 사선으로 강하게 휘둘렀다.

쩌억!

염라 앞 공간이 사선으로 쩍 갈라졌다.

세 대주는 자신들의 무기에 전 내공을 밀어 넣었다.

카앙! 캉! 카카캉!

날카로운 소리가 흘러나왔다.

“헉!”

장도마 백난이의 눈이 커졌다. 그의 무기가 절반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무기에 전 내력을 밀어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잘려 버린 것이다.

“어떻…… 헉!”

백난이는 질겁했다. 자신의 무기를 잘랐던 거대한 낫이 다리를 쓸어 오고 있었다.

파앗!

백난이는 힘껏 바닥을 차며 솟구쳤다. 지금 상황에서 그가 몸을 피할 유일한 장소는 허공이었다.

“클!”

백난이가 웃음소리를 들은 건 허공에 멈췄을 때였다. 그 웃음소리에는 모골이 송연할 정도로 짙은 살기가 배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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