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487화 (487/524)

황금가 (487)

과홍은 바닥에 그림을 그렸다. 천험곡은 험준하지도 않고, 계곡의 폭도 삼십 장이나 돼서, 소규모 적을 잡는 장소로는 적합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험곡을 매복 장소로 택한 것은 좌우측 절벽 때문이었다. 절벽의 높이는 이십 장이나 되고 경사 또한 수직에 가까워 새처럼 날아가는 것 말고는 넘어갈 방법이 없다. 빠져나갈 곳은 계곡 앞과 뒤편 두 곳뿐이다. 앞에서 공격을 하고 있으면 원주가 원로전과 비마전 무인들을 데리고 올 것이다.

원주가 도착할 때까지 잡고 있을 것.

그게 인마전에 내려진 명령이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부마 악부인이 물었다.

“중앙에는 도부대가 서고 왼편에는 회자대, 오른편에는 백정대가 선다. 그리고 독조대는 도부대 뒤편에서 지원한다.”

과홍은 대주들을 보았다.

“알겠습니다.”

부전주 독잔마수 외자항을 비롯한 세 대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동해.”

“넵.”

네 명은 곧바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잠시 후 인마전 대원 사백 명이 소리 없이 이동했다.

* * *

“저긴 어디지?”

무혼은 전면 계곡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러자 자운영이 지도를 꺼냈다.

“천험곡입니다.”

지도를 살피던 그가 대답했다.

“길이는?”

“백 리가 조금 안 됩니다.”

“그렇구나. 몸은 어때?”

무혼은 다시 물었다.

“견딜 만합니다.”

자운영은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동안 쉬지 않고 달려온 바람에 많이 피곤한 상태였다.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먼저 쉬자고 할 수는 없었다.

“바람을 피할 곳을 찾아봐.”

“쉬는 겁니까?”

자운영이 반색하며 물었다.

“식사는 하고 가야지.”

“알겠습니다.”

자운영은 얼른 계곡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일행은 계곡 벽면에 나 있는 동굴로 들어가 식사를 했다. 식사는 건포와 육포였다.

식사를 마치고 각자 자리를 잡고 운기행공을 했다.

“한 시진 후에 출발할 거니까 쉬시오.”

무혼은 일행에게 말하고 자리를 잡고 누웠다.

“제시간 안에 도착할 거라고 보시오?”

염라가 무혼을 보며 물었다.

“전에도 말했지만 우리는 마가를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신족을 없애기 위해 가는 거요.”

“그럼 굳이 이렇게 빨리 갈 필요가 없잖소?”

“그건 아니오.”

“아니라는 건 무슨 뜻이오?”

“마가는 완전히 패하진 않을 거요. 최악의 상황이 오면 본가를 버리고 도망을 칠 테고 신족은 그들을 쫓게 될 거요. 우린 마가 무인을 쫓는 신족을 치면 되는 거요.”

“도망치는 마가 무인은 살리고 신족은 없앴다는 거구먼.”

“그렇소. 그런데 안 잘 거요?”

“죽으면 실컷 잘 것 아닌가.”

“쿡!”

무혼은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눈을 감았다.

정확하게 한 시진 후 일행은 동굴을 나섰다. 계곡은 깊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바람은 강하지 않지만 기온은 뚝 떨어져 꽤 추웠다.

일행은 팔을 비비며 빠른 걸음으로 나아갔다.

선두에서 자운영과 함께 일행을 이끌던 무혼이 멈춰 선 건 이십 리가량 들어왔을 때였다. 그곳은 계곡 같지 않게 억새가 우거져 있었다. 마치 벌판을 보는 것 같았다.

“왜 그러죠?”

권말남이 두 사람을 보며 물었다.

“살기다.”

대답은 바타르가 했다.

“놈들이 앞질러 왔나 보내요.”

권말남의 얼굴이 차갑게 변했다.

일행은 일제히 무기를 뽑았다. 그 상태에서 앞으로 나아갔다.

“옵니다.”

도부대 부대주 장항이 악부인에게 말했다.

“기다려라!”

악부인은 도끼를 고쳐 잡으며 말했다. 일각가량 기다리자 악부인의 눈에도 무혼 일행이 보였다.

“일조 시작해.”

악부인은 공격 명령을 내렸다.

슥슥슥! 슥슥슥!

그러자 선두에 있던 이십 명이 무혼 일행을 향해 쏘아져 갔다. 그들이 달려가자 억새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이조와 삼조는 나가라!”

악부인은 다시 소리쳤다. 일조가 있던 장소 좌우측에서 사십 명이 몸을 날렸다.

그들은 일조와 달리 몸을 숨기지 않았다.

한 번에 오 장씩 건너뛰며 내달렸다.

도부대 대원 육십 명은 금세 무혼 일행 근처에 도착했다.

“차하!”

“타하!”

“이얍!”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곧바로 공격을 시작했다. 그들이 든 도끼가 달빛을 받아 차가운 광채를 뿜어냈다.

“쿡!”

자운영의 입가에 조소가 어렸다.

이곳에 있는 이들은 강자 아닌 자가 없다. 금의위 최강이라고 불리는 자신이 가장 약하다. 그런 자들을 공격하다니. 정신 나간 놈들이 분명하다.

“몇 명이나 되는지 모르지만 너희들은 상대를 잘못 택했어.”

파앗! 파앗! 파앗! 파앗!

오른편에서 바닥을 차는 소리가 들렸다. 자운영은 시선을 돌렸다. 일곱 명이 무서운 속도로 쏘아져 가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가장 앞서가는 사람은 검을 든 적사월이다.

적사월 바로 뒤에는 중원에서는 보기 드문 대검을 든 금웅이 따르고, 금웅 좌우측으로는 유성추를 든 혁군왕과 검을 든 묵천야, 그리고 붉은 창을 든 신무와 거대한 망치를 든 고태백이 따른다.

자운영의 시선이 아직 제자리에 서 있는 염라에게로 향했다.

“나는 늙어서 저들처럼 빨리 달리지 못한다네.”

염라는 싱긋 웃었다.

“크아악!”

바로 그때 앞에서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다. 자운영은 시선을 돌렸다. 적사월에게 당한 자의 머리가 허공으로 둥실 떠올랐다.

“타하!”

“차하!”

“하아!”

이어 세 사람이 기합과 함께 각자의 무기를 휘둘렀다.

캉! 캉캉!

퍽! 스악!

금웅의 검과 혁군왕의 유성추, 묵천야의 검이 적의 몸에 작렬했다. 그리고 처절한 비명이 뒤를 이었다.

“아악!”

바로 앞에서도 비명이 들려왔다.

무혼이 공격을 시작한 것이다. 자운영은 무기를 그러쥐고 무혼을 따라갔다.

“넌 뒤를 맡아.”

무혼은 자운영에게 소리치곤 앞으로 나아갔다.

좌측과 우측에서 두 명이 달려오고 있었다. 상당히 강자들인 듯 도끼 끝에 불그스름한 광채가 맺혀 있다.

“하지만.”

무혼은 혼천을 번쩍 들었다. 들어 올린 혼천이 허공에 정지한 순간 바람과 물의 기운을 혼천 안으로 밀어 넣었다.

“풍風! 우雨!”

나직한 외침과 함께 혼천을 휘둘렀다. 혼천에서 사위를 얼릴 듯한 차가운 기운이 쏟아져 나왔다. 극한의 기운을 머금은 강기였다.

“되네.”

무혼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물렸다.

지금 펼치는 무공을 무혼은 도풍강刀風罡이라 이름 지었다. 도풍강은 도 끝에서 솟구치는 강기나, 그 강기를 잘라서 쏘아 보내는 도탄강기보다 몇 배 더 강하다. 그건 바로 강기로 만들어 낸 바람이기 때문이다.

“그걸 막아 내면 내가 네 아들이다.”

“차하!”

“타하!”

두 사람은 전력을 다해 도끼를 휘둘렀다.

카카캉!

요란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도풍강은 그대로 두 사람의 몸을 훑었다.

“크아악!”

“으아악!”

두 사람의 몸통은 조각조각 잘렸다.

후드득!

잘려 나간 육편이 비처럼 쏟아졌다.

“죽여라!”

“죽어!”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피 안개를 뚫고 세 명이 달려 들어왔다. 한 명은 거의 기다시피 한 상태고 한 명은 우뚝 서서, 마지막 한 명은 일 장가량 뜬 상태에서 쏘아져 오고 있었다.

무혼은 화火와 강强을 떠올렸다. 차갑게 얼어 있던 혼천에서 뜨거운 기운이 쏟아져 나왔다.

그의 혼천이 먼저 향한 곳은 허공이었다. 그는 혼천을 검처럼 쭉 내밀었다. 허공을 관통한 혼천 끝에서 새빨간 광채가 쏘아졌다. 그 빛은 육안으로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빨랐다.

“헉!”

허공에서 달려들던 사내는 도끼머리를 옆으로 눕혀 빛을 방어했다.

챙!

도끼머리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막았…….”

푹!

사내의 입가에 어렸던 미소는 금세 사라졌다.

광채는 하나가 아니었다. 사내가 막는 순간 두 개로 분리된 광채가 이마로 파고들었다.

푸스스!

광채는 가공할 열기를 지닌 듯 사내의 머리가 순식간에 가루로 변했다. 허공에 뜬 사내를 없앤 무혼은 혼천을 아래로 내리그었다.

“화火! 강强!”

나직한 외침과 함께 혼천에서 가공할 열기가 쏟아져 나왔다. 그 열기는 곧바로 선 상태로 공격해 오는 자를 강타했다.

퍼억!

화강火罡에 강타당한 자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가루로 변했다.

휙!

무혼의 신형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스악!

그 순간 낮은 자세로 달려오던 자의 도끼가 허공을 갈랐다. 무혼이 서 있던 자리의 억새가 우수수 잘려 나갔다.

일 장가량 떠오른 무혼은 천근추 수법을 펼쳤다. 그의 신형이 빠르게 떨어져 내렸다.

“폭暴!”

나직하게 소리치며 역수로 틀어쥔 혼천을 아래로 힘껏 찔러 넣었다.

푸욱!

혼천은 사내의 등으로 파고들었다.

“커억!”

퍼억!

비명에 이어 사내의 몸이 폭발했다.

무혼은 곧바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왼편에서는 바타르와 권말남이 적을 상대하고 있고 오른편에는 적사월 일행이 있다. 바타르는 물론이고 적사월 일행도 여유가 있어 보였다.

“도부대屠斧隊입니다.”

자운영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고개를 돌렸다.

“마원의 인마전에 소속돼 있는 사대四隊 중 한 곳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를 공격하는 자들이 마원 무인이란 말이지?”

“네.”

“너는 지금부터 죽이지 말고 생포해.”

“어떤 걸 알아볼까요?”

“얼마나 출병했는지 그걸 알아봐.”

“알았습니다.”

자운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혼은 다시 앞으로 달려갔다. 잠시 후 그의 혼천이 강기를 쏟아 내기 시작했다.

“중앙이 뚫리고 있습니다, 전주님.”

싸움을 주시하던 외자항이 과홍에게 보고했다.

“회자대와 백정대는 어때?”

“아직 주시만 하고 있습니다.”

“원주님으로부터는 연락 왔어?”

“한 시진만 붙잡고 있으라고 하였습니다.”

“회자대와 백정대 출병시켜.”

“알겠습니다.”

외자항은 고개를 숙이고는 물러갔다. 잠시 후 외자항은 크게 소리를 질렀다.

“회자대와 백정대는 출병하라!”

“출병 명령이다. 일조는 공격하라!”

“일조는 공격하라!”

회자대 대주 장도마長刀魔 백난이와 백정대 대주 쌍수도 방낙은 공격 명령을 내렸다. 곧 각 대의 선두에 있던 이십 명이 전방으로 몸을 날렸다.

“저쪽에 적이에요.”

권말남이 왼편을 가리켰다.

그의 말은 한가운데 있던 무혼에게도 들렸다.

―적 형!

무혼은 전음으로 적사월을 불렀다.

―말하시오.

―세 사람만 왼편으로 이동해 주시오.

―알았소.

고개를 끄덕인 적사월은 염라와 고태백, 묵천야에게 바타르를 지원하라는 전음을 보냈다.

“알았네.”

염라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고태백, 묵천야와 함께 바타르 쪽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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