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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484화 (484/524)

황금가 (484)

운성을 떠난 총관 오양군이 철전혼 일행을 따라잡은 곳은 호남과 사천 귀주 세 성의 경계 지점에서였다. 그는 곧바로 진중으로 뛰어들었다.

“누구냐?”

차가운 외침과 함께 진득한 살기가 오양군을 가로막았다.

“전 운성의 총관 오양군입니다. 성주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오양군은 풀썩 쓰러졌다.

“오양군?”

어둠 속에서 건장한 체격의 사내가 나왔다. 그는 운성 성주 직할대인 운림雲林 무인이었다.

사내는 오양군의 얼굴을 보았다. 검게 그을리고 화상 자국이 남아 있긴 하지만 오양군이 분명했다.

“맙소사.”

그는 오양군을 안고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무슨 일이냐?”

철전혼은 안으로 들어온 사내를 보며 물었다. 사내는 운림의 림주 철군우였다. 철군우는 철천혼의 먼 친척이었다.

“오양군이 성주님을 찾습니다.”

“오양군? 총관을 말하는 거냐?”

“그렇습니다.”

철군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어디 있느냐?”

철전혼은 벌떡 일어났다.

“제 처소에 있습니다.”

“앞장서라.”

“네.”

철군우는 몸을 돌렸다. 철군우 처소까지는 반 각 거리였다. 짧은 거리라고 하지만 말을 주고받을 시간은 충분한데도 철전혼은 철군우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까닭 모를 불안감 때문이었다.

곧 그는 철군우 처소로 들어섰다.

“응?”

그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오양군은 전에 자신이 아는 그 사람이 아니었다. 온몸이 망가질 대로 망가져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 있었다.

“서, 성주님.”

철전혼을 발견한 오양군은 그 자리에 무릎을 꿇으며 울먹였다.

“무슨 일이냐?”

철전혼은 다급하게 물었다.

“사라졌습니다.”

오양군이 대답했다.

“뭐가 사라졌다는 거냐?”

“우, 운성이 사라졌습니다.”

“운성이 사라져?”

철전혼은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를 못했다.

“팔왕이 부하들과 함께 쳐들어와서는…….”

“그, 그러니까 운성이 멸문했다는 거냐?”

철전혼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그렇습니다, 성주님. 운성은 잿더미가 됐습니다.”

오양군은 땅바닥에 머리를 처박고 울음을 터뜨렸다.

“이, 이게…….”

철전혼은 말문이 막혔다.

운성은 그가 평생을 바쳤던 곳이다. 단 한 번도, 아니 꿈속에서도 운성이 어떻게 되리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자신은 죽어도 운성은 영원할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멸문했단다.

“자, 자세하게 말해 봐라.”

철전혼은 오양군 앞으로 다가앉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그게…….”

오양군은 금장생 일행이 쳐들어온 것부터 멸망할 때까지, 그가 본 것은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말했다.

“검우는, 검우는 어떻게 됐느냐?”

철전혼은 다급하게 물었다.

“모릅니다.”

“몰라?”

“대공자께서는 싸움이 나기 전에 고전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뒤로 나오지 않았느냐?”

“대공자님은 물론이고 함께 들어갔던 자들 중 나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럼 아직 살아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철전혼은 벌떡 일어났다.

“그건…….”

오양군은 말끝을 흐렸다.

“군우!”

철전혼은 철군우를 불렀다.

“네, 성주님.”

“당장 떠날 준비 하라.”

“알겠습니다.”

철군우는 고개를 숙였다.

운성 성주 철전혼이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는 말은 곧바로 좌무백에게 전해졌다. 소식을 전한 자는 남궁세가 가주 남궁무위였다.

“그게 무슨 소리냐?”

좌무백이 물었다.

“운성이 멸문했다고 합니다.”

“운성이 멸문?”

“네. 팔왕이 우리를 따돌리고 거기로 간 모양입니다.”

“확실한 정보냐?”

“운성의 총관 오양군이 여기까지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떠난다고?”

“직접 확인할 생각인 것 같습니다.”

확인하고 싶은 사람은 철전혼뿐만이 아니었다. 아들 남궁창하를 운성에 두고 온 남궁무위도 생사를 확인하고 싶었다.

“지금 어디 있느냐?”

“떠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가서 내가 보잔다고 해라.”

“알겠습니다.”

남궁무위는 고개를 숙이고 자리를 떴다.

그로부터 잠시 후 철전혼이 좌무백 처소로 왔다.

“부성주로부터 말은 들었다. 만일 운성이 정말로 멸문했다면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그래도 가겠느냐?”

“제 눈으로 확인하고 싶습니다.”

“놈들이 함정을 파 놓고 기다리고 있을 텐데 그래도 가겠다는 거냐?”

“죄송합니다, 주공. 제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구나. 좋다. 가라.”

좌무백은 고개를 끄덕였다. 명령 한마디면 잡아 둘 수도 있지만, 마음이 다른 곳으로 가 있는 자에게 기대할 수 있는 건 없다. 철전혼을 잃으면 손실이 크겠지만 보내 주는 수밖에 없을 듯했다.

“감사합니다, 주공.”

철전혼은 고개를 숙이고는 자리를 떴다.

철전혼이 운림 대원과 함께 떠나자 좌무백은 곧바로 회의를 소집했다. 가장 먼저 회의실로 들어온 사람은 환수각 각주 척사랑이었다.

척사랑이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좌무백은 힘을 끌어 올렸다. 그리고 스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를 봐라, 척사랑!”

좌무백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척사랑의 눈동자가 풀렸다.

“네, 주인님!”

척사랑은 공손하게 대답했다.

“너는 지금부터 이 안에서 나눈 대화를 전부 잊게 될 것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주인님.”

척사랑은 고개를 숙였다.

“좋다, 네 자리에 가 앉아라.”

좌무백은 의자 하나를 가리켰다.

“네.”

척사랑은 좌무백이 가리킨 자리로 가 앉았다.

곧이어 마원 원주 천파와 해림 림주 옥천환, 천야교 교주 방가려, 그리고 고독혼과 능천대를 이끌고 있는 카단이 들어왔다.

“우리가 놈에게 당한 것 같다.”

좌무백이 입을 열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고독혼이 물었다.

“운성이 멸문한 모양이다.”

“운성이라고요?”

일행의 눈이 커졌다.

“그렇다.”

좌무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철 성주가 보이지 않는 게 그것 때문이군요.”

천파가 말했다.

“지금 가 봐야 소용없다는데도 자기 눈으로 확인해야겠다는구나.”

“으음!”

일행은 일제히 신음을 내뱉었다.

“그들을 이끌고 있는 자는 팔왕입니까?”

고독혼이 물었다.

“맞다.”

“우리가 당했군요.”

고독혼은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당한 게 아니라 놈에게 역습을 당했을 뿐이다.”

“놈이 운성을 쳤다면 바로 남으로 이동해서 해림을 노리겠군요.”

“그럴 가능성이 높다. 아니 높은 게 아니라 그럴 생각이 아니라면 운성을 치지도 않았을 것이다.”

“지금 당장 안휘성으로 가야 합니다.”

옥천환이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가면 해림을 구할 수 있을 거라고 보느냐?”

좌무백이 물었다.

“네?”

옥천환은 의아한 얼굴로 좌무백을 보았다.

“지금 안휘성으로 가면 해림을 구할 수 있을 거라고 보느냔 말이다.”

“그건…….”

옥천환은 말끝을 흐렸다.

운성이 있는 하남성과 안휘성 해림까지는 사흘 거리인 반면, 이곳에서 해림까지는 닷새 거리다. 놈이 해림을 노린다면 가 봐야 상황이 종료됐을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함정을 파고 기다린다면 자신들 또한 전멸할 수도 있다.

“지금 시점에서 해림으로 가는 건 놈이 바라고 있는 것일 터.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고독혼이 물었다.

“너는 지금 당장 초무극에게 연락을 넣어라.”

“그에게 맡길 참입니까?”

“현재로선 그렇게 하는 게 최선이다. 그렇지 않으면 놈에게 끌려다니다가 패하고 만다.”

“하면 우리는…….”

“우린 놈의 근거지를 친다.”

“마가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고독혼이 물었다.

“그렇다.”

“병력은 어디를 동원하실 겁니까?”

“굳이 다른 병력은 필요 없다. 여기 있는 이들로 충분하다.”

좌무백은 카단을 보았다. 능천대 사천 명과 각 세력의 수장들이 데리고 온 무인들이면 마가 정도는 충분히 없앨 수 있을 터였다.

“그리고…….”

좌무백의 시선이 천파에게로 향했다.

“하명하십시오.”

“천파, 너는 계속해서 놈들을 쫓아가라.”

“받은 대로 돌려줄 참이군요.”

고독혼이 고개를 끄덕였다. 쫓는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나머지 병력으로는 마가를 치는 건 팔왕이 아군에게 한 공격 방식과 동일하다.

“아니다, 받은 대로 돌려주는 게 아니라 이자까지 쳐서 줄 생각이다. 그리고 너는 놈들을 따르면서 은밀하게 해가와 전가에 병력을 이동시키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천파는 고개를 숙였다.

“바로 시작해라.”

“알겠습니다.”

일행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능천대 대원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온 카단은 곧바로 지시를 내렸다. 무인들은 전서구를 이용하겠지만 하늘을 날아다니는 신족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좌무백 이름으로 서찰을 작성해서는 황실로 갈 전령에게 보냈다. 잠시 후 능천대 진영에서 신족 열 명이 솟구쳐 동쪽으로 날아갔다.

그들을 지켜보던 카단은 곧바로 좌무백에게 가서 보고를 했다.

“능천대를 마가 근처로 이동시켜. 날아서 이동하면 놈들이 알아차릴 수도 있으니까 지상으로 이동해.”

보고를 받은 좌무백은 명령을 내렸다.

“알겠습니다.”

카단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를 떴다.

* * *

무혼 일행이 쫓는 자들 측에 변화가 생겼다는 걸 감지한 건 좌무백이 작전을 변경한 지 이틀 후였다. 가장 먼저 감지한 사람은 무혼이었다.

“이상하지 않아?”

무혼은 바타르를 보며 말했다.

“뭐가?”

바타르가 물었다.

“지금까지는 계속해서 새들이 쫓아왔는데 오늘은 한 번도 못 봤어.”

무혼이 말한 새란 신족의 은어다.

“우리를 쫓아오던 신족이 사라졌다는 거냐?”

“거의 다섯 시진 동안 한 번도 못 봤어.”

무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바타르의 시선이 허공으로 향했다. 한참 동안 허공을 바라보던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신족은 오지 않는다.”

바타르는 무혼을 보며 말했다.

“자운영!”

무혼은 자운영을 보았다.

“네.”

“확인해.”

“알겠습니다.”

자운영은 곧바로 자리를 떴다.

“나도 다녀오겠소.”

암노왕 염라가 자운영을 따라 몸을 날렸다.

“우린 여기서 쉽시다.”

무혼은 한쪽 나무에 기대앉았다.

“왜 갑자기 추적을 멈춘 거지?”

바타르가 무혼 앞으로 가며 물었다.

“너 애인에게 물어봐.”

“말남에게?”

바타르는 권말남을 보았다.

“부제독이 성공한 것 같아요.”

“금장생이 성공했다는 건…… 해림이 멸문했다는 거구나.”

이곳에 있는 일행은 금장생의 첫 번째 목표가 해림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요.”

권말남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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