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483)
장군 멍군
캉! 캉캉! 캉캉캉! 카캉!
도끼날 형태의 부강은 창궁대 대원의 검을 무자비하게 부쉈다. 그리고 검의 주인의 몸통까지 잘랐다.
“크아악!”
“아악!”
“으아악!”
피의 향연이 벌어졌다. 삼백육십혈부에 노출된 자들은 한 명도 예외 없이 모두 잘려 나갔다. 대부분 머리나 혹은 어깨가 잘렸고 운이 좋은 자는 팔이 잘렸다. 남궁영광 또한 운이 좋은 자에 속했다.
아니 그가 팔만 잘린 건 운이 좋아서가 아니라 다른 대원들보다 뛰어난 실력 덕분이었다. 머리가 잘리려는 순간 오른팔을 들어 올려 방어를 했다. 비록 팔이 잘리겠지만 머리가 쪼개지는 것보다는 나았다. 전 내공을 팔에 주입한 상태라 잘리는 동안 약간의 여유가 생겼다, 그 여유를 이용해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파앗!
남궁영광은 지혈을 할 여유도 없이 몸을 날렸다.
잠시 후 그는 남궁오검이 지키고 있는 마지막 관문에 도착했다.
“넌…… 어떻게 된 일이냐?”
남궁적천은 곧바로 상황을 파악했다.
“노, 놈은 인간이 아닙니다.”
“놈이라면 적이 한 명이란 말이냐?”
“그렇습니다. 놈은…….”
남궁영광은 조금 전 겪었던 일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마, 마신이라고?”
남궁적천은 불신이 가득한 얼굴로 남궁영광을 보았다. 남궁영광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사실입니다. 놈은 인간이 아닙니다.”
남궁영광은 다시 말했다.
“정신 차려라, 놈!”
남궁적천은 버럭 소리쳤다.
그는 남궁영광이 문도를 모두 잃자 정신이 어떻게 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제, 제 말은…….”
“닥쳐라!”
남궁적천은 다시 소리를 치고는 고개를 돌렸다.
쿵! 쿵! 쿵!
바로 그때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남궁적천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소리를 듣는 순간 불길함이 온몸으로 엄습해 왔다. 그건 분명 육감이 보내는 경고 신호였다.
그는 사제들을 보았다.
“뭔가가 오는 모양입니다.”
둘째 한수천류검 남궁영하가 말했다.
“그런 모양이네.”
남궁적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쿵! 쿵! 쿵! 쿵!
둔탁한 소리는 계속해서 들렸다. 잠시 후 일행 앞에 거대한 동체가 나타났다.
“저건?”
남궁적천의 눈이 커졌다. 남궁영광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운무를 뚫고 나타난 거대한 동체는 키가 무려 오 장이나 왰다. 양쪽에 나 있는 기다란 뿔과 광채를 뿌리는 눈동자는 전설에 등장하는 마신의 모습이었다.
쿠웅!
곧 마신은 남궁적천 일행 앞으로 다가왔다.
“시작하세.”
남궁적천은 사제들에게 소리치고는 몸을 날렸다. 그러자 나머지 네 사람도 몸을 날려 마신을 포위했다.
“차앗!”
가장 먼저 몸을 날린 자는 막내 정토천지검 남궁국현이었다. 오 장 높이까지 솟구친 그는 마신의 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순간 마신의 목 부근에서 반투명한 뭔가가 튀어나왔다. 거대한 마신의 덩치에 비해 너무 작고 반투명해 육안으로 파악하는 게 쉽지도 않았다. 게다가 속도도 엄청나게 빨랐다.
막대 형태의 반투명한 물체는 바로 가드헬이었다.
푹!
남궁국현이 가드헬을 알아차린 순간 이미 심장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컥!”
남궁국현은 짤막하게 비명을 내질렀다.
그는 고개를 숙였다. 심장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는데 피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푸스스!
곧 가루가 사방으로 휘날렸다.
“이…….”
남궁국현은 뚝 떨어졌다.
“막내야!”
넷째 만금천사검 남궁역개가 비통한 얼굴로 소리치며 몸을 날렸다.
턱!
그는 남궁국현을 받아 들었다. 남궁국현의 상체는 절반 이상 가루로 변한 상태였다.
“위험하네, 넷째!”
광목천영검 남궁목인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고개를 들었다. 거대한 손바닥이 덮쳐 오고 있었다. 두 손으로는 남궁국현을 안고 있는 상태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몸을 날리는 것도 불가능했다.
“죽일…….”
퍼억!
검은 손바닥의 남궁목인의 머리를 쳤다.
“크아악!”
남궁역개의 머리가 순식간에 가루로 변했다.
“죽인다!”
몸을 날리는 남궁목인의 몸에서 가공할 기운이 쏟아져 나왔다. 순식간에 마신의 머리 부분까지 도착한 그는 들어 올리고 있던 검을 내리찍었다.
슉!
그의 검이 마신의 정수리로 향하는 순간 이마 한가운데서 가드헬이 튀어나왔다. 남궁목인은 검의 방향을 틀어 가드헬을 막았다.
카앙!
가드헬은 남궁목인의 검에 구멍을 뚫고 그대로 직진해서 목에도 커다란 구멍을 냈다.
남궁목인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숨이 끊어졌다. 가드헬에 의해 분리된 머리와 몸통이 각각 떨어져 내렸다.
“차하!”
“타하!”
남궁적천과 남궁영하가 기합과 함께 마신을 향해 짓쳐 들어갔다. 세 동생이 죽임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얼굴은 차분했다. 이미 삶에 대한 미련을 버린 탓이었다.
둘은 함께 공격하자는 말도 하지 않고 눈빛도 나누지 않았다. 셋째 남궁목인의 머리가 떨어져 나가는 순간 곧바로 바닥을 차고 몸을 날렸다.
남궁적천은 슬쩍 하늘을 보았다.
운무가 많이 옅어져 있었다. 천추로가 무너진 바람에 창궁무애검진이 약해진 탓이다. 희미해진 운무 사이로 조금씩 밝아 오는 동쪽 하늘이 보였다. 새벽이 오는 모양이다.
‘하지만 우리 남궁세가는…….’
창!
창!
검 끝이 마신의 동체를 때렸다.
‘역시.’
남궁적천은 피식 웃었다. 어쩌면 뚫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는데 예상대로였다. 적은 자신이 어찌해 볼 수 없는 강자였다. 진원지기를 끌어 올리는 것도 생각해 보았지만 추한 모습으로 죽게 될 뿐 달라질 게 없었다.
“컥!”
바로 옆에서 남궁목인의 비명이 들려왔다.
남궁적천은 시선을 돌렸다.
남궁목인의 몸을 뚫은 투명한 물체가 자신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남궁적천은 눈을 감았다.
퍼억!
둔탁한 소리가 들려오더니 머릿속이 캄캄해졌다. 남궁적천의 머리를 가루로 만든 가드헬은 다시 마신에게로 돌아가 금장생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금장생은 걸음을 옮겼다. 곧 그 앞에 커다란 기둥 하나가 나타났다. 그는 마신의 발을 들어 올려 힘껏 밟았다. 그 기둥이 바로 진식을 구성하는 주요 매개체 중 하나였다. 기둥은 곧 가루로 변했다.
쉭! 쉭쉭!
솥에서 수증기가 빠져나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오더니 운무가 옅어졌다.
금장생은 밖으로 나와 마신을 돌려보냈다.
십여 장을 걷자 커다란 건물이 나타났다. 건물의 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금장생은 고개를 들었다.
천추각이라 적힌 현판이 붙어 있었다.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대문 안은 정원이었다. 한가운데 작은 연못이 있고 기암괴석과 노송들이 절묘한 배치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연못 건너편에 노인 한 명이 가부좌를 하고 있었다. 그는 남궁세가 노가주 남궁만해였다.
“너는 누구냐?”
시선이 마주치자 남궁만해가 물었다.
“팔왕입니다.”
“팔왕가의 그 팔왕?”
남궁만해는 아들 남궁무위와 주기적으로 서찰을 주고받았다. 그래서 팔왕가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지금 서쪽으로 가는 걸로 알고 있는데…….”
“가는 도중에 나만 빠져나왔습니다.”
“우리를 치기 위해 나온 건 아닐 테고…… 운성이구나.”
남궁만해는 곧바로 금장생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거긴 이미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춘추오패의 한 곳을 하룻밤 만에 멸문시켰단 말이냐?”
“운성뿐만이 아니라 운성과 협력 관계에 있던 모든 문파도 정리가 끝났을 겁니다.”
“…….”
남궁만해는 말없이 금장생을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검을 뽑았다.
“의미 없는 짓입니다.”
금장생은 오른손을 하늘로 향하게 하고는 손바닥을 폈다. 그러자 가드헬이 천천히 솟구쳤다.
“네게는 의미가 없을지 모르지만 나는 아니다. 나는 남궁세가의 가주고 가주는 목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가문을 지켜야 한다.”
“가주는 당신이 아니고 남궁무위 대협인 걸로 압니다만.”
“아니다. 그 아이는 나를 대신해서 잠시 동안 가주 자리에 앉았을 뿐이다. 남궁세가 현 가주는 나다.”
“그래서 아들을 멀리 운성까지 보낸 거였군요. 아무튼 그건 당신네들 사정이니까 나하곤 상관없죠. 딱 한 번만 공격하겠습니다. 막아 내면 더 이상 공격하지 않겠습니다.”
금장생은 뭔가를 움켜쥐는 시늉을 하더니 남궁만해를 향해 내던졌다.
슉!
그러자 가드헬이 허공을 갈랐다.
“타하!”
가드헬이 다가온 순간 남궁만해는 전력을 다해 휘둘렀다.
차앙!
“잘랐…….”
푹!
남궁만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가드헬의 그의 심장으로 파고들었다.
“이건?”
남궁만해는 멍한 얼굴로 자신의 검을 보았다.
조금 전 투명한 물체와 부딪친 부분이 사라지고 없었다.
“가드헬이 강한 것도 있지만 천 년 공력이 담겨서 그렇습니다.”
금장생의 말은 거짓이 아니다.
가드헬이 절대적인 무기라고 하지만, 가드헬 자체 힘만으로 남궁만해 같은 절대 고수를 일 초 만에 없애지 못한다. 남궁만해가 당한 건 가드헬에 심어진 금장생의 공력 때문이라고 해야 했다.
“지, 지금 천 년이라고 했느냐?”
“어쩌면 더 될지도 모릅니다.”
“넌…….”
남궁만해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쿠웅!
남궁만해의 몸이 거칠게 쓰러졌다. 곧 남궁만해의 몸통은 가루로 변했다. 남궁만해를 없앤 금장생은 천추각으로 갔다. 그리고 삼매진화를 펼쳐 불을 질렀다. 먼저 외곽에 불을 피우고 안으로 들어가 내부에도 불을 놓았다.
일하던 이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뛰쳐나갔지만 그대로 두었다. 잠시 후 천추각은 불길에 휩싸였다.
건물 밖에서 불타는 천추각을 바라보고 있는데 먼저 출발했던 이들이 왔다.
가장 먼저 도착한 사람은 불여하였다.
“다친 데는 없어요?”
금장생은 불여하를 보며 물었다.
“괜찮아요.”
불여하는 빙긋 웃었다.
“다행이네요. 다음부터는 함께 가도록 해요.”
“불안해요?”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 사노왕이에요. 전 팔왕이기도 하고 카바야의 주인이기도 하고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불여하는 웃음을 감추지 않았다.
“아무튼 이제부터 혼자 움직이는 건 금지예요.”
“알았어요.”
휙!
휙!
이어 오다아이와 도쿠가와 신켄이 날아내렸다.
금장생은 두 사람을 보았다. 두 사람의 몸은 온통 피투성이였다.
“어때요?”
금장생이 물었다.
“끝났어요.”
“정리됐습니다.”
휙! 휙휙휙휙!
두 사람이 대답을 하는 사이에 혈가 무인들이 속속 도착했다.
그들은 금장생을 보자마자 인사를 했다.
“진식이 파훼됐으니까 사망자와 부상자를 챙기도록 하세요. 그리고 건물은 모두 태우도록 하세요.”
금장생은 도쿠가와 신켄을 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도쿠가와 신켄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혈가 무인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잠시 후 남궁세가 전역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정리가 끝난 조는 출발하도록 하세요.”
금장생은 연기를 바라보다가 출발 명령을 내렸다.
“알겠습니다.”
도쿠가와 신켄은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로부터 반 각 후 혈가 무인 수백 명이 불타는 남궁세가를 뒤로하고 몸을 날렸다.
그들이 달려가는 방향은 북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