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482)
“이관이 뚫렸습니다, 가주.”
남궁오검의 첫째 남궁적천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알고 있네.”
남궁만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얼굴 역시 남궁적천과 마찬가지로 잔뜩 굳어 있었다. 두 사람이 굳어진 것 뚫린 천추로가 창궁무애검진의 중추이기 때문이다.
천추로라 불리는 중추가 무너지면 창궁무애검진은 바로 와해되고, 진식의 와해는 패배로 이어질 게 뻔하다. 그리고 그 패배 뒤에는…….
심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어떤 자들인지는 파악했습니까?”
남궁적천이 물었다.
“이런저런 증거를 조합해 보니까 혈가라는 결론이 나왔네.”
“혈가라고요?”
남궁적천의 눈이 커졌다.
그는 안휘성에 혈가라는 가문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아는 혈가는 태양상인을 운영하는 상인 가문이지 무림 세력이 절대 아니다. 게다가 그들은 남궁세가를 공격할 이유가 없다.
“그렇네.”
남궁만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우리 남궁세가를 넘볼 정도로 강했단 말씀이십니까?”
남궁적천은 믿을 수 없는 얼굴로 물었다.
“우리가 다른 세력에 대해서 너무 등한시한 대가겠지.”
남궁만해는 한숨을 내쉬었다.
운성과 협력자 관계가 되기 전만 해도 남궁세가는 늘 경계를 했다. 경계가 느슨해진 것은 운성과 협력자 관계가 된 후였다. 천하제일 세력과 같은 편이 됐는데 두려워할 게 무에 있겠느냐는 마음가짐이 작용했는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새로운 세력이 나타난다고 해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제거할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었는지도.
“하지만 우린 약하지 않네.”
남궁만해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의 목소리엔 자부심이 가득했다. 남궁세가는 수백 년의 역사를 지녔고 그 기간 동안 안휘성의 패자로 군림해 왔다. 물론 해림처럼 남궁세가보다 강한 세력이 나타나긴 했지만 그들은 얼마 가지 못했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곳은 남궁세가였다.
이번에도 남궁세가는 살아남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가주님 말이 맞습니다. 우리 남궁세가는 강하고 앞으로도 수백 년 동안 안휘성의 패자로 남을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있는 한 그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겁니다.”
남궁적천은 확신 어린 목소리로 말하고는 자리로 돌아갔다.
슈욱! 피우우우! 슈욱!
동쪽을 제외한 세 곳에서 날카로운 소리를 뿌려 대는 효시가 솟구쳤다.
“으음!”
남궁만해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 효시는 창궁무애검진의 외곽이 와해됐다는 보고였다.
“도대체 어떤 놈들이냐?”
남궁만해는 주먹을 불끈 쥐고 중얼거렸다. 혈가라고 했지만 그건 추측에 불과할 뿐 정확한 것은 아니다.
* * *
“나는 팔왕입니다.”
금장생은 전면을 향해 나직하게 대답했다.
그에게 질문을 한 자는 환류검幻流劍이란 별호로 불리는 남궁현웅이었다. 남궁현웅은 천추로 제삼 관의 수장이고 그가 거느린 창궁대 대원의 수는 일백 명이다.
“팔왕?”
남궁현웅은 고개를 갸웃했다.
각호 식견이 짧진 않는데 팔왕은 처음 들어 보는 별호였다.
“당신네들이 나를 주시하기 시작한 건 최근입니다. 남궁무위가 철전혼과 함께 외부로 나간 게 바로 나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네가 팔왕가라 불리는 여덟 가문의 대표란 말이냐?”
“전혀 모르는 건 아니었군요.”
금장생은 싱긋 웃었다.
“그럼 너는 춘추오패의 수장을 따돌리고 여기로 온 거구나.”
“그렇습니다.”
“우리 남궁세가와 깊은 원한이라도 있는 거냐?”
“없습니다.”
“그런데 왜…….”
“운성도 있고 해림도 있는데 남궁세가를 먼저 공격하느냐는 질문입니까?”
“그, 그렇다.”
남궁현웅은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세가는 첫 번째가 아니고 두 번쨉니다.”
“두 번째라면 설마 운성을…….”
“그게 아니라면 여기에 올 이유가 없겠지요.”
“맙소사.”
남궁현웅의 입이 쩍 벌어졌다.
“시간이 너무 지체됐군요. 지금부터 좀 서둘러야 하겠습니다.”
“쿡! 내가 네 거짓말에 잠시 이성을 잃었구나.”
남궁현웅은 이내 본래 신색을 되찾았다. 그는 좌우측에 있는 대원들을 보았다. 그리고 크게 소리쳤다.
“대원들은 소창궁무애검진의 후식을 펼쳐라!”
“존!”
일백 명의 창궁대 대원들은 일제히 양손을 앞에 있는 자의 명문혈에 붙였다.
소창궁무애검진은 전식과 후식이 있는데, 두 진식의 차이점은 내공을 전이하는 방식에 있다. 전식은 내공을 전이해 주다가 유사시에는 적을 공격하지만, 후식은 유사시에 대한 대비가 없다.
즉 공력을 전이받은 자에게 모든 걸 거는 필살진이고 동귀어진 진식인 것이다. 당연히 더 강할 수밖에 없다.
고오오오오!
앞에 있는 자에게 내공을 전이하기 시작하자 살을 엘 듯한 살기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마신!”
금장생은 허공에 대고 나직하게 소리쳤다.
웅! 웅웅웅!
대기가 요동치는 듯하더니 거대한 동체가 금장생 앞에 나타났다. 금장생은 곧바로 마신에 탑승했다.
바로 그때 창궁대의 공격이 시작됐다.
캉! 캉캉!
소창궁무애검진에서 발출한 검강이 마신의 장갑을 쳤다. 하지만 마신은 옴짝달싹도 하지 않았다. 마신은 소창궁무애검진을 향해 오른손을 쭉 내밀었다.
그러자 수천 개의 손바닥이 나타났다.
흑철마신 적무황의 팔만사천수결八萬四天手結이었다. 마가 오대철인 중 가장 강했다는 적무황의 무공은 가공했다.
퍽! 퍽퍽! 퍽퍽퍽! 퍽퍽!
“크악!”
“아악!”
“으악!”
“크악!”
창궁대 대원들은 속수무책이었다.
거대한 손바닥에 부딪치는 순간 온몸이 부서졌다. 왼편에 있던 소창궁무애검진을 없앤 금장생은 오른편에 있는 진식을 향해 팔만사천수결을 펼쳤다.
이번에도 결과는 같았다. 남궁세가가 자랑하는 소창궁무애검진은 일 초도 버티지 못하고 와해됐고, 진식을 구성하던 창궁대 대원들은 온몸이 부서진 채 죽었다. 지휘관인 남궁현웅도 다르지 않았다.
다른 대원들보다 상태가 낫기는 했지만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도대체…….”
남궁현웅은 믿어지지가 않았다.
무려 키가 오 장에 달하는 거대한 동체. 전설에 흔히 등장하는 마신이었다.
소창궁무애검진으로 만들어 내는 검강은 일반 검강보다 수십 배 더 강하다. 그런데 그 검강으로 흠집조차 내지 못했다. 그리고 마신의 일수一手에 오십 명으로 구성된 소창궁무애검진이 와해됐다. 단 이 초 만에 소창궁무애검진 두 개가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소창궁무애검진을 구축했던 대원과 자신도.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너는 누구냐?”
남궁현웅은 물었다.
“팔왕이라고 말씀드린 것 같습니다만.”
“맞아, 그랬지. 그럼 오늘 우리 남궁세가는 멸망하겠구나.”
“줄 때문이라고 생각해 주시길.”
금장생은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자리를 떴다. 마신은 곧 운무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남궁현웅은 품속을 더듬었다.
덜덜 떨고 있는 그의 손에 반 자 길이의 막대가 들려 나왔다. 그는 막대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손잡이 부분에 불쑥 튀어나와 있는 단추를 힘껏 눌렀다.
퍽!
뭔가를 치는 소리가 들렸다.
푸아악!
그리고 막대 끝에서 작은 화살 하나가 튀어나와 허공으로 솟구쳤다. 신호를 전달하는 효시였다.
효시를 가장 먼저 알아차린 자는 사관을 맡고 있는 남궁영광이었다. 남궁영광은 현역에서는 가문을 떠난 가주인 남궁무위 다음으로 강자로 알려져 있다.
“으음!”
효시를 발견한 그는 신음을 내뱉었다.
적이 삼관문으로 들어선 건 한 식경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뚫렸다는 효시가 쏘아진 것이다.
적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강자였다.
“문도들은 준비하라!”
남궁영광은 대원들에게 소리쳤다. 이곳에 있는 백 명 또한 창궁대에서 가장 강자들이고, 창궁대에서 가장 강하다는 건 남궁세가에서 가장 강하다는 걸 뜻한다.
“나는 네가 우리마져 뚫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남궁영광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쿵! 쿵! 쿵! 쿵! 쿵!
둔탁한 소성이 들려오면서 바닥이 약간씩 흔들렸다.
“응?”
남궁영광의 얼굴이 의아해졌다. 어찌 된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던 탓이다. 그는 고개를 돌려 대원들을 보았다. 대원들 또한 영문을 모른다는 듯 의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뭔지 모르지만 좋지 않은 것만은 분명하다. 대비하라!”
“존!”
창궁대 대원들은 일제히 검을 뽑았다. 그리고 한 손을 앞에 있는 대원의 명문혈에 댔다.
‘사라졌다!’
남궁영광은 좌우를 둘러보았다. 조금 전까지 들려오던 둔탁한 소리가 갑자기 들리지 않았다.
‘뭐냐?’
더불어 불안한 기운이 엄습해 왔다.
슈아아악!
갑자기 하늘에서 대기 갈라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남궁영광은 고개를 들었다.
“헉!”
그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커졌다.
거대한 물체가 무서운 속도로 내리꽂히고 있었다. 그 기세가 어찌나 강한지 마땅히 막을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방법은 한 가지.
“피해라!”
남궁영광은 버럭 소리치고는 오른편으로 몸을 날렸다. 대원들이 흩어지면 소창궁무애검진이 와해되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창궁대 대원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쿠웅!
그들이 자리를 뜬 순간 거대한 동체가 내려섰다. 발이 땅속으로 파고들어 간 그 동체는 마신이었다.
마신은 내려서자마자 양팔을 동시에 휘둘렀다. 수천 개의 손바닥이 나타나 창궁대 대원들을 향해 쏘아져 갔다.
“막아라!”
나타난 자의 정체를 확인한 겨를도 없이 창궁대 대원들은 자신이 펼칠 수 있는 최강의 방어 무공을 펼쳐 대항했다.
슈캉! 슈캉! 슈캉! 슈캉!
전 내공을 밀어 넣고 강기로 감쌌지만 상대는 너무 강했다. 거대한 손바닥 문양에 부딪친 창궁대 대원의 검은 부러지거나 튕겨져 나갔다.
“커억!”
“크윽!”
“으윽!”
호구가 찢어진 대원들의 입에서 비명이 비어져 나왔다.
“공격하라!”
남궁영광은 고함을 내지르며 거대한 동체를 향해 몸을 날렸다. 상대의 정체를 확인하는 거나 파악하는 건 의미가 없었다. 적은 압도적인 힘으로 공격을 해 왔고, 막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죽는다.
남궁영광의 명령에 따라 창궁대 대원 수십 명이 마신을 향해 몸을 날렸다.
마신이 검을 뽑아 든 건 그때였다.
전함의 노처럼 거대한 마신검이 허공을 갈랐다. 마신검의 표적이 된 자들은 일제히 자신의 검을 들어 올렸다. 이미 허공에 몸을 띄운 상태라 피하는 건 불가능해 방어를 하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슈캉! 슈캉! 슈캉! 슈캉!
조금 전 수강手罡 때와는 상황이 달랐다. 그때는 튕겨 나간 검이 많았지만 이번에는 부딪치는 순간 잘렸다. 창궁대 대원의 검을 자른 마신검은 그대로 직진하여 몸통까지 잘랐다.
“크악!”
“아악!”
“으악!”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상하로 분리된 창궁대 대원들은 피를 쏟아 내며 추락했다.
캉! 캉! 캉캉! 캉!
그렇다고 창궁대 대원들이 일방적으로 당하지만은 않았다. 공격한 자들 중 일부는 마신의 동체에 검을 박아 넣거나 장갑이 깊은 흔적을 남기기도 했다.
그런데 그것뿐이었다.
수십 자루의 검에 꽂히고 수십 군데가 쩍쩍 갈라졌지만 마신은 피를 흘리지도, 비틀거리지도 않았다.
앞으로 내밀었던 왼발을 뒤편으로 이동하며 몸을 돌렸다. 그리고 마신검을 휘둘렀다.
순간 창궁대 대원을 향해 나아가는 검이 수십 개로 늘어났다. 목전의 나무꾼들이 나무를 자를 때 사용하기 위해 창안했다는 삼백육십혈부三百六十血斧였다.
도끼날 형태의 부강斧罡 삼백육십 개가 전방을 붉게 물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