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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481화 (481/524)

황금가 (481)

남궁일웅은 굳은 얼굴로 공터 가운데 서 있는 사내를 보았다. 나이는 많이 쳐줘 봐야 서른 중후반이다. 들고 있는 검은 무인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 자라면 결코 들지 않는 박도다.

그런데 볼품없는 저 박도가 남궁세가 최정예인 창궁대 대원 오십 명을 고혼으로 만들었다.

만일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절대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나저나…….’

창궁 일조 조장인 남궁일웅이 가장 궁금한 건 난생처음 보는 자가 왜 남궁세가를 공격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우리 남궁세가와 원한을 진 일이 있느냐?”

남궁일웅은 물었다. 금장생을 바라보며 한 말이었지만 육합전성이라는 고절한 수법을 사용해서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수 없게 했다.

“없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왜 공격하는 거냐?”

“줄 때문이라고 하는 게 이해가 빠를 것 같습니다.”

“줄?”

남궁일웅의 얼굴이 의아해졌다. 줄이란 말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 탓이었다.

“남궁세가에도 줄이 있었던 걸로 압니다. 남궁우형이란 줄과 남궁만해란 줄 말입니다. 남궁우형 쪽에 줄을 섰던 자들은 당사자는 죽임을 당하고 가족은 노예나 기녀로 팔린 걸로 압니다. 그렇다고 내가 그들의 복수를 하기 위해 온 건 아니니까 오해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 그러니까 우리가 줄을 잘못 섰다는 거냐?”

“네.”

“우린 줄을 선 적이 없다.”

“운성을 향해 고개를 숙인 걸로 압니다만…….”

“운성과 우린 주종 관계가 아니라 협력…… 그러니까 그것 때문에 우릴 공격하고 있다는 거냐?”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운성이 어떤 곳인지 아느냐?”

“춘추오패의 한 곳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걸 알면서 우리를 공격한다는 거냐?”

“당신의 눈에는 운성이 대단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내게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왜냐면 운성은 이미 멸망했거든요.”

“……하하하!”

잠시 멈칫하던 남궁일웅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금장생이 장난을 친다고 생각했다.

오래전부터 강호무림에는 춘추오패의 상대는 춘추오패밖에 없다는 말이 내려온다. 그리고 춘추오패가 전쟁을 시작했다면 남궁세가에서 파악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 아니 춘추오패는 서로 전쟁을 할 수 없는 조직이다. 왜냐면 다섯 세력의 주인이 따로 있으니까. 자신 또한 춘추오패가 한집안이란 사실을 최근에 알았다.

“거짓말도 어느 정도 해야 믿어 줄 텐데 운성이 멸망했다는 건 믿어 줄 수가 없는 것 같구나.”

“믿어 달라고 한 말이 아닙니다. 나는 다만 운성과 남궁세가는 공동 운명체란 사실을 상기시켜 주고 싶을 뿐입니다.”

“미친놈.”

남궁일웅은 차가운 눈으로 금장생을 쏘아보았다. 그리고 좌우측을 향해 나직하게 소리쳤다.

“죽여라!”

스윽! 스윽! 스윽! 스윽!

그러자 운무와 하나가 돼 있던 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움직이는 모습은 마치 운무가 바람에 이동하는 것 같았다.

스아악!

한 무더기 운무가 금장생을 덮쳤다. 육안으로는 운무 안에 몇 명이 들어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금장생은 운무를 향해 무적검을 수직으로 내리그었다.

퍼억!

공간이 갈리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카카캉!

곧이어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창궁대 대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금장생의 공격을 막아 낸 자들은 모두 오십 명이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나머지 마흔아홉 명의 공력을 전이받은 한 명이었다. 그 사내는 맨 앞에 있었는데 뒤편 사내들의 왼손이 바로 앞 사내의 명문혈에 닿아 있었다.

앞에 있는 무인에게 내공을 전이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십 년씩만 전이해 주어도 오백 년이 되는 건가? 하지만…….’

금장생은 고개를 갸웃했다.

물이 많다고 해서 모두 그릇에 담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물을 많이 담기 위해서는 담는 그릇도 커야 한다. 일 갑자 공력을 담을 수 있는 단전을 가진 자는 절대 십 갑자 공력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런데 맨 앞에 있는 동료들이 전이해 주는 모든 공력을 받아들여 방어를 한 것이다.

‘그게 진식의 힘이겠지.’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스윽!

창궁대 무인들이 다시 모습을 감췄다.

금장생은 숨을 들이마셨다. 조금 전 공격에 십 갑자 공력을 사용했다. 그런데 적은 그 공격을 무리 없이 받아 냈다. 그건 곧 적도 십 갑자 공력을 사용했다는 뜻이 된다. 문제는 그 십 갑자가 최소한이냐, 아니면 최대한이냐 하는 거다.

“최소한이라고 해도 상관없지.”

금장생은 나직하게 중얼거리고는 전방을 주시했다.

푸아악!

갑자기 모골이 송연할 정도로 섬뜩한 기운이 전방에서 느껴졌다.

파앗!

금장생은 바닥을 차고 솟구쳤다.

그가 허공으로 떠오르는 순간 시퍼런 강기가 횡으로 가르며 나아갔다. 강기는 몸체가 없는 도끼날 모양이었다. 강기의 폭은 이 장이었다. 오 장여를 나아가던 도끼날 형태의 강기는 곧바로 스러졌다.

푸아악!

이번에는 머리 위쪽이었다.

도끼날 형태의 강기는 무자비하게 허공을 쪼개며 금장생의 정수리를 향해 찍어 왔다.

“막아? 아서라!”

금장생은 받아치는 걸 포기했다. 정면으로 받아 내려 하면 못 할 것도 없지만, 저들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앞으로 몇 개의 관문이 남았는지 모르는데 굳이 힘을 낭비할 이유가 없다. 아울러 정신없이 싸우다가 진식에 휘말릴 수도 있다.

지금 이곳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건 창궁대 대원의 공격이 아니라 진식이다.

재빨리 좌우를 살폈다.

‘저기다.’

그는 오른편으로 일 장을 이동했다.

귀신의 말에 의하면 창궁무애검진의 휴문은 힘과 힘이 중첩된 부분에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설사 그곳이 휴문이 아니라고 해도 진식의 힘이 약화되는 지점이라 진식의 영향을 가장 적게 받는다고 했다.

스아아악!

자리를 이동한 순간 거대한 도끼날이 조금 전 금장생이 서 있던 장소를 갈랐다. 금장생의 눈에도 허공이 잘리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이제…….’

금장생은 조금 전 잘려 나간 공간으로 시선을 주었다. 두 힘이 겹치는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오른발로 허공을 찍으며 몸을 날렸다.

조금 전 봐 두었던 자리에 도착한 순간 무적검을 위에서 아래로 그었다.

철검무적검해의 중관이었다. 중관이 펼쳐지자 금장생의 전방에 거대한 구멍이 생겼다.

캉! 캉캉!

“으음!”

날카로운 소성에 이어 나직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금장생이 펼친 중관을 방어했던 자가 내지른 신음이었다.

그사이 금장생의 신형이 아래로 내려왔다.

두 발이 땅에 닿는 순간 검을 쭉 찔러 올렸다. 두 번째 초식인 천파天破였다. 하늘에 구멍을 뚫는다는 의미답게 허공에 커다란 동굴이 생겨났다. 시간이 흐를수록 동굴이 깊이는 더욱 깊어졌다.

콰앙!

“크윽!”

운무 속에서 고통에 겨운 비명이 비어져 나왔다. 그 순간 금장생의 신형은 오 장 높이까지 솟구친 상태였다. 허공마저도 진식의 영향권에 들어가는지 금장생이 서 있는 곳도 운무로 가득 차 있었다.

금장생은 무적검을 아래로 쭉 찔렀다.

푸아악!

금장생의 전면 아래쪽으로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철검무적검해의 세 번째 초식인 지멸地滅이었다.

콰콰쾅!

“커억!”

아래로 향하는 동굴의 끝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금장생의 전방 운무에 불안한 그림자가 어렸다. 운무는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는 바다처럼 거칠게 출렁거렸다.

금장생은 무적검을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휘두르며 전방으로 내달렸다. 네 번째 초식인 단횡이었다. 그의 전면 공간이 상하로 나뉘었다.

콰콰콰콰콰쾅!

잘려진 공간 속에서 둔탁한 소성이 터져 나왔다.

쿵! 쿵쿵쿵쿵! 쿵쿵쿵!

이어 바닥을 다지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컥!”

“으음!”

“음!”

여러 명이 동시에 내지르는 신음도 흘러나왔다.

“노, 놈이 진식 안으로 들어왔다!”

누군가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차하!”

그 순간 금장생의 입에서 기합이 터져 나왔다.

먼저 전면을 잘라 낸 무적검은 뒤편 공간도 잘랐다. 공간의 앞뒤를 자르는 평절坪絶로 다섯 번째 초식이었다.

카카캉! 캉캉!

지금까지 들었던 둔탁한 소리 대신 날카로운 쇳소리가 흘러나왔다.

“크아악!”

“으아악!”

“아아악!”

처절한 비명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퍼져 나간 피로 인해 운무가 붉게 물들고 비릿한 피 냄새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흩어져서 공격하라!”

남궁일웅은 버럭 소리쳤다. 방금 그 한 수로 인해 소창궁무애검진이 붕괴되고 만 것이다.

살아남은 창궁대 대원들 중 일부는 허공으로 솟구치고 일부는 그대로 공격해 들어갔다. 그 순간 금장생의 무적검이 하늘과 땅을 연속적으로 가리켰다. 그리고 다시 땅과 하늘을 찔렀다.

여섯 번째 초식인 붕광崩光과 일곱 번째 초식인 명멸明滅이었다.

“크악!”

“아악!”

“으악!”

처절한 비명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타하!”

금장생은 기합을 내지르며 다시 철검무적검해를 펼쳤다. 비명은 점점 많이 흘러나오고 피 냄새는 더욱 짙어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금장생의 무적검에는 아무것도 걸려들지 않았다. 이곳을 지키던 오십 명이 모두 죽임을 당하고 만 것이다.

금장생은 무적검을 내렸다.

창궁무애검진은 여전히 발동 중인 상태라 운무에 가려 시체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들었다.

“아침이 오기 전에 끝내야 할 텐데…….”

그는 나직하게 중얼거리고는 걸음을 옮겼다.

남궁세가에는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전설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다섯 무인에 대한 것이었다.

선천적으로 오행의 기운 중 하나를 안고 태어난 다섯 명은 기운에 맞는 검법을 익혔고 이십 대에 이르러 그 분야에서 최강이 됐다고 하였다.

남궁세가는 그들에게 남궁오검南宮五劍이라는 별호를 하사하였고 세가수신위世家修身衛라고 불렀다.

그 첫째는 열화천극검熱火天極劍 남궁적천이다. 필요하지 않으면 하루 종일 한마디도 하지 않는 과묵한 사람이지만, 한 번 화를 내면 아무도 말리지 못하는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인 그는 남궁오검의 중심이다.

두 번째는 한수천류검寒水天流劍 남궁영하다.

남궁영하는 다섯 검수 중 가장 냉철하다는 평가를 받고 머리 또한 뛰어나, 다섯 명이 펼치는 검진인 창궁오행검진을 조율하는 자이기도 하다.

세 번째는 광목천영검廣木天影劍 남궁목인이다. 남궁목인은 별다른 특징이 없고, 자리에 없어도 표시가 나지 않는다고 하여 무인無人이라 불리기도 한다. 그가 안고 태어난 기운은 목木이다.

네 번째는 만금천사검萬金天邪劍 남궁역개다.

남궁역개는 다섯 명 중 가장 크고 힘이 장사며 무공 또한 무거움을 바탕으로 하는 중검을 펼친다.

다섯 번째는 정토천지검淨土天地劍 남궁국현이다.

정토천지검 남궁국현은 다섯 명 중 동작이 가장 느리다. 말도 가장 느리고 밥 먹는 것도 가장 느리다. 하지만 경공은 가장 빠르다. 느리고 빠름의 극한을 오가는 자. 그가 바로 토土의 기운을 안고 태어난 남궁국현이었다.

이 다섯 명이 남궁세가의 전설이 된 것은 권력을 좇지 않는 성격 덕분이었다.

일설에 의하면 다섯 명은 가주보다 더 높은 무공을 지녔다고 하였다. 가주였던 남궁만해는 자신보다 강한 다섯 사람을 요직에 앉히지 않았다. 대신 세가수신위라는 직위를 만들어 그 자리에 앉혔다.

권력은 전혀 없는 명예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섯 사람은 불평을 하지 않았다. 이름뿐인 그 자리에 앉아 평생을 보냈다. 남궁세가를 떠나 세상으로 나갔다면 무인으로 크게 성공했을 텐데 그렇게 하지도 않았다.

그들의 그런 행동은 흠모와 존경의 대상의 됐고 언제부터인가 전설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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