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479)
“아!”
공손보기는 하늘을 보았다.
역부족이다. 어떤 방법을 사용해도 운성을 구할 방도는 없었다.
“도대체 네놈들은 누구냐!”
공손보기는 버럭 소리쳤다.
죽을 때 죽더라도 정체는 알고 싶었다.
휙!
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두 명이 담을 넘더니 공손보기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너, 너는……?”
공손보기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두 명은 인사를 한 적은 없지만 모르는 자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바로 황금철장의 장주와 그의 부인이었다.
공손보기가 알기론 황금철장의 장주와 부인은 이틀 전 철검우의 초대로 운성으로 왔다. 그런데 지금 행동은 적장으로 보인다.
“나를 아십니까?”
금장생은 물었다.
“황금철장의 장주로 알고 있소.”
“나는 당신은 처음 보는데 당신은 나를 알고 있군요.”
금장생은 흘러내린 머리를 쓸어 넘겼다.
“하남성에 있는 모든 대장간의 주인인데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지 않겠소?”
“그래서 그런 거였군요.”
“그런데 당신이 데리고 온 거요?”
“그렇습니다.”
“우리도 황금철장에 대해 조사를 했소. 그런데 대장간 말고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소.”
“강호에서 오래 살아남으려면 자신이 가진 패를 가급적 많이 숨기라고 하더군요.”
“너무 많이 숨기면 가진 게 없다고 무시당하는 곳이 강호이기도 하지요.”
“그렇긴 합니다만 이번엔 철검우가 나를 무시하는 바람에 성공한 것 같습니다.”
“철검우가 무시했다는 건 무슨 소리요?”
“날 무시하지 않았다면 모임에 초대하지 않았을 테고, 그랬더라면 나는 철검우와 산하 세력 문주들을 없애지 못했을 겁니다.”
“그, 그럼 그들도 전부…….”
공손보기의 얼굴이 돌처럼 굳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먼저 해명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금장생은 남궁창하가 한 짓부터 그의 죄를 감싸기 위해 살인멸구를 하려고 했던 것과 철검우가 철광석을 차지하기 위해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것까지 상세하게 설명했다.
“결과는 그들 모두가 죽었다는 거 아니오.”
“맞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감당할 자신 있소?”
공손보기는 금장생을 찬찬히 살폈다. 보통 야망을 가진 자는 숨기려고 해도 은연중에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앞에 있는 자는 그런 것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야망이 없는 자가 운성을 멸문시키려 한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운성은 혼자가 아니다. 최근에 안 사실이긴 하지만 춘추오패는 모두 한 세력에 소속돼 있다. 그건 곧 운성과 전쟁을 치른다는 건 춘추오패 모두와 전쟁을 치른다는 것과 같다.
“자신이 없으면 시작하지도 않았겠지요.”
“당신은 누구요?”
공손보기가 가장 궁금한 점이었다.
운성의 정보력은 중원 전역에 퍼져 있고 새로운 세력이 나타나면 걸려들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자신이 알기론 춘추오패를 넘볼 만한 세력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가만…….’
문득 최근에 나타난 세력이 떠올랐다.
“팔왕가군요.”
성주 철전혼을 비롯한 춘추오패의 수장을 밖으로 끌어낸 세력인 팔왕가. 춘추오패를 공격할 수 있는 자들은 그들뿐이었다.
“역시 머리가 빨리 도는군요.”
금장생은 싱긋 웃었다.
“혹시 팔왕이시오?”
“맞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팔왕은 쫓기는 중인 걸로…… 맙소사.”
공손보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제야 상황이 이해됐다. 금장생은 쫓는 자들을 따돌리고 이곳으로 와서 운성을 공격한 것이다.
문제는 쫓고 있는 이들이 그 사실을 전혀 모른다는 점이었다.
“무서운 사람이군요.”
“살기 위한 몸부림 정도로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금장생은 무적검을 빼 들었다. 공격하겠다는 의사표시였다.
“허허!”
공손보기는 하늘을 보았다.
상대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팔왕이라면 자신이 승리할 확률은 눈곱만큼도 없다.
하지만…….
“내가 이길 확률은 없지만 포기하고 싶지는 않소.”
공손보기는 전 내력을 끌어 올렸다.
“미안합니다.”
금장생은 포권을 취했다. 그리고 무적검을 던졌다. 이기어검술이었다. 굳이 상대가 되지 않는 자와 싸우면서 시간을 끌고 싶지 않았다.
퍼억!
그의 무적검은 막을 기회조차 주지 않고 공손보기의 심장을 뚫었다.
“허허!”
공손보기는 허탈하게 웃었다.
곧 그의 신형이 가루로 흩어졌다.
싸움은 점점 절정으로 치달았다. 사방이 다시 정적을 되찾은 건 싸움을 시작하고 한 시진 후였다.
“각자 정해진 곳으로 가라!”
“출발하라!”
“나를 따르라!”
동료들의 시체를 수습한 혈가와 마가 무인들은 일제히 운성을 떠났다. 맨 마지막으로 떠난 사람은 금장생과 불여하였다.
두 사람이 떠나고 한 식경 후.
폐허로 변한 운전에서 시커멓게 그을린 자가 나왔다. 그는 총관 오양군이었다. 오양군은 불타는 운전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시선을 돌려 금장생과 불여하가 떠난 곳을 보았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다, 팔왕.”
그는 이를 부드득 갈았다. 그리고 몸을 날렸다. 그가 불타는 운성을 뒤로하고 몸을 날려 가는 곳은 성주인 철전혼이 가고 있는 서쪽이었다.
그 시각 금장생과 불여하는 남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와 불여하가 안휘성의 남궁세가에 도착한 건 인시 초였다.
금장생이 도착하자 먼저 와 있던 오다아이와 도쿠가와 신켄이 인사를 했다. 남궁세가는 혈가에서 맡기로 했던 것이다.
“상황은 어때요?”
금장생은 오다아이를 보며 물었다.
“공격 명령이 떨어지면 바로 시작할 수 있는 상태예요.”
“지금 남궁세가를 지휘하는 자는 누구죠?”
“창천검왕蒼天劍王 남궁만해예요.”
“그 사람은 남궁무위 아버지잖아요.”
“남궁무위가 운성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그가 가주직을 맡고 있어요.”
“그는 어떤 사람이죠?”
“창천검왕보다 검군자라고 부르는 사람이 더 많아요.”
“뛰어난 인품의 소유자라는 건가요?”
“네.”
“혈가의 평가도 세간과 같아요?”
“아뇨.”
오다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라고요?”
“네. 그는 야망으로 똘똘 뭉친 야망자예요.”
“그렇게 생각한 이유가 있겠죠?”
“운성과 손을 잡은 사람도 그고 아들과 손자를 들여보낸 사람도 그예요.”
“운성과 손을 잡은 자가 남궁무위가 아니고 남궁만해라고요?”
“네. 그리고 아들과 손자를 운성으로 보내고 자기는 은퇴한 지 십 년 만에 다시 가주로 복귀했어요.”
“다시 가주가 되기 위해 아들과 손자를 운성으로 보냈다는 말처럼 들리는데, 맞나요?”
“네.”
“운성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아들과 손자를 보낸 것일 수도 있잖아요.”
“그럴 것 같았으면 운성이 아니라 같은 안휘성에 있는 해림과 손을 잡았어야죠. 하남성에 있는 운성과 손을 잡을 필요는 없잖아요.”
“그렇군요.”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자, 이제 시작해 보죠.”
“알았어요.”
오다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품속에서 작은 피리를 꺼내 불었다.
피익!
피리 소리가 밤하늘로 퍼져 나갔다.
“응?”
남궁만해는 번쩍 눈을 떴다.
그가 잠을 깬 것은 귓전으로 파고드는 날카로운 소리 때문이었다. 보통은 하루 종일 일에 시달리다 보면 누가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깊은 잠에 빠지는데, 이상하게도 오늘은 잠들지 못했다.
어쩌면 조금 전 꾼 꿈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남궁세가가 불에 타는 꿈이었다. 불길이 워낙 거세서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놀라운 건 남궁세가에 불이 났는데도 자신은 전혀 걱정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니 걱정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그 앞에서 호탕하게 웃고 있었다.
“웃었으니까 나쁜 일이 아니라는 뜻이지.”
그는 자신에게 유리한 쪽을 꿈을 해석했다.
그러고는 다시 잠을 자기 위해 드러누웠다. 하지만 좀처럼 잠을 들지 못했다. 한 식경가량 뒤척이다가 일어나고 말았다.
일어나서 차를 한 잔 하고 창문을 열었다.
“헉!”
문을 완전하게 연 그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는 남궁세가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자기 때문에 창문을 열면 다른 건물의 지붕을 볼 수 있다.
그의 눈에 들어온 건 건물 지붕을 날아다니는 검은 인영들이었다.
남궁만해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우우우우!”
그는 내공을 모아 고함을 내질렀다.
그의 외침은 남궁세가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여기저기서 불이 켜지고 남궁세가가 깨어났다.
삐이익! 삐이익! 삐이익!
뒤이어 날카로운 소리가 남궁세가 어딘가에서 들렸다.
“차앗!”
“타하!”
“요잇!”
날카로운 소리 뒤를 이은 건 짤막한 기합이었다.
“크아악!”
“아악!”
“으아악!”
곧이어 처절한 비명이 들렸다.
“빌어먹을!”
남궁만해는 한편으로 손을 뻗었다.
휙!
그러자 침대 옆 검대에 올려 두었던 검이 그를 향해 날아왔다. 승천하는 용 조각이 손잡이를 이루고 있는 그것은 남궁세가 가주지검인 창궁검蒼穹劍이다. 그는 검을 뽑았다. 그러자 가을하늘처럼 파란색을 지닌 검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떤 자들인지 몰라도 너희들은 실수했다.”
파앗!
남궁만해의 신형이 창문을 박차고 날아갔다. 남궁만해는 허공답보 경신법을 펼치며 검은 인형이 서 있는 건물 지붕으로 날아갔다. 그의 신법은 대단했다.
그는 순식간에 지붕으로 날아내렸다.
“차앗!”
남궁만해를 발견한 혈가 무인 한 명이 기합을 내지르며 몸을 날렸다.
“건방진 놈들!”
남궁만해는 창궁검을 그대로 내리그었다. 그러자 푸른 광채가 전방 공간을 좌우로 갈랐다.
퍼억!
“크악!”
둔탁한 소성과 함께 혈가 무인의 몸이 폭발했다.
“차하!”
“타하!”
이번에는 두 명이었다. 좌우측에서 달려가는 두 명의 움직임은 조금 전 사내보다 더 빨랐다. 남궁만해의 시선이 좌우측을 살폈다. 먼저 처리한 자를 선택하기 위해서였다.
“오른편이다.”
남궁만해는 오른편으로 검을 쭉 찔러 넣었다. 그가 오른편을 선택한 건 더 편하기 때문이었다. 왼편을 공격하려면 몸을 틀어야 하지만 오른편은 검만 틀면 된다. 공격도 빠르고 왼편을 살피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창궁검 검 끝에서 검강이 솟구쳤다.
일 장 길이의 검강은 곧바로 허공을 뚫더니 혈가 무인의 배를 파고들었다.
“커억!”
혈가 무인은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그는 그 자리에 멈추지 않았다. 계속해서 남궁만해를 향해 다가왔다. 치명상을 입었는데도 계속 달려온다는 건 함께 죽자는 수법인 동귀어진뿐이었다.
“다른 자라면 몰라도 내게는 안 통한다.”
남궁만해는 창궁검에 전 내기를 주입했다. 그리고 주입한 진기를 외부로 터트렸다.
퍼억!
혈가 무인의 몸이 화탄처럼 터져 나갔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왼편에서 강한 기운이 다가들었다.
“헉!”
남궁만해는 곧바로 몸을 굴렸다.
동귀어진의 수법으로 다가오던 혈가 무인을 없애는 데 전 내력을 집중하는 바람에 왼편 사내를 방어할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스악!
한발 늦은 듯 옆구리에서 씀벅한 느낌이 왔다.
“타하!”
남궁만해는 몸을 굴리면서도 상대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쿠웅!
“크악!”
둔탁한 소성과 함께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남궁만해의 옆구리에 커다란 상처를 남긴 자가 내지른 비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