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476)
허공으로 솟구치는 게 아니었다. 그냥 달렸어야 하는데 급한 마음에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만 것이다. 허공에 떴을 때 가장 큰 문제는 뭔가가 날아오면 피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허공답보 신법을 펼칠 줄 알면 알아서 피하겠지만 불행히도 유숙의는 그 정도의 고수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해 보지 않고 목숨을 내줄 수는 없었다.
그는 전 내공을 끌어 올려 오른손에 집중하고는 반투명한 막대를 후려쳤다.
퍽!
그러나 투명한 막대는 그의 손을 뚫고 가슴까지 뚫었다.
“커억!”
유숙의는 비명을 내질렀다.
“아악!”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사문금이 내지른 비명이었다.
“빌어먹을!”
유숙의는 욕설을 내뱉었다. 이곳에서 기연을 얻을 줄 알았다. 답보 상태에 빠져 있는 천기루를 부흥시킬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누구보다 열심히 지하를 헤집고 다녔다.
그런데 이렇게 되고 말았다.
“송충이는 솔잎만 먹어야 하는데…….”
털썩!
유숙의는 아래로 떨어졌다. 바닥으로 너부러진 상태에서도 그의 몸은 계속 가루로 변했다. 잠시 후 유숙의의 시체는 완전히 가루로 변해 사라졌다.
금장생은 몸을 날려 불여하 곁으로 날아내렸다.
“덕분에 쉽게 끝났네요.”
불여하가 슬쩍 웃으며 말했다.
“다 잡은 거예요?”
금장생이 물었다.
“여섯 명 남았어요.”
“누구누구 남은 거죠?”
“우리다.”
대답이 들려온 곳은 앞이었다.
잠시 후 네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염마도 여강을 비롯한 그들은 운성의 각주들이었다.
여강 일행의 시선이 향해 있는 곳은 화살에 맞은 시체 두 구였다. 그들은 곧 시선을 돌려 불여하와 금장생을 보았다.
“너희들 정체가 뭐냐?”
여강이 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신이 알기론 저들은 분명 대장장이다. 관천행과 사문금이 약하다고는 하지만 대장장이가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자들은 절대 아니다. 그런데 저들은 관천행과 사문금뿐만 아니라 동군위와 유숙의까지 없앴다.
그런 자들이 대장장일 리가 없다는 게 여강의 생각이었다. 아니 여강뿐만 아니라 나머지 세 명도 같은 생각이었다.
“나는 대장장입니다.”
“나는 대장장이 부인이에요.”
“거짓말하지 마라.”
여강이 버럭 소리쳤다.
“남궁창하 그 개자식이 내 부인을 겁탈하려고 하지 않았다면 내가 저들을 없앨 이유가 눈곱만큼도 없었습니다.”
“그, 그럼 남궁 군사도 죽었단 말이냐?”
여강의 눈이 커졌다. 그는 믿을 수 없는 얼굴로 세 각주를 보았다.
“그자가 먼저 내 부인을 겁탈하려 했고 이자들은 가증스럽게도 망을 봤습니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나, 난 믿을 수 없다.”
“믿어 달라고 한 말이 아닙니다. 동군위나 유숙의를 통해 초록은 동색이라는 사실을 확인했으니까요. 내가 말을 한 건 사정이 그렇다는 걸 알려 주고 싶을 뿐입니다.”
“나가면 이곳에서 있었던 일을 모두 말할 테냐?”
“네 분만 입을 다물면 아무도 모를 겁니다.”
“모른 척해 달라는 거냐?”
“네 분과는 은원 관계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우린 관천행, 유숙의, 동군위, 사문금의 죽음에 대해 설명을 해야 한다. 설명을 하기 위해서는 금역인 이곳으로 들어왔다는 말도 해야 하고.”
말을 마친 여강은 세 각주를 보았다.
각주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사람은 금장생과 불여하를 없애 관천행 일행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뒤집어씌우기로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
여강 일행은 금장생과 불여하를 향해 움직였다. 잠시 후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늘어서 포위했다.
“녹색이 되기로 한 모양이죠?”
금장생은 앞에 선 여강을 보며 물었다.
“무슨 소리냐?”
“조금 전에 초록은 동색이라고 했잖아요.”
“그들 다섯 명의 명예를 지켜 줘야 하니까 우리도 어쩔 수가 없다.”
여강은 도를 뽑았다. 거무튀튀한 도는 그의 별호와 같은 염마도閻魔刀다. 그가 염마도로 펼칠 도법은 염마수라도법이었다.
척!
염마도로 금장생을 겨냥했다.
“어쩔 수 없군요.”
금장생은 무적검을 뽑아 들었다. 금장생이 무적검을 뽑자 여강의 얼굴에 안도의 빛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그는 자신이 패할 거란 생각을 하진 않지만, 동군위 일행을 없애는 걸 보고 약간은 긴장하고 있었다. 그런데 금장생이 뽑아 든 보잘것없는 박도를 보자 바로 긴장이 풀어졌다.
“이게 우습게 보이는 모양이죠?”
여강의 내심을 알아본 금장생이 박도를 살짝 흔들며 물었다.
“나는 무기는 무인의 얼굴이라 생각하는 사람이다.”
“무기는 무인의 얼굴이 아니라 겉모습일 뿐입니다. 사람은 겉모습만 가지고는 절대 알 수 없고요.”
“그게 대단한 무기라는 말처럼 들리는구나.”
“두고 보면 알게 될 겁니다.”
“그렇겠지.”
여강은 내공을 끌어 올렸다.
그러자 나머지 세 명도 동시에 내공을 끌어 올렸다. 적운각 각주 암뢰비도 사공표는 팔소매 속으로 양팔을 집어넣은 상태고 백운각 각주 일소천화검 염소홍의 검에서는 검강이 솟구쳤다.
사공표는 앞에 있는 불여하를 쏘아보며 허점을 노렸다. 연운각 각주 귀영조 용백의 양손은 먹물에 담금 것처럼 새카맣게 변했다. 금장생과 불여하는 서로 등을 댄 채였다.
“차하!”
“타하!”
먼저 공격을 시작한 사람은 여강과 일소천화검 염소홍이었다. 두 사람이 움직이자마자 불여하가 시위를 당겼다가 놓았다.
그녀가 쏜 기시는 두 대였다.
한 대는 정면에 있는 사공표에게로 향하고 다른 한 대는 염소홍에게 날아갔다.
“억!”
“헉!”
사공표와 염소홍은 동시에 신음을 내질렀다.
쇄액! 쇄액!
기시는 가공할 속도로 날아갔다.
“차하!”
먼저 사공표의 양팔이 소매 속에서 빠져나와 허공을 갈랐다. 그러자 두 자루 비수가 쏘아졌다. 한 자루는 기시를 향해 날아가고 다른 한 자루는 불여하를 향해 날아갔다.
카앙! 카앙!
사공표가 날린 비수와 염소홍의 검이 거의 동시에 기시를 쳐 냈다.
퉁!
순간 불여하가 시위를 놓았다. 이번엔 기시 석 대였다. 기시 석 대의 목표는 사공표의 비수와 사공표, 염소홍이었다.
콰콰쾅!
바로 그때 불여하 뒤편에서 둔탁한 소성이 터져 나왔다. 금장생의 무적검과 여강의 염마도가 부딪쳐서 나는 소리였다.
“크윽!”
여강은 비명을 내지르며 물러났다.
그 앞에는 깊이가 세 치에 달하는 깊은 발자국 열개가 나 있었다.
“이럴 수가?”
여강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단 일 초에 자신이 밀릴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은 탓이었다.
“지금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금장생은 바닥을 찼다. 금장생과 여강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차하!”
바로 그때 귀영조 용백이 금장생을 공격했다. 갈고리처럼 구부린 용백의 양손은 새카맣다 못해 광채마저 뿌렸다.
여강에게로 향했던 무적검이 방향을 틀어 용백에게로 향했다. 하늘로 들어 올렸던 무적검이 강하게 허공을 갈랐다. 철검무적검해의 일 초인 중관重貫이었다. 순간 수백 개의 구멍이 허공에 생겨나고 그것들은 곧 하나로 합쳐져 공간을 좌우로 분할했다.
그 공간 속에 용백의 양손도 들어 있었다.
퍼억! 퍽!
용백의 양손이 한 방에 터져 나갔다.
“크아악!”
양손을 잃은 용백은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용백이 당한 그 순간 여강은 공격 기회를 잡았다.
“차하!”
그는 금장생을 향해 쏘아져 가며 염마도를 휘둘렀다. 염마수라도법의 마지막 초식인 염마천하閻魔天下였다. 수십 자루의 염마도가 금장생을 향해 날아왔다.
금장생은 무적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공간을 상하로 자르는 단횡斷橫이었다.
공간은 무적검에 의해 상하로 잘리며 쩍 벌어졌다. 마치 거대한 입을 가진 맹수가 입을 벌린 것 같았다.
카카캉!
여강이 만들어 낸 염마도 형태의 강기가 바닥으로 떨어진 도자기처럼 부서졌다. 공간은 계속해서 분리됐고 구멍은 더욱 커졌다.
“크악!”
여강은 피투성이로 편한 손을 한 채 뒤로 튕겨졌다.
턱!
오 장여를 물러나 내려선 그는 손을 보았다. 염마도를 쥔 손가락 중 세 개가 보이지 않았다.
손등 또한 칼끝으로 그은 것처럼 쩍쩍 갈라진 상태였다. 그는 시선을 들었다. 금장생이 용백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죽인다!”
그는 바닥을 찼다. 이미 두 팔을 잃은 용백이지만 목숨까지 잃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동료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죽으면 그만큼 자신이 불리해지기 때문이었다.
“아아악!”
왼편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여강은 시선을 돌렸다.
비명을 내지른 자는 사공표였다. 사공표의 전신에는 석 대의 기시가 꽂혀 있었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다시 넉 대의 기시가 사공표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퍽!
가장 먼저 날아간 기시가 사공표의 가슴 가운데로 파고들었다.
“크악!”
사공표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퍽! 퍽!
이어 기시 두 대가 단전과 심장으로 파고들었다.
퍼억!
그리고 마지막 남은 기시는 사공표의 이마에 박혔다. 사공표의 몸이 붕 떠올랐다.
“빌어먹을!”
여강은 전 내공을 염마도에 주입했다. 이판사판 죽이지 못하면 죽음뿐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동귀어진을 해서라도 반드시 없애야 했다.
그가 동귀어진을 생각하고 있는 그 순간 불여하를 공격하는 염소홍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상대는 사공표와 함께 공격할 때도 역부족일 정도로 강자였다. 그런데 지금은 사공표마저 죽었다. 나중을 생각하며 싸울 자가 절대 아니었다.
퉁! 퉁퉁!
그때 불여하가 허공을 향해 시위를 당겼다.
“응?”
염소홍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그녀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열두 대의 기시가 사라지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왜?’
퉁!
의문을 갖는 순간 불여하가 다시 시위를 놓았다. 그녀는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전 내공을 동원하여 검을 휘두르며 불여하를 향해 돌진했다.
캉! 캉캉! 캉캉!
그녀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기시가 튕겨졌다.
그녀와 불여하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아아악!”
오른편에서 처절한 비명이 들렸다. 염소홍은 곁눈질로 보았다. 머리에서 사타구니까지 잘려 나간 용백의 몸통이 둘로 나뉘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진저리를 쳤다.
“난 죽지 않아!”
염소홍은 버럭 소리쳤다. 그리고 다시 바닥을 찼다. 그녀의 신형은 빛살처럼 날아갔다.
‘왜지?’
몸을 날리던 염소홍은 의아했다. 벌써 몇 대의 기시가 날아와야 하는데 이번엔 잠잠했다.
아니 불여하는 기시를 쏠 생각이 없는 듯 시위조차 당기지 않고 있었다. 염소홍의 시선이 불여하의 얼굴로 향했다.
‘내공이 부족하구나.’
염소홍의 입가에 살소가 맺혔다.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는 건 기시를 쏠 내공이 남아 있지 않다는 걸 뜻했다.
“내가 이겼다, 계집!”
염소홍은 검을 번쩍 들었다.
퍽! 퍽퍽퍽! 퍽퍽퍽!
그 순간 강렬할 통증이 온몸을 후려쳤다.
“아악!”
염소홍은 비명을 내질렀다.
온몸에 힘이 빠지고 검이 떨어졌다.
염소홍은 시선을 내렸다. 수십 대의 기시가 튀어나와 있었다.
그녀는 시선을 들어 불여하를 보았다.
“이기어시예요.”
불여하는 나직하게 말했다.
“네, 네가 이기어검술을…….”
털썩!
염소홍은 말을 맺지 못하고 앞으로 처박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