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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475화 (475/524)

황금가 (475)

마수 우두머리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금장생을 보았다.

“얼레?”

금장생의 눈이 커졌다. 마수의 우두머리는 ‘네가 거기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라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너, 내가 만만해 보인 거니?”

금장생은 물었다. 그게 아니라면 녀석이 저런 눈빛을 할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거야?”

금장생은 버럭 소리쳤다.

그러자 마수 우두머리가 움찔했다.

“이것 봐라?”

금장생의 입가에 싱긋 미소가 물렸다.

마수 우두머리가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체했던 건 왠지 모를 기운 때문이었다. 도둑을 지키는 커다란 개가 낯선 사람에게서 풍겨 나오는 강한 기운에 감히 짖지를 못하고, 꼬리를 말고 있는 상황과 비슷해 보였다.

“너, 내가 무섭지?”

금장생은 녀석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크앙!

녀석은 나직하게 으르렁거렸다.

“자식, 쫄기는!”

금장생은 피식 웃었다.

크아아아아아앙!

자존심이 상한 듯 마수 우두머리는 살기를 뿜어내며 괴성을 내질렀다.

크아아앙!

그러자 다른 마수들도 일제히 괴성을 내질렀다.

크아앙!

마수들은 일제히 금장생을 향해 내달렸다.

“좋아!”

금장생은 마주 달려갔다. 그는 금세 가장 앞서 달려오는 마수와 맞닥뜨렸다. 마수의 앞발에 튀어나온 발톱이 금장생의 심장을 향해 쏘아져 왔다.

금장생은 몸을 모로 틀면서 무적검을 수평으로 휘둘렀다. 무적검은 정확하게 마수의 목으로 파고들었다.

카카캉!

순간 쇳소리가 흘러나왔다. 놀랍게도 마수들의 몸은 금강불괴지신이었다. 다행히 금장생은 금강불괴지신을 무력화시킬 정도로 강자였다.

그의 무적검은 마수의 목을 잘라 냈다.

카앙!

비명과 함께 마수의 머리가 둥실 떠올랐다. 분리가 된 마수의 머리와 몸통은 빠르게 가루로 변했다. 마수가 가루로 변한 건 금장생이 무적검에 쏟아 넣은 기운 때문이었다.

카카캉!

두 번째 마수의 목이 잘렸다.

또다시 마수의 머리가 허공으로 떠오르고 가루가 사방으로 날렸다.

크앙!

오른편 마수가 괴성과 함께 금장생을 향해 오른발을 휘둘렀다. 금장생은 왼 주먹을 내질렀다. 그와 동시에 발사 명령을 내렸다.

“파이어!”

나직한 소리와 함께 십여 개의 적안이 쏘아져 나갔다.

퍽! 퍽퍽퍽! 퍽퍽퍽! 퍽!

악마수는 역시 대단했다. 종이처럼 얇은 적안이지만 무적검으로 간신히 잘라 낸 마수의 몸통을 아무렇지 않게 뚫었다. 적안이 뚫고 들어간 마수들은 바싹 마른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금장생은 악마수와 무적검을 번갈아 펼치며 마수의 숲을 뚫었다. 마수의 수가 워낙 많이 한 식경 정도를 전진하고 나서야 마수의 숲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동안 그의 손에 죽임을 당한 마수의 수는 백오십 마리에 달했다.

금장생은 몸을 돌려 자신이 지나온 곳을 보았다.

“별것도 아닌…….”

금장생의 입이 떡 벌어졌다.

사방으로 흩어졌던 가루들이 한데 모이더니 다시 원래 마수가 되는 것이었다.

“영감님!”

금장생은 라를 불렀다.

―왜 그러느냐?

“마수들은 적안으로도 없앨 수 없습니다.”

―죽은 자들의 군단이 실험체라면 악마수뿐만 아니라 네가 가진 암왕칠구로도 없애지 못할 게다.

“한번 시험해 볼게요.”

금장생은 칠성검인 묵야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오 장 떨어진 곳에 있는 마수를 향해 이기어검술로 던졌다.

퍼억!

순식간에 공간을 건너뛴 묵야는 마수의 몸에 커다란 구멍을 냈다. 구멍이 뚫린 마수는 빠르게 가루로 흩어졌다. 금장생은 가루를 바라보았다.

“으음!”

그의 입에서 나직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흩어졌던 가루가 한곳으로 모여들더니 다시 마수가 됐다.

크아앙!

우두머리 마수가 다시 괴성을 내질렀다.

그러자 마수들이 괴성을 내지르며 금장생을 향해 내달렸다.

―암왕칠구로도 없앨 수 없는 게냐?

라가 물었다.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악마수를 앞으로 내밀어 흑안을 펼쳤다.

검은색 원반 쉰 개가 전방을 새카맣게 물들였다.

―리치 상태라 그런 모양이구나.

“맞습니다.”

리치는 최악의 몬스터다. 무한한 생명을 지녔고 불사의 신체를 지녔다. 영혼이 들어 있는 생명의 그릇을 파괴하지 않으면 없앨 수도 없다.

‘그래도 그들에 비하면…….’

과거 루하로 살 때 겪었던 ‘죽은 자들의 군단’이 떠올랐다. 개개인이 엄청난 실력을 지녔음은 물론이고 일부는 철갑거인까지 보유하고 있었다.

아무리 신족의 왕이라고 해도 그들과 싸우는 건 불가능했다. 게다가 그들과 싸우러 간 것도 아니었다. 영혼의 그릇은 총 백 개가 있었다. 백 명씩 한 묶음으로 영혼의 그릇을 만든 탓이다. 그들 중 가장 강한 자들이 속해 있던 영혼의 그릇을 심장에 박았다. 그러자 녀석들이 훈련받은 개처럼 고분고분해졌다. 그때 느낀 것이 녀석들은 목숨에 대한 집착력이 리치가 되기 전보다 수백 배는 더 강하다는 점이었다. 그들을 데리고 팔왕들이 만들어 두었던 곳 지하로 갔다.

‘가만, 영혼의 그릇이면?’

금장생은 손에 들고 있던 묵야를 보았다.

암흑마가 가주 히다스가 암왕칠구로 불사의 마수를 조종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건 곧 암왕칠구가 불사마수의 ‘영혼의 그릇’이란 뜻이 된다.

그런데 묵야 하나만으로는 효과가 없었다. 그건 곧 일곱 개가 모두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좋다.”

금장생은 암왕칠구를 차례로 뽑아 들었다.

마지막으로 헬라간을 걸치자 뇌령이 모습을 드러내며 뇌신이 소환됐다.

크앙!

캥!

캐갱!

마수들의 괴성이 점차 잦아졌다. 곧이어 겁을 잔뜩 먹은 개처럼 꼬리를 말았다.

금장생은 마수의 우두머리를 찾았다.

녀석은 저 멀리서 이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리…… 오세요!”

금장생은 손짓을 했다.

사람이건 마수건 여전히 반말은 쉽지 않았다.

크릉!

마수 우두머리는 금장생을 바라보았다. 처음보다 적으로 많이 누그러진 상태였다.

“이것들을 부숴 버릴까요?”

금장생은 암왕칠구를 가리켰다.

마수는 금장생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여전히 꼬리는 올리고 발톱은 드러난 상태였다.

“꼬리는 내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발톱도 집어넣고요.”

금장생은 마수 우두머리의 꼬리와 발톱을 가리켰다. 마수 우두머리는 금장생을 가만히 보았다.

“바로 죽여 줄 수도 있어요.”

금장생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크릉!

마수 우두머리는 곧바로 꼬리를 말고 발톱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금장생 앞에 와 섰다.

금장생은 손을 펴서 아래로 내렸다. 자세를 낮추라는 뜻이었다. 그러자 마수 우두머리는 늑대처럼 네발로 땅을 디뎠다. 그리고 금장생 앞으로 가더니 납작 엎드렸다.

“좋아요.”

금장생은 싱긋 웃었다.

―어디에 써먹을 거냐?

라가 물었다.

“죽은 자들의 군단이 아직 있을까요?”

―있었다면 이방인들이 전쟁에 패하면서까지 아껴 두었을 리가 없었을 것 같은데, 아니냐?

“그렇긴 한데…….”

금장생은 말끝을 흐렸다. 라의 말처럼 죽은 자들의 군단이 없어지지 않았다면 그들이 동원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소멸됐다고 봐야 하는데, 왠지 모르게 찜찜했다.

‘한번 가 봐야겠네.’

죽은 자들의 군단이 묻힌 장소를 알고 있다. 많은 세월이 흘러 지형이 변했겠지만 그곳으로 가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원래 자리로 들어가세요.”

금장생은 마수 우두머리를 보며 말했다.

카우우우우!

마수 우두머리는 고개를 쳐들고 울음을 토했다.

그러자 마수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더니 무덤 속으로 들어갔다.

“이제…….”

마수들이 모두 들어가고 나자 금장생은 걸음을 옮겼다. 지하 공간 어딘가에 있을 불여하를 찾기 위해서였다. 무덤으로 들어왔던 반대 방향으로 이동했다.

암흑마가 가주 시체를 지나고 뼈로 가득했던 통로를 지났다. 처음 들어갔던 공간에서 나가자 지하 공간이 나타났다. 어딘가에 마법등이 켜져 있는지 주위는 저녁 무렵 같았다.

천리지청술을 끌어 올려 주변을 살폈다.

어디선가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금장생은 곧바로 바닥을 찼다.

잠시 후 그가 도착한 곳은 커다란 바위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장소였다.

세 사람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한 사람은 불여하고 그녀와 싸우고 있는 자는 백운파의 금사검군 관천행과 춘추서원의 검서생 사문금이었다.

그런데 그들 둘만 있는 게 아니었다. 십여 장 떨어진 곳에 철궁전의 파산궁 동군위와 천기루의 현기자 유숙의가 싸움을 지켜보며 서 있었다. 두 사람은 언제든지 뛰어들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퉁퉁퉁!

불여하의 궁에서 기시 석 대가 쏘아졌다.

기시는 정확하게 관천행과 사문금의 이마를 향해 날아갔다.

“차하!”

“타하!”

두 사람은 기합과 함께 검과 손을 휘둘렀다.

카앙!

캉!

“음!”

“크윽!”

나직한 신음과 함께 두 사람이 물러났다.

“뭐 하고 있는 거요?”

물러나던 관천행이 동군위를 보며 소리쳤다. 도와주지 않고 가만히 서 있는 것에 대한 질책이었다.

“알았소.”

동군위는 활을 들어 올렸다.

그가 지금까지 가만히 있었던 것은 궁을 무기로 사용하는 불여하로부터 배울 게 있나 싶어서였다. 사실 궁을 사용하는 무인들에게 기시氣矢는, 검사들의 이기어검술과 같은 경지다. 동군위 또한 기시를 얻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데 기시를 펼치는 궁수를 만난 것이다.

기시를 쏘는 방법을 알고 있는 무인을 만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떻게든 기시를 쏘는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 지금껏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관천행과 사문금 때문에 더 이상 두고 볼 수는 없을 듯했다.

“내가 기시를 쏘지는 못하지만…….”

동군위는 화살을 걸고 시위를 당겼다. 그의 활이 만곡으로 휘어졌다. 곧 그의 화살에 강기가 입혀졌다. 기시를 쏠 능력은 안 되지만 강기를 입힐 수준은 됐다.

―그거 좋지 않은 방법인데.

시위를 놓으려는 순간 귓전으로 전음이 파고들었다.

“응?”

동군위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누구냐!”

퍼억!

그 순간 반투명한 막대기가 그의 심장을 뚫었다.

“커억!”

동군위는 비명을 내질렀다.

그는 시위를 당긴 상태 그대로 고개를 숙였다. 심장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고 가루가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개 같은 일이…….”

툭!

먼저 화살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이 풀렸다.

화살은 반 장가량 나아가다가 아래로 떨어졌다. 그리고 궁이 떨어졌다.

푸스스!

동군위의 신형이 가루로 흩어졌다.

유숙의는 전 내공을 끌어 올린 채 주위를 살폈다. 아직 상대는 보이지 않았다.

“크아악!”

바로 그때 앞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유숙의는 자기도 모르게 시선을 돌렸다.

관천행이 이마에서 피를 뿜어내며 뒤로 날려 가고 있었다.

“젠장!”

유숙의는 곧바로 바닥을 찼다. 이곳에 있어 봐야 개죽음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린 탓이다. 보이지 않는 적이 노리고 있는 상황에서 허공으로 몸을 솟구친다는 건 자살행위라는 걸 알아차린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유숙의가 오 장가량을 솟구쳐 올랐을 때였다.

슉!

나직한 소성과 함께 투명한 막대가 유숙의를 향해 날아왔다.

“헉!”

유숙의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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