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472화 (472/524)

황금가 (472)

마수들의 무덤

금장생은 다시 글로 시선을 주었다.

‘죽은 자들의 군단’을 만들기 전에 먼저 실험을 해야 했다.

그 실험은 우리 가문에서 맡았다.

실험을 하면서 나오는 모든 정보는 공유하기로 했다. 실험에 동원된 몬스터는 워 울프 일천 마리였다. 우린 워 울프를 죽인 후 언데드로 만들었다.

사실 언데드를 만드는 건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우린 우리가 가진 모든 걸 언데드 제작에 쏟아부었고 마침내 불사의 군단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나는 불사의 군단이 완성된 사실을 비밀에 부쳤다.

그때 마침 우리 가문에서 십대 무기 다섯 개를 회수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나는 그것들로 새로운 무기를 만들었다. 다른 가문에서 무기라고 생각하지 못하도록 제구 모양으로 했다. 그 일곱 개의 제구는 암왕칠구라고 이름 지었다.

“어?”

금장생은 깜짝 놀랐다.

암왕칠구라는 글을 이곳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던 탓이었다.

금장생은 다시 글로 시선을 주었다.

나는 암왕칠구가 모두 모이지 않으면 불사의 군단을 부릴 수 없게 해 두었다.

그런데 아뿔싸.

동생과 술을 마시던 중에 나도 모르게 암왕칠구와 ‘불사마수’에 대해 말을 하고 말았다.

말하고 나서 아차 했지만 동생이 배신할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런데 나만의 생각이었다.

동생은 반란을 일으켰다. 놀랍게도 지옥암가 가솔 중 구 할 이상이 동생 편에 선 상태였다.

내가 무얼 잘못했기에 그들이 동생 편으로 돌아섰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평생을 노력했을 뿐이다. 물론 늘 좋은 결과만 나온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어쩔 수 없는 희생을 강요하기도 했고, 독단으로 처리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일이 암가를 위해서였다.

그런 나를 알아주지 않는 가솔들에 대해 화가 났다. 반란을 일으킨 자들을 피해 암왕칠구를 두었던 곳으로 갔다. 그런데 거기에 암왕칠구가 없었다. 동생이 이미 다른 곳으로 옮겨 두었던 것이다.

하지만 동생이 한 가지 모르는 게 있었다.

그건 바로 암왕칠구가 없어도 내 심장의 피만 있으면 마수를 깨울 수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마수를 모두 깨웠다.

그리고 이곳으로 왔다.

내 예상대로라면 이제 암가는 멸문할 것이다. 마수들은 배신에 가담했던 모든 이들을 없애고 원래 자리로 되돌아갈 것이다.

히가스, 너에게 저주가 내리길 바란다.

지옥암가 가주는 동생에게 저주의 말을 남기는 걸로 유언을 끝냈다. 결국 지옥암가 가주 심장에 구멍을 뚫은 자는 자기 자신이었다.

아무튼 그때 동생이 훔쳐 냈던 암왕칠구는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암왕가로 흘러들어 갔고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게 된 것이었다.

금장생은 석실에서 물러났다.

“흠!”

헛기침 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금장생은 몸을 돌렸다. 일 장 뒤에 철검우가 서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소성주.”

금장생은 인사를 했다.

“거기에 뭔가 있던가?”

철검우는 턱으로 석실을 가리켰다.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있던가?”

“이곳에 대한 기록이 적혀 있었습니다.”

“이곳에 대한 기록이라면?”

“지옥암가라는 가문이 있었던 곳입니다.”

“지옥암가는 어떤 가문인가?”

철검우는 흥미로운 얼굴로 물었다.

“수천 년 전에 중원을 지배했던 여덟 가문 중 한 곳입니다. 이곳에 글을 남긴 사람은 지옥암가 가주였고요.”

“가주가 거기서 죽었단 말인가?”

“네.”

“가주의 무덤치곤 너무 초라한 거 아닌가?”

“반란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반란?”

“네. 그래서 그동안 만들었던 마수를 풀어놓고 자기는 여기서 죽음을 맞았습니다.”

“마수가 뭔가?”

“마수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친동생이 반란을 일으킬 정도면 대단한 무기겠지요. 그리고 가주는 마수를 ‘불사마수’라고 표현을 했더군요.”

“그 불사마수가 여기 있다는 건가?”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에 있는지 아는가?”

“위치에 대해서도 아무 말 안 했습니다.”

“마수를 부리는 방법은?”

“그 역시 나와 있지 않았습니다.”

“하긴 나와 있다고 해도 수천 년 전에 존재했던 녀석이니까 지금까지 남아 있을 리가 없겠지. 일단 한번 둘러보기나 하세.”

“그럴까요?”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세.”

“네.”

금장생은 철검우 옆으로 갔다. 금장생이 다가오자 철검우는 주먹을 지그시 말아 쥐었다.

그는 갈등했다. 금장생을 지금 없애 버릴 건지 아니면 내부를 좀 더 둘러보고 나서 없앨 건지에 대한 갈등이었다.

‘저놈이 다 말하지 않았으면…….’

문득 든 생각이었다.

‘일단은 살려 준다.’

좀 더 있다가 없앤다고 해도 상황이 달라질 건 없었다. 그는 금장생보다 반걸음 뒤처져 걸었다.

‘그런데 저건?’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금장생 바로 옆에서 빛 덩어리 하나가 떠 있었는데, 마치 강아지처럼 졸졸 따라가고 있다. 빛 덩어리의 정체가 궁금했다.

“그건 뭔가?”

결국 철검우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이거요?”

금장생은 빛을 가리켰다.

“그렇네.”

“갑자기 생겨나더니 나를 따라다니고 있습니다.”

“자네가 만든 게 아니란 말인가?”

“무슨 수로 이런 걸 만들겠습니까?”

“하긴.”

철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

두 사람의 눈이 동시에 커졌다. 바로 앞에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타난 것이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금장생은 철검우를 보며 물었다.

“저 안에 뭐가 있는지 궁금하지 않는가?”

철검우가 되물었다.

“들어가 봐야겠죠?”

“내가 있으니까 돌발 상황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그럼 소성주님만 믿고 들어가겠습니다.”

금장생은 계단을 내려갔다. 잠시 후 두 사람 앞에 거대한 넓이의 지하 공동이 나타났다.

“여긴?”

철검우의 눈이 커졌다. 단순한 지하 공동이 아니었다. 지하 공동은 엄청난 수의 봉분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저것들이 다 뭐라고 생각하는가?”

철검우는 물었다.

“무덤입니다.”

“누구 무덤이라는 건가?”

“마수의 무덤입니다.”

“그걸 자네가 어떻게 아는가?”

“저기 있잖습니까.”

금장생은 빛 덩어리 뒤를 가리켰다. 무덤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계단 옆 벽에 글처럼 보이는 것들이 새겨져 있었다.

철검우는 그곳으로 갔다.

글자처럼 보이는 것들이 새겨져 있었지만 철검우는 처음 보는 것들이라 읽을 수가 없었다.

“이걸 읽을 줄 아는가?”

철검우는 글자를 가리키며 물었다.

“고대에 사용된 문잡니다.”

“읽어 보게.”

철검우는 옆으로 물러났다. 그곳으로 간 금장생은 글자를 읽었다.

“이곳은 마수의 무덤이다. 마수를 부리지 못하는 자는 절대 들어가지 마라. 그리고 절대 피를 뿌리지 마라. 피를 뿌리면…….”

갑작스럽게 밀려드는 살기에 금장생은 글 읽는 걸 멈췄다. 철검우가 일 장 떨어진 곳에서 이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날 죽이려는 것 같은데, 맞나요?”

“맞다.”

철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원한을 진 적이 없는 걸로 아는데요?”

“원한 때문에 누군가를 없애는 건 보통 양민들이나 하는 짓이고, 우리 같은 사람은 원한보다는 이해관계 때문에 상대를 없애는 경우가 더 많다네.”

“그러니까 날 없애려는 이유가 어떤 이해관계 때문이란 말이군요.”

“그렇네.”

“대장간 때문입니까?”

“황금철장을 영입한 건 내가 처음으로 한 일이라네. 사실 대장간을 영입하는 건 아주 사소한 일이라고 할 수 있네. 자랑거리도 아니지. 하지만 나는 큰일이라도 해낸 것처럼 문주들 앞에서 으스댔다네. 그런데 자넨 남궁창하가 자네 부인에게 관심을 보였다는 이유만으로 황금철장의 영입을 없었던 일로 하려고 했단 말이네. 그럼 내 체면이 뭐가 되겠는가?”

“단지 체면 때문에 날 없애려 한다는 건가요?”

“자네처럼 천한 놈하고, 나처럼 고귀한 피를 지닌 사람을 같다고 생각하면 안 되지. 너처럼 천한 놈에게는 체면 같은 건 발톱에 낀 때만도 못하겠지만 나는 달라. 왠지 알아? 체면은 곧 내 가치를 나타내는 거야. 이 철검우가 남들보다 고귀하다는 걸 나타내는 척도란 말이야.”

“……날 죽이면 황금철장을 영입하려고 했던 건 물거품이 되는데, 그래도 괜찮은 겁니까?”

“좋은 질문이야. 네가 그렇게 물어볼 줄 알았어.”

철검우는 싱긋 웃었다.

“별로 문제 될 게 없다는 표정이네요?”

“황금철장의 실소유주는 네가 아니라 네 부인이라는 걸 알았거든.”

“연구를 많이 했군요.”

“그 정도는 기본이지 뭐. 그리고 네 부인도 우리에게 적극 협조하기로 했다.”

“내 마누라와도 이야기가 된 거군요.”

“물론이지.”

“남궁창하가 접근한 것도 의도적이었고요.”

“글쎄, 그건 모르겠구나.”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죽여 버렸어야 했는데.”

금장생은 입맛을 다셨다.

“너 같은 무지렁이가 남궁창하를 죽이는 건 꿈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만 알아 두면 된다.”

철검우는 조소를 머금고 말했다.

“길고 짧은 건 대 봐야 압니다. 어서 오세요.”

말을 하던 금장생은 철검우 뒤편을 보며 반가운 얼굴을 했다.

“응?”

누군가 왔다고 생각한 철검우는 재빨리 몸을 돌렸다.

“풋!”

그는 피식 웃었다.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를 웃기려고 한 거라면 성공…….”

철검우는 말끝을 흐렸다. 조금 전 바로 앞에 있던 금장생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시선을 들었다. 저 앞에서 어둠을 뚫고 달려가는 금장생이 보였다.

조금 전까지 금장생을 따라다니던 빛은 보이지 않았다.

“잘됐네.”

철검우는 피식 웃었다.

지금 있는 이곳은 금장생을 없애는 장소로 적당하지 않았다. 금장생을 없애고 있는데 계단으로 누군가 내려오면 일만 더 복잡해진다.

내심 다른 곳으로 옮겼으면 하고 있는데 알아서 이동해 주니 이보다 좋을 수가 없다.

“기다려라, 놈!”

파앗!

철검우는 바닥을 찼다.

그의 신형이 어둠을 뚫고 쭉 나아갔다.

* * *

“저기…….”

불여하는 말끝을 흐렸다.

“왜 그러시오?”

남궁창하는 불여하를 보며 물었다.

“떨어질 때 발을 삔 것 같아요.”

“걸을 수 없다는 거요?”

“네.”

“내가 부축해 주겠소.”

남궁창하는 불여하의 팔을 어깨에 둘렀다.

“거기 누구 있소?”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사람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남궁창하의 얼굴이 슬쩍 굳었다.

그는 이곳에서 불여하를 겁탈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누구요?”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지중천이네.’

남궁창하는 활짝 웃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복양의 백호당 문주 철호 지중천이었다. 그는 과거 지중천이 문주가 될 때 큰 도움을 주었다. 그 일 이후 지중천은 자신이 무슨 짓을 해도 지지해 주었다.

―납니다, 문주.

남궁창하는 지중천에게 전음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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