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471)
“자넨 정말로 운이 좋구먼.”
그의 얼굴에 아쉬운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다음 칸도 내가 선택하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금장생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 그렇게 하게.”
철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아직 같은 자리에 서 있어서 금장생이 기관을 작동시키는 격자를 잘못 밟는다고 해도 문제 될 게 없었다.
“당신은 여기 있어요.”
금장생은 불여하에게 말했다.
“알았어요.”
불여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금장생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그 광경을 남궁창하가 의미심장한 얼굴로 지켜보았다. 저런 경우 사이가 좋은 부부는, 부인이 혼자 남지 않겠다며 떼를 쓴다. 그런데 불여하는 남으라는 하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손을 놓았다. 그것만 보아도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떤 상황인지 알 것 같았다. 사실 남궁창하는 금장생을 없애는 데 갈등이 없진 않았다. 그가 갈등을 한 건 금장생이 사고를 당하거나, 부상을 입을 때 구해 주느냐 마느냐 하는 게 아니었다. 그럴 때는 무조건 방치할 생각이었다.
문제는 금장생이 운이 좋아 사고를 당하지 않았을 때다. 그럴 경우엔 어떻게 하느냐가 고민이었다.
그런데 이번 불여하의 행동으로 인해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게 됐다.
남궁창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곳에서 금장생을 없애기로 결심을 굳혔다.
“갑니다.”
금장생은 다음 칸으로 이동했다.
철검우와 남궁창하는 숨을 죽였다. 두 사람은 귀를 쫑긋 세웠다. 뭔가 튀어나오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벽과 바닥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빌어먹을!’
남궁창하의 얼굴이 슬쩍 일그러졌다.
“몸이 좋지 않은가요?”
그때 금장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남궁창하는 고개를 들었다. 금장생이 이편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 아니오. 너무 긴장해서 그런 거요.”
“아! 그렇군요. 난 또 기관이 작동하지 않아서 화가 난 줄 알았네요.”
“내가 왜 화를 낸단 말이오.”
“남편이 살아 있는 여자보다 과부가 더 공략하기 쉽잖아요.”
“그게 무슨…….”
“아무래도 여기서 나가면 동업에 대해 심각하게 다시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소성주.”
금장생은 철검우를 보며 말했다.
“자네가 심각한 오해를 한 것 같구먼. 남궁 군사는 그런 사람이 절대 아니네. 그건 내가 장담하네.”
“원래 사고방식이 같은 것들은 친구가 잘못을 해도 그게 잘못이라는 걸 모르죠. 아무튼 운성과의 동업은 다시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금장생은 다시 칸을 옮겼다. 이번에도 역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반드시 없애야 합니다.
남궁창하가 철검우에게 전음을 보냈다.
―그래야겠네.
철검우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사이 금장생은 일곱 번째 칸으로 건너갔다. 거기서도 쉬지 않고 여덟 번째, 아홉 번째 칸까지 갔다. 이제 남은 건 한 칸뿐이었다.
‘저놈?’
철검우의 얼굴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러다가 금장생이 이곳의 비밀을 푸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밀려들었다. 보물 말고는 관심이 없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발견한 걸 빼앗을 수도 없다.
―기관을 작동하게.
남궁창하에게 전음을 보냈다.
―알았습니다.
남궁창하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철검우의 말을 바로 알아들었다.
그는 곧바로 바닥을 향해 진력을 쏘았다.
남궁창하뿐만이 아니었다. 철검우도 양손으로 장력을 발출했다. 두 사람이 발출한 장력이 소리 없이 바닥을 때렸다. 마침 두 사람이 때린 건 기관을 작동시키는 칸이었다.
철컥!
쇠로 된 뭔가가 풀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멈춰!”
철검우는 금장생에게 소리쳤다.
“왜 그러십니까?”
금장생은 철검우를 돌아보았다.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순간 자물쇠 풀리는 소리가 연속적으로 들려왔다.
휙!
남궁창하가 재빨리 불여하 칸으로 옮겼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스르르!
네 사람이 서 있던 공간이 모래처럼 흩어지기 시작했다.
“헉!”
“억!”
철검우와 남궁창하는 질겁했다. 그들은 좌우측 벽에서 암기가 튀어나올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기다리는 암기는 나오지 않고 가루로 흩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으아!”
가장 먼저 철검우가 추락했다.
“소저.”
남궁창하는 불여하의 손을 잡았다. 그 순간 불여하는 남궁창하를 향해 진력을 방출하려고 했다.
‘응?’
그녀의 얼굴이 살짝 변했다. 남궁창하가 잡은 곳이 자신의 맥문이었던 것이다.
―왜요?
금장생의 전음이 들렸다.
―이자가 제 맥문을 잡았어요.
―그래도 처리하세요.
―만일 잘못해서 철검우가 도망쳐 버리면 큰일이잖아요. 일단 살려 두기로 해요.
―알아서 하세요.
―먼저 내려갈게요.
“아악!”
불여하는 남궁창하와 함께 어둠 속으로 추락했다.
그녀에 이어 금장생도 아래로 추락했다.
떨어지면서 시선을 돌렸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금장생은 얼른 내기를 끌어 올려 그 자리에 멈췄다. 같은 장소로 떨어진 것 같은데 불여하와 남궁창하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앞으로 가면서 손을 뻗어 보았다.
일 장도 채 나아가지 않았는데 벽이 닿았다.
“지하 공간을 분할한 것 같은데…….”
금장생은 가방을 꺼내 안을 더듬었다. 곧 마법 지팡이가 들려 나왔다.
―야! 나 좀 자주 불러 주면 안 되냐?
늘 그렇듯 일라일라는 나오자마자 수다를 떨었다.
“자주 불러 드릴게요. 라이트!”
금장생은 빙긋 웃고는 라이트 마법을 펼쳤다. 그러자 내부 상황이 드러났다. 그가 떨어지는 곳은 깊이는 오 장 정도고 폭은 일 장에 불과한 좁은 공간이었다. 형태는 가로세로가 일 장으로 같은 정방형이었다.
금장생은 곧 바닥으로 내려섰다.
그는 내기를 잔뜩 끌어 올려 호시강기를 펼치면서 사방 벽을 살폈다. 느닷없이 발사될 암기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천천히 벽과 바닥을 살폈다.
“유골?”
금장생은 빛으로 바닥을 비췄다.
한편 벽 바로 앞에 뼈가 흩어져 있었다. 원래는 벽에 기대앉아 있었던 것 같은데 살과 근육이 썩으면서 뼈가 무너져 내린 것 같았다.
“뭔가 남겼으려나…….”
금장생은 유골 앞으로 다가앉았다.
“완전한 유골이 아니네.”
유골은 왼손이 중간에서 잘려 나간 상태였다. 그런데 잘린 부분이 울퉁불퉁했다. 무기로 잘린 게 아니라 뭔가에 물어뜯긴 것 같았다.
유골에서 나온 건 그게 전부였다.
금장생은 유골 뒤편 벽을 보았다.
“흐흡!”
숨을 들이켜고 나서 오른손을 내뻗었다. 부수기 위한 게 아니고 벽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푸스스!
벽에서 가루가 떨어지고 직사각형의 선이 나타났다.
“역시.”
금장생은 싱긋 웃었다.
저건 선이 아니라 문의 흔적이다. 과거 문이었던 곳인데 세월이 흐르면서 먼지 등으로 인해 자국이 없어지면서 문의 흔적이 사라진 것이다.
“이쪽에 경첩이 없다는 건 밖으로 밀라는 거지.”
금장생은 석문에 손바닥을 대고 힘을 주었다.
그르릉!
석문은 천천히 열렸다.
오랜 세월의 냄새가 훅 끼쳤다. 석문 바깥쪽은 짙은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금장생은 빛을 비춰 보았다. 폭과 높이가 각각 일 장 동굴 통로였다.
빛을 아래로 내리자 바닥 상황이 들어왔다. 통로 바닥은 뼈로 가득했다.
“뭐로부터 도망친 거지?”
금장생은 고개를 갸웃했다. 유골들이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져 있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한 가지 규칙이 있었다. 그건 바로 해골이 모두 조금 전 금장생이 나온 석실을 향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저 안에 뭔가 있다는 거네.”
금장생은 걸음을 옮겼다.
뼈가 워낙 많아서 피해서 걷는다는 건 불가능했다.
퍽! 퍽! 퍽! 퍽!
그가 밟은 뼈가 가루로 변하자 연쇄반응이 일어난 것처럼 통로에 있던 모든 뼈가 가루로 변했다.
뼛가루가 부유물처럼 떠다녔다. 그것들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통로의 길이는 십 장가량이었다.
통로는 다른 공간으로 들어가는 출구였다. 통로 밖은 짙은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금장생은 통로를 나섰다. 조금 전 나왔던 곳과는 달리 석문은 절반가량 열려 있었다.
“도망치던 자들이 열어 두었을 리는 없고 쫓는 자들이 열었겠네. 이제…… 응?”
걸음을 옮기려던 금장생의 얼굴이 의아하게 변했다. 석문 아래쪽에서 거무튀튀한 뭔가를 발견한 탓이었다. 그는 석문 앞으로 가서 조금 잡아당겼다. 그러자 석문 뒤편 상황이 드러났다.
“시체?”
놀랍게도 석문 뒤편에는 시체 한 구가 있었다.
벽을 파고 안쪽으로 들어가 가부좌를 한 상태였는데 통로 안쪽에 있던 유골들과 달리 보존 상태가 완벽했다. 나이는 오십 대 중반으로 보였다. 먹물처럼 검은 옷을 입었고, 머리카락은 흰머리와 검은 머리가 절반씩 나 있어 회색으로 보였다.
눈은 부릅뜨고 있는데 상당히 컸다. 코는 매부리코를 닮았고 광대뼈가 유난히 도드라졌다. 입술은 상당히 얇아 칼날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사내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건 심장의 상처였다. 날카로운 물체가 파고든 것은 맞는 것 같은데 검이나 창은 아니었다. 특수한 무기에 당한 게 분명했다.
석실 옆에는 직사각형의 돌이 세워져 있었다.
돌은 사내가 들어앉아 있는 석실과 크기가 같았다. 무기로 홈을 파고 한가운데를 손바닥으로 쳐서 들어낸 모양이었다.
―마법 냄새가 나는데?
한마디도 하지 않던 일라일라가 입을 열었다.
―마법 냄새요?
―흔적만 남아 있지만 마법 냄새가 분명해.
일라일라의 말에 금장생은 검은 옷 사내를 보았다. 일라일라의 말을 듣고 보니 사내 앞에는 어떤 막이 쳐져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사내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역시.”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얇은 막이 감지됐다.
사내의 시체가 원상태로 보존된 이유가 바로 이 막 때문이었다. 금장생은 시선을 내렸다.
붉은 광채를 흘리는 물체 하나가 바닥에 박혀 있었다. 붉은 돌의 지름은 한 치였는데 표면에 별 문양이 새겨져 있고, 안쪽에는 마법 언어가 가득 적혀 있었다.
―붉은 광채를 흘리는 물체가 바닥에 박혀 있어요.
―자세히 설명해 봐라.
금장생은 사내가 석실 안에 들어가 있는 상태를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마정석일 게다.
―마정석이 뭡니까?
―마법을 유지시켜 주는 매개체라고 보면 된다.
―저자는 어떤 마법을 펼친 거죠?
―환영 마법일 게다.
―그럼 저자는 여기로 와서 벽에 구멍을 뚫고 안으로 들어가 숨은 거군요.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
―심장이 뚫린 상태에서 석벽을 뜯어낼 정도면 엄청나게 강자라는 건데, 그런 강자를 도망치게 만든 자는 누구였을까요?
―석문이 열린 상태라고 했느냐?
―네.
―안에는 유골로 가득하고?
―네.
―그렇다면 반란일 가능성이 높다.
―반란이면…….
―네 앞에 있는 그자가 석문을 연 자겠지.
―그렇군요.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석문을 열면 통로는 드러나지만, 사내가 숨은 석실은 숨겨진다. 그 상태에서 환영 마법을 펼친다면 어지간해서는 석실이 발견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사내는 심장에 난 구멍을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면 그 부상도 치료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거나. 하지만 결국엔 심장에 난 구멍 때문에 죽음을 맞는다. 이야기는 대충 그렇게 된 것 같았다.
금장생은 손을 뻗어 마정석을 집었다.
퍽!
그의 손이 닿자 마정석은 바로 가루로 변했다.
퍼억!
그리고 석실 안에 있던 사내의 몸도 가루로 변했다. 금장생은 석실 벽을 살폈다. 사내가 죽음을 알아차렸다면 유언을 남겼을 거란 생각에서였다.
그의 예상대로였다. 왼편 벽에 고대어가 남겨져 있었다.
나는 지옥암가의 가주 히다스다.
어쩌면 나는 지옥암가의 마지막 가주가 될지도 모르겠다.
“역시.”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