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470화 (470/524)

황금가 (470)

고전의 비밀

“오!”

“와!”

“음!”

안으로 들어선 일행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내부는 사방 벽에 불이 밝혀진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넓은 공간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문밖과 공기가 완전히 다른 것 같았다. 내부를 떠도는 대기에 신비한 비밀을 머금고 있는 어떤 성분이 숨어 있는 것 같았다. 일행은 잔뜩 들떴다.

특히 벽에 붙어 있는 등은 난생처음 보는 물건이었다. 일반적인 등불도, 동굴을 밝힐 때 사용하는 야명주도 아니었다. 마치 달을 조금 잘라 안에 집어넣고 만든 등 같았다.

일행은 자신들도 모르게 심호흡을 했다.

그들은 곧바로 벽으로 가서 무덤을 파헤치는 도굴꾼처럼 살폈다. 그들을 지켜보던 철검우는 남궁창하에게 전음을 보냈다.

―이자를 마지막 석실로 집어넣을 방법은 생각해 봤는가?

―무림 세력이 여덟 곳이고 우리는 각주들을 한 조로 잡으면 두 개 조가 됩니다. 내려가자마자 소성주께서 맨 오른편 문을 향하는 줄에 서 계십시오. 그럼 각 세력의 문주들은 알아서 피해 줄 겁니다.

―장생 저자는?

―각 세력의 문주와 각주들이 문을 선택하고 나면 장생 저자와 우리만 남게 되잖습니까.

―그렇군.

철검우는 싱긋 웃었다.

그리고 벽에 달라붙어 있는 일행을 보며 말했다.

“이곳은 수천 명이 확인했던 곳이라 아무것도 없소. 비밀이 있다면 지하요.”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철검우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알았습니다.”

일행은 일제히 벽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철검우를 따라 지하 일 층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지하 일 층도 위층과 다르지 않았다. 널따란 광장만 있을 뿐 아무것도 없었다.

각 문파 문주들은 철검우를 보았다.

“내가 여러분들에게 보여 줄 곳은 여기가 아닙니다.”

철검우는 미소를 짓고는 지하 이 층으로 내려가는 통로를 개방했다.

“여긴…….”

문주들은 놀란 얼굴로 계단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래 어둠 속으로 향해 있는 계단은 마치 뭔가를 숨기고 있는 비밀스러움이 느껴졌다.

“여긴 나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곳입니다.”

남궁창하와 함께 발견한 곳이지만 철검우는 그 사실을 숨겼다. 바로 뒤에 서 있는 각주들 때문이었다. 남궁창하만 안다며 그들이 섭섭해할 게 분명했다. 그래서 혼자만 아는 것처럼 말한 것이다.

“정말입니까?”

각 문주들은 놀란 얼굴로 철검우를 보았다.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각주들도 깜짝 놀랐다. 그들은 이곳에 수십 번도 더 들어왔다. 건물의 비밀을 밝혀 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때마다 실망감을 안고 나가야 했다. 그런데 철검우가 숨겨진 공간을 발견했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소. 나를 제외하고는 여러분들이 처음이오.”

철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영광이긴 한데 우리가 들어가도 되는 겁니까?”

백호당의 문주 철호 지중천이 물었다.

“나와 한배를 타고 가야 할 여러분들이 아니면 누가 들어갈 자격이 있겠소.”

철검우는 ‘한배’라는 말을 강조했다.

“허허허!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포권을 취하는 지중천의 얼굴엔 감격한 표정이 역력했다.

“내가 먼저 내려가겠소.”

철검우는 계단을 내려갔다. 광장에 내려간 그는 벽으로 가서 튀어나온 물체에 내기를 주입하면서 불이 밝혀지는 광경을 상상했다.

파앗!

그러자 지하 광장이 환해졌다. 벽을 따라 돌면서 돌출돼 있는 등에 모두 불을 밝혔다.

아래로 내려온 문주들은 놀란 얼굴로 철검우가 등을 밝히는 걸 지켜보았다.

“이 건물에서 우리가 찾아낸 유일한 것이, 바로 이것이 등이라는 사실과 등을 밝히는 방법이오.”

철검우는 달빛처럼 은은한 광채를 뿌려 대고 있는 등을 가리켰다.

―어떤 가문인지 아세요?

금장생은 불여하에게 혜광심어를 보냈다.

철검우가 유일하게 알아냈다고 하는 등은 고대에 흔하게 사용됐던 마법등이었다. 마법등이 있는 이곳은 고대 가문 중 한 곳이 분명했다.

―지옥암가 같아요.

―지옥암가?

―암왕가를 세웠던 자들을 말해요.

―이방인들의 가문이란 거군요.

―맞아요.

―와 본 적 있어요?

―처음이에요. 다만 지옥암가에는 죽은 자들의 탑이 있다는 말만 들었어요.

―우리가 들어와 있는 이곳이 죽은 자들의 탑일까요?

―그런 것 같아요.

불여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자 보세요.

금장생은 턱으로 철검우를 가리켰다.

불을 다 켠 철검우는 방사형으로 뻗어 있는 길 중 가장 오른편으로 가서 섰다. 마치 ‘여긴 내가 점찍어 놓은 곳이니까 다른 사람은 선택하지 마시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자리를 잡은 철검우는 일행을 보며 말했다.

“이 방사형 길은 열 개의 석문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석문 오른편에 보면 고리가 있는데 그걸 잡아당기고 난 후, 석문을 밀면 되오. 참고로 내가 들어가서 확인했는데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는 건 알고 들어가시오.”

“알겠습니다.”

문주들은 흥분한 얼굴로 대답했다.

“부 문주부터 선택하시오.”

“저는 여기로 하겠습니다.”

철선문 문주 철선검객 부양호는 맨 왼편 길을 택했다.

“다음은 벽 관주요.”

철검우가 두 번째로 언급한 사람은 벽운관 관주 뇌마신군 벽운양이었다.

벽운양은 부양호 옆으로 섰다.

세 번째는 백호당 문주 철호 지중천이었다. 그가 선 곳은 세 번째 길이었다. 각 세력의 문주들은 이것저것 살피지 않았다. 호명되면 전 사람 옆으로 가 섰다. 여덟 번째 길에는 춘추서원 원주 검서생 사문금이 섰다.

‘그럼 저긴 내 자리네.’

금장생은 아홉 번째 길 끝에 있는 석문으로 시선을 주었다. 다른 곳과 같은 석문이 있을 뿐 특이한 건 없었다.

“아홉 번째 길은 각주들이 서시오.”

‘어?’

금장생의 눈이 커졌다.

그는 고개를 돌려 철검우를 보았다.

“미안하게 됐네. 저들을 먼저 배려할 수밖에 없었네.”

“이해합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여기 남아 있는 것도 이상하고……. 이렇게 하세.”

잠시 생각하는 듯하던 철검우가 말했다.

“어떻게…….”

금장생은 말끝을 흐렸다.

“나와 함께 들어가세.”

“소성주님과 함께요?”

“대신 안에서 장주가 뭔가를 발견하면 그건 장주 거네.”

“성주님께서는 저 안에서 어떤 걸 발견하길 원하십니까?”

금장생은 문을 가리키며 물었다.

“무인이 무공 말고 바라는 게 뭐가 있겠는가?”

“그럼 무공을 발견하면 무조건 소성주님께서 갖고 보물이 나오면 제가 갖겠습니다. 물론 제가 발견했을 때 이야깁니다.”

“장주는 보물만 갖겠다는 건가?”

“네.”

“마음대로 하게.”

“저 안은 위험할까요?”

금장생이 물었다.

“그건 알 수가 없네. 그런데 위험하다면 안 들어갈 건가?”

“나는 무조건 들어갈 겁니다. 다만 위험한 곳이라면 부인은 이곳에 두고 가고 싶어서요.”

“내가 들어가 봤을 때는 아무 일 없었네.”

금장생이 죽을 때 증인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불여하는 함께 들어가야 했다.

“그럼 함께 들어가도 되겠군요.”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출발합시다.”

철검우는 일행을 보며 말했다.

“행운을 비오.”

“행운을 빕니다.”

일행은 서로에게 포권을 취하고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일행은 모두 석문 앞에 도착했다. 철검우가 가르쳐 준 대로 오른편에 있는 고리를 잡아당기고 석문을 밀었다.

그르릉! 그르릉! 그르릉!

둔탁한 소성과 함께 석문이 열렸다.

꿀꺽!

석문 앞에 선 이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좌우로 시선을 돌려 다른 문파 사람들을 한 번씩 보더니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도 들어가지.”

모두 들어가고 나자 철검우가 말했다.

일행은 철검우, 남궁창하, 금장생, 불여하, 네 명이었다.

네 사람은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모두 안으로 들어가자 석문이 닫혔다.

금장생은 내부를 살폈다.

가로 삼 장, 세로 삼 장의 정방형 공간이었다.

바닥에는 바둑판처럼 격자 형태의 줄이 그어져 있었는데 가로세로 각각 아홉 줄이었다.

좌우측에 벽이 있고 각각 아홉 줄이면 격자의 수는 모두 백 개라는 뜻이다.

그런데 격자는 바닥에는 있는 게 아니었다. 좌우측과 전면 그리고 천장에도 같은 크기의 격자 문양이 있었다. 벽과 천장의 격자 수도 각각 백 개였다.

총 사백 개의 격자가 있는 셈이었다.

각 격자는 두 가지 색으로 돼 있는데 검은색과 흰색이었다. 내부를 살핀 금장생은 뒤를 돌아보았다.

석문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조금 전 닫힌 석문이 보이지 않았다.

“나가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하죠?”

금장생은 철검우를 보며 물었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을 기억하면 되네.”

“격자가 없는 벽에 문이 있다는 말이군요.”

“그렇네.”

철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긴…….”

금장생은 공간을 가리켰다.

“저 격자 무늬 속에 어떤 비밀이 숨어 있는 것 같은데 알아내지 못했네.”

“저 끝까지 가 봤습니까?”

“아니네. 우리가 확인한 것은 세 줄까지네.”

“어떻게 확인을 했습니까?”

“이렇게 확인했네.”

철검우는 자기 바로 앞 격자를 향해 오른손을 휘둘렀다.

퍼억!

강한 충격이 바닥에 가해졌다.

덜컹!

그러자 측면 벽이 열렸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처음엔 저기서 암기가 튀어나왔네.”

“무인들은 호신강기가 있다고 하던데, 아닌가요?”

“물론 어지간한 암기는 내공으로 만든 호신강기로 막아 내거나 무기로 쳐 낼 수 있네. 문제는 그게 전부냐 하는 거네.”

“암기 말고 다른 함정이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인가요?”

“처음 와 본 곳인데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그렇군요.”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철검우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무림 세력에서 기관을 만들었다면 무인을 막기 위한 게 분명하다. 호신강기나 혹은 무기로 쳐 낼 정도의 기초적인 함정을 설치할 리가 없다. 벽면에 튀어나온 암기는 맛보기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여기가 지옥암가라면 암왕가와 관련이 있으니까…….’

금장생은 천마구유이혼대법을 펼쳤다. 곧 그의 눈이 귀안으로 변했다.

‘역시.’

그의 입가에 싱긋 미소가 맺혔다.

귀안으로 바라보자 바닥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검은색 격자 판이 글자를 이루고 있었다. 그 글자는 마법 언어였는데 죽음이란 뜻이었다. 글자는 벽과 천장까지 모두 이어져 있었다.

“가시죠.”

금장생은 철검우를 향해 말했다.

“그러세.”

철검우는 앞장서 걸었다. 세 칸까지는 이미 파악한 상태로 거침없이 걸었다.

세 번째 칸에 도착한 그는 제자리에 멈췄다.

금장생은 계속 귀안을 펼친 채 철검우가 딛는 바닥을 보았다. 철검우가 딛는 바닥은 죽음이란 글자의 일부였다.

‘글자를 밟으면 되는 거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죽음이란 글을 발견했을 때 그걸 밟아야 하는지, 아니면 죽음이란 글을 구성하는 바닥을 제외한 나머지를 밟아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철검우가 밟는 걸 보자 비로소 답이 나왔다.

“하나 선택하게.”

철검우가 말했다.

“내가 선택하라고요?”

금장생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자네 운을 한번 시험해 보고 싶어서 말이네.”

철검우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거야 뭐.”

금장생은 바로 걸음을 옮겼다. 그가 디딘 곳은 글자의 일부를 형성하고 있는 바닥이었다.

철검우와 남궁창하는 긴장한 얼굴로 좌우측 벽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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