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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468화 (468/524)

황금가 (468)

무적검이 대단하다는 건 검각 문주 평천일도 알아보지 못했다. 그런데 황보충은 만져 보지도 않고 대단한 검이라고 한 것이다.

“난 황보충입니다.”

황보충은 포권 대신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하자는 뜻이었다.

‘역시.’

금장생은 황보충의 손을 가만히 보았다.

포권을 취하지 않고 손을 내밀었다는 건 내기를 확인하겠다는 뜻이 분명하다. 잡자니 숨겨 놓은 내기를 들킬 것 같고 잡지 않으면 실례다.

금장생에게 구원의 손길을 던진 사람은 철검우였다.

“참! 천수신의는 무인이 아니네.”

철검우의 말을 듣는 순간 황보충의 손을 덥석 잡았다.

“의원께서 몸이 너무 약해서 일하기 힘들 것 같은데, 괜찮습니까?”

금장생은 황보충의 얼굴을 빤히 보며 말했다.

‘응?’

황보충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그는 자신이 무공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빗대어 한 말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잠시 생각하는 듯하던 황보충은 이내 평정을 되찾았다.

“허허! 몸은 이래도 하루가 부족할 정도로 열심히 환자를 돌보고 있답니다. 그런데 장주는 아주 건강해 보입니다.”

이번에는 황보충이 말 속에 뼈를 담았다.

“대장장이인데 건강할 수밖에 없지요. 영감님처럼 부실하면 밥을 어떻게 먹고살겠습니까.”

‘풋!’

금장생의 대답에 황보충은 내심 피식 웃었다.

“그렇다고 해도 필요 이상으로 건강한 것 같습니다. 혹시 무공을 익히셨습니까?”

황보충은 멈추지 않았다.

그가 금장생을 계속 밀어붙인 것은 흥미 때문이었다. 황보충은 비록 무공을 펼친 적은 없지만, 강호 무인보다 약하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무인도 아닌 대장장이가 자신보다 더 강했다.

자신보다 더 강하다는 건 이곳에 있는 이들 중 가장 강하다는 말이 된다. 그런 자가 대장장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무공을 익힌 게 아니라 잘나가는 의원께서 제 몸을 좀 만져 주셨습니다.”

“만져 줬다는 건 무슨 뜻입니까?”

“사경을 헤맬 정도로 크게 다쳤는데 그분께서 치료를 해 주셨습니다.”

“그 의원이 어떤 분인지 궁금하군요.”

“유인태라고 하셨습니다.”

“야, 약왕이 치료를 해 주었단 말입니까?”

황보충은 경악한 얼굴로 물었다.

유인태는 어렸을 때부터 동문수학한 사형이었다. 유인태가 신주의선가를 떠난 건 운성 산하 세력으로 들어가는 일 때문이었다. 그는 의원은 사람을 구하는 본분에 치중해야지 권력에 맛을 들이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미 운성 성주와 합의를 해 버린 사부는 그 말을 듣지 않았다.

사형과 사부는 격렬하게 싸웠고, 사부는 사형을 파문했다. 신주의선가를 떠난 사형은 사람을 치료하면서 중원을 떠돌았고 결국엔 약왕이란 칭호를 얻었다. 하지만 사부는 자신의 뜻을 어긴 사형을 끝까지 용서하지 않았다.

“그분을 아십니까?”

“가, 같은 의원이라 알 뿐이네.”

“그렇군요. 아무튼 그분 덕분에 저는 잔병치레 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유인태를 잘 아는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지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자, 자! 갈 길이 바쁘네.”

철검우는 금장생을 데리고 대머리 노인 앞으로 갔다.

“이분은 철궁전 전주 파산궁破山弓 동군위 대협이네.”

“반갑소. 나는 동군위요.”

동군위가 먼저 포권을 취했다.

“처음 뵙습니다. 장생입니다.”

금장생은 마주 포권을 취했다.

인사가 끝나자 철검우는 피부가 새하얀 노인 앞으로 데리고 갔다.

―왜 저러는 거죠?

철검우의 행동을 이상하게 여긴 불여하가 물었다.

금장생은 정문 경비도 무시하는 대장간 주인일 뿐이다. 각 문파 수장에게 소개할 정도의 신분이 아니었다. 철검우의 의도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철광석 때문일 겁니다.

―당신으로부터 철광석을 사들이기 위해서 저러는 거라고요?

―돈을 주고 살 것 같으면 굳이 저녁 시간에 초대를 할 필요도 없고, 자기 부하들을 소개시켜 줄 필요도 없겠지요.

―그럼?

―제가 사들인 철광석을 공짜로 쓰고 싶어서 그런 겁니다.

―어떻게 공짜로 쓸 수 있다는 거죠?

―황금철장이 운성 휘하 세력이 되면 공짜로 쓰거나 설사 돈을 지불한다고 해도 원가면 되지 않을까요?

―아!

불여하는 탄성을 내뱉었다.

이제야 철검우가 금장생에게 과도한 친절을 베푸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럼 저자는 당신이 하남성 모든 대장간의 주인이라는 것도 알고 있겠네요?

―그렇죠.

―그러면 남은 세 명과도 인사를 해야겠네요.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금장생의 말대로였다.

철검우는 천기루 루주 현기자賢機子 유숙의와 백운파 문주 금사검군金絲劍君 관천행 그리고 춘추서원 원주 검서생劍書生 사문금까지 모두 소개를 시켜 주고, 자신의 심복인 혈기자 남궁창하와 사각의 각주까지 소개시켜 주고 나서야 금장생과 불여하를 놔주었다.

“자, 이제 거국적으로 한잔합시다.”

철검우는 술잔을 들고 일어났다.

그러자 다른 이들도 일제히 술잔을 채워 잔을 들고 일어났다.

“우리도 일어나야 하는 거예요?”

불여하가 속삭였다.

“모두 일어나는데 우리만 앉아 있으면 이상하잖아요.”

금장생은 잔을 들고 일어났다.

“하남성의 모든 대장간을 소유한 황금철장이 우리 운성과 손을 잡기로 한 아주 뜻깊은 자립니다.”

“환영합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탁월한 선택이오.”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거요.”

철검우의 말이 떨어지자 각 세력 수장들의 말이 쏟아졌다.

“아, 예.”

금장생은 황당한 표정조차 짓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

―풋!

불여하는 금장생을 보며 피식 웃었다.

―왜요?

―저 사람 너무 웃긴 것 같아서요.

―누군가가 자신의 부탁을 거절하거나, 주장을 반박당한 경험이 전혀 없고, 가기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은 자주 저래요.

―귀하게 자랐다는 건가요?

―귀하게 자랐을 뿐 아니라 휘두르는 권력도 막강했을 겁니다.

―그런 거라면 저나 당신도 만만치 않잖아요.

금장생은 신족의 왕이었고 자신은 사왕가의 가주였다. 귀하게 자란 걸로 따지자면 철검우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철검우가 하는 짓을 보니 웃기지도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신왕이나 가주가 되기 위해 경쟁할 필요가 없었잖아요.

―저자는 경쟁을 하고 있다는 거예요?

―표면적으로는 차기 성주로 결정됐어요.

―그런데 뭐가 문제죠?

―운성 문도들의 암묵적인 동의가 있어야 합니다.

―암묵적 동의요?

―‘철검우는 능력이 있으니까 성주가 돼도 하등 이상할 게 없어.’라고 하는 인식을 말하는 겁니다.

―그런 암묵적 동의를 얻기 위해 황금철장을 영입했다는 건가요?

―네.

―그런 걸로 저자에 대한 인식이 바뀔까요?

―절대 안 바뀌죠.

―그런데…….

―무능력한 자들의 대체적인 특징이 반짝 행사 같은 걸로는 자신에 대한 인식이 바뀌지 않는다는 걸 모른다는 겁니다. 자신은 대단한 일을 해냈다고 여기죠.

―그래요?

불여하는 철검우를 보았다.

철검우의 얼굴은 어떤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다. 마치 전쟁터에 나가서 승리를 하고 돌아온 개선장군 같았다.

―킥!

불여하는 살짝 웃었다.

―저 친구 덕분에 쉽게 들어왔으니까 오히려 고맙죠.

금장생은 싱긋 웃었다.

―이럴 때는 장단을 맞춰 줘야겠죠?

―당연하죠.

술잔을 비우고 자리에 앉아 식사를 했다. 음식은 아주 괜찮았다. 천천히 식사를 즐기고 있는데 신주의선가 가주 황보충이 다가왔다.

“앉아도 되겠소?”

황보충이 물었다.

“얼마든지.”

금장생은 손으로 빈 의자를 가리켰다. 황보충은 금장생이 가리킨 자리에 앉았다.

“유인태 어르신이 궁금해서 오신 겁니까?”

황보충이 앉자 금장생이 물었다.

“그렇소.”

“그분은 작년에 만났습니다. 얼굴은 아주 좋아 보였습니다.”

“어디 사시는지는 아시오?”

“저도 사경을 헤매던 도중에 치료를 받은 거라 거처까지는 모릅니다. 나중에 은혜라도 갚을 생각에 거처를 물었는데 대답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랬군요.”

황보충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어떤 관곕니까?”

금장생은 슬쩍 떠보았다.

“어떤 관계라는 건…….”

“운성과 신주의선가 관계를 말하는 겁니다.”

“주종 관계가 아니냐는 그런 뜻이오?”

“나도 운성에 한 다리를 걸치게 됐으니까 어느 선까지 협조를 해야 하는 건지 알아 둬야 할 것 같아서요.”

“우리는 무림세가가 아니라 주종 관계까지는 아니지만 다른 문파들은 한 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오.”

“그럼 운성 문도의 수는 이천 명이 아니라 사천오백 명 정도로 봐야겠군요.”

“방금 한 말, 위험한 발언 같은데…….”

황보충은 금장생을 빤히 바라보았다. 갈수록 정체가 궁금해지는 자였다.

“대장장이의 입에서 나올 말이 아니라는 건가요?”

“평범한 대장장이는 무림 세력의 문도 수에 관심을 갖지 않는 걸로 알고 있소.”

“그래서 그자들은 대장간 하나만 운영하다가 일생을 마치는 겁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장사꾼은 늘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벌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을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게…….”

“대장간의 고객은 일반 양민도 있지만 그들로부터 벌어들이는 돈은 푼돈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무림 세력은 다릅니다. 무기를 수백 자루 이상 주문하기도 하지요. 특히 지금처럼 난세가 되면 무기 주문은 더욱 많아집니다. 내가 무림 세력에 관심을 갖는 건 당연한 겁니다.”

“허허!”

황보충은 웃고 말았다. 듣고 보니 금장생의 말이 구구절절 맞았다.

“이제 이해가 가십니까?”

“그렇소. 그럼 내가 돈을 벌려면 어떻게 해야 하오?”

“제가 신주의선가 가주라면 인원을 더 뽑고, 춘추오패가 있는 곳에 지점을 내겠습니다.”

“춘추오패가 있는 곳에 지점을 내야 하는 이유가 뭐요?”

“전쟁이 가장 치열하게 벌어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전쟁이 치열하면 부상자가 많아질 테고, 의원이 호황을 누릴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무리해서 지점을 냈는데, 전쟁이 끝나면 손님이 떨어질 거 아니오.”

“절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보통 전쟁이 끝나면 어느 쪽으로든 정리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전쟁 때보다 사건 사고가 더 많이 일어납니다. 승리한 측도 패한 측도 모두 약해진 상태라, 질서를 유지할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신흥 세력이 생겨나기도 하고요”

“질서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일이라는 거군.”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상황이 종료될 즈음이면 신주의선가는 막대한 이익을 내고 있을 겁니다.”

“클클클! 대단하구먼.”

황보충은 빙그레 웃었다. 말로만 들었을 뿐인데 신주의선가가 수십 곳의 지부를 내서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혹시 정말로 지원을 낼 생각은 없습니까?”

금장생은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

금장생을 바라보는 황보충의 눈이 살짝 커졌다. 장난기가 전혀 없는 금장생의 말투 때문이었다.

“농담이 아니군요.”

“저는 사업 이야기로 절대 농담을 하지 않습니다.”

“허허허! 이거 당황스럽군요.”

황보충은 웃음을 터뜨렸다.

“나중에라도 혹시 마음이 변하면 제게 말해 주십시오.”

“투자라도 하실 생각이오?”

“그럴 게 아니라면 굳이 말할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지금 뭐 하는 거예요?

불여하가 물었다.

―이 정도 해 두면 완전한 장사꾼으로 보지 않겠습니까?

―그럼 그것 때문에…….

―실제로 지원을 내겠다면 투자할 의향이 있기도 합니다.

금장생은 빙그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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