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465화 (465/524)

황금가 (465)

검각이 멸문했다!

하나의 소식이 중원무림을 강타했다.

그 소식을 들은 중원무림은 처음엔 발칵 뒤집혔다. 그리고 잠시 후 숨을 죽였다.

현재 중원무림의 주인은 춘추오패고, 그들은 자신들만의 세상을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세력이 나타나면 서로 협력하여 없애곤 했다.

새로운 세력을 공동의 적으로 간주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현재 중원에서 활동하고 있는 대부분의 세력은 춘추오패의 휘하라고 해도 잘못된 말도 아니다. 검각 또한 춘추오패의 한 곳인 해림 산하 세력이었다.

그런 세력이 멸문했다는 건 춘추오패에 대한 확실한 도전이었다. 더불어 춘추오패의 한 곳을 공격했다는 건, 도전자들 또한 춘추오패만큼 강자라는 걸 뜻한다.

무림 전쟁!

중원 무인들 머릿속에 떠오른 말이었다.

국가 간의 전쟁이건 무림 전쟁이건 전쟁이 시작되면 세상은 황폐해진다. 수많은 주검이 난무하고 어제까지 친구였던 사람이 원수가 돼 싸우기도 한다.

인륜과 도덕이 바닥까지 떨어지는, 비정의 시대가 온 것이다.

도대체 누구냐?

중원 무인들이 갖는 의문이었다.

춘추오패는 겉으로 드러난 세력만 다섯 곳일 뿐 그들이 거느린 세력까지 합치면 수십 곳이다. 그들 모두와 전쟁을 한다는 건, 엄청난 돈과 무인이 있어야 한다. 그들이 과연 어떤 자들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원무림은 잔뜩 숨을 죽인 채 상황을 주시했다.

무혼에게 안휘성으로 간다고 했지만 금장생이 실제로 간 곳은 하남성이었다.

하남성으로 들어선 그는 곧바로 북진했다.

신양에서 남양을 거쳐 소가 엎드린 형태라는 복우산으로 들어섰다. 연일 푹푹 찌는 폭염은 산이라고 해서 나을 게 없었다. 태극선의를 걸친 금장생은 좀 나았지만 불여하는 얼마 가지 않아 땀으로 목욕을 했다. 내기로 더위를 몰아내는 것도 한계에 달했던 것이다. 금장생은 태극선의를 벗어 불여하에게 건넸다.

“고마워요.”

불여하는 미안한 얼굴로 태극선의를 받았다.

두 사람이 이곳까지 오면서 더위를 이기는 방법이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상태가 되면 태극선의를 입고 더위를 식혔다.

불여하는 한편으로 가서 입고 있던 옷을 벗고 속옷 위에 태극선의를 걸쳤다. 그렇게 입는 것이 가장 시원하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금장생의 여정을 말해 주듯 태극선의는 거의 넝마 수준이었다. 그 바람에 제 역할도 거의 못 해 완전한 형태일 때처럼 시원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입지 않는 것보다는 나았다.

“이제야 좀 살겠네요.”

불여하는 싱긋 웃었다.

“물이 있는 계곡이라도 나왔으면 좋겠네요.”

“저도요.”

“귀를 기울이면서 가 보도록 하죠.”

“알았어요.”

두 사람은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복우산은 진령산맥 끝자락에서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누워 있다. 총길이는 칠백 리 정도고 폭은 백 리에서 이백 리 사이다.

“노군산이 보이는 걸 보면 삼분의 이는 온 것 같습니다.”

금장생은 저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게 노군산인지 어떻게 알죠?”

불여하는 신기한 듯 물었다.

“전에 복우산에서 임무를 수행한 적이 있거든요.”

“자객 임무?”

“네.”

“당신이 자객이었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아요.”

그녀가 아는 가부연은 닭도 제대로 잡지 못하는 여린 사람이었다. 그래서 닭은 잡아 놓은 걸 사다가 요리를 했다. 그랬던 사람이 자객이 돼 사람의 목숨을 끊었다는 게 상상이 가지 않았다.

“저도 그렇습니다. 평생 장사나 할 줄 알았거든요.”

“그랬군요. ……어?”

불여하는 금장생을 보았다.

그때 금장생도 불여하를 보고 있었다.

“이거 물소리 맞죠?”

불여하가 말했다.

“네, 맞아요.”

“가요.”

두 사람은 곧바로 몸을 날렸다.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모르지만 물소리만으로 짐작건대 상당한 규모의 폭포가 분명했다. 오백 장가량을 달렸을 때 두 사람 앞에 폭포가 나타났다. 폭포의 높이는 삼 장, 폭은 이 장이었다. 생각보다 폭이 넓었다.

폭포 아래쪽에는 지름이 오 장가량 되는 호수가 형성돼 있었다. 폭포 때문에 생겨난 호수인 모양이었다.

“야호!”

불여하와 금장생은 호수를 향해 달렸다.

호수를 일 장 남겨 둔 지점에서 바닥을 찼다. 삼 장 높이로 솟구친 두 사람은 그대로 떨어졌다.

풍덩! 풍덩!

거의 동시에 호수로 떨어졌다.

호수는 상당히 깊었다. 위에서 떨어진 탄력으로 인해 한참 동안 들어갔는데도 바닥이 닿지 않았다.

두 사람은 헤엄을 쳐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후아!”

“와!”

절로 탄성이 나올 정도로 물은 시원했다.

“호호호!”

불여하는 활짝 웃었다.

두 사람은 헤엄을 쳐 물가로 갔다. 거기서 장포를 벗었다. 불여하가 태극선의를 벗자 속옷만 남았다.

속옷으로 손을 가져가던 불여하가 잠시 멈칫했다. 그러다가 이내 가슴 가리개를 풀고 하의 속옷을 벗었다.

“당신도 벗어요.”

“빨아 주려고요.”

“가르쳐 주면…….”

“‘가르쳐 주면’이라는 건 무슨 뜻이죠?”

“한 번도 안 해 봤어요.”

“정말이에요?”

“물에 헹구는 건 몇 번 해 봤는데 빠는 건…….”

헹구는 것도 강시를 벗어나고 난 후에 했다. 그 전에는 단연코 빨래를 해 본 적이 없다.

“하긴 그때도 속옷 빨래는 내가 했네.”

금장생은 피식 웃었다. 그러고 보니 불여하와 살 때 빨래는 자기가 했던 기억이 났다.

빨래를 하인들이 하긴 하지만 속옷까지 빨아 달라고 할 수는 없었다. 더구나 불여하의 속옷은, 앞이나 뒤가 열리는 것부터 짧은 치마 형태만 있는 등 특이한 것들이 많았다. 그런 것들을 빨아 달라고 하인들에게 맡기면 이상한 소문이 날 것 같아 직접 빨았다.

“빨래를 하려면 먼저 곡식을 갈아서 만든 조두나 이게 있어야 해요.”

금장생은 무혼이 샤이칸드리아 대륙에서 사용했다는 비누를 꺼냈다. 그가 사용한 비누는 세척력이 조두보다 훨씬 강력했고, 향기도 좋았다.

“이건 처음 보는 것 같은데요?”

불여하는 비누를 들고 냄새를 맡았다. 비누에서는 좋은 냄새가 났다.

“장미 향 같은데, 맞아요?”

그녀는 금장생을 보며 물었다.

“무 형이 살았던 곳에서 사용하는 조두래요. 우리가 사용하는 것보다 훨씬 잘 빨리더라고요.”

“어떻게 사용하는데요?

“먼저 빨래를 물에 적신 후, 문지르면 거품이 나요.”

“그래요?”

불여하는 금장생의 장포와 자기 옷들을 빨았다.

일부러 그런 건지 아니면 그렇게밖에 자세가 나오지 않는 건지 그녀는 금장생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자세로 쪼그려 앉아 빨래를 했다. 그 바람에 금장생 앞에 모든 게 다 드러났다. 과거에 부부로 살았던 사이고 이미 잠도 잤는데 고개를 돌리면 불여하가 어색해할 것 같아 그대로 있었다.

그런데 빨래를 하는 불여하를 가만히 보고 있자니 뜨거운 기운이 치밀고 피가 아래로 내달렸다.

“옷 안 벗어 줘요?”

“그, 그게…….”

“아직도 제가 어색한가 봐요?”

“끙! 알았어요.”

금장생은 얼굴을 찌푸리고는 옷을 벗었다.

아래쪽이 민망한 상태라 창피한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는 곧 알몸이 됐다.

금장생을 바라보던 불여하의 얼굴에 슬쩍 미소가 얹혔다. 빨래가 많아서 그런지 호흡도 약간 거칠어 진 것 같았다.

금장생은 공연히 어색해 불여하가 빨아 놓은 빨래의 물기를 짜서 널었다. 민망한 아래쪽이 거슬리지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밀려 있던 것까지 전부 빨아서 바위에 널었다.

“여기로 오세요.”

금장생이 빨래를 다 널고 나자 불여하가 불렀다. 금장생은 불여하 앞으로 갔다.

“이 바위에 누우세요.”

불여하는 물속에 잠긴 평평한 바위를 가리켰다. 그 바위는 물 위로 두 치 정도 드러나 있었는데 드러누우면 머리를 감겨 주기 딱 좋을 것 같았다.

금장생은 그곳에 누웠다.

불여하는 말없이 금장생 머리맡으로 가서 머리에 비누칠을 했다. 거품이 풍성하게 나오자 손가락 끝으로 박박 문질렀다.

“빨래는 못하더니 머리는 시원하게 잘 감기네요?”

“머리는 제가 감으니까 어떻게 하면 시원한지 잘 알거든요.”

불여하는 빙긋 웃었다.

비누칠이 끝나자 물을 끼얹어 헹궜다.

그런 다음 앞으로 와서는 몸에다 비누칠을 했다. 얼굴, 목, 가슴에 비누 거품을 냈다. 아래로 내려가던 불여하의 손이 잠시 멈칫했다. 하지만 그 시간은 잠시 잠깐에 불과했다. 다른 곳보다 더 정성스럽게 비누칠을 했다. 성기를 다 씻고 나자 이번엔 고환을 씻었다. 무게를 가늠하는 것처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비누칠을 했다. 불여하의 손이 다리로 내려가자 금장생은 그제야 한숨을 내쉬었다.

“엎드리는 건 불가능하겠죠?”

앞을 끝낸 불여하가 배시시 웃으며 물었다.

“그걸 말이라고 하세요?”

금장생은 불여하를 흘겨보았다.

“복수할 기회는 줄게요. 이제 앉으세요.”

불여하는 혀를 쑥 내밀었다.

금장생은 조금 전 누웠던 돌에 걸터앉았다. 그러자 불여하가 비누 거품을 내 등을 문질렀다.

금장생의 목욕은 물을 끼얹어 비누 거품을 헹궈 내는 걸로 끝이 났다.

“이젠 제 차례예요.”

불여하가 바위에 누웠다.

“머리는 일부러 자른 거예요?”

금장생은 문득 불여하의 머리가 자신보다 더 짧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과거 불여하는 누구보다 긴 머리를 좋아했다. 강시로 깨어났을 때도 머리가 길었다. 그런데 지금은 가장 킨 머리카락의 길이가 한 치밖에 되지 않는다.

“머리카락이 많이 빠져서 잘라 버렸어요.”

“머리카락이 빠져요?”

금장생은 깜짝 놀랐다. 그는 지금껏 팔장군들의 몸에 아무런 이상이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머리카락을 잘라야 할 정도로 빠지고 있다면 심각한 상태라고 봐야 할 것 같았다.

“네.”

불여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하 혼자만 빠지는 거예요?”

“아니에요. 모두가 다 머리카락이 빠지고 있어요.”

“다, 다른 곳은 어때요?”

금장생은 급하게 물었다.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 말고는 특별한 이상은 없어요.”

“휴우! 다행이네요. 몸이 전과 달라졌다는 기분이 들면 바로 말해 주어야 합니다. 무슨 말인지 아셨죠?”

“네. 이제 씻어 주세요.”

“알았어요.”

금장생은 불여하의 머리에 비누칠을 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문질렀다. 문지르면서 머리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녀 말처럼 머리를 감는 동안에도 상당히 많은 수의 머리카락이 빠지는 게 보였다.

그의 손길은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물을 살짝살짝 끼얹어 머리를 감기고 나서 몸에 비누칠을 했다. 머리를 감겨 줄 때 느낌이 남아서인 듯 몸을 씻기는데도 그의 손길은 조심스러웠다.

너무 조심스럽게 씻기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건 불여하의 숨결이 거칠어지고 난 후였다.

먼저 덮친 사람은 불여하였다. 금장생을 씻길 때부터 약간 들떠 있는 상태였던 불여하는 금장생이 가슴에 비누칠을 해 줄 때까지는 어찌어찌 참았다. 하지만 아래를 씻기기 시작하자 더 이상 참지 못했다. 벌떡 일어나 금장생을 덮쳤다. 이제부터는 관계를 가질 때 수동적인 위치에 서겠다고 하였던 약속은 그녀의 머릿속에 남아 있지 않았다.

금장생을 바위에 눕히고 바로 자신의 안으로 끌어당겼다. 불여하는 격정적으로 움직였다. 어쩌면 빠르게 줄어들고 있는 머리카락 때문에 그랬는지도 몰랐다. 공연히 육체에 대한 갈증이 심해지고 갈구가 커졌다. 그녀는 게걸스럽게 금장생을 탐했다.

두 사람이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어둠이 사위를 감싼 후였다.

불여하는 금장생의 가슴에 얼굴을 기댄 채로 거친 숨을 고르고 있었다.

“미안해요.”

불여하는 나직하게 말했다.

“뭐가요?”

금장생은 물었다.

“또 내 욕심만 채웠잖아요.”

“우리 사이에 욕심을 채우고 말고가 어디 있어요?”

“우리 사이?”

“부부잖아요.”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네.”

금장생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젠 그녀를 받아들여야 할 때가 된 것 같았다. 수천 년의 세월이 흘렀고 자신은 다시 태어나기까지 했지만, 서로를 기억하고 있다면 시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불여하와 자신은 부부인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