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463)
검각 문도들 속으로 들어간 금장생은 곧바로 철검무적검해를 펼쳤다. 자르고, 찌르고, 벴다. 무적검은 한 번도 빗나가지 않았다.
퉁! 퉁퉁! 퉁퉁!
금장생을 가장 크게 도와주는 사람은 불여하였다. 검각 문도들이 금장생의 허점을 파고들려고 하면 그녀의 화살이 허공을 갈랐다.
퍽! 퍽퍽! 퍽!
“커억!”
“크윽!”
“으악!”
검각 문도들은 금장생의 검에 죽고, 불여하의 화살에 죽었다.
싸움이 시작되고 정확하게 한 식경 반 후 일백 명의 오검대 대원은 몰살을 당했다. 그리고 그들을 지휘하던 이들과 보고를 해야 한다는 핑계로 도망을 쳤던 방두만도 죽었다. 남은 사람은 문주 평천일과 부문주 영호정 그리고 검각사노뿐이었다.
“이제 우리 차롄가 보구나.”
검각사노는 몸을 날려 금장생과 불여하를 가운데 두고 동서남북 네 곳으로 내려섰다.
스릉!
자리에 선 네 사람은 일제히 검을 뽑았다.
춘설일검 이육노는 자신의 검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사조의 무공은 전해 내려오지 않았지만 그가 만든 검은 남아 있다. 자신이 들고 있는 이검은 다섯 자루 중 가장 먼저 만들었다고 알려진 뇌금雷金이다. 뇌의 기운이 어린 만년뇌금철로 만들어 하늘의 기운을 가져다 쓸 수 있다고 하였지만 자신은 아직 그런 경험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앞으로도 경험할 일이 없을 것 같다.
툭!
이육노는 검집을 버렸다.
그는 고개를 들었다.
적 뒤편에 서 있는 자는 하서이검 삼정아다. 그가 들고 있는 검은 두 번째로 만들고 재료가 곤오신철인 곤오坤烏다. 그의 머리처럼 검도 새카맣다.
그가 곤오의 주인이 된 건 머리카락과 가장 어울린다는 이유 한 가지였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툭!
삼정아 역시 검집을 버렸다.
이번엔 오른편에 있는 사내를 보았다. 추월삼검 기숙두다. 그가 지닌 검은 혈염강철로 만든 혈염血炎이다. 혈염강철은 붉은 기운이 감돈다.
검을 하사받을 때 기숙두는 대머리가 아니었다. 세월이 흐르며 머리가 벗겨지고 대머리가 약간 붉은빛을 띠면서 혈염이 가장 어울리는 얼굴이 됐다.
언젠가 술 한잔 하면서 혈염과 대머리와 아주 잘 어울린다며, 검을 내려 주신 사부가 선견지명이 있어 혈염을 주셨다고 하면서 크게 웃었다.
툭!
바닥으로 떨어지는 혈염의 검집이 보인다.
마지막으로 왼편을 보았다. 넷째인 동매사검 경득공이다. 그는 묵강한철로 만든 묵강墨鋼의 주인이다. 묵강은 검은색이지만 곤오보다는 연하다.
태생적으로 차가운 기운을 머금고 있어 겨울 검이라 불리는 막내와 가장 어울린다.
막내의 검집 또한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경득공이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나도 함께 해야겠지?”
나직한 목소리와 함께 문주 평천일이 일행 사이로 들어갔다.
“문주님.”
이육노는 평천일을 보았다.
“장로들이 안 되는 자라면 우리 둘은 더 안 될 거 아닌가.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높은 쪽에 힘을 더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네.”
검각사노가 아무리 금장생 일행의 힘을 빼놓는다고 해도, 그들이 당하고 나면 영호정과 둘이서 없앨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평천일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나도 하겠습니다.”
영호정이 평천일 곁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자넨 남아야 하네.”
평천일은 고개를 저었다.
“문주님.”
―누군가는 남아서 우리를 묻어 줘야 할 거 아닌가.
평천일은 전음으로 말했다.
그가 느닷없이 전음을 보낸 건 승리할 자신이 없는 내심을 금장생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서였다.
―우리 이길 수 있습니다, 문주님.
영호정은 단호하게 말했다.
―내 생각도 자네와 같네. 나는 우리가 패할 거라고는 눈곱만큼도 생각지 않네. 저자들을 없애고 나서 검각을 다시 재건할 거네. 하지만 세상이라는 게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질 않는가. 만일에 대한 대비를 하지 않을 수가 없네. 만일 내가 죽으면 검총파천쇄옥진은 그대로 두게. 봉문을 한 상태에서 검각을 다시 일으켜 주게.
―다섯 분이 당하고 나면 저자가 저를 살려 줄 거라고 보십니까?
―내가 검총파천쇄옥진을 없애지 말라고 한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네. 밖으로 내보내 주는 대신 자네를 살려 달라고 하게.
―문주님.
―자네 손에 검각의 미래가 달려 있음을 명심하게.
―……알겠습니다.
영호정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문주가 돼서 가장 잘한 게 뭔지 아는가?
―…….
영호정은 말없이 평천일을 보았다.
―원로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네를 부문주로 앉힌 거네. 자네 덕분에 검총파천쇄옥진도 찾아낼 수 있었고, 검각은 한 단계 더 발전했네.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저도 제 인생의 최고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문주님.
영호정은 포권을 취했다.
―나도 그렇네.
평천일은 빙긋 웃고는 검집을 버렸다.
그리고 금장생과 불여하를 향해 돌아섰다.
“시작해 볼까?”
평천일은 용형을 가슴 앞에 세우더니 검 손잡이를 놓았다. 손잡이를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용형은 가슴 앞에 가만히 멈춰 섰다.
이육노 역시 평천일과 같은 동작을 취했다. 그의 검 뇌금도 가슴 앞에 수직으로 섰다. 두 사람의 검은 명령을 내리면 곧바로 적진을 향해 뛰어들 태세를 갖춘 돌격대 같았다.
“갑니다.”
왼편과 오른편에 있던 삼정아와 기숙두가 동시에 몸을 날렸다. 두 사람의 신형은 전광석화였다. 달려가는 두 사람의 검에는 검강이 길게 솟구쳐 있었다.
“타하!”
금장생 왼편에 있던 불여하가 당기고 있던 시위를 놓았다.
퉁!
푸아악!
기시 한 대가 가공할 속도로 기숙두의 심장을 향해 쏘아져 갔다.
“하아!”
그 순간 금장생은 무적검을 쭉 찔러 넣었다. 허공에 커다란 구멍이 생겨나더니 그대로 전진했다.
“차하!”
“타하!”
기숙두와 삼정아는 거의 동시에 검을 내리그었다.
창! 창!
두 사람 앞에서 쇳소리가 터져 나왔다.
두 사람은 지금까지 상대했던 다른 무인들과 달랐다. 철검무적검해는 물론이고 불여하의 기시도 막아 냈다. 물론 완벽하게 막아 내진 못했다. 부딪친 반발력에 의해 일 장이나 물러나야 했다.
“음!”
“으흠!”
두 사람의 입에서 신음이 비어져 나왔다.
첫 번째 충돌일 뿐인데 내부가 흔들릴 정도로 강한 충격이 왔다.
파앗! 파앗!
하지만 두 사람은 이를 악물고 다시 바닥을 찼다.
“합!”
“차하!”
그때 평천일과 이육노가 양팔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파앙! 파앙!
두 자루의 검이 금장생과 불여하를 향해 폭사됐다. 이기어검술이었다.
두 자루 검이 빛살처럼 날아가고 좌우측에서는 삼정아와 기숙두가 심검합일이 된 상태로 쏘아져 갔다.
넷째인 경득공은 묵강을 가슴 앞에 세우고 전 내공을 끌어 올렸다. 금장생과 불여하 둘 중 한 명이 허공으로 솟구칠 때 공격하기 위해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의 검은 차가운 기운을 뿌려 대고 있었다.
휙!
척!
금장생과 불여하는 무적검과 포라를 심장 앞에 세웠다.
징!
불여하의 궁 포라에서 나직한 소리가 흘러나오더니 손으로 잡고 있는 부분에서 둥근 방패가 생겨났다.
―힘을 거스르지 말고 자연스럽게 물러나세요. 그리고 뒤편에 있는 자에게 활을 쏴 주세요.
금장생은 불여하에게 전음을 보냈다.
―알았어요.
텅! 텅!
평천일과 이육노의 검은 금장생의 검과 불여하의 방패에 부딪쳐 튕겨 나갔다.
금장생과 불여하는 부딪칠 때 생겨난 반발력을 거스르지 않고 몸을 실었다. 그러자 두 사람의 신형이 뒤편으로 밀렸다.
스악! 스악!
조금 전 두 사람이 서 있던 공간으로 검과 하나가 된 기숙두와 삼정아가 스쳐 지나갔다. 물러나는 금장생과 불여하를 향해 검강이 솟구친 검을 휘둘러 보았지만 거리가 미치지 못했다.
휙!
두 치가량 뜬 상태로 물러나던 불여하가 뒤편으로 몸을 돌렸다. 돌아선 상태의 그녀의 궁은 잔뜩 휘어진 상태였다. 기시가 생겨난 건 순식간이었다.
투명한 기시가 생겨나자마자 바로 놓았다.
퉁!
파앗!
금장생이 몸을 날린 건 그때였다.
“억!”
경득공의 눈이 커졌다. 그는 금장생과 불여하가 허공으로 솟구치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예상을 깨고 뒤돌아서 공격을 해 온 것이다.
화살과 금장생이 순차적으로 다가오고 있지만 급한 건 화살이었다. 그는 가슴 앞에 세우고 있던 검을 힘껏 내리그었다.
화살 뒤편에서 낮은 자세로 쏘아져 오는 금장생은 아래로 그었던 검을 들어 올리며 공격할 참이었다.
터엉!
“헉!”
경득공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화살을 충분히 쳐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니 쳐 낸 것은 맞다. 화살이 저만치 날아갔으니까.
문제는 자신의 검이었다.
왼발 앞으로 가 있어야 할 검 끝이 얼굴 옆으로 가 있는 것이었다. 여기서 취할 수 있는 동작은 횡으로 휘두르는 것밖에 없다. 금장생이 서서 달려온다면 위협이 되겠지만 잔뜩 숙인 상태다. 아무리 힘을 준다고 해도 자신의 검은 상대의 머리 위 허공을 가르게 된다.
그는 재빨리 문주와 검각사노 세 사람을 보았다.
그들도 상황을 알아차리고 이편을 향해 몸을 날려 오고 있다. 전력을 다한 상태지만 이미 늦었다. 하지만 간발의 차로 도착할 것이다. 그렇다면 첫 번째 공격에 죽지만 않으면 살아날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공격을 막을 방도가 몸뿐이라는 것이다.
‘호신강기에 모든 걸 걸어 보는 수밖에.’
경득공은 전 내공을 동원해서 호신강기를 펼쳤다. 검을 휘두르고는 있지만 내기는 전혀 싣지 않았다.
퍼억!
옆구리에서 둔탁한 소성이 들렸다.
‘막았…….’
스악!
“커억!”
경득공의 입에서 비명이 비어져 나왔다.
막았다고 생각했는데 무적검이 심장으로 파고들어 가 있었다.
“빌어먹을.”
그는 욕설을 내뱉었다.
하지만 금장생의 공격은 끝난 게 아니었다.
찔러 넣었던 무적검에 허공섭물 수법을 더했다. 그러자 경득공의 몸이 무적검에 찰싹 달라붙었다. 경득공이 연장이라면 무적검은 자루가 된 것이다. 그 상태에서 뒤편에서 달려오는 평천일 일행을 향해 무적검을 사정없이 잡아당겼다. 그와 동시에 허공섭물 무공을 풀었다. 당신 힘에 의해 무적검은 빠져나왔지만 경득공의 몸통은 뒤편으로 날아갔다.
금장생은 발꿈치로 바닥을 강하게 찍었다. 나아가던 몸이 멈춰 선 순간 힘차게 튕겼다. 그는 경득공을 쫓아 날아갔다.
“억!”
갑자기 막내 경득공이 달려들어 시야를 가로막자 기숙두는 질겁했다. 그리고 곧 갈등에 휩싸였다.
만일 막내 뒤에 적이 있다면 들어 올리고 있는 검을 휘둘러야 한다. 그럼 막내의 몸통을 먼저 잘라 내게 될 것이다. 막내가 완전히 죽었다면 상관없겠지만 아직 살아 있다면 자신이 죽인 셈이 된다.
‘어쩔 수 없다.’
갈등의 시간은 생각보다 짧았다.
막내 몸으로 검이 파고든 걸 보았으니까 죽었다고 생각해야 한다. 시체를 보존하는 것보다는 적을 없애는 게 우선이었다.
“차하!”
그는 기합과 함께 검을 휘둘렀다.
“세, 셋째…….”
바로 그때 경득공의 목소리가 들렸다.
“허억!”
기숙두는 내리긋던 검을 멈췄다. 전력을 다해 내리긋던 검을 멈추자 진기가 거칠게 역류했다. 역류한 내기는 폭풍처럼 그의 내부를 강타했다.
“컥!”
그의 입에서 비명이 비어져 나왔다.
퉁!
그 순간 시위 놓는 소리가 들렸다.
퍼억!
그리고 투명한 화살 한 대가 기숙두의 이마로 박혀 들었다.
턱!
기숙두와 경득공의 몸이 하나가 돼 뒤로 날려 갔다.
“막내야, 셋째야…….”
삼정아는 비통한 얼굴로 소리쳤다. 그리고 한 덩어리가 돼 날아오는 둘을 두 손으로 잡았다.
턱!
“헉!”
삼정아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섬뜩한 기운이 머리 위에서 쏘아져 왔다. 그는 고개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