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460)
불여하가 찾는 건 공간에 숨어 있는 적이다.
기검은 상당히 가까운 거리에서 날아오는데 상대는 보이지 않는다. 적과 자신들 사이에는 어떤 벽이 존재하지 않는 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물리적인 벽이 아니기 때문에 찾아내기만 한다면 없애는 건 문제가 아니라는 게 금장생과 불여하의 판단이었다.
―카!
금장생은 카를 불렀다.
―네.
―우리를 공격하는 자들의 위치를 확인해 보세요.
―알았습니다.
휘리릭!
카가 악마수에서 빠져나갔다.
푸아아악!
그 순간 막을 빠져나온 검이 금장생과 불여하를 향해 쏘아져 왔다.
“차하!”
금장생의 오른손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카앙!
둔탁한 소성과 함께 기검이 튕겨져 나갔다. 절대적인 무공을 지녔고, 이기어검술을 넘어 심검까지 익힌 그가 제대로 된 공격을 못 하고 방어에 치중하고 있는 건 기검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였다.
검이 모습을 드러내는 곳은 삼 장 거리도 되지 않았다. 막을 뚫고 나온 것처럼 느닷없이 돌진해 오는 기검을 향해 이기어검술이나 혹은 심검을 펼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불가능하다. 지금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건 쳐 내는 것뿐이었다.
―보이지 않습니다.
그때 머릿속으로 카의 목소리가 들렸다.
―알았어요. 돌아오세요.
금장생은 돌아오란 지시를 내렸다. 그러고는 라를 불렀다.
―왜 그러느냐?
―정령도 진식의 영향을 받나요?
―그건 왜 묻느냐?
―적의 위치를 찾아 달라고 했는데 못 찾아서요.
―카가 적을 못 찾는 건 진식이 아니라 마법 때문일 게다.
―마법에는 영향을 받는다는 건가요?
―마법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가 아니니까.
캉! 카앙! 카앙!
라와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도 기검은 약간의 시간 차를 두었지만 쉬지 않고 날아왔다. 금장생은 계속해서 무적검을 휘둘러 기검을 쳐 냈다.
―어떤 마법이죠?
―내가 보기엔 공간 왜곡 마법 같다.
―공간 왜곡 마법이란 어떤 상태를 말하는 건데요?
―물리적으로는 네 바로 옆인데도 수십 장 혹은 수백 장 거리처럼 느끼기도 하고, 수십 장 떨어진 곳인데도 바로 앞에 있는 것처럼 느끼기도 한다.
―느낀다는 건 어떤 뜻입니까?
―실제 거리를 말한다.
―그러니까 영감님 말은 오 장밖에 안 되는데도 오십 장이라고 느끼면, 실제 거리가 오십 장으로 늘어난다는 거죠?
―맞다.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공간인 셈이네요?
―그렇게 생각하면 된다. 문제는 너만 그렇게 느낀다는 점이다.
―저만 그렇다는 건 무슨 뜻이죠?
―너와 불여하는 바로 앞에 공간을 분할하는 벽이 있다고 느끼지만, 적은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게 가능해요?
―너희 무인들도 그런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우리도 사용한다고요?
―이 공간과 역장은 비슷한 것 같은데 아니냐?
―아!
순간 섬광이 금장생의 뇌리를 스쳤다.
라의 말이 맞다. 무인도 이런 공간을 창조하여 사용하고 있다. 역장 안에서는 자신이 신이다. 거리를 줄일 수도 있고 늘릴 수도 있다.
“바로 그거다.”
금장생은 곧바로 내기를 끌어 올렸다.
기검이 튀어나온 위치를 보면 적은 십 장 안쪽에 있다. 자신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역장의 폭도 그 정도는 되니까 잘만 하면 진식을 무력화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금장생이 만들어 낸 역장이 전방 공간을 장악하며 나아갔다. 금장생은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깨끗한 물에 떨어뜨린 먹물이 퍼져 나가는 것처럼 자신이 만들어 낸 역장이 원래 공간을 잠식해 들어갔다.
“응?”
상처기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특이한 기운이 자신들을 향해 밀려오는 광경이 확연하게 보였다. 마치 만조 때 밀물이 밀려오는 것 같았다.
그는 시선을 돌려 문도들을 보았다.
일대는 기검을 회수하는 중이고 이대는 생성해 놓은 상태이며 삼대와 사대는 대기 중이다.
“기검을 생성하라!”
그는 다급하게 명령을 내렸다.
그가 지금껏 순서대로 공격을 한 건 각 대에 휴식 시간을 주기 위해서였다. 기검을 만들어 내는 데 가장 필요한 건 휴식이다. 기검을 발출하면 일시적으로 내기의 허탈 상태가 온다. 허탈 시간은 반 각이다.
지금껏 시간차공격을 해 왔던 것은 그 허탈 시간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그랬던 그가 지금까지 지켜 왔던 규칙을 무시하고 모두에게 기검을 생성하라고 한 건 밀려드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순식간에 스무 자루의 기검이 생성됐다.
“일대, 발!”
상처기는 버럭 소리쳤다.
그러자 일대의 공격대원 다섯 명이 일제히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푸아악! 푸아악! 푸아악!
다섯 자루 기검이 일제히 금장생과 불여하를 향해 폭사됐다.
“이대 발!”
이어 곧바로 이대에 공격 명령을 내렸다. 두 번째 기검 다섯 자루가 금장생과 불여하를 향해 쏘아져 갔다. 상처기는 계속해서 공격 명령을 내렸다.
“저건?”
금장생을 노려보던 상처기의 눈이 커졌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금장생의 전신에서 가공할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방금 금장생이 만든 특이한 기운, 역장 때문은 절대 아니었다.
문득 금장생을 더 강하게 만들어 준 사람이 자신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밀려왔다.
“서, 설마…… 안 돼!”
상처기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그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
지금까지 금장생은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날아오는 기검을 쳐 내는 데 급급했다. 들쑥날쑥 날아오는 기검은 내공과 동작이 연속적으로 이어져야 위력이 나오는 무공 초식을 펼칠 수 없게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계속해서 무공을 펼치고 있으면 되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언제 있을지 모르는 공격을 막기 위해, 진력을 소모하는 것은 더 바보 같은 짓이다. 결국 금장생이 할 수 있는 건 공간을 뚫고 나오는 기검을 쳐 내는 것 한 가지뿐이었다. 그런데 상황이 변하여 기검이 쉬지 않고 날아온다.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금장생은 이곳에서 얻은 철검무적검해를 이어서 펼쳤다. 그러면서도 역장 생성을 멈추지 않았다.
쩌억! 쩌억! 쩌억!
무적검에 부딪친 기검에 금이 갔다.
“크윽!”
“으윽!”
“크으!”
기검에 금이 가자 검각 문도들은 신음을 내지르며 오만상을 찌푸렸다.
“계속 공격하라!”
상처기는 다시 고함을 내질렀다.
자신이 실수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현재대로 밀고 나가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튕겨져 나갔던 기검들이 다시 금장생과 불여하를 향해 쏘아져 갔다. 이십여 개의 기검은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금장생과 불여하의 전신을 노리고 파고들었다.
하지만 이미 전세는 금장생 쪽으로 기울었다. 금장생은 침착하게 철검무적검해상의 무공을 펼쳤다.
콰앙! 콰앙! 콰앙! 콰앙!
기검 표면에 난 금은 더욱 많아지고, 역장은 점점 범위를 넓혀 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금장생과 불여하 눈앞에 적의 모습이 나타났다.
금장생과 검각 문도와의 거리는 구 장에 불과했다.
하지만 상처기 일행은 원래부터 금장생과 불여하를 보고 있던 상태라 자신들이 노출됐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따라서 불여하가 활시위를 당겼을 때도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게다가 불여하에게는 화살도 없었다.
“쉬지 말고 공격…….”
퉁!
상처기가 다시 소리치는 순간 불여하가 시위를 놓았다.
슈아아악!
엄청난 기운이 허공을 갈랐다.
퍼억!
둔탁한 소성이 검각 문도 몸에서 터져 나왔다.
“크아아악!”
처절한 비명과 함께 남쪽에서 가부좌를 하고 있던 검각 문도가 뒤편으로 날렸다.
한 명이 죽임을 당하자 네 사람을 하나로 만들었던 균형이 급격히 무너지면서 내기가 역으로 흘렀다. 역류한 내기는 나머지 네 명의 몸속으로 폭풍처럼 흘러들어 갔고 외부로 흘러나오던 내기와 충돌했다. 충돌은 곧 내기 역류를 불러왔다.
“커억!”
“크윽!”
“컥!”
네 명의 문도는 비명과 함께 피를 토했다.
“커어어어어!”
“크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악!”
역류한 내기가 단전으로 파고들어 가면서 주화입마를 불러왔다. 문도들은 온몸을 배배 꼬며 비명을 내질렀다.
퉁!
슈아아아악!
두 번째 시위가 놓아지고 대기를 뚫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퍼억!
“아아아악!”
또다시 처절한 비명과 함께 검각 문도 한 명이 뒤편으로 날아갔다. 조금 전과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퉁퉁퉁! 퉁퉁퉁!
퍼억! 퍼억! 퍼억! 퍼억!
“크아악!”
“아아악!”
“으아악!”
검각 문도들은 처절한 비명과 함께 꾸역꾸역 피를 토했다.
“이럴 수가?”
상처기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불여하의 궁에는 분명 화살이 없었다. 그런데 가랑잎처럼 날아가는 문도의 몸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다.
“설마 기, 기시氣矢?”
실체 없이 쏠 수 있는 화살은 자신이 알기론 내기를 유형화해서 쏘는 기시뿐이었다.
“너희들만 내기로 만든 무기를 사용하라는 법은 없잖아.”
불여하는 나직하게 말했다.
“우, 우리가 보인다는 거냐?”
상처기는 믿어지지가 않았다. 자신이 아는 한 검총파천쇄옥진은 최고의 진식이다. 아무나 파훼할 수 있는 그저 그런 진식이었다면, 문주가 모든 걸 걸고 찾아 헤맸을 리가 없다. 문주는 검총파천쇄옥진을 구축하면서 더 이상 외세의 침입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랬던 진식이 허무하게 뚫려 버린 것이다.
퍽! 퍽퍽! 퍽퍽퍽!
“크아악!”
“아악!”
“으아악!”
비명은 쉬지 않고 비어져 나왔다. 기검을 만드는 데 온 힘과 정신을 쏟아 넣고 있던 검각 문도들은 화살을 방어할 여력이 없었다.
“대원들은 진형을 풀어라!”
오십 명가량이 죽임을 당했을 때 상처기는 기검으로 상대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한 명이라면 기검으로 공격을 해서 끝장을 봤을지도 모르지만 상대는 두 명이다. 더구나 한 명은 이편에서 날린 기검을 완벽하게 막아 내고 남은 한 명은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활을 쏘고 있다.
기검을 생성해 내느라 움직이지 못하는 문도는 화살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다.
앉아서 전멸을 기다릴 수는 없었다.
자세를 푼 검각 문도들은 각자 무기를 뽑아 들고 몸을 날렸다. 어쩌면 금장생 일행이 두 명뿐이라 용기를 냈는지도 몰랐다.
퉁! 퉁퉁퉁! 퉁퉁!
불여하는 뒤로 물러나지 않고 그 자리에 선 채 시위를 당겼다.
퍽! 퍽퍽퍽! 퍽퍽!
그녀가 쏜 기시는 방어할 틈도 주지 않고 검각 문도들의 몸통으로 틀어박혔다.
“커억!”
“크윽!”
“아악!”
처절한 비명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차하!”
그 순간 금장생의 무적검이 허공을 가르기 시작했다. 금장생이 먼저 펼친 초식은 중관이었다.
퍼억! 퍼억! 퍼억! 퍼억!
금장생과 불여하를 향해 날아가던 자들이 장작처럼 쪼개졌다. 검각 문도들은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죽임을 당했다. 금장생은 다른 무공은 펼치지 않았다. 쉬지 않고 중관만 펼쳤다. 허공이 쩍쩍 갈라지고 그 안쪽에 있던 검각 문도들의 몸통도 덩달아 잘려 나갔다.
오른편에서 왼편에서 위에서 아래에서 달려오던 자들이 중관에 의해 죽었다.
퉁! 퉁퉁! 퉁퉁!
불여하 또한 쉬지 않고 시위를 놓았다.
기시가 파고들 때마다 검각 문도들은 처절한 비명과 함께 죽었다. 오 장 거리를 이동하면서 죽임을 당한 자의 수는 스물다섯 명이었다. 그리고 다시 삼 장을 이동할 때 열다섯 명이 죽었다.
남은 열 명은 금장생과 불여하 앞에 도착하여 공격을 하긴 했지만 옷자락 하나 잘라 내지 못했다.
공격을 실패한 그들에게는 죽음이라는 응징이 내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