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456화 (456/524)

황금가 (456)

“그런데 들어가는 문이…… 여기다.”

전각을 돌아가며 보던 무혼이 한곳에 멈춰 섰다. 그가 멈춰 선 면 한가운데에는 문門이라는 글자가 음각돼 있었다. 문 왼편에는 구멍 두 개가 뚫려 있었다. 무혼은 문 왼편에 나 있는 구멍에 손가락 두 개를 끼우고 당겼다.

그릉!

나직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문뿐만 아니라 칠검전을 만든 재질은 모두 쇠였다.

“들어가자.”

두 사람은 안으로 들어갔다. 볼품없던 외부와 달리 내부는 볼만했다. 천장에는 야명주도 박혀 있고 벽에는 상당히 공을 들인 조각도 돼 있었다.

건물 외벽을 따라 복도가 만들어져 있었다.

복도를 따라 돌자 문이 나왔다. 금장생은 문을 밀어 보았다. 문은 아무런 저항 없이 쉽게 열렸다.

“흠!”

내부를 보던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방형으로 가로세로는 각각 다섯 자고 높이는 일곱 자였다.

“발자국과 장인이 찍혀 있네?”

안쪽을 살펴본 무혼이 말했다.

“손바닥과 발자국을 정확하게 찍어야 검천무적마해가 나타날 겁니다.”

“자신 있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도 크게 문제 될 것도 없는데요, 뭐.”

“맞아. 장생 너는 이미 철검무적검해를 얻었지.”

무혼은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을 살면서 느낀 것 중의 하나가 부모보다 나은 자식 없고 형만 한 아우 없다는 것이다. 물론 청출어람이란 말이 있긴 하지만, 그건 극히 일부분으로 아주 예외적인 경우다.

철검무적검해는 검천무적마해의 원본이다.

검천무적마해가 뛰어나다고 해도 철검무적검해와 비슷한 정도지 더 뛰어나진 않을 것이다. 이미 철검무적검해를 익힌 금장생 입장에서는 검천무적마해를 찾지 못해도 상관없다.

“제가 들어가면 문을 닫아 주세요.”

“알았다.”

무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금장생이 들어가자 문을 닫아 주었다.

금장생은 내부를 살폈다.

천장의 야명주가 바닥을 비추고 있었다.

“저기가 시작점이네.”

한가운데 있는 발자국 두 개로 시선을 주었다. 어깨너비로 벌어진 발자국이었다. 그곳으로 가서 두 발로 딛고 섰다.

전면을 응시하며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일곱 개의 동작을 그렸다. 일번부터 칠번까지 연속해서 펼치자 진기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상태에서도 계속해서 머릿속으로 일곱 동작을 펼쳤다. 어느 순간 단전이 활짝 열리고 진기가 쏟아져 나왔다. 금장생은 손과 발에 힘이 실리는 걸 느꼈다.

휙!

그는 하늘을 떠받치듯 양팔을 강하게 밀어 올렸다. 손바닥을 통해 강한 기운이 빠져나갔다.

퍼억! 퍼억!

둔탁한 소리가 천장에서 들려왔다.

금장생은 곧바로 두 번째 동작을 취했다. 오른팔이 하늘로 향하면서 자연스럽게 발이 움직였다. 금장생은 동작에 제약을 두지 않았다. 팔 동작은 철상이 취한 모습을 그대로 따라 했지만 두 발은 몸을 따랐다. 발을 디딜 때도 강한 힘이 뻗어 나감을 느꼈다.

일곱 동작을 순서대로 하고 나서 다시 원래 자리에 섰다. 결과를 기다리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반 각 정도를 기다렸는데도 아무런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제대로 됐는데?”

금장생은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 손과 발을 통해 힘이 발출됐다. 만일 잘못된 동작과 보법이었다면 힘이 발출되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철컥! 철컥! 철컥! 철컥!

한 번을 더 반복하려고 하는데 뭔가 풀리는 소리가 네 방향에서 들려왔다. 잠겨 있던 자물쇠가 풀리는 소리가 같았다.

스르릉!

이어 네 벽에서 석판처럼 보이는 물체가 내려왔다. 석판에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금장생은 전면 석판을 먼저 보았다.

강압적인 힘으로 뭔가를 찾아내려 했다면 검천무적마해는 가루로 변했을 것이다.

석판에 적힌 글이 검천무적마해라는 증거였다.

금장생은 가부좌를 하고 천천히 검천무적마해를 읽었다.

세 면은 검천무적마해에 대한 설명이고 한 면은 철검무적검해에 대한 설명이었다.

검천무적마해를 다 암기한 후 철검무적검해에 대한 내용을 읽었다.

사부는 비급 한 권과 무적검을 발견했다. 그런데 비급에는 글이 없었다. 일곱 장의 그림이 전부였다.

볼품없는 무기에 볼품없는 그림.

사부의 표현은 그랬다.

하지만 그것은 철검자 나욱이 남긴 철검무적검해가 분명했다. 사부는 그걸 연구해서 결국엔 검천무적마해를 창안해 내셨다. 그 와중에 볼품없던 무적검이 어디론가 사라졌는데 사부는 걱정하지 않았다. 대장장이였던 당신은 무적검보다 백배는 더 좋은 검을 만들어 낼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분은 무적검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아울러 무적검이 없으면 철검무적검해도, 철검무적검해를 바탕으로 창안한 검천무적마해도 절반의 위력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그분은 끝까지 무적검을 만들지 못했다. 무적검과 비슷한 검을 만들어 검천자란 별호를 얻은 게 다였다.

천하제일의 무공을 가졌으면서도 펼칠 무기가 없어서 천하제일인의 꿈을 접어야 했던 것이다.

우리 역시 다르지 않다. 평생을 무적검 제작에 매달렸지만 결국 실패했다.

우리가 철검무적검해의 동작을 그대로 따라 한 철상을 만들고 칠검전을 만들어 검천무적마해를 숨긴 건 더 이상 헛된 꿈을 좇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그렇다고 사부님의 무공과 철검무적검해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었다.

부디 무적검을 만들어 검천무적마해를 익힌 무인이 나오길 바라노라.

장문의 글을 남긴 사람은 칠검존의 첫째인 일검존 육서기였다.

금장생은 벽면을 향해 손을 쓸었다. 그러자 검천무적마해가 적힌 석판이 가루로 변했다. 석판을 모두 가루로 만든 금장생은 밖으로 나왔다.

“찾아냈어?”

복도에서 벽에 등을 대고 앉아 있던 무혼이 물었다.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정도야?”

“혈랑도법이 상대가 안 될 정도로 강합니다.”

“둘 중 나은 건 어떤 건데?”

“저보고 선택하라면 철검무적검해에 가산점을 주고 싶습니다.”

“원본이 낫다는 말이야?”

“네. 가르쳐 드릴까요?”

“그 볼품없는 검이 없으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거 아냐?”

“그렇긴 합니다.”

“그럼 익혀 봐야 머리만 복잡해지잖아.”

무혼은 싱긋 웃었다.

“이왕 안으로 들어왔는데 오늘 밤은 여기서 머물까요?”

“그러자고.”

무혼과 금장생은 각자 자리를 잡고 누웠다. 잠시 후 두 사람의 코에서 고른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두 사람이 잠에서 깬 건 다음 날 아침이었다.

칠검전에서 나온 두 사람은 멍한 얼굴로 전면을 응시했다.

“어젯밤에 생각해 봤는데 말입니다.”

금장생이 입을 열었다.

“뭘?”

“검각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가 어디일지 하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저 녀석이란 결론을 내렸습니다.”

금장생은 뒤편 건물을 가리켰다.

“칠검전?”

“네.”

“그래서?”

“아무리 이곳이 진식 안이라고 하지만 검각 문주는 칠검전을 주시하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더군요.”

“칠검전에 문제가 생기면 검총만상대진이란 이 진식을 해진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야?”

“네.”

“그렇게 배가 고파?”

“네?”

금장생은 놀란 얼굴로 무혼을 보았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게 배가 고파서가 아니었어?”

“맞습니다. 배가 고파서 그랬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여기가 그다지 나쁘지 않아.”

“어떤 면에서 나쁘지 않다는 겁니까?”

“이런저런 생활 소음도 없고, 대기의 변화도 거의 없으니까 뭔가에 집중하는 데 최고의 장소라는 거야.”

“무공을 익히는 이상적인 장소라는 건가요?”

“응.”

“일리가 있네요.”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깨달은 것도 있고, 좀 더 있다가 나갔으면 해.”

“우리가 굶어 죽기 전에 끝낼 거죠?”

“응.”

“알았습니다. 그럼 나도 무공 정리를 좀 해야겠습니다.”

금장생은 이번에 수습한 철검무적검해를 좀 더 완벽하게 익히기로 했다. 검천무적마해의 구결도 암기한 상태라 마음만 먹으면 익히는 건 문제가 아닌데 왠지 철검무적검해가 더 마음에 들었다.

가부좌를 한 채 철검무적검해의 각 동작을 떠올렸다.

“중관重貫이라 지으면 되겠네.”

금장생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철검무적검해의 일 초식 명칭이었다. 무거움은 모든 것을 가른다는 뜻이다. 이 초식은 천파天破, 삼 초식은 지멸地滅이라고 지었다. 천파는 야수황을 없앨 때 펼쳤던 그 초식이었다. 좌우로 팔을 뻗는 초식은 단횡斷橫이라 짓고 앞뒤로 손을 뻗어 내는 초식은 평평함을 자른다는 뜻으로 평절坪絶이라 지었다.

하늘과 땅, 하늘을 가리켰던 여섯 번째 초식은 빛을 무너뜨린다는 뜻의 붕광崩光이라 짓고 하늘과 땅, 땅을 가리켰던 일곱 번째 초식은 밝음이 사라진다는 뜻의 명멸明滅이라 지었다.

실전을 통해 만들어진 초식이라 각 초식에는 서열이 없었다. 일 초식이라고 해서 특별히 약하지도 않고 칠 초식이라고 해서 일 초식이나 이 초식, 삼 초식보다 강하지 않았다. 각 초식은 적절한 상황에서 최고의 위력을 발휘하게 돼 있었다.

물론 금장생은 어떤 것이 최적의 상황인지는 모른다. 실전을 통해 창안된 무공이라 싸우면서 최적의 상황을 찾아내는 수밖에 없다.

무공 정리를 끝낸 금장생은 한편으로 가 섰다. 박도를 자연스럽게 늘어뜨리고 호흡을 골랐다.

중관은 하늘부터 땅까지 일도에 잘라 거대한 구멍을 뚫는 무공이다. 수천수만 개의 구멍을 연결하여 공간을 잘라 내는 무공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베기보다는 잘려 나가는 부분의 길이가 훨씬 길다.

도강을 펼치지 않아도 도강과 비슷한 효과를 내는 게 그 때문이다.

중관을 펼치려고 하자 머릿속으로 철검무적검해 일곱 동작이 차례로 떠올랐다. 마치 여러 가지 동작이 순서대로 진행되는 것 같았다.

동작은 점점 빨리 이어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진기가 맹렬하게 일어났다. 진기는 혈도를 통해 이동하고 박도 안을 넘나들었다.

금장생은 오른발을 들어 올렸다. 그와 동시에 호흡을 멈추고 왼손으로 손잡이 아래를 쥐었다.

“타하!”

기합과 함께 오른발을 앞으로 내뻗으며 박도를 사선으로 내리그었다.

쩌어억!

공간이 사선으로 잘리는 광경이 금장생의 눈에도 선명하게 보였다.

왼발을 오른발 옆으로 가져가며 천파를 펼칠 준비를 했다. 천파는 찌르기 초식이었다. 찌르는 방향은 다양하다. 철상처럼 하늘을 향해 찔러도 되고 전면을 찔러도 된다. 왼편과 오른편 또는 뒤편을 찔러도 된다. 천파는 모든 곳을 다 찌르는 무공이다.

“차하!”

박도가 하늘을 힘차게 찔렀다.

푸아악!

박도 끝이 검게 물드는 것 같더니 허공에 검은 구멍이 새겨났다. 길이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깊었다. 허공에 뚫렸던 구멍이 스러지기도 전에 금장생은 왼발을 앞으로 당겼다.

다시 오른발을 앞으로 내밀며 박도를 역수로 쥐었다. 강한 기운이 박도로 모여들었다.

“타하!”

강한 기합과 함께 상체를 숙이며 박도를 땅속으로 박아 넣었다. 박도는 절반가량 박혔다. 지멸 초식이었다.

푸아악! 푸아악! 푸아악! 푸아악!

고래가 물을 뿜어내는 것처럼 흙더미와 함께 날카로운 기운 수십 개가 허공으로 솟구쳤다. 그것들이 솟구치는 높이는 오 장에 달했다. 금장생은 튕기듯 일어나면서 박도를 횡으로 쓸었다.

전방을 상하로 가르는 단횡이었다.

거대한 대왕조개가 입을 쩍 벌리는 것처럼 금장생 전방 공간이 위아래로 잘렸다. 이어 앞과 뒤편 공간이 위쪽과 아래쪽으로 분리됐다. 다섯 번째 초식은 평절이었다. 여섯 번째 초식인 붕광과 명멸은 위에서 공격해 오는 적과 아래쪽 적을 동시에 공격하는 쾌검술이었다.

일곱 초식을 모두 펼친 금장생은 박도를 내리며 처음 자세로 돌아갔다.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미진한 듯한 생각이 들었다.

“그게 전부가 아니라서 그래.”

뒤에서 무혼의 목소리가 들렸다.

“전부가 아니라는 건 무슨 뜻입니까?”

“내가 보기에 네가 펼친 그 무공은 난전에서 적을 없애기 위해 만들어진 것 같아. 난전에서는 하나보다는 두 개, 두 개보다는 세 개, 즉 많이 꺼내 놓을수록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거든.”

“아!”

금장생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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