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455화 (455/524)

황금가 (455)

철검무적검해

우상이 검집을 버리자 방낙인도 검집을 버렸다. 방낙인은 무혼 앞으로 갔다.

“우린 조금 있다가 싸울 거야.”

무혼이 방낙인을 보며 말했다.

“지금 안 싸운다는 거냐?”

방낙인이 물었다.

“그게 더 편해.”

“뭐가 편하다는 거냐?”

“저 둘이 싸우면 결국엔 한 명만 남게 되잖아. 그자가 누구이건 간에, 승리한 쪽은 두 명이 되고 패한 쪽은 한 명이 되니까 두 번째 싸움은 쉽게 끝날 수밖에 없잖아.”

“저 둘보다 우리 승부가 먼저 끝나면 그 반대 상황이 될 수도 있다.”

“네가 날 이길 수 있다는 말처럼 들리는데, 맞아?”

무혼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물론이다, 놈!”

방낙인은 무혼을 향해 몸을 날렸다.

“차하!”

바로 그 순간 우상이 금장생을 향해 검을 내던졌다. 실전 부족으로 패한 각선을 보자 접근전보다는 원거리 공격이 낫다는 판단을 했고, 자신이 아는 원거리 공격은 이기어검술뿐이었다.

그가 내던진 검은 찰나의 순간에 공간을 건너뛰고 금장생의 심장으로 파고들었다.

스윽!

우상의 검이 막 금장생의 피부를 뚫고 들어가려는 순간 박도의 넓은 면이 나타났다.

차앙!

우상의 검이 튕겨져 나갔다. 십 장을 날아가던 우상의 검이 허공에 우뚝 멈췄다.

“타하!”

우상은 기합과 함께 오른팔을 휘둘렀다.

푸아악!

검이 다시 공간을 단축했다. 십여 장 거리를 건너뛰는 건 눈 깜짝할 사이였다. 조금 전에 십여 장 밖에 있던 우상의 검이 어느새 금장생의 뒷목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다르지 않았다. 금장생이 쥔 박도는 뒷목으로 향했고 우상의 검을 튕겨 냈다. 그 후로도 우상은 십여 차례 더 공격을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금장생은 자기 몸 바로 앞에서 우상의 검을 쳐 냈다.

“네 동료의 무공이 별로인 것 같아.”

무혼은 방낙인을 보며 이죽댔다.

“네놈의 동료가 고전하고 있는 건 안 보이는 모양이지?”

“그래도 모두 쳐 내고 있잖아.”

무혼은 다시 십만마도법의 초식 두 개를 합쳐 연거푸 펼쳤다. 그의 혼천에서 엄청난 기운이 쏟아져 나와 방낙인을 덮쳤다.

칼날보다 더 날카롭고 차가운 바람이 불고, 용암보다 더 뜨거운 기운이 몰아쳤다. 숨조차 쉬기 힘들 정도로 강한 압력이 방낙인의 온몸을 짓눌렀고, 허무한 기운은 피할 공간조차 주지 않았다.

방낙인은 가까스로 무혼의 공격을 막아 냈다.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방낙인은 금세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 방낙인은 우상을 슬쩍 보았다. 우상이 싸움을 빨리 끝내고 자신을 조금만 도와준다면 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응?’

방낙인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우상은 쉬지 않고 이기어검술을 펼쳐 공격하고 있다. 상대는 이기어검술을 방어하는 데 급급하다. 백분의 일 초, 아니 천분의 일 초만 늦어도 몸에 커다란 구멍이 뚫릴 테고, 그 구멍은 곧바로 죽음으로 이어진다. 우상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이다.

그런데 우상의 숨결이 더 거친 것처럼 보였다.

카앙!

무혼의 검을 힘껏 쳐 내고 크게 한 걸음 물러난 후 우상의 상태를 좀 더 자세히 살폈다.

“어떻게…….”

방낙인의 눈이 커졌다.

조금 전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숨결은 파상적인 공격을 퍼붓고 있는 우상이 더 거칠었다. 놀랍게도 이기어검술을 펼치는 우상이 궁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네 동료의 실수는 팔왕을 너무 몰랐다는 거야.”

무혼은 나직하게 말하고는 멈췄던 공격을 다시 시작했다.

“헉!”

방낙인은 신음과 함께 검을 휘둘렀다.

금장생을 너무 몰랐다는 무혼의 말을 가장 크게 절감하고 있는 자는 방낙인이 아니라 당사자인 심검마 우상이었다. 우상은 땅을 치고 후회하는 중이었다. 처음부터 이기어검술로 공격하는 게 아니었다.

일단 접근전을 하다가 결정적인 순간 이기어검술을 펼쳐 끝장을 봤어야 했다. 그런데 실전 부족을 이유로 처음부터 이기어검술을 펼쳤다.

간신히 막아 내는 걸 보고 얼마 가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더욱 강하게 밀어붙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힘들어하는 모습이 확연하게 보였다. 상대가 힘들어하면 이편이 더 힘을 내게 되는 건 당연한 이치다. 굳이 힘을 내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솟는다. 그래서 쉬지 않고 이기어검술을 펼쳤다. 보통은 한 식경 정도 펼치면 한계에 도달하는데 이상하게도 오늘은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몸에 이상이 생긴 걸 감지한 건 이기어검술을 펼치기 시작한 지 반 시진 후였다.

단전에서 미미하게 통증이 느껴졌다. 얼른 상대를 보았다. 상대는 거의 쓰러지기 직전처럼 보였다.

그래서 통증을 무시하고 더 강하게 밀어붙였다. 그때부터 또 반 시진이 지났다. 적은 반 시진 전과 같은 자세로 이기어검술로 던진 검을 막아 내고 있는데 자신은 점점 힘들어졌다. 단전은 곧 찢어질 것처럼 아프고 입가로 축축한 뭔가가 흘러내리고 있다.

내상으로 인해 역류한 피일 것이다.

“차하!”

입을 벌리고 기합을 내질렀다.

붉은 액체가 튀어 나가는 것이 눈에 보였다.

곧 검이 날아가는 광경도 보였다. 처음보다 훨씬 느려져 검 모양을 육안으로 파악할 수 있을 정도다.

금장생은 박도를 앞으로 내밀었다.

박도 끝이 우상의 검 옆에 도착한 순간 손목을 돌렸다.

차앙!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우상의 검이 박도에 걸려 빙글빙글 돌았다.

“커억!”

우상은 단전을 틀어쥐었다.

내부를 쥐어짜는 듯한 고통이 온몸을 강타했다. 비명을 내지른 사람은 우상뿐만이 아니었다.

무혼과 싸우고 있던 방낙인 역시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검을 움켜쥔 채 물러나고 있는 그의 왼편에는 팔이 보이지 않았다. 팔과 소매가 잘려 나가고 그 자리에서 피가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지혈을 하지 않으면 출혈 과다로 죽을 게 확실한 상황인데도 방낙인은 지혈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무혼의 파상적인 공격 때문이었다.

무혼은 방낙인이 쉴 틈을 주지 않았다. 바싹 붙은 상태에서 혼천을 휘둘렀다. 방낙인이 지혈을 한다고 방어를 멈추는 순간 목이 잘릴 판이었다.

“이제 끝내자.”

“끝내야 할 것 같습니다.”

무혼과 금장생은 같은 의미의 말을 상대에게 했다. 금장생은 빙빙 돌리던 검을 우상을 향해 뿌렸다. 그러자 우상의 검이 빛살처럼 쏘아졌다.

“이대로 당할 수는 없어.”

우상은 검과 끊어졌던 진기를 잇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이기어검술을 펼치기 위해서는 검에 주입한 기와 자신의 기가 서로 이어져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살아 있는 것처럼 날아다닐 수가 있다.

그런데 조금 전 금장생이 박도로 검을 잡아채 빙빙 돌리는 바람에 연결의 구 할 이상이 끊어지고 말았다. 우상이 하려고 하는 건 끊어진 진기의 연결이었다.

“됐다.”

단전을 쥐어짜자 약간의 진기가 모여들었고 그 진기는 검과 끊어졌던 기를 이어 주었다. 우상을 향해 날아가던 검이 허공에서 우뚝 멈췄다.

우상의 입가에 희열의 빛이 떠올랐다.

푸욱!

금장생을 바라보는 순간 섬뜩한 뭔가가 단전으로 파고들었다.

“커억!”

우상의 입이 쩍 벌어지고 피가 울컥 넘어왔다.

털썩!

우상은 그 자리에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금장생이 가지고 있던 박도가 손잡이만 남기고 깊숙이 박혀 있었다. 박도가 파고들면서 헤집어 놓은 듯 단전은 갈가리 찢어진 상태였다.

“크아악!”

근처에서 처절한 비명이 들렸다.

우상은 고개를 돌렸다. 비명을 내지른 자는 둘째 방낙인이었다. 방낙인의 머리는 하늘 높이 솟구쳤다.

우연이었을까?

방향 잃고 솟구치던 방낙인의 눈과 우상의 시선이 마주쳤다. 방낙인은 눈을 뜬 상태였다.

방낙인의 눈동자는 ‘우리가 감옥에 갇힌 것도 여기서 죽임을 당하는 것도 모두 대형 때문이오.’라고 하는 것 같았다.

‘대형이 수연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아니 사랑했다고 해도 모른 척했더라면 우린 검각의 최강 고수로 최고의 삶을 살았을 거요. 이렇게 인생 패배자의 삶을 살다가 거지 같은 곳에서 죽는 게 다 대형 때문이란 말이오.’

“아냐. 난 바로잡고 싶었을 뿐이야. 잘못된 자가 부정적인 방법으로 성공하는 걸 바로잡고 싶었을 뿐이라고.”

우상은 발작적으로 소리쳤다.

“정말로 바로잡고 싶었다면 직접 손을 썼어야 합니다. 곪은 종기는 칼로 째고 고름을 짜내야 낫습니다. 종기는 놔두고 주변을 아무리 깨끗하게 해도 절대 낫지 않는 법입니다.”

우상은 고개를 돌렸다.

금장생이 바로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내가 문주를 없앴어야 했다는 거냐?”

“나는 당신네들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모릅니다. 다만 조금 전 당신의 말과 칠십 년 동안 감옥에 갇혀 있었다는 사실에 약간의 추론을 더해 말한 것뿐입니다.”

금장생은 우상의 단전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슥!

손잡이까지 박혀 있던 박도가 빠져나갔다.

“참! 이 녀석이 당신은 물론이고 검각 문도들이 지난 오백 년 동안 만들고 싶어 했던 그 녀석입니다.”

“그게 무적검이란 말이냐?”

“네. 그리고 철검무적검해도 내가 익혔습니다.”

“그건…….”

“내가 당신의 검을 막아 낼 때 취한 동작이 눈에 익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까?”

“그러고 보니…….”

우상은 조금 전 상황을 떠올렸다. 이기어검술로 던진 검을 막아 내는 동작이 어디선가 봤다는 생각을 했다.

“철상이었군.”

그제야 떠올랐다. 그 모든 것들이 철상이 취하던 동작이었다.

“맞습니다. 철상의 동작은 철검무적검해의 초식이었습니다.”

“큭!”

우상은 허탈하게 웃었다.

검각 문도가 아닌 외부인이, 그것도 침략자가 검각의 보물을 손에 넣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검천무적마해는 손대지 않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검천무적마해가 어디 있는지 아느냐?”

“칠검전으로 들어가서 철상을 통해 익힌 철검무적검해의 각 초식을 순서대로 펼치면 검천무적마해가 나타날 것 같은데, 대협 생각은 어떻습니까.”

“어떤 순서를 말하는 거냐?”

“철상의 이마에 적힌 숫자가 바로 순섭니다.”

“큭큭큭! 흐흐흐! 하하하!”

우상은 웃음을 터뜨렸다.

죽음 직전에 검각 최고의 비밀을 알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오백 년 비밀을.

“빌어먹을!”

털썩!

우상의 신형이 앞으로 처박혔다.

“무슨 심보냐?”

무혼이 금장생 옆으로 다가가며 물었다.

“뭐가요?”

“죽어 가는 자에게 검각의 비밀을 풀었다고 자랑질을 했잖아.”

“그렇게 보였습니까?”

“아냐?”

“맞습니다.”

금장생은 고갤ㄹ 끄덕였다.

“맞다고?”

무혼은 황당한 얼굴로 금장생을 보았다.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했지만, 아닐 거라는 믿음이 더 강했다. 자신이 아는 금장생은 그렇게 나쁜 사람이 절대 아니었다. 그런데 일부러 자랑질을 했단다.

지금까지 자신이 알던 그 금장생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뒤끝 작렬하는 사람입니다. 특히 먹는 것에 대해서는 예민하고요.”

“그러니까…….”

“만일 칠검마가 없었다면, 아니 설사 있다고 해도 검각 문주 말을 듣지 않았다면 우리가 이런 진식 안에서 열흘을 보낼 필요가 없었겠지요. 우리가 이곳에 갇혀서 열흘을 보내게 된 건 전적으로 이자들 책임입니다. 그래서…….”

“복수를 한 거라고?”

“네.”

“쫀쫀한 자식.”

무혼은 피식 웃었다.

“검천무적마해는 어떤 무공인지 궁금한데 칠검전이나 찾아보도록 하죠.”

금장생은 앞장서 걸었다.

“그럴까?”

무혼은 금장생을 따랐다.

두 사람은 주위를 살피며 걸었다. 하지만 칠검전은 나오지 않았다. 전각을 찾아 헤매다 보니 어느새 주위가 어둑어둑해졌다. 검총만상대진에서 두 번째 밤이 찾아오고 있었다.

“저기 전각이 있는 것 같은데?”

무혼이 왼편을 가리켰다.

금장생은 고개를 돌렸다. 무혼의 말대로 멀지 않은 곳에 거무튀튀한 건물이 있었다.

둘은 그곳을 향해 갔다.

건물은 생각보다 작고 볼품없었다. 이런 곳에 검각 오백 년 비밀이 묻혀 있다는 사실이 의아할 정도였다.

“이 녀석이 칠검전 맞는 것 같습니다.”

건물을 살피던 금장생이 말했다.

“건물의 면이 일곱 개라서?”

“지금까지 본 건물 중에 면이 일곱 개인 건 처음입니다.”

“내 생각도 그래.”

무혼이 고개를 끄덕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