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454)
파앗! 파앗! 파앗!
야수황의 전신에서 피가 솟구쳤다. 마치 구멍이 뚫린 양가죽 물통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그게 무슨 소리냐?”
야수황은 자신이 가망 없다는 걸 알았다. 상처는 외부에만 나 있는 게 아니었다. 외부에 상처를 낸 검기는 내부까지 파고들었고, 내부도 갈가리 찢겨 나간 상태다. 죽은 자도 살린다는 영약이 있다고 해도 살아나는 건 불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몸에 거미줄 같은 검상을 남긴 무공의 정체를 알고 싶었다.
“마지막에 당신에게 펼친 무공은 철상이 취했던 동작으로 만들어 낸 겁니다.”
“그럼 손을 뻗어 올린 그 동작이?”
“이二가 적힌 철상의 동작입니다.”
“어떻게 그 동작이…….”
야수황은 믿어지지가 않았다. 자신은 물론이고 모든 검각 문도들이 오백 년 동안 보았고 따라 했던 동작이다. 하지만 단 한 명도 무공이라는 걸 밝혀내지 못했다.
“철상이 취하는 동작은 무공이면서 진기의 흐름을 나타내는 내공심법입니다.”
털썩!
야수황은 더 이상 서 있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죽어 가는 순간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금장생을 보았다. 그의 눈에는 궁금증을 안고 죽을 수 없다는 결의로 가득했다.
“세 가지가 합쳐져야 검법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첫째는 철상의 동작이고 둘째는 숨겨진 보법, 그리고 셋째는 이 무적검입니다.”
“보법을 찾아냈다는 거냐?”
“찾아내고 말고가 없습니다. 팔 동작을 따라 두 다리를 자연스럽게 움직이면 그게 보법입니다. 두 가지를 합쳐 머릿속으로 계속해서 펼치면 진기가 각 혈도를 따라 움직이면서 힘을 만들어 내게 됩니다. 그 힘을 이 무적검을 통해 쏟아 내면, 그게 바로 초식이 되는 거고요.”
“쿡쿡쿡!”
야수황은 키들키들 웃었다.
듣고 보니 너무 간단하다. 그런데 지난 오백 년 동안 누구도 비밀을 풀어내지 못한 것이다.
“너무 억울해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내가 익힌 건 검각 사조인 검천자가 창안한 검천무적마해가 아니라 철검자의 철검무적검해니까요.”
“그걸 어떻게…….”
털썩!
야수황의 신형이 앞으로 처박혔다.
숨이 끊어진 것이다.
금장생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몸을 돌렸다. 뒤편에서 구경하고 있던 무혼이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고 있었다.
“나도 궁금해.”
무혼은 금장생 앞으로 가며 물었다.
“뭐가요?”
“네가 방금 펼친 무공이 철검무적검해라고 단언하는 이유가 궁금하다고.”
“그건 펼치는 방식 때문입니다.”
“펼치는 방식?”
“만일 무 형이 내공심법을 창안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글로 남기겠지.”
“맞습니다. 내기가 혈도를 따라 어떻게 이동하는지를 세세하게 기록해서 남기겠죠?”
“그렇겠지.”
“검천자 육성우 대협도 무 형의 방식에서 벗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그는 글로 내공심법을 남겼을 겁니다. 그런데 이곳의 철상은 동작을 연결하는 것만으로 완벽한 내공심법이 된 겁니다.”
“그러니까 네 말은 수많은 실전을 통해 몸속에 내기가 흐르는 길이 생겨났다는 거냐?”
“생각보다 이해가 빠르네요?”
“내가 살았던 곳에서 유명한 검법은 모두 그런 식으로 만들어지거든.”
“무공 구결이 아닌, 실전이 우선이란 말이군요.”
“맞아.”
“이 무공도 마찬가집니다. 무공을 창안한 사람은 수많은 실전을 통해 생겨난 내기의 길을 그대로 내공심법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머릿속으로 동작을 반복하는 것만으로도 내기가 일어나게 한 거죠.”
“실전의 고수가 만들었으니까, 철검무적검해를 바탕으로 검천무적마해를 창안한 검천자는 절대 될 수 없다는 거야?”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겠네. 그런데 왜 장생 네가 발견한 거지?”
“무슨 뜻입니까?”
“내가 발견한 건 생각보다 간단해. 이마에 새겨진 숫자를 순서로 생각한 사람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거지. 그럼 그 사람도 너와 같은 방법을 시도해 보지 않았을까 해서.”
금장생이 발견한 게 대단하긴 하지만 지난 오백 년 세월 동안 아무도 시도해 보지 않았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수백 명 중 한 명, 아니 수천 명 중에 한 명 정도는 같은 방법을 사용해 봤을 것이다. 그래서 하는 말이었다.
“설사 나와 같은 방법을 사용했다고 해도 위력은 거의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
“왜?”
“이 녀석 때문입니다.”
금장생은 허리에 걸려 있는 박도를 툭 쳤다.
“박도가 왜?”
“철검무적검해는 철저하게 실전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말은 앞서 했습니다. 실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뭐겠습니다.”
“무기잖아.”
“맞습니다. 바로 이 무깁니다. 철검자 나욱은 이 박도를 들고 오랜 세월 싸움을 했고, 그러다 보니 박도는 몸의 일부가 돼 버린 겁니다.”
“일부가 됐다는 건 무공을 펼칠 때 보조재가 아니라는 거야?”
“네. 보통 무인은 무기에 내기를 밀어 넣지만 나욱은 철검 자체가 자신의 팔이었습니다. 우리보다 두 자가 더 긴 팔을 갖게 된 겁니다. 자, 이제 나욱의 팔 길이를 다섯 자라고 확정하고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팔이 길어지거나 짧아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불구가 된다는 거구나.”
“맞습니다. 그는 불구가 되고, 정상적인 몸에 맞춰져 있던 무공을 불구의 몸으로 펼치면 제대로 된 무공이 나올 리가 없겠지요.”
“무슨 말인지 알겠다.”
무혼은 고개를 끄덕였다.
철상과 다리, 박도가 있어야 완전한 무공을 펼칠 수 있다고 하였던 금장생의 말이 이제야 이해가 됐다.
“그만 가 볼까요?”
“그러자.”
두 사람은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먹을 거 있나요?”
걷다가 금장생이 물었다.
“먹을 거?”
“가방이 안 열리는 거 모르셨습니까?”
“알아.”
“그런데 걱정이 안 돼요?”
“바타르가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그분은 음식을 가지고 다닐까요?”
“안 먹어도 되는 녀석인데 가지고 다닐 리가 없잖아.”
“그럼?”
“네가 가지고 있는 가방이 원래 그 자식 거잖아.”
“열어 달라고 하면 된다는 거군요.”
“그렇지.”
“공짜로 열어 줄까요?”
“절대 안 열어 줄 거야.”
“그러면 어떻게 하죠?”
“지금 배고파?”
“약간요.”
“진짜 배가 고프면 방법은 그때 찾아보도록 하자.”
“그럴까요?”
“미리부터 걱정할 필요는 없잖아.”
“그렇긴 합니다만. 왠지 나중에 먹을 게 없다는 게 걱정이 돼서요.”
“원래 그렇게 철저하게 준비를 해?”
“장사를 하는 사람은 늘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야 하거든요.”
“후천적으로 길러진 거라는 거지?”
“네.”
“아무튼 지금은 방법이 없으니까 기다려 봐. 그런데 이 진식은 어떻게 해진하는 거지?”
“내가 알 리가 없잖습니까.”
“하긴. 니들은 알아?”
무혼은 전방을 보며 물었다. 그가 바라보는 곳에는 세 사람이 서 있었다. 심검마 우상과 천검마 방낙인, 환검마 각선이었다.
우상과 방낙인은 각선 대장간에 들렀다가 묵검마 야수황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세 사람의 눈초리가 꿈틀했다.
무혼의 반말에 기분이 상한 탓이었다.
“반말을 해도 될 만하니까 인상 쓸 것 없어. 그보다 조금 전 내가 말한 거 대답해 줄 사람 없어?”
“이 진식을 말하는 거냐?”
심검마 우상이 물었다.
“응.”
무혼은 고개를 끄덕였다.
“검총만상대진은 열흘이 지나면 자동으로 해진된다.”
우상이 말했다.
“열흘이라……. 우리가 여기서 며칠 보냈지?”
무혼은 금장생을 돌아보며 물었다.
“이제 하루 지난 걸로 압니다.”
“앞으로도 아흐레를 더 여기 있어야 한다는 거네?”
“그 전에 나가는 법을 저들은 알지도 모르잖아요.”
금장생은 턱으로 우상 일행을 가리켰다.
“알고 있다.”
우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나가는데?”
무혼이 물었다.
“우리가 내보내 줄 것이다.”
“너희들이?”
“영혼은 진식의 영향을 받지 않는 걸로 알고 있다.”
“…….”
무혼은 우상을 빤히 바라보았다. 한동안 우상을 보다가 물었다.
“그렇게 죽고 싶어?”
“우린 한 명이 아니고 셋이다.”
우상은 무혼과 금장생이 합공을 해서 자기 동생들을 해쳤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면 동생들이 당할 리가 없다고 확신했다. 그는 그만큼 자신들의 무공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다.
“혹시 우리 둘이 합공해서 네 친구들을 없앴다고 생각하는 거야?”
“아니냐?”
“어?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이네.”
무혼은 피식 웃었다.
“음!”
우상은 신음을 내뱉었다. 어떤 사람의 행동이나 말투를 보면 거짓말을 하는지 사실을 말하는지 바로 알 수 있다. 그런데 무혼의 말투나 행동에서는 거짓말한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저들은 동생들을 없앨 때, 일대일 대결을 한 게 분명했다.
상대가 그렇게 싸웠다고 해서 자신도 같은 방법으로 싸워야 할 이유가 없었다. 수가 많은 것도 자신이 가지는 이점 중의 하나다. 목숨이 걸린 싸움인데 굳이 이점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가 합공할까 봐 거짓말을 하는구나.”
그렇다고 ‘어, 그래. 정당하게 싸워서 이겼구나.’라고 할 수는 없었다. 합공을 할 명분을 얻으려면 상대가 합공하지 않았다고 해도 합공한 걸로 밀어붙여야 한다.
“댁들이 뭐가 무서워서 거짓말을 한단 말입니까. 우린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세 분이 합공해도 상관없으니까 마음의 부담을 갖지 않아도 됩니다. 그리고 균형은 바로 맞춰질 겁니다.”
금장생이 우상을 보며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 필요 없습니다, 대형. 대화는 놈들을 잡고 나서 해도 늦지 않습니다.”
파앗!
환검마 각선이 무혼과 금장생을 향해 쏘아져 갔다. 각선의 신법은 가공했다. 그는 한순간에 오 장을 건너뛰었다. 그런데 신법이 전부가 아니었다. 무혼과 금장생이 서 있는 곳을 삼 장 남겨 둔 지점에서 모습이 사라졌다. 그를 환검마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이 은신술 때문이었다.
파앗!
파앗!
무혼과 금장생은 바닥을 차 뒤편으로 물러났다.
갑자기 사라진 자와 정면대결을 펼칠 수는 없었다. 금장생 또한 물러서는 순간 은신술을 펼쳤다.
“억!”
금장생이 은신술로 모습을 감추자 각선은 자기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었다.
번쩍!
바로 그때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거무튀튀한 광채와 함께 박도가 나타났다. 금장생의 모습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모습을 드러낸 박도는 순식간에 공간을 단축했다.
푸욱!
뭔가로 파고들어 가는 소리가 들려오고 박도는 손잡이만 남기고 날이 사라졌다. 곧이어 환검마 각선의 모습이 드러났다. 금장생이 서 있을 법한 장소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엔 경악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금장생이 그토록 완벽한 은신술을 펼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가 당한 가장 큰 이유는 기척을 감춘 금장생은 놓치고, 자신은 신음을 내뱉어 위치를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검을 던져 낸 검법은 암기술이 아니라 이기어검술이었다. 일반 암기처럼 던졌다면 얼마든지 피하거나 쳐 냈을 것이다. 그런데 금장생은 그 짧은 순간에 이기어검술을 펼친 것이다.
더욱 각선을 놀라게 한 건 금장생이 이기어검술마저도 강약 조절이 가능한 초극 강자라는 점이었다.
모습을 드러낸 금장생은 각선의 가슴을 향해 오른손을 내밀었다.
슥!
검이 뽑혀 나와 금장생의 손으로 빨려 들어갔다.
“각 제.”
우상은 굳은 얼굴로 각선을 불렀다.
“놈은 강합니다.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털썩!
각선이 그 자리에 처박혔다.
“내가 말한 대로 균형이 맞춰졌군요.”
금장생은 우상을 보며 싱긋 웃었다.
“…….”
우상은 아무 말도 못 했다. 설마 각선이 이렇게 빨리 당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각선이 당한 건 상대가 절대적으로 강해서가 아니었다.
실전의 부족이 가져온 패배였다.
슈캉!
우상은 검을 뽑았다. 그리고 검집을 멀리 던져 버렸다. 앞에 있는 두 명은 다음을 기약하고 싸울 수 있는 그런 자들이 아니었다. 목숨을 걸어도 승리를 장담하기 힘든 강자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