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453)
휙!
천검마 방낙인이 대장간 안으로 들어섰다.
안에서는 칠검마의 대형 심검마 우상이 차를 마시고 있었다. 우상은 방낙인의 얼굴을 보았다.
“무슨 일인가?”
그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방낙인의 얼굴에 다급한 기색이 역력했다.
“당했습니다.”
“누가 당했다는 건가?”
“사 제, 유 제, 전 제가 당했습니다.”
“……그자들이 그렇게 강자였단 말인가?”
“그런 것 같습니다.”
“다른 형제들 상황은 어떤가?”
“그들의 소식을 알자마자 곧바로 여기로 왔습니다.”
“가세.”
우상은 검 한 자루를 집어 들더니 대장간을 나섰다. 두 사람이 먼저 길을 잡은 곳은 환검마 각선의 대장간이었다.
* * *
“누가 팔왕이냐?”
야수황은 무혼과 금장생을 쏘아보며 물었다. 그의 손에는 보통 검보다 한 자가량 긴 대검 한 자루가 들려 있었다. 대검은 먹물에 담갔다가 꺼내 놓은 것처럼 검었다.
“납니다.”
금장생은 한 걸음 앞으로 나가며 말했다.
금장생이 나서자 무혼은 뒤편으로 물러났다. 오 장을 물러나던 그의 눈에 철상 하나가 눈에 띄었다.
“장생.”
무혼은 금장생을 불렀다.
“네.”
금장생은 무혼을 돌아보았다.
“저기 철상이 있다.”
무혼은 철상을 가리켰다.
“그래요?”
금장생은 무혼이 가리킨 곳을 보았다. 그는 철상을 바라보다가 야수황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저 철상을 좀 보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금장생은 정중하게 물었다.
“…….”
야수황은 어이가 없었다. 검을 들었고 살기를 흘렸으니까 이편의 의도를 명백하게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런데도 마치 아는 사람과 이야기를 하다가 잠깐 다녀오기 위해 양해를 구하는 얼굴이다.
정신 상태가 어떻게 된 녀석인 것 같았다.
“철상은 왜 보려는 거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문을 한 건 철상의 어떤 점을 보고 싶어서 그러는지 궁금했다.
검총에는 특이한 기물 두 가지가 있다. 그 두 가지는 검총만상대진을 펼칠 때만 모습을 드러내는데 일곱 개의 철상과 칠검전이라 부르는 전각이다.
그 두 가지를 남긴 사람은 칠검존이다.
철상과 칠검전을 칠검존이 남겼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검각 문도들은 검총만상대진이 펼쳐질 때마다 그 두 가지에 집중했다.
자신들 또한 그 두 가지에 집중했고, 철상의 비밀을 풀었다. 가슴에 비밀 공간이 있었는데 그 안에 칠검존이 남긴 검법이 들어 있었다. 그 검법을 익혀 칠검마가 됐다. 그 후에 집중한 건 칠검전이었다.
칠검존이 철상에 자신들의 검법을 남겼다면 칠검전에는 철검무적검해와 검천무적마해를 남겼을 거란 확신에서였다. 하지만 손바닥 자국과 발자국만 가득한 그곳의 비밀을 풀지 못했다. 다만 한 가지, 일곱 개의 철상과 관련이 있지 않나 하는 걸 어렴풋이 알아차렸을 뿐이다. 그것도 철상에서 칠검존의 검법을 찾아내 익힌 자신들만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검각 문도가 아닌 자가, 즉 침입자가 철상에 대해 관심을 보인 것이다. 과연 검각과 관련이 없는 자는 어떤 관점으로 철상을 보는지 알고 싶었다.
“여기까지 오는 도중에 네 개를 봤습니다. 일, 이, 사, 오인데, 순서로 봤을 때 서로 이어지는 것 같은데 흐름이 끊겨서요.”
“흐름이 끊겨?”
야수황의 눈이 커졌다.
자신들은 철상을 별개로 여겼다. 아니 실제로 칠검존이 자신들의 검법을 남겨 놓기 위해 만든 별개의 철상이다. 철상 사이 거리도 수백 장이나 떨어져 있고 어떤 연관성도 없다. 이마에 적힌 숫자는 칠검존을 나타낸다. 즉, 일은 일검존이 만든 철상이란 뜻이다. 그런데 앞에 있는 자는 일을 일검존을 나타내는 것이 아닌 순서를 나타내는 숫자로 본 것이다. 숫자로 본 게 아니라면 흐름이란 말을 할 수가 없다. 흐름이라는 건 서로 이어져 있는 상태를 말한다. 즉 앞에 있는 자는 철상의 모든 동작이 하나로 이어진 걸로 본 것이다.
“일단 한번 보겠습니다.”
금장생은 철상이 있는 곳으로 갔다.
철상은 두 손바닥을 편 채 땅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마에는 삼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이번 철상에도 다리는 없었다.
금장생은 다리를 모은 채 각 철상의 동작을 따라 했다. 동작의 순서는 철상의 이마에 적힌 숫자를 따랐다. 먼저 오른팔을 하늘로 향하게 하고 왼팔을 땅을 향하게 했다. 두 팔로 하늘을 떠받친 후 땅을 눌렀다. 동서로 밀어내고 앞뒤로 쳐 냈다.
금장생은 그 동작을 반복해서 해 보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동작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순간 금장생의 동작이 달라졌다.
다섯 가지 동작을 끝낸 후, 오른팔로는 하늘을 밀어 올리고 왼손으로는 땅을 밀어냈다. 그리고 땅을 밀어내던 왼손으로 하늘을 쳐올렸다. 금장생의 동작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같은 동작을 반대로 했다. 즉 왼손으로 하늘을 떠받치고 오른손으로 바닥을 밀다가, 하늘을 받치던 왼손으로 강하게 땅을 밀어낸 것이다.
동작을 마치고 난 금장생은 야수황을 보았다.
“혹시 아직 보지 못한 두 철상은 팔이 세 갠가요?”
“맙소사.”
야수황의 입이 쩍 벌어졌다.
상황을 보니 금장생은 철상 두 개를 아직 보지 못한 상태다. 그런데 정확하게 동작을 예측해 낸 것이다. 그렇다면 철상은 각각이 아니라 어떤 무공이나 혹은 동작을 나타내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게 분명했다.
“문제는 말입니다.”
꿀꺽!
금장생의 말이 이어지자 야수황은 침을 삼켰다.
“다립니다.”
“다리?”
야수황의 시선이 금장생의 다리로 향했다. 그가 보기엔 금장생의 다리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지금까지 본 철상에는 다리가 없었습니다. 일곱 철상이 취하고 있는 동작이 무공 초식이거나, 춤동작이거나 혹은 단순한 동작이라고 해도 다리가 움직여야 완벽해집니다. 그런데 이곳에 있는 철상들에는 발의 움직임이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건 곧 동작에 포함돼 있다는 걸 말합니다.”
“세상에! 그래서 발자국이…….”
야수황은 칠검전을 떠올렸다.
칠검전은 폭이 반 장밖에 안 되는 좁은 공간이다. 그 공간의 사면 벽과 천장에는 손바닥 자국으로 가득하고 바닥에는 발자국으로 가득하다.
어떤 비밀을 안고 있는 곳은 분명한데 알아낸 자가 아무도 없었다. 지난 세월 동안.
그런데 검각 문도가 아닌 외부인이 그 비밀을 밝혀낸 것이다. 물론 칠검전에서 펼쳐 봐야 맞는지 틀리는지 알겠지만, 그동안 나온 수많은 방법 중에 지금 들은 것보다 더 그럴싸한 건 없었다.
‘동작이…….’
야수황은 철상이 취하고 있는 동작을 떠올려 보았다.
“이제 시작해 볼까요?”
금장생은 허리에 걸어 두었던 박도를 빼 들었다.
박도는 원래 집이 없이 허리춤에 걸고 다니는 무기다.
“그건?”
야수황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앞에 있는 자들이 우선이고 칠검전의 비밀은 나중이었다.
“오다가 주웠습니다. 전 대협 말로는 무적검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더군요.”
“지금 무적검이라고 했느냐!”
야수황의 목소리가 커졌다.
‘전 대협의 말로는’이라는 건 전군남이 죽었다는 뜻인데도 무적검이란 말에 너무 놀라 야수황은 상황 파악을 못 했다.
“사실 나는 검각 사람이 아니라 검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다만 철검이란 말에 가장 어울리는 게 이 녀석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내 말에 전 대협도 동의했고요.”
“전 대협?”
그제야 야수황은 전 대협이란 말에 관심을 가졌다.
“역검마 전군남 대협 말입니다.”
“그, 그가 죽었느냐?”
야수황은 굳은 얼굴로 물었다.
“나는 그분께 검각에서 받은 것도 없는데 굳이 문주를 위해 나설 필요가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당신도 알겠지만 우린 싸울 이유가 없잖습니까.”
“죽었구나.”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됐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구나.”
척!
야수황은 검을 들어 올렸다.
그가 찾아낸 건 육검존 철자양이 남긴 무공으로 야수철랑검법野獸鐵狼劍法이다. 야수철랑검법은 인간의 내면에 잠들어 있는 폭력적인 본능을 극한으로 끌어 올렸을 때 최고의 위력이 나온다. 무공 때문에 그랬는지 아니면 무공을 익히기 위해 바뀌었는지 모르지만 성격도 다혈질이 됐다.
야수황은 내공을 끌어 올렸다.
그러자 진득한 살기가 그의 온몸을 감쌌다. 마치 독이 잔뜩 올라 털을 뻣뻣하게 세운 맹수를 보는 것 같았다.
“당신에게 어울리는 무공이 내게도 있습니다.”
금장생은 야수마존의 혈랑도법의 내공심법을 끌어 올렸다. 그러자 그의 전신에서도 전율적인 살기가 흘러나왔다. 그 살기는 곧 실체화돼 불그스름한 광채로 변했다. 불그스름한 광채는 금장생의 몸은 물론이고 박도마저도 완전하게 감쌌다.
금장생은 박도를 들어 올렸다.
“차하!”
그 순간 야수황이 몸을 날렸다.
그의 전신은 거무튀튀한 기운으로 휩싸여 있었다.
스악!
그의 장검이 허공을 일자로 갈랐다.
순간 거대한 이리 입이 나타나 금장생을 향해 밀려갔다. 금장생은 박도를 오른편 위에서 왼편 아래로 내리그었다.
금장생이 휘두른 박도에서도 붉은 이리 얼굴이 튀어 나갔다. 입을 쩍 벌린 혈랑과 검은색 입이 서로를 향해 날아갔다. 검은 기운과 붉은 기운은 정면충돌했다.
콰앙!
“차하!”
“타하!”
흑랑과 혈랑이 부딪치면서 엄청난 압력이 서로를 향해 밀려들어 갔지만 두 사람은 물러서지 않고 계속 밀어붙이며 검과 박도를 휘둘렀다.
야수황의 검이 허공에 검은 궤적을 남길 때마다 검은 이를 가진 이리 입이 나타나 금장생을 향해 쏘아져 갔고 금장생의 박도가 허공을 가를 때마다 붉은 이리가 나타나 야수황을 향해 날아갔다.
검은 이리와 붉은 이리는 두 사람 주위에서 물고 물어뜯겼다.
검은색의 이리 입이 소멸하고 붉은 이리 머리가 스러졌다. 두 사람은 한곳에 머물지 않았다. 빠르게 움직여 다니며 상대방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두 사람의 발이 바닥을 찍을 때마다 반 자 혹은 한 자 깊이의 구덩이가 생겨났다. 시간이 흐르자 바닥은 완전히 초토화됐다.
“타하!”
“차하!”
검은 기운과 혈광과 흙먼지가 뒤섞인 공간에서 강력한 기합이 터져 나왔다.
과앙! 쾅! 쾅쾅쾅!
창! 창창창! 창창!
먼저 두 사람이 쏟아 낸 기운이 부딪치고 이어 검과 박도가 부딪쳤다. 승부의 향방이 갈리기 시작한 건 싸움을 시작하고 한 식경 정도가 지난 후였다.
창!
두 사람의 검이 얽혔다.
무기는 야수황의 검이 두 배 정도 길었다. 그런데도 전혀 강력하게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절반도 안 되는 박도가 더 강해 보였다.
두 사람 사이에 우뚝 서 있던 장검이 박도에 밀려 왼편으로 조금씩 넘어갔다.
“타하!”
야수황은 기합을 내질렀다. 그리고 검을 들어 올리면서 발을 튕겨 뒤편으로 몸을 뺐다.
스악!
검을 빼는 순간 섬뜩한 기운이 배로 다가왔다. 금장생이 박도를 수평으로 눕혀 쓸어 낸 것이었다.
서걱!
옷과 살이 잘려 나가며 피가 튀었다.
“이얍!”
야수황은 상처를 보지 않았다. 그는 바닥을 차고 허공으로 솟구쳤다. 오 장을 솟구친 그는 곧바로 금장생을 향해 쏘아져 갔다.
검과 몸이 완전하게 합일된 신검합일 경지였다. 앞으로 내밀고 있는 검은 거대한 이리가 되고, 그의 몸은 이리의 몸통이 됐다.
“타하!”
바로 그때 금장생의 입에서도 우렁찬 기합이 터져 나았다. 그는 오른발을 앞으로 내디디며, 하늘을 떠받치듯 박도를 찔러 올렸다.
파앙!
순간 박도 끝에서 엄청난 기운이 쏟아져 나갔다.
그건 금장생이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엄청난 기운이었다.
콰아아아앙!
광포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커억!”
비명과 함께 검은 덩어리 하나가 하늘로 솟구쳤다. 검은 덩어리의 정체는 바로 야수황이었다.
야수황의 전신에는 수백 개의 검상이 나 있었다. 그곳에서 흘러나온 피는 금세 온몸을 적셨다.
척!
“크윽!”
야수황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뭐, 뭐냐, 이건?”
야수황은 금장생을 보며 물었다.
“아무래도 내가 철검무적검해나 검천무적마해, 둘 중 하나를 익힌 모양입니다.”
금장생은 무적검을 허리에 걸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