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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452화 (452/524)

황금가 (452)

검법을 얻다

무혼은 커다란 바위에 기대선 채 대장간을 바라보았다. 대장간 안에는 수염을 기른 노인이 가부좌를 한 채 앉아 있었다. 칠검마 중 혈검마血劍魔 사적인이지만 무혼은 알지 못했다. 아니 그는 알고 싶지도 않고 관심도 없었다.

그가 이곳에서 대장간을 바라보고 있는 건 사적인이 흘리는 살기 때문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살기를 흘린다는 건 적이라는 의미다.

사적인 앞에는 검 한 자루가 놓여 있었다. 만든 지 얼마 되지 않는 듯 검에서 아직 수증기가 피어오른다. 검을 앞에 두고 살기를 흘리는 자.

적이다.

그리고 자신은 적을 내버려 두고 갈 정도로 자비로운 사람이 절대 아니다.

“지금까지 싸웠던 자들과는 다른 것 같은데, 넌 누구지?”

무혼은 물었다.

사적인은 고개를 들어 무혼을 보았다.

“나는 네가 누군지 더 궁금하구나.”

“나는 무혼이라고 해. 나이는…… 너보단 열 배는 더 먹었다고 보면 돼.”

“쿡!”

사적인은 피식 웃었다.

몇 년 전에 백 살이 넘은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열 배가 많단다. 문득 정신 나간 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믿기 힘들겠지만 맞아. 그리고 나와 함께 들어온 내 친구는 칠천 살이 넘었어.”

“너희 같은 정신 나간 놈들에게 검각이 유린당했다니 통탄할 일이구나.”

사적인은 무혼이 온전한 정신의 소유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름 없어?”

무혼은 다시 물었다.

“내 이름이 왜 궁금한 거냐?”

사적인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검 손잡이를 살짝 만져 보았다. 아직은 온기가 남아 있었지만 쥐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는 검을 쥐고 내기를 주입해 보았다. 내기가 밀물처럼 밀려들어 갔다.

나오자마자 검을 새로 만든 건 지난 칠십 년 동안 얻은 깨달음을 검을 통해 구현하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마음에 쏙 드는 작품이 나온 것 같다.

“두 번을 죽다 보니까, 살아생전에 가급적 착한 일을 많이 해야 마음이 편하더라고.”

“마음이 편해?”

“죽을 때 말이야.”

“또라이 새끼.”

사적인은 무혼이 정말로 미쳤다고 생각했다.

“말 안 해 줄 거냐?”

“사적인이다.”

“사적인이면 칠검마의 셋째?”

“나를 아는구나.”

사적인의 눈이 살짝 커졌다. 자신은 칠십 년 만에 감옥에서 나왔다. 그런데 처음 보는 자가 자신을 알고 있었다.

그것도 적이.

“여기 오기 전에 몇 놈을 저승으로 보냈거든. 그 녀석 목을 자르기 전에 검각 최강자가 누군지 물었는데 칠검마라고 하더라고.”

무혼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는 진식이 바뀌기 전에 싸웠던 자들의 수뇌를 잡아 검각 무인에 대해 물었다. 그때 그자는 검각 최강 고수는 문주가 아니라 칠검마라고 하였다.

“죽일 놈!”

사적인의 몸에서 살기가 흘러나왔다.

“검각 무인이 죽었다고 살기를 흘릴 줄은 몰랐는데?”

무혼은 의아한 얼굴로 사적인을 보았다.

“검각은 내 고향이다, 놈.”

“하지만 널 감옥에 가둔 곳이기도 하지. 그런데 감옥에 있다고 하던데 어떻게 된 거지?”

“……!”

사적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 문주 그 자식이 우리를 처리해 달라고 부탁을 한 거구나. 그 대가는 자유고.”

무혼은 싱긋 웃으며 대장간을 향해 걸어갔다.

이번에도 사적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문주라면 너희들을 감옥에 가둔 자일 텐데, 그런 자의 말을 따른다는 건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내가 잘못 생각하는 거냐?”

“우리를 가둔 자는 문주가 아니다.”

사적인은 버럭 소리쳤다.

“하지만 너희를 풀어 주지도 않았지. 그건 곧 계속 가둬 두겠다는 뜻이기도 해. 우리가 아니었다면 너희들은 감옥에서 절대 나오지 못했을 거야. 안 그래?”

“네 말이 맞다. 문주는 너희들이 아니었다면 우리를 절대 풀어 주지 않았을 거다. 그걸 알면서도 우리가 여기에 있는 건 문주보다 검각을 더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럼 너는 우리가 아니라 검각 문주를 없애야 해.”

“왜 내가 문주를 없애야 한다는 거냐.”

“우리가 여기로 온 건 검각을 멸문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해림의 팔을 자르기 위해서니까.”

“검각이 해림이란 세력의 산하 단체란 말이냐?”

“맞아.”

무혼은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사적인은 신음을 내뱉었다. 설마 그런 사정이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네가 문주를 없애고 해림과 관계를 끊는다면 우린 너희들을 공격할 이유가 없어져. 어떻게 할래?”

무혼은 물었다.

“따지는 건 네놈들을 잡고 나서 할 참이다.”

사적인은 대장간에서 나왔다.

“아무튼 멍청한 녀석들은 올바른 길을 가르쳐 줘도 다른 길로 가요.”

파앗!

무혼의 신형이 전방으로 폭사됐다.

순식간에 사적인 앞에 도착한 무혼의 입에서 커다란 외침이 터져 나왔다.

“풍우風雨!”

혼천이 허공을 가르고 사적인을 향해 검의 폭풍이 불어닥쳤다.

“차하!”

사적인은 이미 준비를 하고 있던 터라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기합과 함께 검을 휘둘렀다.

카카캉!

“웃!”

사적인은 신음과 함께 뒤로 물러났다.

“이럴 수가?”

사적인의 눈이 커졌다. 방금 그는 검에 모든 내공을 다 실었다. 그런데 단 일 초 만에 밀리고 만 것이다.

“빙폭氷暴!”

사적인이 자리를 잡기도 전에 무혼은 두 번째 초식을 펼쳤다. 엄청난 한기의 폭풍이 사적인을 향해 몰아쳤다.

무혼이 각각 하나의 초식으로 이루어져 있던 두 무공을 동시에 펼칠 생각을 한 건 진법 속에서 검각 무인을 상대하면서였다.

우연히 두 무공을 이어서 펼쳤는데 초식의 위력이 더 강해지는 것이었다. 그 순간 열두 개의 초식은 별개가 아니라 하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먼저 두 개의 초식을 하나로 합쳤다.

놀랍게도 따로 펼칠 때보다 두 배 이상의 위력이 나왔다. 적이 진식을 이용해서 펼치는 기검은 더 이상 위협이 되지 못했다.

콰콰쾅!

커다란 폭음과 함께 대장간이 터져 나갔다.

“크윽!”

사적인은 뒤로 오 장을 튕겨 나갔다.

“강패强覇!”

무혼은 틈을 주지 않았다. 물러나는 사적인을 쫓아가며 혼천을 휘둘렀다.

사적인은 검을 힘껏 그러쥐었다. 칠십 년을 갇혀 있다가 이제야 세상으로 나왔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무적검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었다.

이렇게 끝낼 수는 없었다.

“차하!”

사적인은 밀리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정면 대결을 감행했다. 계속 물러나면 공격을 해 보지도 못하고 당할 것 같았다.

카카카캉! 캉캉캉! 캉캉!

“크억!”

사적인의 신형이 다시 튕겨졌다. 그런데 같이 튕겨지는 상황이라고 해도 조금 전과는 달랐다.

조금 전에는 공격할 준비를 한 상태였다면 지금은 아무런 대비가 돼 있지 않은 거의 무방비 상태였다.

무혼의 공격이 내부를 흔들어 버린 탓이었다.

“허虛!”

나직한 외침과 함께 무혼이 혼천을 던졌다.

슉!

혼천은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퍼억!

혼천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사적인 등 뒤였다.

“커억!”

사적인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비어져 나왔다.

“이, 이기어검술!”

사적인은 가루로 변해 가는 자신의 가슴을 바라보았다. 심장을 피하긴 했지만 의미가 없었다. 이기어검술 기운은 독처럼 전신으로 퍼져 나가며 온몸을 가루로 만든다.

그는 고개를 들었다.

“처음부터 넌 내게 안 되게 돼 있었어.”

무혼은 날아오는 혼천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척!

혼천은 집을 찾아든 새처럼 무혼의 손안으로 빨려 들어왔다. 무혼은 혼천을 도집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사이 사적인은 완전히 가루가 돼 존재 자체가 지워졌다.

“그냥 자유를 찾아갔으면 좋았잖아.”

무혼은 몸을 돌렸다.

“어?”

그의 눈이 커졌다. 저만치에서 금장생이 걸어오고 있었다.

“여어!”

무혼은 손을 들었다.

“드디어 찾았군요.”

금장생은 싱긋 웃으며 몸을 날렸다.

“날 찾았어?”

금장생이 바로 앞으로 오자 무혼이 물었다.

“무 형을 찾은 게 아니라 동료를 찾아다녔습니다.”

“그래서 찾은 사람 있어?”

“찾았으면 혼자 올 리가 없겠지요. 철상은 하나 더 봤는데 사람은 무 형이 처음입니다.”

이곳까지 오면서 본 철상은 오른손은 북쪽을 왼손은 남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마에 새겨진 숫자는 오五였다.

“철상이 뭔데?”

무혼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일 장 크기의 인물상을 말합니다. 철로 만들어졌고요. 혹시 오다가 봤을까요?”

“못 봤어.”

무혼은 고개를 저었다.

“그럼 무 형이 온 곳은 가 볼 필요가 없겠군요. 그만 가시죠.”

금장생은 걸음을 옮겼다.

“철상은 왜 찾는 건데?”

무혼은 금장생을 따르며 물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닌데 자꾸만 잡아당기는 것 같아서요.”

“뭐가?”

“철상이요.”

“철상이 너를 잡아당긴다는 거야?”

“네.”

“철상이 자철로 만들었대?”

“자철은 왜요?”

“그게 아니면 널 잡아당길 이유가 없잖아.”

“…….”

금장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네 부하들하고는 연락 안 돼?”

“팔장군을 말하는 겁니까?”

“응.”

“완전한 인간이 된 후로는 연결된 끈이 끊어졌습니다.”

“보통 사람과 다른 게 없어?”

“제가 보기엔 그렇습니다.”

“다행이네.”

무혼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희미하게 깔려 있는 운무를 헤치고 나아갔다. 두 사람이 철상을 발견한 건 한 식경 후였다. 그 철상은 두 팔로 하늘을 떠받치는 형상을 하며 서 있었다. 금장생은 철상 앞으로 다가가 자세를 살폈다.

“같나요?”

그는 자세를 흉내 내며 무혼에게 물었다.

“완벽해. 그런데 그걸 왜 익히는 거지?”

“아까도 말했지만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고…….”

“철상이 시키는 거라고?”

“네.”

자세를 그대로 따라 한 금장생은 철상의 이마를 보았다. 이二 자가 적혀 있었다.

둘은 다시 걸었다. 상당히 걸었는데도 전경은 달라지지 않았다. 검이 꽂혀 있고 간혹 쇠로 된 작은 건물이 있고 바위가 있었다.

그리고 대장간도 있었다.

그런데 대장간에서는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둘은 대장간 앞으로 갔다. 대장간 앞에는 마치 압착기로 쥐어짠 것 같은 시체 한 구가 놓여 있었다.

뼈까지 모두 으스러져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었다.

“바타르 작품이다.”

“저런 무공도 있나요?”

“저건 무공이 아니라 빅 바이스 핸드라는 마법이다.”

“마법요?”

금장생은 놀란 얼굴로 무혼을 보았다. 이곳은 마법을 펼칠 수 없는 공간이라 하였던 라의 말이 떠올랐다.

“응.”

“여긴 마법을 펼칠 수 없는 공간이라고 하던데 아닌가요?”

“그건 우리 같은 허접한 마법사들에게나 통용되는 거고. 녀석은 드래곤이잖아.”

“드래곤은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거군요.”

“맞아. 그리고 권말남과 자운영도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렇군요.”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이 머물렀던 발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건 곧 권말남과 자운영이 함께 있다는 의미였다.

시체는 영검마 유막이었지만 금장생과 무혼은 알지 못했다. 둘은 대장간을 나와 걸음을 옮겼다.

두 사람이 또 다른 대장간을 발견한 것은 두 시진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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