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451)
카카캉! 캉캉캉!
갈라지니 공간 사이에서 날카로운 쇳소리가 흘러나왔다.
쿵쿵쿵! 쿵쿵쿵!
전군남은 뒤로 물러났다.
“이럴 수가?”
전군남은 질겁했다. 자신이 물러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런데 앞쪽에 깊은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파앗!
자신이 물러난 이유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튕기듯 오른편으로 이동했다.
푸아악!
바로 그 순간 광포한 기운이 전군남이 서 있던 공간을 수직으로 잘랐다.
“크으!”
전군남의 입에서 비명이 비어져 나왔다.
공간을 수직으로 자른 검강의 여파에 스쳤을 뿐인데 오른팔 소매가 갈가리 찢겨 나간 것이다. 살도 약간 찢어진 듯 피가 흘러내렸다.
척!
금장생은 왼편으로 돌아 전군남을 보았다.
“이 박도, 아주 괜찮은 녀석입니다. 혹시 말입니다. 이 녀석이 무적검일까요?”
금장생은 박도를 들어 올리며 싱긋 웃었다. 빈말이 아니라 보물을 주웠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자신이 밀어 넣은 진기를 아무런 거부감 없이 완전히 수용할 뿐 아니라 더 강화시켜 준다는 기분마저 들었다.
“으음!”
전군남은 신음을 뱉었다.
처음 박도를 볼 때, 아니 금장생이 박도를 보통 철검이라고 부른다는 말을 듣자, 뭔가가 섬광처럼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것은 바로 지금까지 무적검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었다. 무적검의 주인인 나욱의 별호는 철검자다. 즉 철검을 가진 자란 뜻이다.
아울러 그가 창안한 검법은 철검무적검해다. 거기서 무적을 빼면 철검검해다. 즉 철검을 다루는 기술이란 뜻이 된다. 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즉 문파로 들어가 정식으로 검법을 익히고 그걸 바탕으로 무공을 창안했다면 절대 ‘철검을 다루는 기술’이란 의미를 무공 명칭으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너무 볼품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철검자 나욱은 정식으로 무공을 배운 자가 아니라는 뜻이 되고, 정식 무인이 아니면서 검술에 능하다면 전직이 군인이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그리고 군인 중 열에 아홉은 박도를 무기로 사용한다.
이제야 누구도, 심지어는 철검무적검해를 얻은 당사자였던 육성우 사조조차도 무적검을 만들지 못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무적검의 비밀은 검 모양에 있었던 것이다.
“인정하는 모양이군요.”
금장생은 박도를 다시 들어 올렸다.
그리고 전군남을 향해 몸을 날리며 위에서 아래로 휘둘렀다.
푸아악!
박도에서 가공할 기운이 쏟아져 나와 금장생 앞 공간을 갈랐다. 그런데 공간을 잘라 내는 기운이 하나가 아니라 두 개였다.
“웃!”
전군남은 검을 횡으로 그었다.
카카캉!
날카로운 쇳소리가 흘러나왔다. 전군남은 세 걸음 물러났다.
“차하!”
금장생은 기합을 내지르며 몸을 날렸다. 그리고 박도를 다시 휘둘렀다. 이번에는 네 개의 기운이 생겨나 공간을 오 등분 했다.
전군남은 전 내공을 검에 주입했다. 그리고 강하게 휘둘렀다.
카카캉!
쇠가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불똥이 사방으로 튀었다.
“억!”
전군남의 입에서 비명이 비어져 나왔다.
공격을 완벽하게 받아 냈다고 생각했는데 검이 가벼워진 것이다. 검 끝이 잘려 나가지 않았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다섯 걸음을 물러난 전군남은 검을 보았다. 예상대로 검의 앞부분이 잘려 있었다. 그 바람에 검날의 길이가 금장생이 들고 있는 박도와 비슷하게 되고 말았다.
“이 상태로는…….”
전군남은 얼른 주위를 살폈다. 제대로 된 검을 찾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주위엔 검이 많이 있었다. 오래된 것들이라 제 역할을 해 줄지 의문이지만 잘려 나간 자신의 검보다는 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저놈이면 되겠다.”
마침 적당한 검이 눈에 들어왔다. 손잡이도 멀쩡하고 녹도 많이 슬지 않은 검이었다. 그 검을 집어 들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타하!”
그가 검 앞에 도착하기도 전에 금장생이 공격을 했다. 이번에도 역시 그가 펼친 검법은 조금 전과 같았다. 금장생이 쉬지 않고 펼치는 검법은 바로 마가 팔전 중 한 곳인 공전에서 얻은 극결極結이다. 그가 공전에서 얻은 건 최강의 외공인 적신마赤身魔뿐만이 아니었다. 극결이라는 검법도 하나 얻었다.
공전은 목수들로 구성돼 있고 극결은 도편수들이 나무를 자를 때 사용하는 검법이다. 그러다 보니 나무를 자르는 방법 한 가지만 필요했다. 극결이 오로지 위에서 아래로 베기만 있는 검법인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빌어먹을!’
전군남은 내심 욕설을 내뱉었다.
손만 뻗으면 허공섭물로 검을 뽑아낼 수 있는데 그럴 여유를 주지 않았다. 별수 없이 끝이 잘려 나간 검으로 막아 낼 수밖에 없었다.
그는 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쿠아아앙!
거대한 기운이 해일처럼 밀려 나와 위에서 떨어지는 기운을 쳐 냈다. 순식간에 금장생이 펼친 극결이 스러졌다.
“억!”
결과에 놀란 사람은 공격한 금장생이 아니라 얼결에 극결을 무력화시켜 버린 전군남 자신이었다.
‘어떻게…….’
전군남은 멍한 얼굴로 자신의 검을 보았다. 완벽한 검도 아니고 불완전한 검이다. 그런데 완전한 검보다 더 강했다. 전혀 생각지 못한 결과였다.
‘어디.’
전군남은 다시 검에 내기를 주입했다. 자신이 착각한 건지 아니면 정말로 그런 건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착각이 아니다!’
전군남은 마음이 들떴다. 무적검의 비밀을 이제야 밝혀낸 것 같았다. 그건 바로 검의 길이에 있었다. 아니 무적검은 박도와 같은 크기로 해야 제작이 가능하다. 모든 무공에는 맞는 무기가 있다. 특히 검법이나 도법 창술 등 무기를 사용하는 무공은 무기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검천무적마해는 특히 더 그런 것 같다.
‘이젠 내가 이긴다!’
전군남은 검을 들어 금장생을 겨냥했다.
“더 강해졌군요.”
“무적검의 비밀을 알았으니까.”
“길이에 있다는 말인가요?”
“차하!”
전군남은 금장생을 향해 달려가며 검을 거둬들였다가 쭉 찔러 넣었다. 그가 거둬들였던 팔을 내뻗을 때 거리는 한 자다. 그건 곧 검 끝의 이동 거리도 한 자밖에 안 된다는 뜻이다. 어떤 힘을 만들어 내기에는 턱없이 짧은 그 거리에서 천지를 무너뜨릴 거력이 쏟아져 나왔다.
힘이 강해질수록 악마 얼굴상의 크기는 작아지고 검어지는 듯, 금장생을 향해 쏘아져 가는 악마 얼굴상에서는 약간의 광채마저 흘러나왔다.
금장생의 대응은 전과 다르지 않았다.
그는 박도를 번쩍 들어 올렸다.
그러자 그 앞에 수십 개의 통나무가 나타났다. 물론 통나무들은 상상으로 만들어 낸 것들이다.
초보 도편수는 저 통나무 중 하나만 자를 수 있다. 실력이 높아질수록 많은 수의 통나무를 자르고 최고의 도편수인 대목이 되면 열 개까지 자른다.
금장생 앞에 늘어선 통나무 수는 열 개였다.
“타하!”
금장생은 기합과 함께 힘껏 내리그었다.
콰콰콰콰쾅!
마치 천둥 치는 것 같은 소리가 그의 전면에서 터져 나왔다. 금장생을 향해 쏘아져 가던 악마 얼굴 수십 개가 절반으로 잘려 나가며 스러졌다.
“차하!”
금장생의 신형이 전군남을 향해 폭사됐다.
“하아!”
전군남도 마주 달렸다.
창!
두 사람의 무기가 허공에서 부딪쳤다. 검을 맞댄 상태에서 두 사람의 신형이 허공을 솟구쳤다.
창! 창창창! 창창창! 창창!
허공에서 두 사람의 검이 무서운 속도로 움직였다. 금장생이 휘두르면 전군남이 막고, 전군남이 휘두르면 금장생이 막았다. 두 사람의 검은 상대방 신체 어느 한 곳을 노리지 않았다. 머리, 목, 팔 가슴, 심장, 배, 다리 할 것 없이 모든 곳을 노렸다.
검에 내재된 힘이 워낙 강해서 스치기만 해도 치명상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굳이, 급소에 집중해서 공격할 필요가 없었다. 어디가 됐건 공격에 성공하면 곧바로 승리로 이어지는 상황이었다.
두 사람 사이 거리가 반 장이 채 되지 않기 때문에 무공 초식은 의미가 없었다. 검을 최단거리로 뻗어 상대 몸에 흔적을 남기는 사람이 승리한다.
두 사람의 검은 점점 빨라졌다.
검끼리 부딪치면서 생긴 불똥은 가을밤 반딧불처럼 두 사람 주위를 감쌌다.
금장생은 왼손을 슬쩍 보았다.
놀고 있는 왼팔로 적수나 마수 혹은 철장을 펼쳐도 된다. 내공도 여유가 있다.
‘안 되지.’
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어떤 사람은 이런 경우에 손이나 발을 뻗어 공격하면 되지 않느냐 하겠지만 그건 싸움을 모르는 사람이 하는 소리다.
지금 자신은 검에 모든 것을 실은 상태고 전군남도 그렇다. 여기서 모든 것에는 정신도 포함된다.
고수들의 싸움은 내공으로만 하는 게 아니다. 하수들은 내공이 강한 자가 승리하지만 무공이 점점 강해지면, 갑자로 구분하는 내공의 강약이 아니라 정신력이 승패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즉 지금처럼 균형을 이루고 있는 상태에서 정신을 분산시키면, 자신도 모르는 틈이 드러나게 되고, 전군남은 그 틈을 향해 일격을 날릴 것이다.
육체가 금강불괴지신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신보다 훨씬 낮은 자들의 암습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상태를 뜻한다.
비슷한 수준에 이른 무인의 검까지 막아 주진 않는다. 전군남이 휘두르는 검은 스치기만 해도 그곳이 가루로 변하고, 위험한 상황으로 이어진다.
힘과 정신을 분산시키는 모험을 하는 것보다는 박도에 모든 걸 거는 게 낫다. 더구나 박도가 무적검이라면 더더욱 그래야 한다.
금장생은 박도 손잡이 아래를 양손으로 잡았다. 자신이 무인이기 때문에 한 손으로 휘둘렀을 뿐 원래 박도는 양손으로 사용해야 하는 중병이다.
박도를 사용했던 대부분의 병사들은 양손으로 쥐었다. 이 박도의 원주인이 군인 출신이라면 가장 익숙한 방법으로 쥐었을 테고, 양손으로 쥐었을 때 최고의 위력이 나올 것이다.
금장생은 박도를 양손으로 쥐고 휘둘렀다.
양손으로 쥐게 되면 동작이 약간 느려지고, 행동반경이 좁아지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그걸 보완하고 남을 정도로 강력한 힘을 쏟아 냈다.
콰앙!
이젠 날카로운 쇠가 부딪치는 소리가 아니라 둔탁한 뭔가가 부딪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지잉!
“윽!”
전군남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검을 쥔 손이 찌르르 울렸다.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그는 금장생을 보았다.
‘저 짧은 박도를……?’
그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금장생이 양손으로 박도를 쥐고 휘두르고 있었다.
박도 길이는 두 자, 날의 길이는 한 자 반밖에 되지 않는다. 저런 짧은 무기를 양손으로 쥐면 어색해야 한다. 그런데 조금도 어색해 보이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양손으로 쥐도록 만들어진 무기 같았다.
콰앙!
지이이이이이잉!
검에서 울림이 더욱 심해졌다.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드는데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전군남은 계속해서 검을 들어 올려 막고 반격을 했다.
콰앙! 콰앙! 콰앙! 콰앙!
검이 부딪치는 횟수가 증가할수록 문제는 더욱 커졌다.
‘부서지는 건가?’
전군남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제야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 것 같았다.
계속해서 부딪치자 검에 균열이 생겼다.
문제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마땅한 해결책이 없다는 것이었다. 미세한 틈만 생겨도 그곳으로 파고드는 박도를 방어하지 못하면 남는 건 죽음이다.
지금은 검이 부서지지 않도록 하면서 싸우는 수밖에 없다.
콰앙! 콰앙! 콰앙!
검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렸다.
퍼억!
그리고 어느 순간 전군남의 검이 손잡이만 남기고 조각조각 부서졌다.
“억!”
전군남의 입에서 비명이 비어져 나왔다.
쐐액!
하지만 금장생의 박도는 멈추지 않았다. 곧바로 전군남의 목을 향해 쏘아져 갔다. 전군남은 금장생의 박도를 노려보았다.
피할 수 있으면 좋은데 그것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대로 있으면 목이 잘린다.
반사적으로 왼팔을 들었다.
그리고 오른손에 든 검 손잡이를 금장생에게 던졌다. 금장생을 물러나게 하여 시간을 벌 생각이었다.
다급한 상황 앞에서 전군남은 힘이나 혹은 정신력을 분산시키게 되면 당하고 만다는 사실을 깜빡 잊고 말았다. 검 손잡이를 던지는 걸 포기하고 왼팔에 모든 공력을 집중했더라면 팔은 잃었을지언정 피할 시간을 벌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왼팔에 칠 할의 공력을 싣고 검을 던지는 데 삼 할의 공력을 사용했다.
그 결과는 치명적이었다.
퍼억!
전군남의 왼팔을 자른 박도는 그대로 전진하여 목까지 잘랐다.
“크악!”
전군남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잘린 머리가 둥실 떠오르고 목에서는 피가 솟구쳤다.
금장생은 아래로 내려섰다.
“아파라!”
그는 심장 앞을 슥슥 문질렀다. 조금 전 전군남이 던진 검이 부딪친 자리였다. 그는 몸통만 남은 전군남을 흘끔 보더니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