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450화 (450/524)

황금가 (450)

“이 검 어떤가?”

전군남은 방금 만든 검을 보여 주며 금장생에게 물었다.

“원래 대장장이였습니까?”

금장생은 되물었다.

“아니네. 나는 검밖에 만들 줄 모르네.”

“왜 검을 만드신 겁니까?”

“검을 만들어야만 검천자 사조님의 검법을 익힐 수 있기 때문이라네.”

“그거 흥미롭군요.”

“자넨 검각의 전설에 대해 모르는가?”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검천자 사조님이 이곳에 검천무적마해와 철검무적검해, 무적검을 남겼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건가?”

“검천자 육성우 대협이 검각 사조였어요?”

검천자 육성우에 대해서는 들어 본 적은 있다. 그가 아는 건 검천무적마해를 남겼는데 익혀 낸 자가 없어서 실전됐고, 전해지지 않는 최강 무공이 됐다는 사실이었다. 그건 자객 일을 할 때 공부한 게 아니고 이런저런 일로 얻어들은 지식이다.

자객이 죽은 자들에 대해 모르는 것은 자객의 임무가 살아 있는 자들에게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금장생은 검천자 육성우가 검각 사조라는 사실과, 자신의 무공을 남겼다는 말은 처음 들었다.

“자넨 검각엔 왜 온 건가?”

“검각을 없애러 왔습니다.”

“……!”

전군남은 말없이 금장생을 보았다.

자신이 알기론 검각 무인의 수는 천오백 명이다. 물론 칠십 년에 그랬던 거라 지금은 어느 정도인지 알 수는 없지만 크게 달라진 건 없을 것이다.

그런데 검각을 없애러 왔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자를 본 것이다.

“검각이 어떤 곳인지 아는가?”

“내가 아는 건 검각이 해림의 하수인이 됐고, 나는 해림과 전쟁을 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검각이 누군가의 하수인이 됐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해림을 치기 전에 가지인 검각을 먼저 친다는 건가?”

“네.”

“검각을 너무 우습게 본 거 아닌가?”

“그런 면도 없지 않습니다. 그런데 누구십니까?”

“나는 검각 칠검마의 막내 역검마 전군남이네.”

“저는 일곱 분은 감옥에 갇힌 걸로 아는데요?”

“어젯밤에 문주가 우리를 풀어 주었다네.”

“여러분을 풀어 준 것과 진식이 바뀐 게 관계가 있습니까?”

“그렇다고 볼 수 있네.”

“감옥에 갇혔다면 현 문주와 사이가 좋지 않을 것 같은데, 아닌가요?”

“물론이네. 만일 상황이 지금과 같지 않다면 그가 울면서 매달려도 도와주지 않았을 거네.”

“지금 상황이 어떻다는 겁니까?”

“검각 멸문 말이네.”

“그러니까 문주는 싫지만 검각은 사랑한다는 말이군요.”

“바로 맞혔네.”

“그 마음 이해합니다.”

“돌아갈 텐가?”

“이해하는 것과 돌아가는 건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검을 만들길 잘한 것 같구먼.”

잠시 금장생을 바라보던 전군남은 조금 전 탁자에 놓았던 검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대장간을 나와 금장생 건너편에 섰다.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도 될까요?”

“내가 아는 거라면 모두 대답해 주겠네.”

“오는 도중에 철상을 보았습니다. 그게 뭔지 궁금합니다.”

“그 철상은 칠검존께서 만드신 거네.”

“칠검존이면…….”

“검천자 육성우 사조님의 직전 제자들이네. 검각 무인들 중 검천무적마해를 전수받은 유일한 사람들이기도 하네. 하지만 그분들 중 검천무적마해를 완성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네.”

“왜 완성하지 못했습니까?”

“철검무적검해도 그렇고 검천무적마해도 무적검이 없으면 위력은 오 할밖에 나오지 않네.”

“무적검을 만들지 못한 모양이군요.”

“그렇네. 육성우 사조뿐만 아니라 그분의 제자이신 칠검존도 무적검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네.”

“무적검을 못 만들었는데 어떻게 검천자란 별호를 얻고 천하제일인이 된 겁니까?”

“완전한 무적검을 만들지 못했을 뿐이지 전혀 못 만든 것은 아니었다네.”

“무적검과 비슷한 걸을 만들어서 강호로 나갔단 말이군요.”

“맞네. 그분은 무적검과 비슷한 검을 들고 강호로 나갔네. 물론 강호로 나갈 때는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네. 완벽한 무적검이라고 생각했다네. 그런데 완벽한 무적검이라고 생각했던 검이 오 년 만에 부서져 버린 거네.”

“그래서 강호행을 마치고 돌아온 거군요.”

“맞네. 이곳으로 온 그분은 다시 무적검을 만들기 위해 매진하게 되네.”

“하면 원래 무적검은 어떻게 된 겁니까?”

“원래 무적검?”

“처음부터 없었나요?”

“철검무적검해를 발견할 때는 있었다는데, 그 후 기록은 없네.”

“원래는 있었는데 없어졌단 말이군요.”

“그렇네.”

“그분은 대장장이였으니까. 혹시 더 좋은 검을 만들기 위해 녹여 버린 걸까요?”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철검무적검해라는 무공 이름으로 봤을 때 무적검이란 이름의 검은 철검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무기 평전이란 책을 보면 이런 박도를 철검이라고 부르거든요.”

금장생은 오는 도중에 주웠던 박도를 들어 보였다.

“무적검이란 녀석이 그 박도처럼 볼품이 없어, 좀 더 멋진 검을 만들기 위해 녹여 버렸다는 건가?”

“그게 아니라면 무적검이 사라질 리가 없지 않습니까.”

“뭐 그럴 수도 있겠구먼. 그런 걸 애병이라고 가지고 다니기엔 초라한 건 사실이니까.”

전군남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걸 사용할 생각입니다.”

금장생은 박도를 사선으로 비켜 들었다.

“그게 무슨 소린가?”

“어차피 없앨 생각이었기에 검천자와 무적검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 준 거 아닙니까?”

“클!”

전군남은 피식 웃었다.

“자네가 팔왕인가?”

문득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

“내가 운이 좋군.”

“운이 좋다는 건…… 날 잡을 수 있다는 말처럼 들리는데, 맞나요?”

“문주가 자네를 없애 주면 자유를 준다고 했네.”

“검각 문주가 얼마나 강한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엔 당신이 더 강한 것 같은데. 혹시 금제당한 상탠가요?”

“지금은 아니네.”

전군남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면 이런 싸움 없이도 마음만 먹으면 자유를 얻을 수 있지 않나요?”

“그런 생각을 해 보지 않은 것도 아니네. 문주라는 자는 우리 일곱 명을 칠십 년 동안 가둔 자의 손자니까 좋은 감정을 가진 것도 아니고, 자네 말처럼 우리보다 강한 것도 아니네. 그자에게 한 약속은 감옥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거짓말을 한 거라고 생각하면 되니까. 양심이 약간 찔리기는 하겠지만 우리를 칠십 년 동안 감옥에 가둔 자들이니까 그 정도의 거짓말은 스스로에게 용납할 수 있는 수준이라 할 수 있네. 그런데도 우리는 떠나지를 못하고 여기로 왔다네.”

“왜 오셨습니까?”

“자네들을 없애지 않고 떠나 버리면 검각을 구할 수 없지 않는가.”

“……검각을 사랑하나 보군요.”

“내 목숨만큼 사랑한다네.”

“감옥에서 보낸 칠십 년이 억울하지 않습니까?”

“억울하네.”

“그런데 왜?”

“나를 감옥에 보낸 자는 검각이 아니라 검각 문주이기 때문이네.”

“그렇군요. 그런데 여긴 어딥니까?”

“검총만상대진이란 진식 안이네.”

“처음엔 철상이 없었던 것 같은데 검총만상대진을 펼치면 모습을 드러내게 돼 있는 겁니까?”

“철상뿐만 아니라 대장간도 검총만상대진을 펼쳤을 때만 모습을 드러낸다네.”

“그렇게 된 거였군요.”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이 장소에 대해 알 것 같았다. 철상이나 대장간은 어떤 진식으로 숨겨진 상태였다. 그 진식은 다른 진식에는 영향을 받지 않다가 검총만상대진이란 진식이 펼쳐지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검총만상대진은 이곳으로 들어오는 문 역할을 하는 진식인 모양이었다.

“시작해 보세.”

전군남은 검을 수평으로 뻗어 금장생을 겨냥했다.

“안타깝게 됐군요.”

금장생은 내기를 끌어 올리며 말했다.

“뭐가 안타깝단 말인가?”

“일곱 명이 한꺼번에 왔더라면 승리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금장생은 박도로 내기를 밀어 넣었다.

웅웅!

“응?”

금장생의 눈이 커졌다.

병사들이나 사용할 법한 박도가 내공을 주입하자 놀랍게도 검명을 토해 낸 것이다. 자신이 아는 한 검명은 명검이나 명도 혹은 신검, 신도만이 흘린다.

하지만 자신이 들고 있는 건 아무리 좋게 봐 준다고 해도 신검, 신도와는 거리가 멀다.

박도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검명을 들은 건 금장생뿐만이 아니었다. 삼 장 건너편에 있던 전군남도 들었다.

전군남이 알기론 어지간한 명검이라고 해도 검명을 외부로 토해 내진 못한다. 내기를 주입하는 사람만 들을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주 엄청난 신검이나 신도 중에서도 극히 일부가 다른 사람도 들을 수 있도록 검명을 토해 낸다고 하였다. 그런데 금장생이 들고 있는 박도가 검명을 토해 낸 것이다.

“그거 여기서 주웠다고 했는가?”

“이건 도가 아니고 검입니다.”

“검이라고?”

전군남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문득 무적검을 만드는 방법이 떠올랐다. 도부도刀不刀 검부검劍不劍. 도가 아닌 도며 검이 아닌 검이다.

무적검을 만드는 비법이라고 하였다. 그 여섯 자는 육성우 사조가 아니라 철검무적검해를 남긴 철검자 나욱이 남긴 말이다. 검각을 남긴 육성우 사조님은 물론이고 칠검존과 지난 오백 년 동안 무적검을 만들고 싶어 했던 모든 이들은 도부도 검부검을 무기 내부에서 구현하고자 했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자면 의미도 파악한 자가 없다고 해야 했다. 그러면서 도부도 검부검의 조건에 맞는 검을 만들고자 하였다. 그런데 금장생이 들고 있는 무기를 보자 지금까지 자신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등에도 날이 있거든요.”

금장생은 박도의 등이 하늘로 향하도록 손목을 틀었다.

“두고 보면 알겠지.”

전군남은 검을 힘껏 그러쥐었다.

내공을 끌어 올리고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그의 얼굴이 점점 악귀처럼 변해 갔다.

“그거 특이한 미소군요.”

금장생은 전군남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며 말했다. 많은 무인을 접했지만, 내공을 끌어 올리면 얼굴이 악마처럼 변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악마천잔마공이라는 무공을 익히면 부가적으로 얻어지는 부작용이 악마소라네.”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는 미소라는 거군요.”

“의사와는 상관없지만 강해지는 것과는 상관있네.”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내 얼굴이 악마처럼 변한다네.”

“그럼 악마천잔마공이 지금 극성에 이르렀겠군요.”

“지난 칠십 년 동안 단 하루도 생각하지 않고 잠든 적이 없었으니까.”

“궁금하군요.”

“이제 보게 될 거네.”

파앗!

전군남은 검을 앞으로 내민 채 바닥을 찼다.

순간 공간을 건너뛰는 것처럼 그의 신형이 금장생을 향해 쏘아져 갔다.

순간 금장생 앞으로 커다란 악마 얼굴이 다가왔다. 분명 그를 향해 쏘아져 가는 건 전군남의 검이다. 그런데 금장생이 보기엔 악마 얼굴상, 아니 조금 전 보였던 전군남의 얼굴이었다.

금장생은 사선으로 내리고 있던 박도를 가슴 앞으로 가져와, 오른발을 앞으로 내밀면서 쭉 찔러 넣었다. 그의 박도 끝이 향하는 곳은 악마 얼굴상의 오른편 눈이었다.

카앙!

악마 얼굴상과 박도 끝이 부딪쳐 날카로운 쇳소리가 흘러나왔다.

“억!”

전군남의 입에서 신음이 비어져 나왔다. 그것은 놀라 내지른 비명이었다. 그는 금장생이 자신의 공격을 그런 식으로 막아 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과거에 싸웠던 많은 무인들은 피하거나 악마 얼굴 상 전체를 공격하는 방법으로 대항을 했다. 그런데 금장생은 검 끝의 위치를 정확하게 찾아내 박도 끝으로 찔러서 방어한 것이다.

“차앗!”

놀람은 잠시 접어 둬야 할 때였다.

전군남은 검을 가슴 앞으로 거둬들임과 동시에 다시 찔러 넣었다. 그의 검이 허공에 다섯 개의 점을 남겼다. 그러자 다섯 개의 악마 얼굴상이 나타나 금장생을 향해 쏘아져 갔다.

금장생은 그 자리에 선 채 박도를 수직으로 내리그었다.

푸아악!

박도에서 가공할 기운이 쏟아져 나오고 금장생 앞 공간과 바닥이 좌우로 쪼개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