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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448화 (448/524)

황금가 (448)

“네. 철저하게 무너졌습니다.”

평천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세력이 공격해 온 건가?”

우상은 다시 물었다.

“세력이 아닙니다.”

“하면?”

“다섯 명입니다.”

“단지 다섯 명에 의해 검총파천쇄옥진의 일관이 무너졌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아무리 대단한 고수라도 검총파천쇄옥진을…….”

우상이 겪어 보지도 못한 검총파천쇄옥진을 이렇듯 대단하게 생각하는 건 일 진식을 창안한 당사자들인 칠검존이 남긴 말 때문이다. 칠검존은 자신들이 창안한 진식을 시험했다고 했는데 일관을 통과하지 못했다고 하였다. 칠검존이 통과하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한 그 진식을 다섯 명이 파괴했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놀라움은 금세 투기로 변했다.

‘응?’

평천일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우상의 몸에서 흘러나온 투기를 알아차린 것이다. 투기를 뿜어내는 자는 우상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여섯 명도 강한 투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어쩌면…….’

평천일은 일이 잘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자들은 어디 있는가?”

우상이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검총만상대진 안에 있습니다.”

“그 진식을 펼쳤다는 건가?”

“그곳에 가둬 두면 최소한 열흘은 굶길 수 있으니까요.”

“반면에 기연을 얻을 수도 있겠지.”

천검마 방낙인이 말했다.

“우리 검각은 그런 것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자들을 없애 달라고 여기로 온 건가?”

우상이 물었다.

“그렇습니다.”

“우리를 이곳에 가둔 자가 누군지 아는가?”

“제 조부님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면, 자네 조부가 우리를 가둔 이유는 아는가?”

“일곱 분은 전 문주가 제 조부님을 차기 문주로 지목했음에도 불구하고, 문주 아들을 문주로 옹립하겠다며 반란을 일으켰다고 들었습니다.”

“하면 우리가 왜 반란을 일으켰다고 생각하는가? 아니 그 전에, 자네 조부와 우리들 중 누가 검각을 더 사랑했을 거라고 보는가?”

“일곱 분이란 말입니까?”

“우리 일곱 명은 검각으로 들어올 때 삼류였네. 그랬던 우리가 검총만상대진 안에서 깨달음을 얻어 고수가 됐네. 검각은 우리를 사람답게 만들어 준 곳이네.”

“일곱 분이 제 조부님보다 더 검각을 사랑했다는 말이군요.”

“더 사랑한 정도가 아니라 우리는 뼈를 묻을 장소로 검각을 선택했다네.”

“그런 분들이 왜 반란을 일으킨 겁니까?”

“자네 조부 때문이었네.”

“제 조부가 검각 문주가 되는 게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으셨습니까?”

“그것 때문은 절대 아니네.”

“그럼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검총만상대진에서 깨달음을 얻은 우리는 문주의 직전 제자가 됐네. 그 당시 문주님은 제자 욕심이 많았네. 우리를 포함해서 스무 명이 넘었지. 그 스무 명 중에는 여제자도 있었네. 그녀 이름은 수연이었네.”

“저도 알고 있습니다. 제 조부님께서 사랑하는 분이셨다고 하였습니다.”

“하면 자네 조부가 수연 사정에게 춘약을 먹인 것도 알고 있는가?”

“춘약이라고요?”

평천일의 눈이 커졌다.

“그렇네. 그는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에게 춘약을 먹여서 문주의 아들이 지나가는 길목에 버려두었네. 문주 아들은 지나가던 길에 욕정에 몸부림치는 그녀를 발견했다네. 자네가 문주 아들이었다면 어떻게 했을 것 같은가?”

“그, 그분이 구했단 말입니까?”

“그렇네. 문제가 발생한 건 그다음이었네. 문주 아들로 인해 목숨을 구했지만 수연은 며칠 후 자결을 해 버리고 말았네. 그녀의 자결을 조사하다가 부적절한 성관계 때문이란 사실이 밝혀졌고, 겁탈이란 결론이 났네. 수연을 겁탈한 자는 차기 문주로 거론되던 문주 아들이었고. 문주 아들은 춘약에 중독된 상태라 어쩔 수 없었다고 항변했지만 믿어 주는 사람이 없었네. 결국 문주는 자기 아들 대신 대제자인 평곤을 차기 문주로 삼겠다는 발표를 함으로써 자기 아들에게로 향한 검각 제자들의 분노를 잠재웠네. 사건이 일단락된 거지.”

“한 사람을 파렴치한으로 몰려면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평천일은 굳은 얼굴로 말했다.

“물론 있네. 그 증거가 없었다면 나는 물론이고 동생들도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을 테니까. 증거는 이거네.”

우상은 품속에서 천 하나를 꺼내 평천일 앞으로 던졌다.

영호정이 얼른 천을 들어 펼쳤다. 천에는 피로 쓴 듯한 글이 적혀 있었다.

“사실 그때 수연을 사랑한 사람은 평곤뿐만이 아니었네. 문주 아들은 물론이고 나와 내 동생들도 모두 그녀를 사랑했네. 그리고 나는 그녀가 평곤을 선택하기 전에 얼마 되지 않는 기간이었지만 사귀기도 했네. 그녀와 내가 간혹 만나던 장소가 있었는데, 그 장소에 그 천이 있었네. 그녀가 왜 자결을 했는지 아는가?”

천을 보고 있던 평천일이 고개를 들었다.

“문주 아들에게 몸을 허락해서가 아니라 목숨보다 더 사랑한다고 여겼던 평곤에게 배신을 당해서 자결할 수밖에 없다고 돼 있었네. 그러면서도 문주 아들의 무죄를 증명해 주지 못하는 건 평곤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도 했네. 그렇게 착한 여자를 죽음의 나락으로 내던진 자가 자네 조부였네. 자네 같으면 그런 자를 문주로 모시고 따를 수 있겠는가?”

평천일은 할 말이 없었다.

우상이 지어낸 게 아니었다. 천에는 우상이 말한 사연이 적나라하게 적혀 있다. 조부는 자신의 야망을 위해 연인을 이용했던 파렴치한이었던 것이다.

“여러분의 실력이면 떠나는 것도 가능할 텐데 왜 남으신 겁니까?”

칠검마를 연구하면서 가장 크게 가졌던 의문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칠검마는 검각 최강 무인이었다. 반란에 실패한 그들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검각을 떠날 수 있었다. 그들이 떠난다면 막을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칠검마는 떠나지 않고 잡혀서 옥에 수감되는 걸 택했다.

“우리는 자네 조부보다 검각을 더 사랑했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럼 그것 때문에.”

“다시 그 상황이 돼도 같은 선택을 했을 거네.”

“그렇군요.”

평천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털썩!

그리고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무슨 뜻인가?”

우상이 물었다.

“대신할 수는 없겠지만 제가 용서를 빌겠습니다.”

평천일은 머리를 땅에 댔다.

우상은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쿡!”

나직한 웃음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프! 하하하! 으! 하하하하!”

이어 광소가 터져 나왔다. 우상은 마치 실성한 것처럼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한순간에 웃음을 그쳤다. 그는 평천일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자넨 자네 아버지보다 더 자네 조부를 닮았구먼.”

“검각을 구해 주시겠습니까?”

평천일은 무릎을 꿇은 채로 물었다.

“절대 자네 때문이 아니네. 자네가 무릎을 꿇어서도 아니고. 우리가 나서는 건 검각을 우리 목숨보다 더 사랑하기 때문이네.”

“감사합니다.”

평천일은 일곱 명을 향해 절을 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영호정을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영호정은 품에 안고 있던 보자기를 우상 앞으로 내려놓았다.

“그자들이 검총만상대진 안으로 들어간 지 반나절이 지났습니다. 그럼.”

평천일은 포권을 취하고는 바닥을 찼다. 그의 신형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십 장을 솟구친 그는 동굴 측면을 차고 재차 솟구쳤다. 그렇게 동굴 절벽을 차면서 위로 올라갔다. 잠시 후 평천일과 영호정의 모습이 사라졌다.

“지 조부만큼 효웅이군요.”

천검마 방낙인이 말했다.

“아니네. 방금 그자는 자기 조부보다 더한 자일세.”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렇네. 보통 사람은 자기 치부를 들키게 되면 살인멸구를 하려 드네. 그런데 우리를 없애기는커녕 무릎을 꿇었네. 그건 자신의 이익 앞에서는 치부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뜻하네.”

“아니면 우리를 없앨 자신이 있다는 뜻이겠지요.”

역검마 전군남이 말했다.

“그렇겠지.”

우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도 그자를 돕겠다는 겁니까?”

영검마 유막이 물었다.

“우리가 돕는 건 그자가 아니라 검각이네, 유 제. 그자에 대한 처리는 검각을 구하고 나서 해도 늦지 않네.”

“그렇군요.”

유막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게 들었는지 보세.”

우상은 보자기 앞으로 앉았다. 그가 앉자 나머지 여섯 명도 빙 둘러앉았다. 일곱 명은 보자기를 쳐다보기만 할 뿐 선뜻 풀지를 못했다.

“대형이 풀어 보십시오.”

성질 급한 야수황이 우상을 보며 말했다.

“그러지.”

우상은 보자기를 풀었다.

꿀꺽! 꿀꺽!

우상을 지켜보는 일곱 명은 침을 삼켰다. 그들은 눈도 깜빡이지 않고 보자기를 바라보았다.

보자기가 풀리고 내용물이 드러났다.

가운뎃손가락 크기의 자기 병 일곱 개와 종이 일곱 장이 들어 있었다.

종이의 맨 위에는 칠검마 이름이 적혀 있었다.

“모두 다르게 금제를 가했구먼.”

금제 푸는 방법이 모두 다르다는 걸 알아차린 우상이 말했다.

“독한 놈.”

방낙인이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떠나지 않은 걸 후회하는가?”

우상이 물었다.

“이제 와서 후회해 봐야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놈의 행태에 치가 떨려서 그런 거지요.”

방낙인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일단 읽어 보세.”

우상은 종이에 적힌 금제를 푸는 방법을 읽었다.

“야 제가 공력을 회복한다고 해도 소용없었겠군.”

방법을 암기한 우상이 말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방낙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 시작하세.”

우상은 약병을 집어 들었다. 뚜껑을 열자 역한 냄새가 흘러나왔다.

“독입니다.”

역검마 전군남이 말했다.

“그럴 거라 생각했네.”

우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물약을 한 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가부좌를 하고 운기행공을 시작했다. 그가 하는 운기행공은 종이에 나와 있는 방법이었다. 먼저 단전을 제외한 나머지 혈도가 뚫렸다. 뚫린 혈도에서 만들어진 힘은 단전으로 향하더니 송곳처럼 뚫고 들어갔다. 처음에 구멍은 실낱처럼 작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구멍은 점점 커졌다.

그러던 어느 순간.

슈아악!

단전이 활짝 열리고 칠십 년 동안 굳어 있던 진기가 쏟아져 나왔다.

“우!”

우상은 자기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이들 또한 신음을 내뱉었다. 단전을 뚫고 나온 진기는 미친 듯이 솟구쳤다. 기존에 있던 내기와 조각을 만들면서 축적된 내기는 말릴 새도 없이 하나로 합쳐졌다.

일행은 금세 삼매경으로 빠져들었다.

우르릉!

진기는 해일처럼 내달렸다.

온몸 구석구석 숨어 있던 진기를 끌어당겨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둥실!

일곱 명의 신형이 동시에 떠올랐다.

허공에 뜬 상태에서 운기행공을 계속했다.

우두둑! 우두둑!

어느 순간 환골탈태가 일어났다.

일곱 명에게서 동시에 환골탈태가 일어나는 광경은 장관이었다. 머리카락이 빠지고 옷이 가루로 변해 떨어져 나갔다. 살 비늘이 떨어지고 칠십 년 동안 쌓였던 검은 탁기가 빠져나왔다. 뼈가 재구성되고 빠졌던 머리카락이 다시 났다.

다시 가부좌 상태로 돌아간 일곱 명의 신형이 천천히 내려왔다.

척! 척척척!

일곱 명은 가부좌를 한 채로 바닥에 앉았다.

번쩍!

가장 먼저 우상이 눈을 떴다. 순간 푸른 광채가 전방으로 폭사됐다.

번쩍! 번쩍! 번쩍! 번쩍!

나머지 여섯 명도 거의 동시에 눈을 뜨고 옥안이라 불리는 푸른 광채가 폭사됐다.

운기행공을 마친 일곱 명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일행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 말이 없는 게 아니라 너무 벅차 말문이 막혀 버린 탓이었다.

“우우우우우우!”

우상이 함성을 토해 내며 허공으로 솟구쳤다. 허공으로 솟구치는 그는 여전히 가부좌 상태였다.

“우우우우우!”

“우우우우우!”

“우우우우우!”

“우우우우우!”

우상에 이어 여섯 명이 거의 동시에 함성을 내지르며 허공으로 솟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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