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447)
검총만상대진
깡! 깡! 깡!
망치가 정의 머리를 칠 때마다 돌이 깎여 나갔다. 바위를 깎고 있는 정은 정교했다. 돌이 깎여 나갈수록 전면을 응시하는 눈동자와 주름지고 고뇌에 찬 얼굴은 점점 생생해졌다. 그런데 조각상의 얼굴은 누군가와 닮았다. 그건 바로 쉬지 않고 망치를 내리치고 있는 노인의 얼굴이었다.
노인은 얼굴을 가득 채운 주름과 검버섯으로 인해 나이를 짐작하기 힘들었다. 다만 일자로 굳게 닫힌 입술은 고집스러운 성정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었다. 옷은 해져 입었다고 할 수도 없었다. 신발도 신지 않은 맨발이었다.
깡! 깡! 깡! 깡!
그런데 조각을 하는 사람은 노인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곳에서도 망치와 정을 들고 열심히 뭔가를 조각하는 노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전부 다섯 명이었다.
“식사하게요.”
아래쪽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노인은 동작을 멈추고 아래를 보았다.
왜소한 체격의 노인이 광주리를 든 채 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벌써 밥 먹을 때가 된 건가?”
노인은 망치와 정을 그 자리에 놓고 아래로 내려갔다. 광주리를 들고 있는 노인 앞까지 간 노인은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널따란 벽이 눈에 들어왔다. 높이는 십 장, 좌우 폭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절벽은 모두 조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바닥에서부터 꼭대기까지 빈 부분이 전혀 없었다. 모든 조각은 사람 얼굴이었다. 찡그린 얼굴, 화난 얼굴, 웃는 얼굴, 우는 얼굴, 고민하는 얼굴, 난제를 풀어 활짝 갠 얼굴, 자식을 보는 부모 얼굴, 부모를 보는 자식 얼굴 등 인간이 지을 수 있는 모든 얼굴이 절벽에 있었다.
그사이 다른 곳에서 조각을 하던 다섯 명이 다가왔다. 머리는 산발하고 옷은 입지 않느니만 못하고 맨발이며, 강한 기운을 흘리지도 못하지만 이들에게는 말로 설명하기 힘든 특별한 기운이 있었다. 그것은 권력을 바탕으로 나오는 위엄도 아니었다.
탁발수행을 하다가 길거리에서 입정한 고승에게서 느껴지는 고결함도 아니었다.
정의하기 힘든 어떤 기운이 일곱 명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이들은 바로 검각 모처에서 수감 생활을 하고 있다는 칠검마였다.
키가 가장 크고 왜소하지만 눈에서는 마주 보기 힘들 정도로 강한 광채를 흘리는 자는 칠검마 대형인 심검마 우상이고, 키가 작고 말라 볼품없어 보이는 자는 천검마 방낙인이다. 방낙인은 체구와 달리 탁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풍겼다.
일곱 명 중 가장 덩치가 크고 수염을 기른 사람은 혈검마 사적인이다. 사적인은 눈동자를 깜빡일 때마다 붉은 기운이 조금씩 비쳐 보였다. 축축하고 어둡고 차가우며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는 자는 영검마 유막이고, 성난 맹수를 연상할 정도로 난폭하고 폭급한 분위기를 풍기는 자는 묵검마 야수황이다. 야수황과 달리 너무 평범해서 돌아서면 금세 잊어버릴 것 같은 자는 환검마 각선이다. 마지막으로 광주리를 든 노인 옆에 서 있는 자는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면 화가 나고 주먹을 한 방 날려 버리고 싶은 특이한 얼굴의 소유자였는데 그는 역검마 전군남이었다.
“오늘은 태양의 땅에서 식사, 어떻습니까?”
혈검마 사적인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러세.”
심검마 우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시죠.”
일행은 걸음을 옮겼다.
안쪽으로 들어가는 건지 나가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나아갈수록 천장이 낮아졌다.
계속 낮아지던 천장이 일 장까지 낮아지더니 그 상태를 유지했다. 야명주가 천장 곳곳에 박혀 어둠을 밝혀 주었다.
일행은 멈추지 않고 계속 걸었다.
한 식경 정도를 걸었을까, 일행의 눈에 환한 장소가 들어왔다. 마치 위에서 아래로 불빛을 비추는 것처럼 그 부분만 환했다. 환한 부분은 지름이 삼 장 정도였다. 일행은 그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오늘을 날씨가 좋을 모양입니다.”
사적인은 고개를 들었다.
파란 하늘이 보였다. 마치 작은 창을 통해서 보는 것처럼 작은 하늘이다. 하늘이 그렇게 작게 보이는 건 이곳이 백 장 깊이의 수직 동굴 바닥이기 때문이다. 마치 누군가가 무공을 뚫어 놓은 것처럼 동굴의 벽은 평평하다. 만일 저 동굴 벽이 울퉁불퉁했다면 칠십 년 동안 갇혀 있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폭은 삼 장이나 된다.
날개 없이는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
자신들이 이곳을 태양의 땅이라고 하는 건 해를 볼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태양을 보는 건 장소뿐만 아니라 시간에도 제약을 받는다. 지금 이 시간이 아니면 볼 수가 없다. 비 오는 날도 볼 수 없고 눈이 오는 날도 볼 수 없다.
오직 화창한 날 정오 혹은 정오 비슷한 시간대에만 저 태양을 볼 수 있다.
“먹지.”
키가 큰 노인이 말했다.
“그러시죠.”
일행은 일제히 고개를 숙여 광주리를 보았다.
광주리 안에는 이끼처럼 생긴 버섯과 마른고기가 들어 있었다. 마른고기는 모두 일곱 개였다.
광주리 안 음식은 늘 같다. 고기를 먹는 날에는 두 종류고, 그렇지 않는 날은 이끼 버섯 한 종류다.
“쥐 고기는 얼마나 남았는가?”
심검마 우상이 말린 고기를 집어 들며 물었다.
“내일부터 사냥을 해야 합니다.”
천검마 방낙인이 대답했다.
“끙! 조각보다 더 어려운 게 쥐를 사냥하는 건데.”
혈검마 사적인이 얼굴을 찌푸렸다.
“잡을 쥐라도 많았으면 좋겠구먼.”
환검마 각선이 말했다. 각선의 얼굴은 평범한 정도가 아니었다. 말을 하는데도 아무런 표정이 없다.
마치 조각상이 입만 벌려서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쥐야 어떤 곳이라도 자리를 잡는 동물이니까 많이 있겠지. 그리고 쥐 잡는 날이 아니면 언제 우리가 뛰어다녀 보겠는가?”
심검마 우상이 말했다.
“그렇긴 합니다만. 그런데 몸은 어떻습니까?”
역검마 전군남이 물었다.
“자네 얼굴이 점점 보기 싫어지네. 몇 년만 더 있으면 자네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내뻗을지도 모르네.”
“쿡쿡쿡! 대형도 그렇군요.”
역검마 전군남은 키들키들 웃었다. 그런데 웃을수록 전군남의 얼굴은 더욱 일그러졌다. 그러다 종래에는 악귀 같은 얼굴이 됐다.
그가 이렇게 좋아 죽는 건 얼굴이 점점 보기 싫어진다는 우상의 말 때문이었다. 자신이 내공을 지니고 있었을 때, 사람들은 시선을 마주치면 고개를 돌리기 바빴다. 쳐다보고 있으면 욱하고 분노가 치밀고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내뻗기 때문이다. 상대가 보통 사람이면 사과하는 걸로 끝나든, 자기도 한 방 맞으면 되지만, 상대는 칠검마의 한 명인 역검마 전군남. 얼굴을 친 대가는 죽음이다.
살기 위해서는 얼굴을 쳐다보지 않는 수밖에 없다. 상대를 분노하게 만드는 표정은 내공을 금제당하면서 모두 사라졌다. 그런데 대형인 심검마 우상이 점점 쳐다보기 힘들다고 하였다. 그건 곧 금제당했던 내공이 돌아오고 있거나, 새롭게 생겨난 내공이 금제를 무력화시켜 나가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려 버릴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어도 기분이 나쁠 리가 없다.
“새로 생겨난 내공은 어느 정돈가?”
심검마 우상이 묵검마 야수황을 보며 물었다.
“일 갑자 정도인 것 같습니다.”
야수황이 대답했다. 이곳에 갇히면서 가해진 금제 때문에 기존의 내공은 쌓는 것도 사용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이런저런 논의 끝에 일행은 새로운 내공을 축적하는 건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새로 축적한 내공을 사용하는 건 불가능했다. 금제 때문이었다.
“그 내공은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는가?”
가장 큰 관건은 내공을 움직일 수 있는지 여부였다. 새로운 내공을 모두 쌓기는 했지만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바람의 내공심법이라 부르는 폭풍만마공을 익힌 묵검마 야수황뿐이다.
물론 야수황이 금제를 푼다고 해서 다른 이들의 금제가 풀린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지금은 그 방법뿐이고 이곳에서 풀지 못하면 밖으로 나가 찾아오면 된다.
“짧게 잡으면 일 년, 길게 잡으면 이 년이면 됩니다.”
“그렇군.”
덤덤하게 말하는 것 같지만 심검마 우상의 얼굴엔 격동의 표정이 어렸다가 사라졌다.
“장담하십니까?”
느닷없이 위쪽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응?”
일곱 명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그들은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무인 두 명이 절벽 좌우를 차 떨어지는 속도를 줄이며 아래로 내려오고 있었다.
척! 척!
두 사람은 바닥으로 내려섰다.
그들은 검각 문주 평천일과 부문주 영호정이었다.
“누구냐?”
묵검마 야수황이 소리쳤다. 그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평천일과 영호정을 쏘아보았다.
“평씨 같은데 뭘 물어보는가?”
천검마 방낙인이 말했다.
“맞느냐?”
야수황이 물었다.
“그렇습니다. 나는 검각의 현 문주 평천일입니다.”
“평중양과는 어떤 사이냐?”
야수황이 다시 물었다.
“제 아버집니다.”
“하면 평곤의 손자이겠구나.”
“그렇습니다.”
평천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평중양은 아직 살아 있는가?”
심검마 우상이 물었다.
평중양은 이곳으로 딱 한 번 찾아왔다. 그때 와서는 검각의 원로가 돼 줄 수 없냐고 물었다. 우상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평중양은 가만히 바라보다가 돌아갔다. 그런데 사십 년 만에 그의 아들이 찾아온 것이다.
“돌아가셨습니다.”
“그랬구먼. 우리에 대해서는 들었는가?”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서 처음 보는데도 일곱 분을 모두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평천일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는 한눈에 칠검마를 구분했다.
“내가 누군지 아는가?”
심검마 우상이 물었다.
“심검마 우상 같은데, 맞습니까?”
“맞네. 그런데 여긴 어쩐 일인가?”
심검마 우상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한 가지 부탁을 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부탁이라……. 대가는 뭔가?”
“여러분들의 자윱니다.”
“짧으면 일 년, 길면 이 년이면 우린 자유를 얻을 수 있네.”
“묵검마 야수황 선배께서 공력을 회복하면 나머지 분들의 금제를 풀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십니까?”
“우린 그렇게 생각하고 있네.”
“만일 안 되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아니, 야수황 선배의 공력이 회복되지 않으면요.”
“…….”
우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야수황의 공력 회복에 모든 걸 건 기간이 사십 년이다. 야수황이 자신들의 금제를 풀지 못할 거란 생각은 했지만 야수황이 공력을 회복하지 못할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공력을 회복한 야수황이 금제를 풀지 못하면 밖으로 나가서 방법을 찾아오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평천일이 야수황이 공력을 회복하지 못하면 어떻게 할 거냐 물은 것이다.
“난 공력을 회복할 수 있다!”
야수황이 차갑게 말했다.
“빨간색 물이 들어 있는 주머니가 있습니다. 그 물은 꽁꽁 얼어 움직이지 못합니다. 그 주머니는 주둥이가 줄로 묶여 있지요. 주머니의 주인은 입구를 묶은 줄을 풀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밖에서는 풀 수가 없습니다. 내부에서만 풀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머니 주인은 기존의 물과 다른 물을 만들어 냅니다. 그 물을 파란색이라고 하겠습니다. 수십 년을 노력해서 빨간색 물보다는 작지만 파란색 물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 물로 빨간색 얼음을 녹인다고 주머니 입구를 묶은 줄을 풀 수 있을 거라고 보십니까? 가장 좋은 방법은 주머니를 팽창시켜 터뜨리는 겁니다. 주머니가 터지면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평천일은 차분하게 말했다.
“으음!”
“음!”
칠검마는 자신들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었다.
평천일이 말한 주머니란 단전을 말한다. 단전이 폭발하여 터지면, 바로 폐인이 되고 만다.
“네 말을 믿을 수 없다.”
야수황은 발작적으로 소리쳤다.
“오백 년 검각 역사 속에서 가장 뛰어난 무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일곱 분을 칠십 년 동안 꼼짝 못 하게 한 금젭니다. 그렇게 간단하게 풀릴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우상을 비롯한 일곱 명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평천일의 말이 설득력이 있는 게 아니라 상식적으로 맞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뭔가?”
생각에 잠겨 있던 우상이 말했다.
“형님!”
천검마 방낙인이 우상을 보았다.
“우린 백 살이 넘었네, 방 제.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만 해도 기적이라고 할 수 있네. 평생을 여기서 보냈지만 죽음만큼은 밖에서 맞았으면 하네.”
우상은 나직하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방낙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평천일을 보았다.
“검각에 침입한 적을 없애기 위해 검총파천쇄옥진을 발동했습니다.”
“그 절대 진식을 찾아냈단 말인가?”
우상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네. 몇 년 전에 찾아내서 완벽하게 복구했습니다.”
“검각은 더욱 강해졌겠구먼.”
우상이 말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검총파천쇄옥진 안에서 일검대 삼백 명이 죽고 이백 명은 육 개월 이상 요양을 해야 할 정도로 심한 부상을 입었습니다.”
“일관이 무너졌다는 건가?”
우상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