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444화 (444/524)

황금가 (444)

금장생이 멈추자 무혼, 바타르, 권말남, 자운영도 그 자리에 멈췄다. 일행이 멈춘 곳은 야트막한 산 정상이었다.

일행의 시선 안으로 불이 환하게 밝혀진 건물들이 들어왔다. 십 리가량 떨어진 곳인데도 달빛 때문인 듯 비교적 잘 보였다. 한밤중임에도 불구하고 불을 환하게 밝혀 놓은 걸 보면 무슨 일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저기가 어디지?”

금장생의 목적지가 저 건물임을 알아차린 무혼이 물었다.

“검각입니다.”

금장생이 대답했다.

“네 목적지가 저기냐?”

“우린 지금 좌측과 우측이 막힌 상탭니다. 저기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오른편과 왼편이 막힌 상태이긴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뚫고 갈 수 있어. 하지만 너는 계속 달려왔지. 그건 곧 적이 막고 있다는 건 구실일 뿐이고 목적지가 저기라는 뜻이야.”

무혼은 자운영을 돌아보았다. 검각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어서였다.

“무인의 총수는 일천오백 명이고 문주는 천중제일검 평천일입니다.”

자운영이 대답했다.

“이 녀석이 적지로 달려가는 이유가 뭐지?”

“십오 년 전에 검각 문주 평천일과 해림 림주 파운양 간에 문파의 명운을 건 비무가 있었습니다.”

“파운양이 이긴 거야?”

“네.”

“그럼 저긴 해림의 팔 중 하나라고 보면 되겠네?”

“해림의 팔 중 가장 강하고 긴 팔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저길 멸문시켜 버리면 어떤 결과가 나오지?”

“해림의 다른 팔들은 잔뜩 움츠릴 테고, 해림과 관계를 정리하려는 자들도 생겨날 겁니다.”

“관계를 정리하지 않는다고 해도 팔왕가를 칠 때는 한 번 더 생각해 보겠지?”

“그럴 겁니다.”

“약은 자식!”

무혼은 피식 웃었다. 금장생은 지금껏 어쩔 수 없이 이곳으로 오는 것처럼 했다. 그런데 정확하고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여기까지 온 것이다.

“하늘에서도 쫓아오는 것 같은데, 다 쉬었으면 가죠.”

금장생은 곧바로 마신행을 펼쳤다.

그의 신형이 빠르게 전방으로 쏘아졌다.

무혼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새처럼 보이는 자들 수백 객체가 이편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신족들은 은신술을 선천적으로 타고난다고 하지 않았냐?”

무혼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은신술을 타고났다고 해도 하루 종일 몸을 숨기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하루에 어느 정도나 가능한데?”

“쉬었다 펼쳤다가를 반복하면 하루 종일도 가능하지만 연속해서 펼치면 두 시진이 한곕니다. 두 시진을 펼치고 나면 최소한 한 식경은 쉬어 줘야 합니다.”

“조금 있으면 다시 사라지겠네.”

“그럴 겁니다.”

“그런데 검각에서는 우리가 오는 걸 알고 있을까?”

“해림 림주가 연락을 했다면 알고 있겠지요.”

“그럼 준비를 하고 있겠네?”

“당연히 그래야죠. 안 그러면 너무 미안하잖습니까?”

“미안해?”

“대항할 여유도 없이 일방적으로 당하면 진짜 기분 더럽잖아요.”

“고양이 쥐 생각 하고 있네.”

무혼은 피식 웃었다.

“아무튼 알고 대비하고 있을 겁니다.”

금장생의 말대로였다.

검각에서는 이미 금장생 일행의 출현을 알고 있었다.

“지금 어딘가?”

문주 평천일이 물었다.

“오 리 밖에 있습니다.”

“문도들 배치는 어떤가?”

“일검대 오백 명과 이검대 사백 명은 배치가 끝났고 지금은 삼검대, 사검대, 오검대를 배치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가야겠지.”

“네.”

“가세.”

평천일은 옆에 두었던 검을 집어 들었다. 그가 든 검은 검각 오대신검 중 한 자루인 용형이었다. 용형의 검집은 승천하는 용 모양이었다. 검면에서부터 시작한 용의 꼬리는 손잡이를 타고 올라, 뒤쪽 끝은 용머리를 형성하고 있다. 보통은 용의 입에 여의주를 물리는데 용형의 용 입에는 없었다.

아마도 여의주를 물 자격이 안 된다고 만들어 넣지 않은 모양이었다.

평천일은 검을 허리에 차고 밖으로 나갔다.

그가 검총에 도착한 건 한 식경 후였다.

검총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가 도착하자 연락을 받은 검각사노가 다가왔다.

“준비는 끝났소?”

평천일의 시선이 춘설일검 이육노에게로 향했다.

“모든 준비 끝났습니다.”

이육노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발동하시오.”

“존!”

“존!”

검각사노는 짧게 대답하고 자리를 떴다. 검각사노가 떠나고 일각 후 검총 곳곳에서 희뿌연 운무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운무는 곧 검총 전역을 뒤덮었다.

그 시각 금장생 일행은 검총으로 들어가는 문 앞에 도착했다.

“담이 없는 문이라…….”

금장생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저 안쪽에는 진식이 구축돼 있다.”

바타르가 말했다.

“무인 다 됐네.”

무혼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진식의 구축 여부를 알아차리는 건 대기 흐름과 관계가 있는 거지 무공과는 상관없다.”

“어쨌거나 무공을 익히지 않았으면 진식 따위에 관심도 갖지 않았을 거잖아.”

“그렇긴 하지.”

“일단 들어가 볼까요?”

금장생은 검총으로 들어가는 문을 밀었다.

가장 먼저 금장생의 눈에 띈 건 뿌연 운무 속으로 쭉 뻗어 있는 길이었다. 다른 건 모두 뿌옇게 보이는데 길만 유독 선명하게 보였다.

마치 길을 따라 걸어오라고 하는 것 같았다.

“부르는데 가야지.”

금장생은 성큼성큼 걸어갔다. 길을 따라 이십여 장을 걸어갔을 때였다.

―저예요.

그의 귓전으로 불여하의 전음이 들려왔다.

금장생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그 옆에서 흙더미 하나가 일어났다. 땅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불여하였다. 이곳으로 불여하 일행을 먼저 보낸 사람은 금장생이었다. 물론 목적은 적에 대한 파악이었다.

―다른 사람은 어디 있습니까?

금장생은 불여하를 보며 물었다.

“여기 있습니다.”

대답과 함께 나머지 일곱 명이 땅속에서 나왔다.

“어떤 진식입니까?”

“검총파천쇄옥진이라는 명칭만 알 뿐 정확하게 어떤 위력을 지녔는지는 몰라요.”

“그동안에 뭐 했던 거냐?”

바타르가 물었다.

“토끼 굴을 좀 파 두었소.”

적사월이 바타르를 보며 대답했다.

“토끼 굴?”

“거미줄처럼 파 두었습니다. 싸우다가 힘들면 바닥을 향해 일장을 내리치시오. 그럼 휴식처가 생길 거요.”

“기억하마.”

츠츠츠츠! 츠츠츠츠!

진식이 완벽하게 구축된 듯 대기가 왜곡되는 소리가 일행에게까지 들렸다. 모든 주변 사물이 사라지고 길만 선명하게 보였다.

“갑시다.”

금장생은 걸음을 옮겼다.

다른 이들도 일제히 금장생을 따라 걸었다.

“어?”

“어?”

“뭐지?”

“이건?”

열 걸음 정도 걷던 일행의 눈이 커졌다. 바로 앞에서 걷던 이들의 모습이 갑자기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가장 먼저 사라진 사람은 금장생이었다.

“어디로 가는데?”

금장생이 길이 없는 곳으로 가자 무혼이 버럭 소리쳤다. 하지만 금장생은 듣지 못한 듯 운무 속으로 계속 걸어갔다. 무혼은 금장생을 잡기 위해 걸음을 옮기며 손을 뻗었다.

“무혼!”

바타르가 무혼을 불렀다. 하지만 금장생과 마찬가지로 무혼의 모습도 금세 사라지고 말았다.

바타르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함께 있던 이들은 모두 사라지고 자신만 남아 있었다. 주변이 변한 건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처음 볼 때는 한 자 혹은 두 자 길이밖에 안 됐던, 박혀 있던 검들이 일 장 크기로 커져 있었다.

아니 어쩌면 꽂혀 있던 검이 커진 게 아니라 자신이 작아진 건지도 모른다고 바타르는 생각했다.

“설마 뽑혀서 날아오는 건…… 헉!”

바타르의 눈이 커졌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땅속에 박혀 있던 검들이 뽑혀 나오기 시작했다. 완벽하게 모습을 드러낸 검은 길이가 일 장 반에 달했다. 밖으로 나온 검은 이리저리 방향을 트는 것 같더니 바타르 쪽으로 섰다.

푸아아악!

엄청난 소성을 남기며 바타르를 향해 쏘아져 갔다.

바타르의 손이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그의 손이 새카만 광채를 뿌리고 있었다. 천마가 창안한 수공인 천마수天魔手였다.

카앙!

둔탁한 소성과 함께 검이 튕겨져 나갔다.

푸아아아악!

그 검이 튕겨져 나가기가 무섭게 다른 검이 날아왔다. 검이 날아오는 속도는 이기어검술로 던지는 검의 속도와 비슷했다.

바타르의 왼손이 움직였다.

카앙!

또다시 날카로운 소리가 흘러나오고 검이 튕겨졌다.

푸아악! 푸아악!

두 자루의 검이 동시에 날아왔다.

바타르는 주먹을 힘껏 그러쥐었다. 그러쥔 주먹에서 새카만 광채가 흘러나왔다. 천마가 창안한 최고의 권공인 지옥천마권地獄天魔拳이었다.

바타르는 상단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콰앙!

커다란 폭음과 함께 거대한 검이 나타나더니 검 끝부터 시작해서 잘게 부서지기 시작했다.

“컥!”

“큭!”

“윽!”

“억!”

검 주변에서 나직한 비명이 들려왔다.

‘적?’

바타르의 눈이 커졌다. 그는 거대한 검을 환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비명이 들려온 것이다. 그건 곧 환영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쇄액!

“이크!”

바타르는 왼 주먹을 내질렀다. 느닷없이 심장으로 섬뜩한 기운이 파고든 것이었다.

콰앙!

쩌억!

둔탁한 소성이 흘러나오더니 거대한 검면에 금이 쩍쩍 갔다.

“윽!”

“큭!”

“으윽!”

나직한 비명이 들려오더니 검이 작은 조각으로 부서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 정도로는 날 어쩌지 못한다.”

바타르의 오른손이 팔 상박까지 모두 새카맣게 변했다. 그는 새카맣게 변한 오른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오른팔이 지나간 곳이 새카맣게 변했다.

캉! 캉캉!

쩌억! 쩌억! 쩌억!

세 자루의 검이 조각조각 부서져 아래로 떨어졌다.

휙!

공격을 마친 바타르가 넓은 보폭으로 한 걸음 이동했다.

푸욱!

거대한 검 한 자루가 조금 전 그가 서 있던 공간을 뚫으며 땅속으로 박혔다.

“차하!”

바타르의 왼 다리가 허공을 갈랐다. 그의 다리 역시 팔처럼 검은색이었다.

퍽!

발뒤꿈치가 땅속으로 박힌 검면을 때렸다.

카앙!

그 순간 검 한 자루가 바타르의 등을 때렸다.

바타르가 앞으로 처박혔다.

“끙!”

바타르는 얼굴을 찌푸렸다. 몸을 강하게 만드는 강화 마법으로 온몸을 두르지 않았다면 몸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을 정도로 강한 공격이었다.

그는 재빨리 몸을 돌렸다.

쇄액!

하늘에서 검 세 자루가 그를 향해 떨어졌다.

“실드!”

바타르의 입에서 나직한 외침이 흘러나왔다. 곧 그 위쪽에 반투명한 형태의 방패가 생겨났다.

퍼억! 퍼억! 퍼억!

세 자루의 대검은 방패를 뚫었다. 하지만 방패를 뚫느라 힘을 소모한 바람에 속도가 많이 느려졌다.

“차하!”

바타르는 벌떡 일어나면서 양손을 휘둘렀다. 지옥천마검법地獄天魔劍法의 일 초인 지옥천하였다.

순간 그의 전면이 새카맣게 변했다.

캉! 캉캉카! 캉!

쩌억! 쩌억! 쩌억!

“커억!”

“크윽!”

“으윽!”

검은 광채 안에서 처절한 비명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바타르 생각에 십여 명 이상을 없앤 것 같은데 시체는 보이지 않았다.

“지랄!”

비명의 결과물이 눈에 보이지 않자 공연히 짜증이 났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