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443화 (443/524)

황금가 (443)

“그래서 어떻게 됐소?”

“원래 위력의 절반도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나욱의 검은 무거운 내기를 견뎌 냈다는 거요?”

“그렇습니다.”

설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욱이 사용하던 검은 어떻게 됐소?”

“그의 검을 무적검無敵劍이라고 했는데 사라지고 없었답니다.”

“사라지고 없어요?”

“들리는 말로는 저기 있는 검들 속에 있다고 하는데, 지금까지 찾아낸 사람이 없답니다.”

설천은 벌판에 꽂힌 검을 가리켰다.

“설사 있다고 해도 철검이 오백 년을 견뎌 낸다는 건 무리겠지.”

“그럴 겁니다.”

“신검으로도 안 되고 나욱의 철검도 없으니까, 검을 만드는 방법에서 해결책을 찾으려고 했겠군. 더구나 그는 대장장이였으니까.”

“그렇습니다. 그는 자기가 철검무적검해를 펼칠 검을 만들기 위해 망치를 잡습니다. 그는 검을 만들 때마다 시험을 했고 검은 중간 부분에서 터져 나가 버립니다. 그는 터져 나간 검은 버리지 않고 저기에 갖다 꽂으면서 자신을 다독였다고 합니다. 그 와중에 철검무적검해를 바탕으로 검천무적마해라는 새로운 무공을 창안해 냈고요.”

“그래서 만들어 낸 거요?”

“네. 그는 일만 개의 검을 만들고 나서야 비로소 검천무적마해를 펼칠 수 있는 검을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강호로 나갑니다. 강호무림엔 많은 고수들이 있었지만 그의 십 초를 받아 낸 자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때 얻은 별호가 검천잡니다. 오 년의 강호행을 마치고 이곳으로 돌아온 그는 검각을 세우고 제자를 받아들입니다. 그들에게 자기 무공을 전수했고요. 그런데 무공만 전수해 주었을 뿐 철검 만드는 법은 전수해 주지 않았답니다.”

“검법을 익히면서 직접 만들라고 한 모양이지?”

“그렇게 해서 이곳에 검이 꽂히게 됐고 검총이 만들어진 겁니다.”

“검천무적마해는 어쩌다가 실전된 거요?”

“검천자 제자들은 미친 듯이 검 만들기에 몰두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검천무적마해를 완벽하게 펼치지 못했습니다.”

“평범하게 보이는 철검을 만들지 못했군요.”

“네. 하지만 검을 만드는 와중에 검천무적마해를 바탕으로 무공을 창안해 냈고 그 무공들은 철검이 아니더라도 펼치는 게 가능했습니다.”

“그것들이 검각의 무공이 됐겠군.”

“검천무적마해만큼은 아니지만 절공이라 부를 정도는 됐으니까요. 그리고 검각에는 검천자가 만들어 놓은 신검이 다섯 자루나 있었거든요.”

“신검이라고요?”

“무공을 시험하기 위해 검을 만들었다고 했잖습니까.”

“그 검들이 남아 있다는 거요?”

“네. 만년뇌금철로 만든 뇌금雷金, 곤오신철로 만든 곤오坤烏, 혈염강철로 만든 혈염血炎, 용형묵철로 만든 용형龍形, 묵강한철로 만든 묵강墨鋼이 아직 있는 걸로 압니다.”

“그중 하나는 문주가 가지고 있겠군.”

“그렇습니다.”

“다 알았으니까 들어가 볼까요?”

옥천환은 현판 아래쪽 문을 밀었다.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좌우측 담이 없어 잠근다고 해도 의미가 없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문이 잠겨 있다는 건 손님을 받지 않겠다는 뜻이다.

“엄청나네.”

옥천환은 자신도 모르게 휘파람을 불었다.

문밖에서 보는 것과는 또 달랐다.

직선으로 쭉 뻗어 있는 길을 가운데 두고 좌우측으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검들이 꽂혀 있었다. 마치 검으로 이루어진 숲으로 들어선 것 같았다. 이곳은 검의 무덤이 아니라 검림劍林이었다.

저 멀리서 마차 한 대가 이편으로 다가왔다.

잠시 후 마차는 문 앞으로 와 섰다. 마차 지붕에는 평범한 철검이 새겨진 깃발이 걸려 있었다. 검각의 표식이었다.

마차 문이 열리고 문사복을 입은 자가 내렸다. 그는 검각의 부문주 영호정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전 검각의 부문주 영호정입니다.”

영호정은 옥천환 일행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반갑소. 나는 해림의 림주 옥천환이오.”

옥천환은 가볍게 고개만 까딱했다.

“……오르시지요.”

잠시 옥천환을 바라보던 영호정은 마차를 가리켰다. 옥천환과 설천 일행은 마차에 올랐다. 마지막으로 영호정이 오르자 마차는 바로 출발했다.

“창을 좀 열었으면 좋겠소.”

옥천환이 말했다.

그러자 창가에 앉아 있던 이들이 창문을 열었다. 창을 열자 바깥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어?”

풍경을 감상하던 옥천환의 눈이 커졌다.

“왜 그러십니까?”

영호정이 물었다.

“검총에 무기만 있는 게 아니었소?”

“저것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영호정은 벌판 곳곳에 우뚝우뚝 서 있는 건물을 가리켰다.

“그렇소.”

옥천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 건물들은 이곳에서 기연을 찾거나 수련을 하기 위해 세운 겁니다.”

“수련은 이해하겠는데 기연을 찾는다는 건 무슨 뜻이오?”

“이곳에 검천무적마해와 철검무적검해 그리고 무적검이 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검천무적마해는 어쩌다가 실전된 겁니까?”

옥천환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었다.

“사조님의 제자이신 칠검존께서 제자들에게 전수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런 거요?”

“무적검을 만든다며 세월을 낭비하는 게 싫었던 게지요.”

“아!”

옥천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제자들이 지금도 검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검총에 가져와서 꽂아 놓습니다.”

“앞으로도 검총은 점점 커지겠군요.”

“그렇습니다.”

“어쨌거나 나는 칠검존께 감사해야겠군요.”

“왜 그분들에게 감사한다는 겁니까?”

“만일 그들이 검천무적마해를 없애지 않았더라면 누군가가 무적검을 만들어 냈을 테고, 내 사부는 패했을 것 아닙니다. 그럼 부문주와 내 입장은 달라졌겠지요.”

“풋!”

영호정은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문득 옥천환이 생각보다 그릇이 큰 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농담이라고 해도 누군가를 인정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 그런데 옥천환은 검각 무공이 더 뛰어나다고 한 것이다. 자신을 낮추어 내심을 숨길 줄 아는 자. 영호정이 아는 한 그런 자는 효웅뿐이다.

“이 길은 어느 정도나 되오?”

옥천환은 물었다.

“오 립니다.”

“그렇군요.”

옥천환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창밖으로 시선을 주었다. 바닥에 꽂힌 검과 철로 만든 건물을 구경하는 사이 마차는 또 다른 대문을 통과해 고루거각 안으로 들어섰다. 조금 전 통과한 대문이 진짜 검각으로 들어가는 입구다.

마차는 가장 높은 건물 앞에 멈췄다. 영호정은 옥천환 일행을 꼭대기 층으로 데리고 갔다.

“어서 오십시오. 먼저 인사를 드렸어야 하는데 연락도 없고 해서 늦어졌습니다. 나는 검각 각주 평천일입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평천일은 옥천환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옥천환이오.”

옥천환도 포권을 취했다.

“그리고 이들은 심해전 전주와 원로들이오.”

“세 분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앉으시지요.”

평천일은 자리를 권했다.

네 사람이 자리하자 차가 나왔다. 다섯 사람은 차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회의는 한 시진 정도 이어졌다.

회의가 끝나고 옥천환은 갔던 길을 되돌아 나와 검각을 벗어났다.

“전주 생각은 어떻소?”

검총 대문을 나오자 옥천환이 물었다.

“어떤 걸 알고 싶습니까?”

설천은 되물었다.

“평천일 그자가 다른 마음을 먹고 있다는 느낌은 나만 받은 거요?”

“저도 느꼈습니다. 하지만 크게 신경 쓸 필요 없다고 봅니다.”

“팔왕만 잡으면 된다는 거요?”

“네.”

“문제는 그놈을 잡았을 때 좌무백이 누구의 공으로 인정하느냐 하는 거요. 만일 검각의 공으로 인정하게 되면, 춘추오패가 아니라 춘추육패가 되는 거요.”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검각은 현재 전력을 고스란히 보존해야 합니다. 그게 가능할 거라고 보십니까?”

“그럼 전주 생각은…….”

“지금까지 우리, 아니 신족들이 당한 걸 보면 아무리 준비를 철저히 한다고 해도 검각은 절반 이상 무너질 겁니다. 설사 팔왕을 잡았다고 해도 그 정도 전력으로 춘추오패와 동등하게 대우해 달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죠.”

“쿡!”

옥천환은 피식 웃었다.

설천의 말을 듣고 보니 걱정할 이유가 없었다.

검각이 아무리 뛰고 날아 봐야, 그들이 설 자리는 해림 휘하뿐이다.

“저기 보십시오.”

설천이 하늘을 가리켰다.

까마득히 높은 곳에 검은 점 수십 개가 떠 있었다.

“으음!”

옥천환은 신음을 내뱉었다.

보통 사람은 새라고 생각하겠지만, 새가 아니고 신족이다. 무공을 이용해서 날개를 만들어 내는 것이, 자신들이 풀잎을 밟고 달리는 초상비 경공이나 눈 위에 흔적을 남기지 않고 달리는 답설무흔, 물 위를 달리는 등평도수 같은 무공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날아가는 걸 보면 경외감이 먼저 인다.

무공이냐 아니냐 하는 걸 떠나 저런 능력을 가진 신족은 대단한 자들임에 분명했다.

“이쪽으로 옵니다.”

“놈이 이쪽으로 향했다는 건가?”

“그런 것 같습니다.”

설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하지 않소?”

옥천환은 설천을 보았다.

“어떤 게 이상하십니까?”

“놈이 쫓겨서 이쪽으로 오는 게 아니라 일부러 방향을 이쪽으로 잡은 것 같단 말이오.”

“그의 앞길을 막은 건 우립니다.”

“어쩔 수 없이 이쪽으로 오고 있다는 거요?”

“그자는 다른 쪽으로 갈 수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긴 한데…….”

옥천환은 고개를 갸웃했다.

팔왕의 길을 막은 건 분명 자신들이다. 그럼에도 왠지 팔왕에게 놀아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엔 반드시 잡을 거니까 신경 쓰지 마십시오.”

“그래야지요.”

옥천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내기를 끌어 올려 속도를 냈다. 그의 신형은 한 번에 십 장씩 쭉쭉 나아갔다.

옥천환이 달려가는 곳과 반대로 내달리는 자들이 있었다. 그들 역시 옥천환과 마찬가지로 바닥을 한 번 찰 때마다 십여 장씩 나아갔다.

모두 다섯 명으로 이루어진 이들은 금장생 일행이었다. 그런데 드래곤인 바타르도 신법을 펼치고 있었다. 그에게 무공을 가르쳐 준 사람은 천마였다. 그동안 아무도 몰래 무공을 익히다가, 어느 정도 수준에 올랐다는 확신이 들자 펼치기 시작했다.

“아무튼 드래곤 자식들은…….”

옆에서 달려가던 무혼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의 생각에 이 세상에서 가장 축복받은 종족이 있다면 당연 드래곤이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생명체이면서도, 강해지기 위한 노력을 조금도 하지 않는 유일한 종족. 잠만 자면 마법이 늘어나는 괴물 같은 것들이 드래곤이다. 생긴 게 좀 더럽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인간의 기준이다. 지들끼리는 뿔이 나고 송곳니가 드러난 도마뱀 형태의 얼굴을 두고 잘생겼네 못생겼네 하면서 다투기도 한다.

자신이 기억하기론 천마가 무공을 가르쳐 준 건 육 개월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극성의 천마행天魔行을 펼친다. 신법을 펼치는 걸 보면 다른 무공도 완성했을 게 분명하다.

“왜?”

무혼의 시선을 느낀 바타르가 돌아보며 물었다.

“세상이 너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다.”

“내가 육 개월 만에 너보다 더 강해지는 게 질투 나는 모양이지?”

“그런 능력을 지녔으면서도 대충대충 사는 너희들이 한심해서 그런다.”

“우리가 한심하다고?”

“당연히 한심하지, 그런 능력을 가지고…….”

“넌 어떻게 할 건데?”

바타르가 무혼의 말을 자르며 물었다.

“뭘 어떻게 해?”

“네가 자고 나면 마법이 늘고, 굳이 먹을 필요도 없고, 죽을 염려도 없고, 경쟁자도 없는 상태로 일만 년을 산다면 뭐 할 거냐고.”

“내가 그런 능력을 가졌다면 자식아…….”

무혼은 말끝을 흐렸다.

듣고 보니 너무 엄청나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드래곤은 필요한 게 아무것도 없다. 마법을 익히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고, 돈을 벌 필요도 없다. 병에 걸릴 일도 없고 맛있는 걸 찾지도 않는다. 아무것도 먹지 않으면서 숨만 쉬는 걸로도 일만 년을 산다.

“우리 드래곤은 살아야 할 이유가 없는 종족이다, 무혼. 그러면서도 살아가야 한다. 어떤 목적을 위해 치열하게 사는 너희 인간들이 행복할까, 아니면 아무런 목적도 의미도 없이 세월을 떠나보내는 우리가 행복할까?”

“그건…….”

무혼은 대답을 못 했다.

누구 삶이 더 나은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나는 네가 부러워!”

무혼은 버럭 소리쳤다.

“쿡!”

바타르는 피식 웃었다.

척!

바로 그때 앞에서 달리던 금장생이 우뚝 멈췄다.

0